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지 부루쓰 8화 : 잃어버린 500원을 찾아서

히말라야
2019-09-17 11:00
465

 

1

 

 월든이 파지사유로 이사 오기 전, 나는 종종 월든에 들르곤 했다. 회계장부를 붙잡고 낑낑댄 뒤의 어떤 날에도 나는 숫자로 강팍해진 마음을 달래려 월든에 갔다. 그런데,

 

 D : “월든이 파지사유로 이사하면 큐레이터랑 같이 뭐하면 좋을지 잘 생각좀 해 봐.”

 나 : “전 그런 거 생각할 시간 없어요. 어제도 회계 마감하는데 500원이 남아서 하루 종일 이게 어디서 남나 그 생각만 했단 말이에요.”

 D : “500원을 뭐하러 하루 종일 찾어? 아~ 정말, 내가 너 대신 회계 해주고 싶다.”

 

 그러게. 나도 내가 고작  500원에 집착하는 사람일 줄은 정말 몰랐다.

 

 

 

2

 

 고작 500원.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내 책상 위에는 500원이 훨씬 넘는 돈들이 어지러이 굴러다닌다.  그러나 나는 저것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저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왜 남는지 정말, ‘일도’ 궁금하지 않다.  그런데 왜 유독 회계 마감에서 남는 500원에 대해서는 그렇게 오래도록 생각이 붙들려 있는가? 

 파지사유 회계에서 500원이 안맞으면, 누가 나를 욕하나? 아니다. 파지사유 회계에서 500원 안맞으면 문탁의 마을경제가 무너지나?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공적인 돈을 함부로 다루어선 안된다는 공명심이 내 안에 넘쳐나나? 그것 역시도 전혀~ 아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생각해보자. 들어올 돈이 들어오고 그걸 장부에 쓴다. 나갈 돈이 나가고 그걸 장부에 쓴다. 그러면 당연히 장부와 통장의 숫자는 딱 맞아야 한다. 그런데 그 두 숫자가 서로 안맞는다는 것은, 내가 놓친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바로 내 코 앞에서 놓친 그것이 무엇인지 미치도록 궁금해서 나는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문득 내 책상 위에 있는 돈들이 궁금하지 않은 이유까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 관하여 기록하지 않는다. 저들까지 다 기록한다면, 아마 나는 코 앞에서 무지무지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될 테고, 그것들이 매일매일 너무 궁금해서 미쳐 죽겠지. 그러니 앞으로도 쭉~ 저들의 역사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는게 내가 조금이라도 오래 사는 길이리라!

 

 

3

 

 아니 사실, 한 때는 나도 집에 있는 돈들에 대해 기록하던 때가 있었다. 가정 경제를 일으키고자 수입과 지출에 소항목을 붙여 나름대로 가계부 쓰기에 도전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친하게 지내던 ‘아주 비싼 주상복합에 살던’ 지인이 혀를 쯧쯧차면서, 그런 가게부는 쓰나마나라 평가했다. 먹은 걸 전부 소항목인 ‘식비’에 넣을 게 아니라, 꼭 먹지 않아도 되는데 먹은 게 무엇인지 찾아내 다음 달부터는 그걸 먹지 말라는 것. 그래야 허투루 나가는 작은 돈을 모아 더 크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내게도 재산증식의 욕망이 충만했기 때문에, 그 부자 친구의 충고를 실행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셈도 잘 안 되는 내가 그에 더해 어떤 걸 꼭 먹어야 하는가를 따져보려니, 골치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먹고 싶은 그 순간에는 그게 ‘꼭’ 먹고 싶은 것이었고, 다음 달에는 또 새로이 ‘꼭’ 먹고 싶은 것이 생겨나는데...어쩐다? 결국 난 그이의 충고에 따른 가계부를 쓸 수 없었고, 그 지인과도 점차 멀어지고 말았으며, 작은 돈을 모아 크게 만드는 방법을 여전히 터득하지 못했다. 

 다행히 파지사유 회계인 내게, 아직까지는 아무도  ‘이번 달에 그걸 꼭 먹어야 했냐’고 따지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작은 돈을 모아 큰 돈을 만들라는 요구도 없다. 재산증식이 아닌 돈의 새로운 용법을 더 중요하게 여기자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이니, 아마 앞으로도 내게 그런 질문과 요구는 없을 것 같아 다행이다. 

 돈 쓸 때마다 매번 함께 회의를 하기 때문에, 회계로서의 나는 다만 계산할 뿐이다. 그러나 구구셈을 종종 틀리는 나는 이상하게 손가락마저 때때로 지멋대로 다른 숫자의 자판을 눌러대기에, 가끔은 계산하는 것만도 실상 벅차기는 하다. 

 

 

 

4

 

내가 파지사유 회계 일을 맡기 전에 매 월 말이 되면, 여기저기에 앉아 계산기를 두들겨대며 심각한 얼굴로 ‘회계하시는’ 분들을 목격하곤 했었다. 구구셈도 잘 틀리고 가계부도 안 적는 나는 당연히 그들과는 매우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부루쓰 독자들은 모두 아시리라. 인문학공동체에 오랜 시간 걸음을 하게되면, (특히 나같은 사람은) 평생 하지 않고 살았을 일들을 얼마나 많이 할 수 밖에 없게 되는지!

  몇몇 사람들은 기억할테지만, 문탁에 걸음하던 초창기에 나는 ‘카톡도 안하는’ 사람이었다.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카톡방에 초대되고, 일방적으로 계속 뭔가를 통보하는 카톡은 너무 폭력적이야...어쩌구! 그 뿐인가. 나는 온라인 뱅킹에도 저항했었다. 자동화로 사람들을 계속 해고하고, 보안카드며 공인인증서로 사람들에게 불안과 동시에 안전에의 욕망을 심어주지 않는가...어쩌구! 

 그런데 웬걸! ‘회계하는’ 나는 이제 카톡은 물론이고, 온라인 뱅킹을 넘어 카카오 페이까지 섭렵했다. 나는 이제 카톡으로 신나게 외상값을 독촉하고, 카카오 뱅크와 카카오 페이의 수수료 없음에 신이 나서 여기저기로 돈을 보낸다. 내가 카톡을 안 할 때 “대체 누구에게 저항하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끌끌차던 남편은, 이제는 “중이 고기 맛을 아주 제대로 봤구먼!” 하며 혀를 끌끌 찬다.

 마을에서 회계하는 나는, 마을경제가 말하는 돈의 새로운 용법은 잘 모르겠고, 그저 나 자신의 새로운 용법에 매일매일 놀랄 뿐이다. 물론, 그게 진화인지 퇴보인지는 알 수 없지만! 

 

 

5

 

 큰 아이가 어릴 때 작은 학교로 전학을 했는데, 운동회 날 이어달리기 경주에서 전교생을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달리게 했다. 그 전까지 내가 알던 이어달리기는, 양 팀의 대표들이 나와 긴장감 속에서 승부를 겨루는 종목이었다. 그런데 100여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모두 다 달려야 하는 상황은 그와 전혀 달랐다. 힘들이기 싫어 느릿느릿 가는 아이에게는 호통을 치고, 잘 못 뛰지만 끝까지 열심인 아이에게는 감동하고, 정해진 구간에 아랑곳 없이 엉뚱한 곳으로 뛰어가는 아이를 향해서는 모두들 배를 쥐고 함께 웃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나는 언제나 찬성이다. 그러나 누군가 잘 못하는 일을 애써 하고 있을 때, 애쓴다고 말해주며 지켜봐주는 일에도 찬성한다. 잘 하고 좋아하는 것을 멋지게 잘 해내는 모습도 행복하지만, 뭔가를 잘 못하는 그 사람을 신경쓰고, 기다려주고, 도와주면서, 그 사람과 그 주변 사람들 사이에 생겨나는 따뜻한 무언가 역시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셈도 어렵고, 손가락이 가끔 지멋대로 자판을 두들기는 사람이다. 이런 내게 회계는 정말 ‘안맞는’ 일이다. 그러나 파지사유에는 지멋대로인 내 손가락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는, 온갖 함수와 논리로 이루어진 엄청난 파일을 만들어 내는 ‘엑셀의 귀재’ ㄸ가 있다. 또 칠칠맞은 내가 놓칠세라 공과금 고지서를 살뜰히 챙겨주는 D와 ㅃ가 있고, 계산기를 앞에 두고 절절매는 나를 비웃지 않고 매번  애쓴다고 말해주는 K가 있고, 회계할 때 맞춰 스스로 외상값을 계산해서 미리 갚아주는 J도 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바로 나 같은 사람도 ‘회계 할 수’ 있는 이유다.

 

 

 

6

 

 결산금액과 차이나게 통장에 남는 500원은, 나 자신이 어느 날의 일마감 금액에서 500원을 더 넣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결국 나는 밝혀내고야 말았다. 사실 오류는 언제나 내 손가락 끝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아마도 그러리라고 나는 이미 언제나 알고 있다. 내가 고작 500원에 집착하는 건, 나 자신이 저지른 게 분명한 오류를 찾아내 바로잡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회계란 무엇인가. 어떤 이에겐 재산증식의 책임자일테고 또 다른 이에겐 돈의 흐름을 파악해 새로운 돈의 용법을 발명하는 사람일 수 있겠지. 그러나 내게는 진정 회개(悔改)하고 기쁨을 맛보는 일이며, 맨날 ‘삽질하는’ 나를 지켜봐주는 이들을 내 몸에 새기며 따뜻해지는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 지금 당장 나 대신 회계해주겠다고 한다면, 나는 나의 이 기쁨과 따뜻함을 선뜻 그리고 기꺼이 그에게 양보할 용의가 있다. 내가 꼭 정해진 구간을 뛰어야만 하는 이어달리기에 출전한 건 아니니깐! ^^ 

댓글 4
  • 2019-09-18 13:19

    히말샘의 글은 항상 재미납니다. 점심시간에 혼자 낄낄거려요.
    요즘 자주 못뵈었는데, 히말샘과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한 이 느낌~ㅎㅎ
    잘 읽고갑니다~~^^

  • 2019-09-19 07:49

    이상하다... 히말쌤이 파지에 앉아 심각하게 회계할 때, 나는 그 모습에서 빛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계산의 신'과 접신한듯. 그래서 나는 감탄했는데.
    사실은 손가락 발가락 동원하여 헤매고 있는거였구나. ㅎㅎ^^

    몇번 파지 매출장을 입력하던 때엔
    숫자와 함께 그 사람의 동선을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주방 냉장고를 열어보고 전날의 밥당번의 행적을 상상(추적?)하는 새로운 재미가 생겼다는...
    물론 저도 그 흥미진진한 경험을 양보할 용의는 언제든 있지요. 하하하!

  • 2019-09-19 16:38

    회계하는 히말의 글에서 느껴지는 기쁨과 따뜻함이라니!
    덩달아 저도 기분이 좋아지는군요.^^

  • 2019-09-25 12:05

    앞서 몇 백원 아니 일원 단위의 돈의 행방을 추적하던 사람으로서 깊은 공감을 느낍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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