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지부루쓰 7>why I Fight

히말라야
2019-08-16 09:18
176

1

 유리문 너머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나를 향해 있다. 놀람과 불편함이 뒤섞인 표정들. 아차 싶었지만 너무 늦었다. 유리문 안에서는 큐레이터회의가 진행 중이었는데, 그 안에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앞에 앉은 N을 향해 언성을 높이며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다행히 고매한 인품의 K가 불 붙은 곳에 살짝살짝 물을 잘 부어준 덕분에, 그 날의 회의는 그럭저럭 마무리될 수 있었다. 회의가 끝났을 때, 길길이 날뛰는 내 모습을 그날 처음으로 목격한 J가 내게 다가 와 놀라움인지 감탄인지 아니면 비난인지 모를 목소리로 속삭였다. 

 

 “알고 보니, 자기 진짜 싸움닭이었네!”

 

 

 

2

 나의 사회생활의 첫 기억은 내가 누군가의 배를 깔고 앉아 욕설과 함께 주먹질을 하고 있는 광경이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나는, 나를 혹은 내 친구들을 괴롭히는 남학생들을 쥐어패며 욕해주는 재미로 학교에 다녔다. 그건 공기로 숨을 쉬는 것처럼, 내겐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어느날, 내 주변에 그런 존재가 있었는지도 몰랐던, 반장이라는 아이가 내게 바짝 다가와 천진한 얼굴로 물었다.

 

 “넌 왜 그렇게 많이 싸우고, 욕도 잘하는 거야?” 

 

 그 아이의 목소리에서 진지한 호기심을 느끼지 못했더라면, 나는 그 자리에서 욕하며 그애도 쥐어패 주었을 텐데. 나를 그 질문 앞에서 주춤거리게 한 건, 나에 대한 비난이나 정언명령의 낌새가 전혀 섞이지 않은 선량한 그 아이의 진지한 호기심이었다. 욕하지 않고, 싸우지 않고, 사는 삶도 있나? 그건 마치, 지금 내가 숨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공기로도 숨쉴 수 있다는 힌트처럼 들렸다.

 그 때 이후로 내 안의 싸움닭은 그 이전처럼 함부로 출현하지 못했다. 심지어 나는 그 아이처럼 반장이 되어 친구들의 싸움을 말리거나, 칠판에 싸운 사람들의 이름을 적기까지 했다! 그러나 내가 직접 싸움을 통해 응징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들은 뭔가 시원치 않은 껄쩍지근함을 남겨주었다. 그리하여 예상치 못한 순간 가끔씩 숨죽이고 있던 싸움닭이 튀어나와, 나와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3

 ‘가장 아름다운 여신께’라고 쓴 황금 사과를 던져서 10년 간이나 트로이 전쟁을 하도록 만든 불화의 여신은,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었다. 사실 불화의 여신은 따로 초대할 필요가 없다. 더 즐겁고 행복하고 싶어서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를 가리고 싶은 마음은 저절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Why I Write」라는 글 속에서 조지 오웰은 자기가 글을 쓰는 네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 번째가 허영심이고 두 번째는 미학적 열정 그 다음은 타인에 대한 설득이며 마지막이 정치적 목적이다. 그는 남을 설득하기와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정치적인 목적은 종종 잊혀질 때가 있지만 (그럴 때 당연히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허영심에 대한 충족과 미학적 즐거움은 결코 잊혀질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이런 글쓰기의 이유들은 싸움에서도 그대로 들어맞는 것 같다. 특히 허영심과 미학적 열정!  

 각기 다양한 이유를 댈 수 있지만, 모든 싸움의 이유를 한 마디로 하자면 ‘(너는 틀렸고) 내가 옳다’ 그러니 ‘(너를 낮추고) 나를 존중하라’가 아닐까. 이런 허영심은 싸움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스피노자 선생에 따르면, 또한 바로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살도록 만드는 가장 원초적인 추동력이라고도 했다. 나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누군가가 꼭 필요한 법!

 싸움의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재미와 즐거움’이다. 누군가와 잘 지내고 싶어 꾹.꾹. 눌러놓았던 말과 감정을 터뜨려버리는 그 순간, 얼마나 후련하고 속시원한가! 비록 그것으로 상대방을 바꿀 수도 없고, 그 때문에 더 큰 시련이 닥쳐올지라도 말이다.

 

 

4

 인문학 공동체에 온 초반, 내 안의 싸움닭은 날개를 활짝 펼쳤다. 내가 가장 먼저 알게 된 철학자는 니체와 루쉰이었는데, 그들은 내게 진정 멋진 싸움닭처럼 보였다. 나는 힘을 다해 싸우는 그들을 닮고 싶어서 어설프게 그들 흉내를 냈다. 그러나 나의 내공은 당연히 그들에겐 비할 바가 아니므로, 나의 흉내는 그저 ‘쫌 읽었네' 하는 허세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전사가 된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자기만족 속에서 즐거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좋음과 기쁨’을 말하는 스피노자를 만나면서, 내 안의 싸움닭은 다시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기쁨을 위해 싸우니깐 기쁜데, 나와 싸우는 저 친구는 기쁜가? 내가 좋다고 여기는 것이, 저 친구에게도 좋은 것 맞나? 

 이런 복잡한 생각이 떠올라, 싸워야 할  타이밍을 자꾸 놓치게 되고, 다시 싸울 기회를 엿보기 위해 자꾸만 그 친구를 관찰하게 되고, 그렇게 자꾸 바라보다보면 그가 약간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러는 새 내 안의 싸움닭은 기다림에 지쳐 꾸벅꾸벅 졸다가, 자기가 잠든 것에 그만 깜짝 놀라 깨어나, 엄한 곳에서 출현해 주변을 썰렁하게 한다.  

 요즘 공중화장실에 가보면 휴지를 변기 속에 넣으라는 곳도 있고, 변기가 막히니 반드시 휴지통에 넣으라 당부하는 곳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니체 선생과 스피노자 선생 둘을 다 모시는 나도 상황이 어떤가에 따라 달라야 하지만 나는 여전히, 휴지통에 넣어야 할 휴지를 변기에 넣거나 변기에 넣어도 되는 휴지를 휴지통에 넣는 것과 같은, '뻘 짓'을 해대는 것이다. 

 

 

 

5

 어릴적 고무줄 놀이를 할 때면, 나와 친구들이 더 높은 목표에 열중하고 있을 때 슬쩍 다가와 고무줄을 끊고 도망가는 녀석들이 꼭 있었다. 방해자인 녀석은 최대한 적게 맞고 빨리 풀려나기 위해 붙잡히자마자 다시는 안 그러마 약속한다. 우리는 녀석이 다시 안 그럴리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풀어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녀석 덕분에 끝을 향해 치닫던 고무줄 놀이가 다시 새롭게, 그 녀석의 재출현을 염두에 두기에, 더욱 흥미진진하게 시작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아닌가?) 

 

 “N, K, O, D, J, B, Y 또 다른 J, K, S, Y, Z……………그 밖의 많은 분들...다신, 안 그럴게요!! 진짜! 매우! 죄송합니다~^^;; ”

댓글 5
  • 2019-08-16 13:13

    ㅋㅋㅋ점심시간에 낄낄거리며 히말샘 글 읽네요~
    아직 싸움닭모습을 못봤는데 궁금합니다~!
    싸움이 일어나는 과정 재미있네요. 싸울 타이밍을 놓치고 다시 기회를 엿보는~ 화내는 감정이 순식간에 튀어나온다 생각했는데 중간에 멈출기회가 있긴하네요~ㅎ
    히말전사님의 재출현이 기대되네요~^^

  • 2019-08-16 18:44

    완전 재밌게 읽었어요♥

  • 2019-08-17 10:06

    S는 난가?

  • 2019-08-19 10:40

    나두 어릴 때 그랬는데... 좀 다르다면 나는 친구들 도와주다 같이 맞고 그친구보다 더 울고 분노했다는 거. ㅎㅎ

  • 2019-08-21 09:45

    내가 쌈닭이 될 힘이 없다면,
    스피노자 선생의 공통관념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 수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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