주방과 나

도라지
2020-01-11 19:21
134

1.냉장고와 나.

불을 켠다. 냉장고 문을 연다. 잔반들의 상태를 체크한다.
소생 가능한가? (최대한 눈에 띄게) 정리! / 소생 불가능한가? (최대한 아무도 모르게) 클리어!

 

대략 이렇다. 냉장고에 자동 정리기능이 생기면 엄청나게 팔리지 않을까? 중량과 신선도를 체크하여 빨리 먹어야 할것을 맨 앞으로 정리해주는 기능 같은 거. 하지만 그 기능은 문탁 주방에서는 은방울 메니저가 주로 해야 하는 일인것 같다. 하!하! 집에서도 잘 못하는 이 정리의 기술이 문탁 주방에서 가장 시급한 나의 일이니  날로 느는 이 고급 기술에 우리 집 냉장고도 안녕하신지 싶지만;;

암튼 문탁에 오면 이제 주방 냉장고가 제일 궁금해진 나는  냉장고 문을 열면서 기대한다. 내가 어제 빼논 그 남은 반찬을 지난 저녁에 또는 점심에 먹고 남아있지 않게 해주소서~~~  결과는? 밥당번들은 새 반찬만 사랑한다는~

 

2. 창고와 나.

창고문을 연다. 청소기를 꺼낸다. 청소기를 다시 넣는다.

 

여기까지가 주방창고에 대해 딱 내가 아는만큼이었다. 나에게는 함께 지구에 살고 있대도 그 얼굴을 굳이 자세히 알고 싶지 않은 존재들이 더러 있는데, 창고 안에서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오는 "끾끽~"하는 음파 퇴치기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에겐 그 창고는 어쩌면 공포의 대상일지도.  그 존재 중 하나가 저 창고 안에 있을 수 있다는 신호이니깐...

 

그런데  지금은? 이미 난 그 창고의 문짝까지 닦은 여자가 아니던가! 새로 빨아온 앞치마도 창고 안에, 굴러댕기는 쇼핑백도 창고 안에, 화장지 키친타올 더러는 집에 당장 가져가기 무거운 내 짐들도 창고 안으로! 이제 창고 안은 더듬더듬 읽히지 않고 선명하게 잘 보이는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이젠 안 무섭냐고? 좀 개인적인 경험인데, 최근에 시골집에 녀석이 들어와서 (잡지도 죽이지도 못하고)며칠을 같이 산 이후로 이제 별로 무섭지도 않다는~~~

 

3. 밥당번과 나

한달에 한 번 이상은 점심 당번을 했으니깐 그래도 꽤 많은 쌤들과 짝꿍으로 만나 밥을 지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껏 소심한 내 깜냥에 매번 밥당번 낯을 가렸음이 분명한 것이, 내가 기억하는 함께 밥을 한 얼굴들 중에 뉴 페이스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물론 더러 있었으나 지금은 안 보이는 얼굴도 있고, 그 때는 뉴~했으나 이제는 서로가 함께 올드해진 덕에 내 기억이 왜곡됐을 듯도 하고. 하여간에 주방 매니저를 하기 전까지 주방은 낯선 얼굴을 볼까 늘 좀 뻘쭘할 준비를 하고 문을 여는 곳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많이 다르다. "쌤이 누구시더라~"(능청스레) 묻기도 하고! "아! 쌤이 말로만 듣던 ***쌤이시구나!"(깨방정하며) 반갑기도 하고.  나는 진심으로 다소 낯선 얼굴을 만나면 너무너~무 반갑다. 지난 한 해 주로 과학 세미나와 이문서당 쌤들을 만나면 그랬던것 같은데, 아~ 나는 올 해 논어를 읽으러 이문서당에 간다. 함께 밥짓던 쌤들과 함께 논어를 읽는다니  왜 난데없이 공부가 설레고 그러는지.  내가 주방에 오고부터 좀 많이 달라지고 있는건 맞는 것 같다. 요요쌤이 그러셨다. "주방이 도라지에겐 부처네~!" 쌤 과연 계속 그럴까요?ㅎㅎ 

 

4. 선물의 노래~

 

 

음력으로는 아직 한 해가 가지 않았구나~ 12월 선물의 노래를 1월 중순에 올리기 민망하여 괜히 하는 말!

 

느티쌤이 선물하신 시래기는 내가 만져본 시래기 중에 단연 최고의 시래기였다. 어디 바람 좋은 곳에서 잘 살다 온 무청의 느낌이 싱싱하게 남아있는 마른 시래기라니! 느티쌤께 너무 좋았다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쌤이 답하셨다. "그래? 내가 다음에 또 가져다 줄게~~" 사랑해요 느티쌤~~~^^

 

토용쌤의 대파 선물도 대단했다. 아직도 남아서 냉장고를 한자리 차지하는 그 대파! 지난 축제 육개장에서 빛을 발하고도 아직도 남았다. 밥당번님들 부지런히 써 주세요!

 

아렘쌤의 삼겹살. 나는 냉동실의 삼겹살을 처음엔 사골로 착각했다(그 크기가 커다란 기둥같았다). 뿔옹쌤이 고기 먹고 싶단 말에 선물 하셨다고 들었는데... 볶아 먹고  또 쭈삼(쭈꾸미 삽겹살 볶음)볶음에 재료가 되어 여러 끼니 풍성한 식탁이 되게 해준 고마운 선물이었다.

 

기린쌤의 골뱅이. 후포 다녀오며 선물하신 싱싱한 생물 골뱅이었을텐데... 못 먹었으니 할 말도 없고(안타깝) 난 대체로 먹을 복이 없다. 12월 30날의 뱅쇼는 또 뭐란 말인가.... 난 먹을 복이 없어.

 

스르륵쌤의 각종 기름. 쌤은 나에게 묻는다. "주방에 뭐 필요해~?"  난 주저 않고 말한다. "들기름 참기름 각종 기름 많이 많이~"

잊지 않고 매달 기름지게 챙겨주는 쌤~ 항상 땡큐~

 

선물 게시판에 지난 축제가 보인다. 올 축제 노래자랑 때는 진정 은방울 시스터즈를 기대해 볼만 하지 않을까? 기린쌤이 그토록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하신다니 말이다. ㅋ

 

그리고 미리 감사하는 1월의 선물은  은방울 키친을 완성시키러 오신 물방울 쌤 되겠습니다~ 이름만 봐선 딱 물방울 쌤의 키친도 맞는 듯 하여요!ㅎㅎ 앞으로 3개월 (내친김에 뭐 일년을 달리셔도~ㅋ) 함께 즐겁게 일해요!

 

이상 끝!

 

번외... 2019년 12월 내가 사랑한 사진.

 

 

이 사진... 저만 보긴 아까워... 기린쌤한테 맞을 각오 하고 올립니다. (다소 선거 포스터 같은 삘이...  2020년 인문 약방과 은방울 키친에서 큰일 하실 분입니다~ ㅎㅎ)

 

 

쌤들~ 2020 이문서당에서 만나요!^^

댓글 5
  • 2020-01-12 05:41

    사랑한다, 도라지야!

    다운로드.jpg

  • 2020-01-13 15:00

    ㅋㅋ 맞다니요~~~ 저 포스에 걸맞는 주방매니저가 되어야할텐데요^^
    올해는 주방에서 저렇게 웃는 일이 많아지도록 힘쓰겠습니다~ㅋ

  • 2020-01-13 19:34

    은방울 키친에 입성하니 선물의 노래가 더 잘 보이네요~
    감동적입니다.
    은방울에 잘 어울리는 방울이 되어보겠습니다

  • 2020-01-14 10:49

    하하하.. 저는 '아무도 모르게 클리어'에서 잠시 멈추었습니다. 웃음도 나오고 괜히 짠하기도 해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도 알도록 동네방네 알리는게 선물의 공동체의 암묵적 규칙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세심한 관심과 정성어린 손길이 있어 굴러가는 곳이 주방이라는 것, 잊지 않을게요.
    그리고.. 주방지기들이 사방팔방으로 알리지 못하는 가운데 슬픈 마음으로 '아무도 모르게 클리어'하는 일이 줄어들도록
    밥당번 할 때마다 냉장고 속을 잘 살펴보겠습니다.^^

  • 2020-01-17 22:21

    너무 재밌고 감동적이네요~~ 쿨쩍!
    먹을 복 없는데, 남들한테 맛난거 다해주는 뇨자~ 싸랑합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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