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프로젝트시즌2>주간실천과제 7주차

코스모스
2021-07-12 10:34
388

친구들과 밭에 나가 일한 후 맛나는 참 먹고,  샤워 후 선풍기 앞에 앉으니 세~~상 좋으네요~~^^

댓글 12
  • 2021-07-13 14:30

    ◎증여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섬세한 마음입니다.(138)

    ♥중농주의 사상에서......인간은 대지에 노동을 퍼붓습니다.~ 농업이 지금처럼 기계화되기 이전에는 노동은 매우 섬세한 기술이었습니다.

    대지에 무리를 가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인 수확을 할 수 있도록, 농민들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자연 사이에는 증여의 원리를 토대로 한 관계가 성립되어 있으며, 노동도 증여의 일종으로 간주되고 있는 셈입니다.(145)

    ♡마르크스는 근대산업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소외된 노동’을......(157)

    상품의 교환에 대한 규칙이 완벽하게 마련되어 있는 사회에서, 코르누코피아에도 의존하지 않고, ‘자연이 행하는 무상의 증여’에도 의존하지 않고,

    잉여가치를 창출해내기 위해서는......자본가는 노동력의 교환가치에 의해 노동력의 사용가치를 ‘대리표상’하고, 그럼으로 해서

    잉여가치를 산출한다고 하는 사실을 마르크스는 발견했던 겁니다.(164)

    ◎증여의 원리가 작용하지 않으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인간과 자연 사이에는 절대로 ‘사랑’의 관계가 탄생하지 않는다는 결론입니다.(175)

  • 2021-07-13 20:19

    증여와 교환의 이런 식의 관계하고 똑같은 것을 우리는 소외된 노동의 현장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노동의 과정 중에는 항상 부정적인 힘이 끼어들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중농주의자나 근대의 톨스토이주의자들이 찬양한 농업이나 다양한 크래프트운동의 실천가들이 선망했던 장인들의 수작업의 세계에는 부정성이 좀처럼 끼어들 여지가 없을 듯한 섬세한 배려가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 노동의 세계에는 아직 증여의 원리가 살아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 스즈카의 도시락 회사, 협동조합, 그림작업, 손작업 등에서 이것과 연관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까? 지금까지 경험한 일의 세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 2021-07-13 20:52

    p143 미야자와 겐지의 <농민예술개론강요>에 실려 있는 문장

     

    만나보니 우리의 사부들은 가난하지만 상당히 즐겁게 살고 있었다

    거기에는 예술도 종교도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는 오로지 노동이, 생존이 존재할 따름이다

    종교는 지쳐서 근대과학으로 대치되었지만 과학은 차갑고 어둡다

    예술은 지금 우리를 떠났지만 쓸쓸히 추락했다

    지금 종교가나 예술가라는 사람들은 진眞이나 선善 혹은 미美를 독점해서 파는 자들이다

    우리에게 살 만한 능력도 없고, 또한 그런 것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이제 우리는 다시 올바른 길을 걸어서 우리의 미를 창조해야 한다

    예술로써 저 잿빛의 노동을 불태워라

    여기에는 우리들의 끊임없이 계속되는 깨끗하고 즐거운 창조가 있다

    도시 사람들이여 와서 우리와 어울려라 세계여 순수한 우리를 받아들여라

    (『미야자와 겐지 전집』 12)

     

    이번 주에는 주간실천과제로 고마리님의 풍성한 밭에 다녀왔다. 아니나 다를까 다녀와서 드러눕는다. 그래도 또 갈 생각을 한다. 왜일까. 농민의 노동에는 대지에 대한 일종의 수동성이 존재한다고 나카자와 신이치는 설명한다. 대지의 활동에 지나치게 인공적인 요소를 가하면, 대지는 화를 내겠지. 그렇기에 농민들은 대지에 지나치게 부정적이거나 과중한 부담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개입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고... 여기서 나는 대지와 인간의 관계에 주목하게 된다. 대지나 인간에 방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와’로 이야기할 수 있는 네트워크에 집중한다면, 우리앞에 놓인 여러 문제들에 대해 다른 해결방식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 2021-07-13 21:08

    “인간을 인간으로서, 그리고 세상에 대한 그의 자세를 인간적인 자세로서 전제한다면, 너는 사랑은 오로지 사랑하고만, 신뢰는 오로지 신뢰하고만 교환할 수 있다. … 네가 사랑을 하게 되더라도 그 사랑에 화답하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서 너의 사랑이 사랑으로서 그에 화답하는 사랑을 탄생시키지 못한다면,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너의 생활표면에 의해 너 자신을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너의 사랑은 무력하고 불행한 것이다.(153-맑스의 『1984년 경제학 철학 초고』 中 인용)”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증식에서는, 자연은 자원으로 취급되며, 도구를 사용해서 조작되는 대상으로 변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연의 변형에 매개 역할을 하는 노동은 시간적인 길이로 환산 가능한 노동력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도처에서 분리는 진행되고, 기호나 표상을 통해 파악 가능한 것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 ‘물’로서 취급당하게 되겠지요. 그런 분리를 전제로 해서 증식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것 역시 틀림없는 열락입니다. 순수증여를 하는 자연의 능력에 부정성을 작용시키고, 그 위에서 기표 차원에서의 증식이 일어납니다.(171)”

     

     

    • ** 증여가 실패담이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무엇은?

    선배(아이들의 아빠)와 난,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다. 생활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얘기나, 아이들 관련 얘기가 아니면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 상태가 오래 되었다.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된 데는 선배에 대한 나의 미움이 가장 크다. 그러나 미워할 만큼 미워했음인지, 근래에 들어 그 미움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부쩍 피곤해하는 선배에게 일리치 약국에서 산 비타민제를 먹어보라고 건네주었다. 그 다음날, 선배는 아침을 먹지 않는 나에게 선식이 담긴 통을 건넸다. 근 35년쯤을 아침을 먹지 않고 보낸지라, 선식통은 아직 열어보지 못하고 있지만 싫지 않은 선물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선배는 요즘 변변한 선물을 하지 못한 것 같아서 하나 샀다며 나에게 목걸이를 쓱 내밀었다. ‘음... 마침 목걸이를 사고 싶었는데...어찌알고??’ 그 후 선배에게 10년 가까이 해주지 않았던 저녁밥을 해주었는데, 선배는 알아서 설거지를 했다.

    일주일 정도 지난 어느날. 선배에게 난데없이 시계를 사달라는 톡이 왔다. ‘음...이건 뭐지??’ 자신이 선물한 목걸이에 상응하는 선물을 꼭 받고 싶은 것인가 싶어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나 난 『증여론』을 공부한 여자가 아닌가? 선물을 받았으면, 당연히 대갚아야 하는 법!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흔쾌히(!!) 시계를 결제했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선물을 주고 받으며 조금씩 친밀한 관계를 다시 맺고 있다. 어느 순간 선배가 너무 또이또이를 맞추려는 심리를 보일 때는 조금 얄밉기도 하다. 그러나 나 또한 또이또이가 되지 않을 때 억울함이 조금씩 밀려옴을 느낀다. 선배와 나는 아직 교환 관계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또이또이를 두고 벌이는 증여 게임을 하는 것일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실패담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뭔가(?)를 사색하는 것이 아닐지 싶기도 한데...그게 뭘까나??

     

     

  • 2021-07-13 21:19

    선물 주기 실패담

     

  • 2021-07-13 23:00

    p155 

    농업에서는 노동을 하는 농민과 노동대상인 대지 사이에 단순한 주체- 객체의 관계를 초월한 '인격적 결합'이라고 부를만한 유대관계가 형성되어 있으며, 그런 유대관계 덕택에 생산 자체를 일종의 '증여'로 파악하는 사고와 감각이 자라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유하고 경작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발생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주의 국가의 농민들이 집단화된 대규모농장에서 일하게 된 이후로, 대지에 대한 애착이나 그곳에서 행해지는 농업이라는 작업 자체에 대한 열의를 급속도로 잃게 된 예를 보더라도 충분히 납득이 갈 겁니다. 

     

    나는 우리집 테라스에 이것저것 작물들을 키우고 있다.

    워낙에 식물을 좋아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오고나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테라스 인데

    이공간을 갖고나서부터, 나에게 대가 없이 주어지는 햇빛과 바람 그리고 물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되었다. 

    햇빛이 공짜로 쏟아지고, 식물이 호흡할수 있는 공기의 순환도 알아서 해주고, 심지어 벌레가 수분도 해준다. 

    자연이 주는 그 햇이을 그저 옥상을 데워 집안을 뜨겁게 하는 골칫덩이 일수 있는 햇빛이 

    내가 식물의 공간을 늘릴수록 귀중한 에너지로 쓰인다. 식물은 그 뜨거운 태양빛을 잎으로 다 받는데도 잎을 만져보면 서늘하다. 

    태양이 주는 이 무한한 선물이 내가 옥상에 마련한 작은 텃밭을 통해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바꾸는 경험. 

    인간이 갈아엎어 없어지는 녹지들이 이런 플러스작용을 마이너스로 바꾸는구나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비가오면 일부러 수돗물을 받아 왔다갔다 물주는 수고도 덜수있고, 나대신 자연이 일을 해준다.

    그렇게 살뜰히 보살피던 옥상텃밭에서 얻어지는 것들이 그렇게 고맙고 소중할수가 없다.   

     

    그런데 너무 재밌는것이 내가 만들었던 환경모임에서 자연드림 건물 옥상에 옥상텃밭을 만들었는데, 그곳에서는 그 기쁨이 잘 안느껴진다.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공간, 나의 의무와 책임이 지워진곳 이라는 생각이 

    자연의 경이로움을 이겨버렸나보다. 하물며 돈만을 위해 원하지도 않는데 그리고 내것이 아닌 경작을 하면 어떨지.. 책의 내용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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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별과제

    지금 살고 있는 고기동에 이사오기 전 분당에 한 아파트에 살 때 이웃들이 참 감사한 분들이었다.
    우리 윗집에 살던 분과 옆집에 사시던 할머니가 기억이 나는데
    할머니는 가끔 텃밭에서 캔 작물들을 나눠주시곤 했고, 나도 감사한 마음에 생협에서 산 먹거리나 손수 만든 주머니 같은것을 선물로 드리곤 했다.

    우리 윗집(3층)에 살던 분들도 정말 좋으신 분들이었는데 우리집(2층)에 물이 철철새서 그 원인을 찾느라고 여러번 수리를 하고도 원인이 잡히지 않아 더 알아보니 그 윗집(4층)에서의 문제였는데
    그 윗집(4층)과 관리사무실과의 불화로 우리집 수리에 불똥이 튀어 우리집 수리를 못하고 있으니 책임도 없는 우리 윗집(3층)이 해주신다고 하셔서 미안한 마음에 반반 부담하여 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저런 일로 찾아뵐때도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오며가며 마주쳐도 반갑게 인사했었다.
    우리가 이사 나올때도 우리 이사 나오는 시간 맞춰오셔서 선물을 쥐어주시기도 했다.
    그런 좋은 분들이어서 혼자 그 집에 선물을 뭘 해드릴까 고민하기도 하고, 선물을 드리는 상상을 하기도 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결국엔 그냥 이사를 오고,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내가 돈이 아까워서 그랬는지, 찾아뵙는게 어색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귀찮아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지금이라도 선물을 들고 찾아가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과연 실현할수 있을까?

  • 2021-07-13 23:55

    <메모>

    네가 사랑을 하게 되더라도 그에 화답하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서 너의 사랑이 사랑으로서 그에 화답하는 사랑을 탄생시키지 못한다면 그 사랑은 무력하고 불행할 수밖에 없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이 사랑받는 인간이 된다고 하는 마르크스의 증여로서의 사랑.

    그 사이에 화폐가 침입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사랑의 유동이 정지하고, 그럼으로써 사랑의 증여적인 본질이 교환 원리에 의해 혼란스러워지고 전도된다고 마르크스는 생각했습니다(154-155)

     

    ~ 이번 조별 과제(실패담)과 연관되어 이 문구가 인상깊었습니다. 처음엔 관계 맺는 즐거움 속에 빠져있다가 어느 순간, 화폐가 침입하게 되며 이것 저것을 따지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구요. 그때 교환의 원리로 이걸 줬는데,, 하며 따지기 시작하면 그전까지의 관계 맺음이 한번에 실패로 이어지게 될 때가 많았던 것 같네요. 사랑의 증여적인 본질이 교환 원리에 의해 혼란스러워지게 되는 것을 많이 경험한 듯 싶습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메모로 하겠습니다^^ 

     

    노동에 소외라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노동의 과정에 분리나 단절이나 비인격화와 같은 부정적인 원리가 개입되는 경우입니다.

     장인의 작업장을 머릿속에 떠올려봅시다. 그곳에는 많은 도구들이 놓여 있고, 소재로 사용될 나무나 흙, 가죽 같은 것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장인은 그것들을 사용해서 새로운 작품을 만듭니다. 그때 그런 도구들을 장인들은 엄청난 애착을 가지고 사용할 것이며, 그가 작업하고 있는 환경도 비록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더라도 도처에 그의 '숨결이 배어 있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인격적인 숨결이 배어있는 환경에서 인격적인 숨결이 깃들어 있는 작품이 탄생합니다. 이것은 곧 노동하는 인간과 '물' 사이에 '사랑의 관계'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158)

     

    ~ 직접적인 연관은 아닌듯 싶지만, 이 대목을 읽으며 '파지 사유의 작업장(?)(손인문학?)(월든작업장?)'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그다지 가만히 앉아서 뭐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찌 어찌 손 인문학을 한번 접해본 정도인데요. 파지 사유에 들어가면 작업장에 눈이 제일 먼저 가서 궁금하고, 발이 갑니다. 일꾼도 한두달 해봤다고 자누리 물품에도 관심이 가고요. 세미나를 함께 했던 친구들이 있는 곳이라 궁금한건지, 도구들에 애착이 가는건지.. 짧은 기간인 것 같아 저의 숨결이 배어 있다고 당당히 말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내 숨결이 배어있었던 환경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요? 친구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인 것 맞기도 하고요. 요즘은 무엇을 만드는지 궁금하더라구요. 내가 노동하는 인간으로서 '물'과 맺는 관계는 아직 의아하지만, 그 환경 속에 여러가지 맞물려 어떠한 숨결이 배어 있고 그 안에 '사랑의 관계'가 존재한다는 말에는 공감되어 적어봅니다.     

  • 2021-07-14 00:00

    페르스발은 질문을 하지 않아 국토의 황폐화를 초래했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우리는 오히려  자연에 대해 '도발'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라는 무리한 질문을 계속 퍼부어왔기 때문에, 이제는 자연이 응답을 중지해버린 것이 아닐까요? 페르스발과 마찬가지로 현대인도 적절한 질문을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그로 인해 발생되는 온갖 형태의 황폐함속으로 내팽겨쳐진 상태입니다.(213)

     

    '때를 알아 적절한 질문을 올바른 방식으로 하는 것'  올들어 내가 몰두하고 있는 주제 중 하나이다.  질문을 잘하기 위해  검열을 거듭하면서 그 기술을 연구하지만  익숙한 방식에서 이탈하기가 쉽지 않다. 잘 듣는 것 만큼 잘 말하기, 특히 적절한 질문을 잘하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적어도 인심은 잃지 않는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러나 나카자와 신이치는 질문을 필요할 때 침묵하는 것과 무리한 질문을 퍼붓는 것은 모두 온갖 형태의 황폐함을 발생시킨다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은 이런 식의 말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이 나라의 하천에는 물도 흐르지 않고, 샘은 말라버리고, 논밭은 일구어본 적도 없는 것 같은 상태였는데, 이분의 말에 의해 활력을 되찾았습니다.(205)

     

    나카자와 신이치는 이 중세의 이야기에서  '코르누코피아'가 자기 앞에 나타났을 때 어떤 식의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지가 문제로 등장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바로 인간의 내적, 그리고 외적인 자연과의 사이에  발생하게 될 증여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통로를 열 것인지, 아니면 단절시킬 것인지의 문제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만약 이때 교환의 원리가 끼어들면 바로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되어 버린다. 

    교환의 원리가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에서 증여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이미 너무 많이 단절되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식의 행동으로 증여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통로를 열 수 있을까?  [증여론]에서, 그리고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에서 우리가 찾은 해법은 어떤 것일까?

     

     

     

     

  • 2021-07-14 00:25

    네가 사랑을 하게 되더라도 그 사랑에 화답하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 너의 사랑이 사랑으로서 그에 화답하는 사랑을 탄생시키지 못한다면,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너의 생활표현에 의해 너 자신을 사랑 받는 사람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너의 사랑은 무력하고 불행한 것이다(153)

     

    어느 날 윗층 사는 엄마가 울먹이며 찾아왔다. 사과를 좋아하시는 시부모님께 어버이날 선물로 유기농 사과를 선물해 드렸단다. 그 당시만 해도 유기농 사과가 귀했다. 과수원에 직접 찾아가 사과 맛도 보고 직접 골라 담아 시부모님께 드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시어머님이 새벽 1시에 전화를 해 다짜고짜 시부모를 뭘로 보고 이런 낙과를 던져놓고 가냐고 역정을 내셨단다. 물론 그 언니는 선물 드릴 때 유기농 사과라 껍질 째 드셔도 된다고, 느리게 키워 과육이 단단하고 맛있다고 설명을 해 드렸지만 겉이 번드르르한 때깔 좋은 사과가 아니라서 형편없는 선물이 돼 버린 것이다. 그 언니는 자신의 정성과 진심이 짓밟혀 서러워서 엉엉 울고 말았다. 이 언니의 진심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 것인가? 영원히 전달 될 수 없는 것인가?

  • 2021-07-14 00:55

    <조별 관제>

    최근 실패담 두가지

    1. 공동 육아를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관계 맺음에 대한 설레임으로 적극적이었지요. 제가 일을 하고 있던 상황도 아니었었고, 둘쨰가 어리긴 했지만 좋아서 더 신나서 했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여유되는 사람이 하면 되지모'라는 증여에 대한 관념이 마음속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처음 문탁에서 세미나를 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무엇인가 더 집중하여 책을 읽거나 시간과 마음을 더 써야하는 시기가 오게되었던 것 같네요. 그떄 (공동육아에서는 소위 별로 소속되어 해야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오래된 일이라 구체적으로는 덜 생각나는데) 일이 생겨서 소위장을 많이 도와줄 수 없음을 얘기한 것 같은데, 갑자기 비난이 왔습니다. 물론 맡은 일을 잘 해내고 싶은 그 분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워킹맘에 대한 배려는 많으면서 한 학기 할 일이 생겨서 저의 상황을 이해해주십사 배려를 구하는 것에 비난이 오는 것이 너무 불편하였습니다. 탈퇴를 결정할 떄, 지속할 수 없는 상황 등 많은 이유가 얽혀서 였지만, 제 마음속에는 아마도 이 일이 감정적으로 많이 섭섭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에야 이곳에 이 이야기를 쓰며 생각하는 건데, "내가 너희들이 바쁠 떄 이만큼 배려해 줬는데, 내 상황이 여의치 않을 떄 나에 대한 배려는 왜 없어?" 라는 등가 교환의 생각이 컸던 것 같습니다. 증여의 원리적인 본질이 교환의 원리로 혼란스러워지고, 그러기시작하니 이것저것 막 따지게되더라구요..
    2.    두번째 실패담은 화폐가 더욱 구체적으로 침입한 것 같습니다.

    '가'네 가족과는 거리상으로도 아주 가깝고, 

    우리집에도 많이 놀러오고, 셋째가 어렸어서 저의 힘듬을 많이 이해해주며, 아이들을 언제든지 보내라 하며 그집으로도 많이 놀러가고요.

    약간 미묘한 일들이 있긴 했지만 그다지 문제되지 않고 넘어가며 아이들도 부모들도 친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반찬 생기면 같이 많이 나누고 물질이든 마음이든 시간이든 내어줌을 별로 따지지 않고 주고 받으며, 지냈던 것 같습니다.

    한번은 저희 큰애가 그 집 트리 등불을 끊어트리는 바람에 새로 사서 똑같이 고쳐주었고, 우리 아이들이 한 일이니 고쳐주는 것 당연하다고 생각헀습니다.

    근데 저희 아이들이 그 집에 놀러가서 그 집 물건을 또 부수게 되었네요. 둘째가 낡은 상자의 뚜껑에 아이가 앉으며 부수어졌고, 셋째는 벽에 마커펜으로 줄을 긋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우리 아이들이 피해를 입혔으니 그분들이 원하는대로 해줘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원하는대로 빈티지의 새로운 상자세트를 사주었고, 벽 낙서는 한 벽면을 다 갈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해주어야되는줄 알았는데.... 금액이 자꾸 커지다 보니 생각이 많아지지더라구요...

    저조차도 책임 여부를 따지게 되더라구요. 다 내 아이들만의 책임인건지...

    같이 놀다가 그랬고, 요즘은 낙서 지우는 펜도 잘 나온다는데(사건 당시는 몰랐음) 아이가 낙서를 한 순간, 난리가 나서 같이 놀던 B의 엄마랑 나랑 애들이 막 락스며 치약이며 물파스며 지워대는 바람에 벽이 더 손상되어서 복구가 안되게되었거든요(낙서 크키는 손바닥만함). 그런데도 우리가 그 벽면 수리비를 100%다 내야하는건지...

     

    결국, 저는 이것이 온전히 저희의 잘못인지를 묻게 되었고, 만약 벽을 다 갈고 싶다면 책임에 대한 돈을 서로 나누어야하는 것은 아닌지를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분은 내 아이가 잘못한 것은 당연히 100%라고 이야기하시더라구요. 이렇게 화폐가 침입하며 사랑의 유동이 정지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담담하게 써내려가지만, 그 언니를 많이 좋아하며 사랑의 증여(?)를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랑의 유동이 정지되는 결론이 나면서 엄청 힘들었거든요. 하여튼 돈 문제(금액이 커질수록?)가 개입되면서 예민해지며 증여의 실천이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 2021-07-14 08:31

    p132. 피지오크라시 이론의 핵심은 부의 증식이 화폐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지로부터 발생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심이 돈돈한 사람들이 성배 주위를 에워싸는 것만으로는 현실의 물질적인 부가 발생하지 않지만, 인간이 대지에 의해 노동을 가함으로써 대지는 풍요로움을 증여하며, 게다가 그 증여는 무상의 증여라는 것이 피지오크라시 이론의 기본 틀입니다.

    p136. 케네는 그런 순생산을 발생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연의 대지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장인이나 공업노동자들의 경우는 대상이 되는 '물'에 대해 노동을 가하지만, 그'물'은 그들의 노동에 부응해서 스스로의 내부로부터 뭔가 가치 있는 것을 마치'선물'하듯이 주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대지의 밑바닥에서 유용한 금속 원료를 캐내는 작업을 하지만, 이 노동은 자연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자진해서 인간에게 주고 있다기보다, 어딘가 억지로 끌어내서 빼앗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대지와 자연이 인간의 노동에 부응해서 어떤 자발적인 생산을 실현하고 있는 경우는 오로지 농업밖에 없지 않을까요?

    딸아이가 중학생이었을때 고등학교 진로를 농업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대안학교를 많이 찾아보고 알아본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직감적으로 앞으로 농업이 제일 경쟁력(?)이 되는 세상이 될것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나도 농사를 지으면서 자급자족의 삶을 살아보기를 꿈꿔보기도 했었다.

    딸아이는 자신의 의지와 생각이 자라면서 엄마가 생각하는 삶보다 다른 삶을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되었고 농사에 관련된건 배우고싶지도 하고싶지도 않다는뜻을 밝혔다.  귀농귀촌한 지인들의 소식을 통해 나 자신 또한 내 땅 한평 없는 시골에가서 농사를 한다는건 쉬운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체감하면서 내가 직접 농사를 하고싶다는 의지는 많이 식었다.  그런데 이번 수업을 통해 농사의 중요성을 한번 더 자각하게되는 시간이다.  농업은 가장 친자연적인 산업으로, 나카자와 식의 표현을 사용하면 자연과의 '대칭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산업이라고 한다.

    현대의 자본주의화된 농업(대량생산,단일품종,gmo재배)이 순수증여가 일어나는 농업으로 어떻게 변화될 수 있을지 궁굼하고 기대가 되기도 한다.
    <조별과제>
    지난주 선물팀 과제로 고마리샘 농장에 선물실천을 하러갔다.

    낮 햇빛이 무서운(?)시기라 이른 아침 부지런을 떨며 농장에 도착했다.  지난 농사배움에서 비료 주기를 했던 옥수수가 튼실하게 자라 있는 모습을 보니 흐뭇함이 밀려왔다.  야심차게 호미와 삽을 들고 밭고랑에 소임을 다한 작물들과 잡초를 정리하는 노동을 부탁 받았다. 작업을 하면서 참개구리,사마귀, 지렁이를 만났는데 그들의 삶 터를 왠지 우리가 망가트리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름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낸터라 웬만한 농작물은 거의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더덕의 생김새를 몰라 애써 씨앗을 뿌려서 키우신 더덕을  잡초인양 다 뽑아버린 사고를 쳐서 민망하고 죄송한 마음이었다.  노동의 선물을 실천하러 와서 오히려 민폐를 끼친건 아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식으로 준비해주신 샌드위치는 꿀맛이었다.  육체노동 뒤에 따른 식욕과 입맛은 어떤 음식이든 맛있게 먹을 준비가 되어있기라도 한 듯 헐레벌떡 배를 채우고 농장에 피어있는 작물들의 꽃들 감상에 잠시 눈 호강까지 즐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잠깐 드러누워 있어야 하는 저질체력을 탓하며 쉬고 있는 나를 보고 옆에서 동생이 한마디 한다.

    "농사는 아무나 하나~ 그냥 돈주고 사서 드세요~"

  • 2021-07-14 09:44

    끊여진

    -증여관계의 실패를 들여다보기-

    3 동안 둘째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관계를 맺은 다양한 친구들이 있다.

    특히, 두명의 친구와 많은 시간을 나누었는데,

    그중의 친구가  졸업과 동시에

    멀리 이사를 갔고, 아이들이 1학년 2학기가 되면서 부터 이제,

    친구와는 이제 연락이 닿지 않는다.

    이제 2 ….

    아직도 둘째아이는 친한 친구였던 그아이를 떠올리고, 나도 가끔 꿈에 친구가 등장한다.

    친구가  용기를 내어

    가게로 연락을 해서  이야기를 잠깐 나누었지만,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친구를 떠올리면,

    자꾸만 뒤를 돌아 보게 된다.

    요즘 증여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있어서 그런지

    부쩍 생각난다.

    내가 섬세하게 다가갔다면 달라졌을까?

    친구가 공부하고 일할때

    잠깐 잠깐,

    친구 아이와 집에서 놀고 ,

    밥을 먹고, 데려다주고 했던 일들,

    함께 나눈 이야기들을

    복기하며,,,

    당시 , 친구을 향했던 배려가

    지금 생각해보니,

    실은 자신의 요구를 채우는 것이였던것 같아서

    맘이 무겁다

    그리고 여전히,

    그 끊여진 연이 다시 바람을 따라 돌아오길 바란다.

    증여의 고리속에서

    우리가 나눈 것은 무엇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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