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프로젝트시즌2>주간실천과제 3주차

코스모스
2021-06-13 07:23
463

무척 뜨거운 날들입니다.

기후위기로 날씨가 종잡을수 없이 전개되니 예전엔 요맘때 날씨가 어땠는지 가물가물합니다.ㅠㅠ

 

주간실천과제 벌써 하신분 계실까요?

요기 올려주세요~

 

 

 

댓글 18
  • 2021-06-15 00:24

      우리가 지금까지 연구한 사실들은 모두 전체적인 또는 일반적인 사회적 사실이다.

    이들 사실은 어떤 경우에는 사회와 그 제도(포틀래치, 대항하는 부족, 서로 방문하는 부족 등) 전체를 움직이게 하며,…….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법률적·경제적·종교적인 동시에 심미적·형태학적이다.

    그것들은 개인의 권리, 집단의 권리, 조직화된 도덕, 사방에 퍼져있는 도덕과 관계된다는 점에서 법률적이고,

    또한 엄격하게 의무적이며, 또는 단순히 칭찬이나 비난만 받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들은 사회계급뿐만 아니라

    씨족·가족과도 관계되기 때문에 정치적인 동시에 가정적이기도 하다. 그것들은 진정한 종교·주술·애니미즘 및

    널리 퍼져있는 종교적인 사고방식과 관계되기 때문에 종교적이다. 그것들은 경제적이다. 왜냐하면 가치·효용(실리)·

    이익·사치·부·취득·축적 등의 관념과 또 한편으로는 소비 관념, 심지어는 완전히 사치스러운 순수한 지출 관념조차도 도처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심미적인 측면도 지니고 있다. 사실 교대로 행하는 춤, 갖가지 종류의 노래와 어릿광대짓, 야영지마다 또는

    파트너 간에 행해지는 극적인 연출,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장식되고 연마되고 수집되며 사랑과 함께 양도되는

    갖가지 종류의 물건, 기쁘게 받고 의기양양하게 제공되는 모든 것, 모든 사람이 참가하는 향연 그 자체―이 모든

    음식물·물건·봉사, 심지어는 틀링깃족이 말하는 바와 같은 ‘존경’은 단지 도덕이나 이익 차원의 감정뿐만 아니라

    심미적인 감정도 일으키는 원인이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분명히 형태학적인 현상이다. 모든 일이 집회, 장(場)과 시장, 또는 적어도 그 대신에 치러지는 축제 속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그것은 주제 이상의 것, 제도적인 요소 이상의 것, 복합적인 제도 이상의 것,

    심지어는 예를 들면 종교·법·경제 등으로 나뉘는 제도의 체계 이상의 것이다.

    우리가 그 기능을 기술하려고 시도한 것은 ‘전체’, 즉 전체적인 사회체계이다. 우리는 사회를 동태적인 또는 생리학적인 상태에서 보았다.

    우리는 사회를 마치 고정된 것처럼 정태적인 상태에서, …·… 더더욱 사회를 법규범·신화·가치·가격으로 분해해서 분석하지 않았다.(275~277)

    ---모스는 ‘증여’를 단순히 규범의 측면에서가 아닌 구조적인 의미에서 파악했다고 강조.

    주어진 사회의 전체성 속에서 ‘형태’를 분석한 결과 호혜성의 원리와 교환의 개념을 얻음. 그래서 『증여론』 부제가 ‘태고사회에서의 교환의 형태와 이유’.

    • 2021-06-15 08:10

      현재는 증여론에 나오는 시대에 적용되는 선물의 개념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지만,

      선물로 인해 생기는 의무감과 답례에 대한 기대는 사회를 하나로 연결하는 순기능의 역할을 했었다.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로 우리는 지구촌이 하나로 연결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적인 수단에 적합한 새로운 선물의 영역은?

      ―저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공유경제가 생각나는데, 샘들은?^^

  • 2021-06-15 00:48

    1)인상깊은 구절 필사

    p196. 우리는 물건에 관한 법과 사람에 관한 법, 사람과 물건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 구별은 기본적이다. 즉 그 구별은 현재의 재산.양도.교환제도의 일부 조건 자체를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연구한 규범과는 관계가 없다. 또한 셈족.그리스민족.로마민족의 문명 이래로 우리의 문명은 한편으로는 채무 및 유상급부와 또 한편으로는 증여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p217. 물건을 주면, 그 보답은 이 세상에서도 저 세상에서도 이루어진다. 이 세상에서 그 선물은 그것과 똑같은 것을 증여자에게 자동적으로 가져다 준다. 선물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재생하는 것이다. 저 세상에서 증여자는 더 늘어난 똑같은 것을 되찾는다. 음식물을 주면 이 세상에서는 그 음식물이 증여자에게 되돌아오는데, 그것은 또한 저 세상에서의 그의 음식물이기도 하며,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계속되는 윤회과정에서의 음식물도 된다.

    p226. 나누어지는 것이 음식물의 성질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지 않는 것은‘음식물의 본질을 죽이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자신에게서나 다른 사람들에게서나 음식물을 파괴하는 것이다. ....부(富)는 주어지기 위해서 모으는 것이다.

    p249. 우리의 도덕과 생활 자체의 상당한 부분은 언제나 의무와 자발성이 혼합된 증여의 분위기 속에 머물러 있다. 모든 것이 아직도 구입과 판매라는 점으로만 분류되지 않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시장가치밖에 없는 물건들이 많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아직도 시장가치 외 감정가치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도덕은 단지 상업적인 것만이 아니다. 우리 중에는 아직도 과거의 풍습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과 계급이 있으며, 또한 우리는 거의 모두가 적어도 1년 중의 어느 시기 또는 어느 경우에는 그 풍습을 따른다.

    선물을 받고 답례하지 않으면 그 받은 사람의 인격이나 지위는 좀 더 열등한 상태로 떨어지며, 답례할 생각 없이 받았을때에는 특히 그러하다.

    p254. 기업단체들이 각각의 동업조합을 위해 만들고 있는 실업수당금고와 공제조합은 순수한 도덕적인 견지에서는 단 한 가지, 즉 그것들의 권리가 완전히 고용주의 수중에 있는 점을 제외하면 어떠한 결점도 없다. 게다가 집단이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국가.자치단체.공공보호시설.퇴직금고.저축금고.공제조합,고용주단체.임금노동단체 등 이들 모두가 예를 들면 독일과 알자스-로렌의 사회입법에서 일제히 단결하고 있다.....또 한편으로는 국가와 그 하위집단들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이다. 사회는 그 사회세포를 다시 찾고자 한다. 사회는 개인이 갖고 있는 권리의식과 그밖의 더 순수한 감정-자선.사회봉사.유대의 감정-이 혼합되어 있는 묘한 정신상태 속에서 개인을 찾아 보살핀다. 증여의 주제, 증여 속에 들어있는 자유와 의무, 후한 인심 그리고 주는 것이 이롭다는 주제가 마치 오랫동안 잊어버린 주요동기의 부활처럼 우리 사회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다.

    p257. 그러므로 우리는 옛날로 또한 기본적인 것으로 돌아갈 수 있고 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아직도 많은 사회와 계급이 알고 있는 생활과 활동의 동기, 즉 공공연하게 주는 즐거음, 후하고 풍류가 있는 지출의 즐거움, 환대와 사적.공적인 축제의 즐거움을 다시 발견할 것이다. 사회보험, 상호부조 조직, 협동조합, 직업단체 및 영국법에서 “공제조합‘이라고 불리는 모든 법인에서의 배려는 귀족이 소작인에게 보장한 단순히 개인적인 보증보다도, 고용주가 지급하는 매일매일의 임금이 가져다 주는 빈약한 생계보다도, 심지에는 변하기 쉬운 신용에만 의지하려는 자본가의 저축보다도 더 낫다.

    p282. 이런 식으로 하면 오늘날에도 국민들은 강하고 부유해지며 또 행복하고 선량해 질 수 있다. 민중.계급.가족.개인은 부유해질 수는 있지만, 그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원탁의 기사들처럼 공동의 부(富) 주위에 앉을 수 있을때뿐이다....부과된 평화 속에서, 공공을 위한 노동과 개인을 위한 노동이 교대로 일어나는 리듬 속에, 또한 축적된 다음 재분배되는 부 속에서 그리고 교육이 가르치는 서로간의 존경과 서로 주고받는 후함 속에 있다.

    2)느낀점 마무리
    숙제처럼 읽은 증여론을 다 읽고 머릿속에 떠오르는건 ”선물은 호혜적인 것이다.“
    주석이 많고 어려운 용어와 여러 사상가들 이론들이 설명되는 증여론을 처음부터 꼼꼼하게 읽기란 나에게 무척 어려운 책이었다. 에코프로젝트를 통하지 않았으면 평생 펼쳐볼 일이 없는 책이었다. 이렇게 수업을 통해 숙제처럼 읽었지만 아직도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거거나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매주 수업에서 뚜버기 선생님의 설명과 토론을 통해 다른 분들의 생각을 들으며 책의 내용을 나만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수준에서 해석하고 이해했다.
    모스에 따르면 선물은 사실상 주기외 받기 그리고 답례라는 삼중의 의무을 뜻한다. 선물이 사회생활의 중요한 기초이며 선물의 흐름에 수행되는 행동의 형태가 그렇게 정제되고 다양해진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선물의 순환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 깊다. A가 B에게 선물을 하면 B는 A가 아니라 C에게 선물을 하고 C는 다시 B에게 선물을 하므로써 A는 B로부터 더 큰 선물을 받게 된다는 점이 처음엔 의아했지만 선물은 호혜적인 것이므로 확산해야하는 의무를 생각하며 이해했다. 또한 모스는 선물을 받으면 답례를 해야하는 '답례의 의무'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도 답례가 강제됨으로써 사회적 유대의 그물망을 이어간다는 내용이 공감가는 부분이었다.
    에코프로젝트 시즌2 주제는 ’위기의 시대 다른 미래를 상상하다‘ 이다. 여기서 증여론을 읽고 공부하는 목적은 통념적으로 뒤처지고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었던 원시사회을 배움으로서 지금의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회을 상상하며 가능성을 제시하는 목적이라 생각한다.
    상당한 잉여물을 자본으로 형성하지 않고 선물의 형태로 증여와 답례를 했던 원시사회의 활동이 물질만능 자본주의 세상에서 대안으로 여겨지기에 지금 우리가 증여론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평소 선물에 대해 생각했던 좁은 의미를 깊고 넓게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 2021-06-15 20:38

    “여러 민족은 감정에 이성을 대립시킴으로써, 또 이러한 종류의 돌연한 광기에 대해 평화를 향한 의지를 대항시킴으로써 전쟁·고립·정체를 동맹·증여·교역으로 대체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 사회는 사회 그 자체, 그 하위집단과 그 성원이 제공·수용·답례를 행하며 자신들의 관계를 안정시킬 수 있었던 한도 내에서 발전해왔다. … 이렇게 해서 씨족·부족·민족은 서로 살육하지 않으면서 대립하고 또 서로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주는 법을 배웠다.(281)”

     

    “그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원탁의 기사들처럼 공동의 부(富)주위에 앉을 수 있을 때뿐이다. 선(善)과 행복이 무엇인가를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그것은 부과된 평화 속에, 공공(公共)을 위한 노동과 개인을 위한 노동이 교대로 일어나는 리듬 속에, 또한 축적된 다음 재분배되는 부 속에 그리고 교육이 가르치는 서로 간의 존경과 서로 주고받는 후함 속에 있다.(282)”

     

    “다양한 동기와 요인들의 합(合)이 사회의 기초를 이루며 공동생활을 구성하고 있는데, 그 동기와 요인들의 의식적인 관리가 최고의 기술, 즉 그 말의 소크라테스적인 의미에서 정치(Politique)이다.(283)”

     

    일단 필사부터 올려요~

     

    • 2021-06-16 01:23

      두번째로 읽는 증여론.

      이번에는 선물을 개인적인 도덕 혹은 윤리의 측면보다 정치적 또는 집단적 배치의 측면에서 생각하게 되네요.

      그래서 그런지 스피노자의 <정치학논고>의 서론 부분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 ... 철학자들은 실재 존재하는 인간본성에 대해서는 공격을 가하는 반면,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인간본성에 대해서는 열렬히 찬양하면서, ... 있는 그대로의 인간이 아니라, 그렇게 존재해줬으면 하는 인간 모습을 머리 한가운데 그리고 있는 것이다. ... 인간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감정에 의해 좌우된다. 인간의 감정은 불행한 사람에게는 동정을 표현하고 부유한 사람은 시기하며, 자비를 베풀기보다 복수를 선호하는 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 의향에 따라서 생활하고, 그가 인정하는 것을 인정하며, 자신이 배척하는 것을 배척하기를 바란다. 이로부터 모든 사람은 다 같이 우위에 서려 하기 때문에 싸움에 말려들 수밖에 없으며, 이 싸움에서 있는 힘을 다해 상대방을 제압하려 한다... 이와 반대로 종교는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 곧 다른 사람의 권리 역시 자신의 권리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에서 누구나 공감하는 편이지만 인간의 감정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 그다지 설득력이 없음을 우리는 증명한 적이 있다.... 이성이 감정을 억제하고 조절할 수 있긴 하지만, 동시에 이성이 인도하는 길이란 참으로 험난한 길임을 우리는 이미 살펴보지 않았는가...(388~391)"

      "다양한 동기와 요인들의 합(合)" 즉 개개인의 욕망과 그것들이 엮어진 사건들로  사회 혹은 공동생활이 구성되며, "그 동기와 요인들의 의식적인 관리"가 정치라고 했을 때, 원시사회에서 선물은 정치의 한 가운데에서 그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적인 기능을 했다는 의미로 읽혀지네요.

      암튼 지금 우리 사회의 배치와 그로 인한 욕망의 방향과 내용이 아닌 다른 배치와 다른 욕망을 상상함에 있어 <증여론>은 많은 자극을 주기도 하겠지만, 두 배치 사이에서 길을 찾을 수 없는 자에게는 통증과 고뇌로 다가오기도 하겠군요. ㅎㅎㅎ

       

       

  • 2021-06-15 21:10

    그것은 물건이기는 하지만, 생명이 있는 물건이다. 특히 그것은 상호성에 기초하는 고대의 의무적인 증여제의 잔재이다. 계약 당사자들은 그것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보충적인 담보의 교환은 영혼 및 그 영혼과 합쳐진 물건이 이처럼 오고가근 것을 허구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넥숨, 즉 법적인 '구속'은 사람한테서뿐만 아니라 물건에서도 유래한다.(199)

     

    물,우물, 샘을 주면 그것은 갈증을 막아주는 것이다. 옷, 금화, 작은 양산 그리고 몹시 뜨거운 땅 위로 걸어갈 수 있게 해주는 샌들을 주면, 그것들은 이 세상에서도 저 세상에서도 또 장래에 다시 태어날 때에도 당신의 이익을 중대시켜 준다. "달이 매일 커지는 것처럼, 전에 준 토지는 해마다 증가한다." 토지는 수확물,지대,세금,광물,가축을 낳는다. 토지를 선물하면 바로 그러한 산물에 의해서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가 부자가 된다. (224)

     

    나누어지는 것이 음식물의 성질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지 않는 것은  '음식물의 본질을 죽이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자신에게서나 다른 사람들에게서나 음식물을 파괴하는 것이다.(226)

     

    증여는 주시 않으면 안되는 것인 동시에 받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지만, 또한 받는 데에는 위험을 수반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어짐 눌건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쌍무적인 유대를 형성하기 떄문이며, 음식물의 경우에 특히 그러하다. 수증자는 증여자의 노여움에 좌우되며, 또 각자는 상대방에게 지배된다. 따라서 사람은 자기를 싫어하는 자의 집에서 식사해서는 안된다.(234)

    • 2021-06-15 23:57

      내가  이번에 증여론을 읽으면서 유난히 꽂혔던 부분은 바로 '후하게 주어야 하는 의무'이다. 

       

      "희사는 한편으로는 증여 및 재산의 도덕적 관념과 또 한편으로는 공희 관념의 소산이다. 후하게 주는 것이 의무이다. 왜냐하면 네메시스(그리스신화의 인과응보,복수의 여신)는  가난한 사람과 신을 위해, 행복과 부를 지나치게 갖고 있으면서도 베풀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때문이다."(87)

       

      충분히 베풀고 있는가라고 내게 질문한다면 나는 단박에 '아니오'라고 답할 것이다.

      또한 내게 행복과 부를 지나치게 갖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난 잠시 머뭇대면서 '그렇진 않은 것 같다'라고 답할 것 같다.

      어째 후하게 베풀어야하는 전제를 부정했으니 갈 길을 잃은 듯하다.

       마지막 질문을 던져본다.

      베풀지 않음으로 인해 네메시스의 복수를 받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이 질문에 나의 답은 너무나 명확하게 '아니오'가 아니겠는가.

      왜냐하면 현실에서 내가 무언가를 충분히 소유하고 있는가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우리의 존재가 태초에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은 받음으로써 시작할 수 밖에 없으므로 '후하게 주어야 하는 의무'는 그냥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제공된 선물을 마음대로 거절할 수 없다. 남자도 여자도 모두 후함에서 서로 상대방을 능가하려고 애쓴다. 누가 더욱 가치있는 물건을 가장 많이 줄 수 있는가를 두고 일종의 경쟁이 있었다."(92)

       

      더 많이 차지하려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주려고 경쟁하는 사회라니!

      내가 네메시스의 복수를 피할 수 있는 길이 아닐런지.

       

  • 2021-06-15 21:21

    녹평 178호에서 성서를 해석한 인상적인 구절을 읽었다. 자발적 자기제한, 부의 축적이 아닌 공유를 통한 삶의 풍요로움이 담겨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만나를 내려준 하느님의 분부가 바로 그것인데 1. 너희는 먹을만큼 거두어라.  2. 아무도 그것을 아침까지 남겨두지마라. 3. 엿샛날에는 이틀치를 줄터이니 이레째는 제자리에 머물러라. 4. 만나를 대대로 보관하여라. 이 4가지 분부에는 개인과 사회를 연결해주는 훌륭한 도덕률이 담겨있다. 우리 삶의 반석이 바로 증여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흔적이 아닐까

  • 2021-06-15 22:20

     

    인상깊은 구절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1. 음식물의 윤회과정란 개념..

    2. 그리고 개인적으로 요즘은 부의축적과 그 쓰임등에 고민이 많아서 와닿았던 부분이 많았는데요.269 페이지..를 읽다보나 

     

    돈을 넘어서서 주식이나 비트 고인 등등이 유행되고 있는 현대에서 그런 화폐로 인한  부의 축적과 소비를 통해 그 동기 부여의 원인등등이 궁금하더라구요 

     

    이익과 유용성의 개인적 추구.. 

    269 이 미치광이 같은 증여와 소비의 동기 또는 이 미친둣한 부의 상실과 파괴의 동기....... 

    화폐를 넘어서 이런 것들이 유행되고 있는 현대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다르기 때문일지.. 화폐(돈)와 비슷한 듯 하지만.. 이런 가상화폐같은것들이 인기가있는 뛰어넘는 동기가 있을것같기도하고...

     

    정리해서 질문하고싶었는데 시간에쫓겨 일단 생각하는데요 던지고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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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15 22:22

      기현이가 자꾸 낙서를...;;;

      다음엔 보기 쉽게 정리하도록 노력할게요~ 죄송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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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15 23:53

        기현이도 공부에 동참하고 싶나봐요 귀여워라~  애들 돌보랴, 공부하랴~ 나중에 더 기억에 남을 거 같아요^^

  • 2021-06-15 22:37

    그것은 물건이기는 하지만, 생명이 있는 물건이다. 특히 그것은 상호성에 기초하는 고대의 의무적인 증여제의 잔재이다. 계약 당사자들은 그것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보충적인 담보의 교환은 영혼 및 그 영혼과 합쳐진 물건이 이처럼 오고가는 것을 허구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넥숨, 즉 법적인 '구속'은 사람한테서뿐만 아니라 물건에서도 유래한다.(199)

     

    증여가 행해지려면 먼저 물건이나 봉사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되며, 그 물건이나 봉사가 의무를 부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206)

     

    증여는 주지않으면 안되는 동시에 받지않으면 안되는 것이지만, 또한 받는 데는 위험이 수반된다. 주어진 물건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쌍무적인 유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며 음식물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수증자는 증여자의 노여움에 좌우되며 또 각자는 상대방에게 지배된다.(234)

     

    단순히 물건을 갖는다는 사실만으로 수령자는 인도인에 대해서 준유죄(책임을 지는 자), 동괴에 얽매인 자, 정신적인 열등감, 도덕적인 불평등(주인과 종복의 관계)라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210)

     

    이 불안정한 상태 때문에 선물을 할 때마다 늘 고민에 빠진다. 특히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할 때 더 그렇다. 나는 선물을 받는 사람이 온전히 기쁨만을 느끼길 바라지만,  그 선물을 받음으로서 발생되는 부담감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 부담감을 줄어들게 하려고 이런 저런 말을 해보지만 이 묘한 불안정한 상태가 해소가 잘 안된다.

     

    그런데 나의 경험 중에 내가 드러나지 않는 선물은 이 불안정한 상태가 어느정도 해소되는 것 같다.

    재수학원을 다닐 때 6개월간 미술이론 강의를 듣게 되었다. 30대 후반의 남자샘이셨는데 강의를 너무나 열정적으로 하셨다. 그 뒤로 강의 전 교탁 위에 음료수를 올려놓았고 선생님께선 강의가 끝나고 그 음료수를 드셨다. 매주 그렇게 음료수를 선물로 드렸고, 드시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큰 기쁨이었다. 수업 막바지엔 음료수를 주는 학생이 누군지 궁금해 하셨지만 모른 척하고 앉아있었다.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받은 선물은 그 반대급부의 의무로부터 자유를 주지 않을까?

    '익명의 선물'은 순환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2021-06-15 23:43

    p251

    초대는 제공되지 않으면 안되며 또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관습은 현대의 자유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존속하고있다. 지금부터 50년전만 하더라도, 또는 더욱 최근까지만 해도 독일과 프랑스의 몇몇 지방에서는 마을사람 모두가 결혼식 축하연에 참가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빠지면, 그것은 나쁜 징조, 질투와 저주의 조짐 또는 표시였다. 프랑스의 많은 지역에서는 아직도 모든 사람이 의식에 참가한다. 프로방스 지방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사람들은 각자 달걀과 그밖의 상징적인 선물을 가져다 준다. 

    >원시사회가 아닌 최근까지 이런 방식의 문화가 있다는것이 흥미롭고, 어떤 의식에서 구성원의 불참이 불길한 징조로 인식되는한 서로서로 끈끈한 유대와(사이가 안좋을지라도)  구성원들간의 견제?로 이런 초대를 주고받는것이 유지되었을것 같다.

    • 2021-06-15 23:59

      저는 지난 시간에 '조르주 바타이유'의 '유쾌한 파멸의 현장'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웠습니다. 

      "애초부터 성장에 사용될 수 없는 초과에너지는 파멸될 수 밖에 없다. 이 어쩔수 없는 파멸은 어떤 명목으로도 유용한것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불유쾌한 파멸보다는 바람직한 파멸, 유쾌한 파멸만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여기서 애초부터 성장에 사용될 수 없는 초과에너지를 전제로 이야기 했다는 것이, 우리 인간은 초과에너지를 만들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가정하고 시작하는 구나, 초과에너지를 애초에 안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왜 힘들게 만들어서 그걸 유쾌하게 파괴해야하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모두가 좀 적게 일해서 적게 생산하고 삶이 좀더 띄엄띄엄해지면, 물질에 대한 경쟁이 덜해지고, 우리가 좀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이 이런 부의 경쟁사회를 만들었는가. 애초에 초과에너지가 있을수 밖에 없는것이면 우리는 파멸이 행해지기전의 그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가야 할수밖에 없는것인가 하는 푸념을 하게 되네요. 띄엄띄엄 살고 싶어요. ㅎㅎ

  • 2021-06-15 23:59

    필사하기

    P252 원고, 발명품 또는 예술창작품의 판매라는 노골적인 행위를 넘어서 의장권, 저작권, 특허권이 인정되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제로 사회는 이 인류의 은인인 저술가나 발명가의 상속인들에게 권리 소유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물건들에 대한 일정한 권리보다 더 많은 것을 인정하는 데에는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사람들은 그것들이 개인정신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집단정신의 산물이기도 하다고 곧잘 주장한다. 모든 사람들은 그것들의 저작권이 빨리 소멸되거나 아니면 그것들이 부의 일반적인 순환 과정 속에 빨리 들어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예술가와 그 직접적인 상속인이 생존해 있는 동안 회화, 조각, 예술품의 가격이 증가했다는 소동 때문에, 1923년 9월의 프랑스법은 작품이 계속 매매되는 경우에 생기는 증가액에 대한 추구권을 예술가와 그 권리 소유자에게 주었다.

     

    - 과거 비참한 생애를 살다가 뛰어난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살아있을 때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았을텐데... 문득 오늘날과 같이 정보공유가 전면적인 시대에 예술창작품을 개인정신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집단정신의 산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지 궁금해졌다. 요즘 저작권의 경우에는 개인창작물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이름의 후광을 입고 부가 순환되기보다는 쌓여가는 것처럼 보이던데.

     

    p257 시민이 너무 선량하고 개인적이기를 바라서도 안 되며, 또 너무 비정하고 현실주의적이기를 바라서도 안 된다. 시민은 자기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사회 현실(이 도덕적인 사태에는 어떤 실재(實在)가 있는가?)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의식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그 자신, 사회와 그 하위 집단들을 고려하면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불특정 다수와 살아가야하는 우리들은 날카로운 의식을 갖추는 일이 참 어려운 것 같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사회현실까지도 보려면, 우선은 자기 자신부터 보아야하겠지. 

     

    <증여론>이 끝나면서 드는 짧은 생각: 언어와 권위에 꽂혀서

    월요일에 ‘마음과 수행’에 관한 정화스님의 특강을 들었다. 우리가 어떤 경험을 했을때, 그 경험한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마지막에 ‘지혜’를 강조하셨는데, 지혜란 실제의 경험과 학습한 공부를 관통해 현재 사건을 일반화시키는 해석 능력인 것 같다.

     

    각각의 우주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생각의 지도가 하나씩 있는데, 생각을 자주 하다보면 그 생각을 만들어내는 패턴을 강화시킨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 뇌안에는 많은 패턴들이 자리잡게 되는데, 정화스님은 과학적으로도 그 패턴의 통로에 있는 단백질들이 단단해진다고 말씀하셨다. 가령 바보를 만드는 자모음 ㅂ, ㅏ, ㅂ, ㅗ의 결합이 처음에는 하나하나를 따로 받아들이다가 어느 지점이 되면 보는 순간 바보라는 단어를 바로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이해되었다. 단어의 경우야 해석이 그나마 쉽지만 문장이 되면 달라진다. 같은 문장을 말하고 듣는데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의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억이 단단해지면서 패턴이 되면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 반응이 나온다. 이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는 동시에 그걸로 인해 다른 생각에 대한 해석의 경험은 어렵게 된다.

     

    그럴 때 경험과 공부, 이 두가지를 통해 자기의 말과 행동, 생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을 제안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일반화시켜야 하는데, 그 역할을 언어가 한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아는 것, 그것은 일반화가 안 된 것이다. 단어의 해석부터 다시 해야 한다. 주어부와 서술부의 맥락을 통해 내부 정보를 단단하게 해가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권위를 가진 사람의 말에 쉽게 흔들리게 된다고. 권위... 내가 꽂힌 권위ㅋㅋㅋ

     

    과거, 마을에서 권위를 가진 사람이란 사냥을 나갈 때 가장 앞선 사람, 즉 위험 부담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다. 또한 사냥 후 얻은 수렵물의 배분 과정에서 개입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실 현대인들도 권위있는 존재를 이와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다. 권위있는 존재가 사라진 시대, 그들을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우선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는지부터 챙겨야 할 것 같다.

     

    정화스님 강의를 처음 들었는데 흥미롭게 들었지만 일반화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뚜버기님도 들으셨을테니 도움을 받아야할듯^^

     

  • 2021-06-16 00:08

    인상깊은 구절

    P257

    이상의 것이 행해지면 우리는 법의 변함없는 기초,

    도덕적인 생활의 원리 자체로 돌아갈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민이 너무 선량하고 개인적이기를 바라서도 안 되며,

    또 너무 비장하고 현실주의적이기를 바라서도 안된다.

    시민은 자기 자긴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사회현실[ 이 도덕적인 사태에는 다른 어떤 실재가 있는가? ]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의식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그 자신, 사회와 그 하위집단을 고려하면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도덕은 영원한 것이다.

    그것은 가장 진화한 사회에도,

    가까운 장래의 사회에도,

    또 우리가 상상할수 있는 가장 미개한 사회에도 공통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반석을 건드리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법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집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시대에 활동하고 있고 또 모든 곳에서서활동해 온 것은 그들이고, 사회이며, 또한 영혼을 지닌,

    즉 살과 뼈로 이루어진 인간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 2021-06-16 02:14

    🍾퍼올려지는 생각 잡아두기

    ( 자정이 넘는 시간이라 글을  올릴까 말까 하다가^^

    늦어서 죄송하지만 , 용기내 적어봅니다.)

     

    -누구나 이웃을 초대하고 작은 국수잔치나

    티파티를 열수 있는 사회 만들기-

     

    어떤 방법이 있을까?

    크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법의 영역에서 호혜의 원리를 제대로 적용하고,

    개인은 우리의 오랜된 관습(도덕)인  주고 받고 후하게 되돌려주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

     

    먼저, 누구나 직업에 관계없이 소득이 안정된다면,

    가능할수 있겠다.

    그러려면 노동의 가치가 회복되고,

    사회보장의 폭을 늘리고 조세형평성이 높아져야한다.

    세금은 많이 벌면 많이 내고 적게 벌면 적게 낸다.

    (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조세를 통한 호혜는 

    주는자와 받는자를 특정할수 없으므로,

    부담이 없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교육과 의료등 공적영역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죽을때까지 세금 혜택을 누려

    조세저항을 줄여야한다.

    이건 정부나 자치단체가 할수 있는 공적영역이고 

    법으로 규정해야할 부분이다.

    개인의 삶은 (법보다는) 관습과 집단도덕의 원리로 돌아간다.

    선의와 인정, 후함과 베품의 순환이

    나와 타인, 자연, 지구로 확대된다.

    예)

    나(상상의 나)는  무용과 연극을 좋아하고

    작은 빵가게에서 일하고 있다.

    내 노동을 사랑하고 즐겁지만 돈을 많이 벌수는 없다.

    그렇지만 나는 비건베이킹조합에 가입되어 있고

    조합은 내게 든든한 물적 심적 지원자가 되어주며,

    지방정부는 직접적으로는 기본소득과 사회보장제도,

    간접적으로는 각종 지원사업을 통해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도와준다.

    나는 내가 만든 빵과 과자 중 일부를 단체에 기부하고,

    매달 마지막주 금요일엔  친구들과 이웃들을 초대하고

    조촐한 티파티를 연다.

    봄과 가을에는 동네 이웃들과 공연을 준비한다.

    이 동네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집과 

    다양한 이웃들이 살고 있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지만,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  사귄

    다정한 이웃들과  먹거리와 생각을 나누며 살고 싶다.

    특히, 건너편집에서  바질을  키워서  빵 만들라고 나눠주시는 할머니와  

    내 몸의 부실한 부분을 나 보다 더 꼼꼼히 살펴주시는 

    동네주치의 의사쌤,

    올해 가을, 우리가 준비하는 공연의  최연소 출연자인

    뒷집 꼬맹이라면,

    우리 아이의 절친이 되어 줄것 같다.

     

    이런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도 행복할수 있을까-오연호지음-참조했어요)

     

     

     

     

     

  • 2021-07-01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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