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경제이야기3> 공간이 뭐길래

띠우
2019-08-03 16:24
174

공간(空間)이 뭐길래

 

 

   2019년도 절반이 지나갔다. 새해를 맞이하며 불타오른 각오는, 한여름 햇빛에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흐릿해져간다. 글쓰기는 뒤로 한 채 옷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사실 공간에 대해 어떻게 쓸까 갈팡질팡하던 시기였다. 오래전부터 월든은 공간에 대한 논의를 해왔다. 그 사이에 화재가 났고, 이어가게를 정리했고, 그 공간에 청년들이 터를 잡았다. 조금은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현재의 월든은 한쪽을 길쌈방이, 다른 한쪽은 청년들이 사용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오른쪽과 왼쪽은 한 공간임에도 다른 공간을 보여준다. 월든이 주춤거리는 동안에 호기롭게 담쟁이 베이커리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가시화되었다.

 

  이어가게를 없애고 청년들과 월든을 공유하면서 함께 할 일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잘 되지는 않았다. 20대와 4,50대의 삶을 섞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함께 꾸준히 공부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고, 내면화된 감수성 자체가 다른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다르게 살겠다는 것은 비슷할지 모른다. 그러나 월든이 소박한 삶을 지향하면서 손을 통해 사유하는 일에 방점을 두었다면, 청년들은 당장 먹고 살아야하는 현실의 문제가 눈앞에 있었다. 애매하게 함께 있는 것보다 청년들에게 전면적인 삶의 공간으로 월든이 필요해보였다. 차츰 ‘청년들과 함께 무엇을 실험할 수 있을까’는 ‘전체적인 공간 변화의 필요? 자누리와 월든의 공간이동? 모든 공간을 다르게 사유하기?’ 등으로 변화되었다.

 

 

  공간이동에 대해서 월든 바깥의 이야기는 대체로 파지사유로 옮기는 일에 긍정적이다. 반면 월든 내부의 목소리는 조금씩 다르다. 정리해보자면, 우선 현행대로 연말까지 보내자는 의견, 익숙한 공간을 옮기는 일은 이중으로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베이커리 이동과 함께 8월에 이층으로 옮기기, 궁여지책이란 말이 떠오른다. 지금껏 월세를 감당하지 못했던 부담을 덜고 작업은 생활과 관련된 부분으로 축소하여 실질적 실험을 모색한다(이러니저러니 듣기 싫다^^:;). 마지막으로 파지사유로 옮기기, 공유지의 새로운 발명을 함께 한다. 월든의 한계(가끔 듣는 동아리 활동 혹은 자기만족)를 넘어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파지란 공간은 어쩐지 부담(?)스럽다.

 

  그렇다면 나에게 월든은 어떤 의미였을까. 몇 년 전, 마을작업장이 공간별(문탁, 월든, 파지사유)로 해체되면서 각 공간의 특이성을 실험하는 일이 행해졌다. 떠올려보면, 난 (반대의 목소리를 내보았지만)그 과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따라 나섰다. 그 후 나는 월든이라는 공간에 틀어박혀 뭘 해야 할지 고민했고, 다른 공간은 다들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월든은 나의 변화를 가장 많이 불러일으킨 곳이다. 이어서가 활동에서 가죽장인(?)이 되고, 청바지 한 벌로 배낭을 만들더니 일곱 벌의 바지를 만들어 납품하기도 했던 공간이다. 나의 역량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곳이며, 또 다른 변화를 긍정하는 힘을 낳기도 한다. 그만큼 나는 월든이 익숙하고 그 안에서 능동적이다.

  내가 처음 문탁에 와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회의였다. 작업장 전체 회의는 나에게 감흥을 불러왔었다. 각 사업단 안에서 해법을 찾지 못했던 사안들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접근했던 집단지성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자기가 속하지 않은 사업단과 소통하는 힘을 키울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문탁, 월든, 파지 공간별로 나뉘어져 활동과 회의를 하는 것에 반대했었다. 그러나 이후 많은 것들을 경험하는 가운데 나는 변화해왔다. 내가 가졌던 작업장회의에 대한 표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조금은 보이게 되었다. 나는 언어를 통해 대상을 해석하고 그것을 반복하면서 패턴화(고착화)하기도 한다. 월든 활동도 이와 비슷하였다. 그러나 그 해석은 긍정적일지라도 자칫 다른 가능성, 우연한 변화를 방해할 수 있다.

 

  나는 월든에서 긍정적인 변화와 능동적 활동을 해왔다고 의미화하고, 그러한 해석을 거듭해왔다. 예를 들어,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섬세한 변화들에 반응하는 것부터 공업용 미싱과 마주할 때 동시에 갖게 되는 (말썽부릴지 모른다는)조바심과 친근함이 나를 변화시켰다. 밑실이 감기는 경쾌한 소리, 재봉틀과 만나는 새로운 하루하루, 알다가도 모를 행동을 하는 매니저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들이 그 속에 있었다. 월든은 그러한 가능성에 대해 내게 열린 질문을 던져준 공간이다. 거기에서 나란 존재는 하나의 매개로서 열린 가능성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공간, 사물, 인간이 하나로 얽혀들어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만나 새로운 내가 만들어지는 경험은 흥미롭다. 작업장회의의 경험이나 월든을 통해 변화해간 모습은 또 다른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에 나는 파지로 옮겨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의견을 내는데 다소 유보적이었다. 거기에 월든매니저들도 이견이 있었다. 공간이동은 우리 삶을 둘러싼 모든 것들과 얽혀 있기에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또 파지사유에서 무엇을 할지에 대한 상상력의 부재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월든이라는 공간을 둘러싼 복합적인 상황과 사물간의 관계를 내 역량껏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에게 의미있다고 생각한 공간이 이제는 다른 가능성을 방해하는 고착화로 작동하는 것일까. 내가 월든에 대한 평가나 의견에 대해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켰던 것은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하나의 패턴은 그저 우리의 수많은 얽힘 속에 드러난 한 면일 뿐이다. 패턴은 다시 다른 패턴화로 이어질 때 생동감 있는 힘을 갖는다. 

 

 

  나는 공간(사물)이나 인간과의 관계가 한순간에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안다. 이전에는 공간과의 관계는 생각도 하지 않고 인간관계야말로 늘 변화무쌍한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 삶은 실로 복합적인 관계망을 드러내고 있다. 다양한 경험들의 토대를 통해 다른 삶에 대한 상상력은 구체화될 수 있다. 작업장회의의 즐거움이나 월든에서의 단내나는 경험이 비슷한 언어와 판단에 묶여 패턴화되어가는 지점에서 훌쩍 뛰어볼 때다. 우리가 월든에서 구성했던 것들을 그곳을 떠남으로써 또 다른 공간에서 새롭게 구성해볼 수 있다. 이제 곧 큐레이터들이 관계맺던 파지사유를 만나겠지. 또 자누리, 은방울과도. 우리는 함께 공간 파지사유에서 어떤 새로움을 만들어낼까. 막막하기도, 설레기도 한 8월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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