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읽기, <오만과 편견> 마지막 메모와 마지막 시간 후기 - 윤수민

윤수민
2020-12-2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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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2일 화요일, <오만과 편견> 마지막 메모이자 마지막 시간 후기

 

 

 결국은 모두가 결혼이라는 결말을 통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마지막과 함께 책은 덮여진다. 흔하디 흔한 엔딩, 그러나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와 그 속의 뿌리박힌 가부장제를 분명하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도 구석에 작게 박혀있는 한 부분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세뇌되어왔던 환상과 낭만의 감정을 들게 하는 엔딩이었다. 어찌 되었든 난 이 마지막을 결혼이 아니라 사랑으로 정리하고 싶다. 콜린스와 샬럿처럼 사랑 없는 결혼은 있지만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서로를 사랑했고 이를 이어나갈 방법 중에 결혼이라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말로 마침표를 찍는 것이 더 내 마음에 든다. 다시 돌아가서, 그렇다면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사랑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조금 더 본질적으로 파고들자면 너무나도 다르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이 두 인물이 변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 변화의 시작을 ‘불편함’으로 설명하고 싶다. 제목에 쓰여있듯 이 책의 가장 주된 인물인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오만’과 ‘편견’이라는 말로 설명된다. 엘리자베스는 이 시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지혜롭고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여성으로 등장한다. 사교계에 진출하여 장교들을 쫓으며 돈과 명예, 외모만을 중요히 여기는 이들과는 다르게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고 이를 의미 있게 여기며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엘리자베스의 그러한 ‘꿰뚫어 봄’은 첫 인상으로 그 사람의 거의 모든 것을 판단해버리는 경솔함을 행하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겹겹이 쌓인 편견들은 누군가를 올바른 자세와 생각을 가지지 못한 인간이라고 가르고 ‘부족한 그’를 오만하게 바라본다. 다아시는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것들을 전부 갖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있는 부와 명예, 출중한 외모 같은 화려함이 없는 이들은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라는 편견을 가지고 그들을 무시하고 경멸한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과 판단에는 결함이 없다는 오만함이 가득한 사람이다. 오만과 편견으로 뭉쳐진 둘은 처음 서로를 만난 순간부터 삐걱인다. 그 부딪힘 속에서 점차 그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불편함은 우리를 굉장히 곤란하게 만든다. 지금껏 내가 옳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하게 하는 감정이고,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전부 복잡하게 뒤섞여버리는 골치 아픈 일이기도 하며, 원하지 않았던 것들과 마주하게 만들어버린다. 예의와 지적인 면은 하나도 없는 가족들과 상인과 변호사라는 유서 깊지 않은 집안의 엘리자베스에게 끌리는 다아시. 엘리자베스에게 점점 사랑에 빠지는 동시에 자신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신념들과 반대됨을 알기에 불편함이라는 이질적인 감정이 드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또한 다르지 않다. 이미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못됐다고 흉을 보고 자신도 이에 매우 동조하며 얼굴 앞에서 이러한 말들을 내뱉기까지 했는데 알고 보니 많은 것들이 오해와 거짓 소문들이었다는 걸 알아버린 엘리자베스. 분명 오만하고 이기적인 그가 자신에게 얼굴을 붉히며 고백을 하고 어렵게 자신의 진심과 그간의 오해들을 꾹꾹 눌러적은 편지를 건네자 한순간에 혼란과 불편함에 휩싸인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 밤낮동안 서로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불편함은 찾아온다. 매 순간 모든 것에 숨어있는 불편함은 작은 틈으로 고개를 내밀며 금세 우리 속으로 침투한다. 외면하고 싶고 이를 깨닫기 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수없이 든다. 물론 이 불편함도 계속 묻어두려고 애쓰다 보면 잊혀지기도 하고 이전처럼 평온하게 지낼 수도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렇게 불편함을 흘려보낸다. 여기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어려운 선택을 한다. 자꾸만 찾아오는 이 불편함을 똑바로 바라보고 자신을 반성한다.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한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와 헤어진 이후의 시간동안 그의 편지를 계속해서 꺼내 읽으며 그토록 싫어하던 그에게서 배울 점들을 찾아낸다. 다아시는 신분과 명예의 가치가 한 사람의 생각과 태도만큼 의미있는 것들이 아님을 알고는 자세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그들은 변화하였고 한층 더 성장한 모습으로 서로에게 진정하고 건강한 사랑의 마음을 건넨다.

 

-

 

 나 또한 이러한 경험이 있다. 비정규직, 부당해고자,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 시각장애 노인, 이주민 여성. 열일곱에 뉴스 속에서만 보던 사람들을 직접 만났다. 몇 달간 일해서 번 돈을 받지 못해도 업계에 소문이 나면 다시는 일하지 못할까봐 아무 말 없이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알바노동자의 이야기, 10년 넘게 권리를 요구하다가 한 살도 안 된 아이를 두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동료의 이야기, 단발과 단식은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결국 광고탑 위로 올라가 소금과 물로 몇십일을 보내고 있다는 파업원의 이야기, 동생들은 공부를 시켜주겠다며 타국으로 와 결혼을 한 뒤 모든 생활비를 보내는 여성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일상 속에 숨어져 있는 너무도 많은 불편함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 순간 할 수 있었던 첫 번째 행동은 분노였다. 사실 유일한 행동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의 옆에는 항상 노란 리본과 어제 철도에서 사고를 당한 청년의 기사를 붙인 플랜카드가 있었다. 아픔을 느껴본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을 알고 함께 눈물 흘리는 법을 안다는 말이 떠올랐다.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그들과 함께 팜플렛을 나눠주는 일을 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아픔을 건넸고 그 아픔은 누군가의 손에 따듯하게 쥐어지기도 했지만, 바닥에 나뒹굴기도 했고 쓰레기통에 버려지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고 절박한 삶이 누군가의 외면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나의 눈에도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단순한 연민의 감정이 아니었다. 나의 눈물은 닮음의 발견이었다. 학교에서 용기 내어 붙였던 대자보를 무심히 지나쳐가던 눈빛들과 비웃음, 학급자치 진행 중 이런 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냐는 물음에 나를 짓누르던 무력감. 그러나 나는 매번 사소하지 않은 것들을 성장이라는 틀 속에 밀어 넣어버리고 언제나 그랬듯 긍정적으로 ‘그래도 괜찮아’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는 뒤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툭- 밀쳐진 손과 떨어진 팜플렛을 보는 순간, 처음으로 타인의 아픔 속에서 나의 아픔을 발견해냈다. 팜플렛을 내밀다가 왜 이들이 해고를 당했냐고 물으시던 할머니의 물음을 친구에게 넘겼던 나는, 조금씩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작은 틈 사이로 조금씩 나의 이야기도 꺼내놓았다. 점점 큰 목소리로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들은 우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들이 자신과 다른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타자화한다. 나만의 이야기만 존재하는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더는 사람들이 아프지 않기를 바랬다. 그래서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결코 당신과 다르지 않음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불편함에서 혼란과 상처의 과정을 겪고 결국 나는 변화했다. 한때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은 그대로라는 사실이 답답하고 밉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변화했다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에 다시 용기를 얻었다. 불편함은 위대한 것만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아무튼 읽기를 들어온 것도 하나의 도전이자 변화의 시작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전과 긴 책들에 대한 외면에서 한 발자국 다가가보는 것 말이다.

 

 

-

 

 

 “The bird fights its way out of the egg. The egg is the world. Who would be born must first destroy a world. The bird flies to God. That God's name is Abraxas.”

"새는 알 밖으로 나오려 싸워나간다. 알은 세상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Abraxas.“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처럼, 깨지면서 부서지는 사람이 있고 깨지면서 열리는 사람이 있다. 변화는 열려있는 사람에게만 일어난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와 같이 진정한 무언가를 얻고 또 그것이 되기 위해서는 문을 열고 제대로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그것은 더 이상 우리에게 상처와 고통으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와 세상을 바꿀 힘과 희망과 연대로 찾아올 것이다.

 

 정말 끝으로 선태쌤의 말씀이 맞는 것 같다. 지금은 당장 읽지 않더라도 책을 우선 옆에 두고 있으면 언젠가 이 책을 스스로 열고 읽어내릴 것이라는 말씀. 이번 아무튼 읽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책을 열고 또 다 읽어내고 덮을 수 있는 힘과 진한 눈맞춤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껏 나의 오만과 편견들을 반성할 수 있게 되었다. 역시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읽기를 하게 된 것도,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오만과 편견으로 끝이 난 것도. 혹은 내가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야만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우선, 이 책에서 계속해서 언급되었던 이성과 감성에 대하여 깊게 찾아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잇고 잇고 이어서 끊임없이 책을 읽어나갈 생각이다.

댓글 6
  • 2020-12-22 19:12

    수민의 마지막 시간 후기 감사합니다~

    수민의 글을 읽으니.... 나 하나 만이라도 절망이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사람들을 읽고 책을 읽는 것 같군!!
    수민의 한 걸음 한 걸음에 격한 응원을 담을께~~~

    나도 그대들과 함께 아무튼의 첫 걸음을 뗀 것이 좋았고 감동이었어~
    고마워 (하트 하트) 또 보자~~

    • 2021-01-12 09:04

      새해가 되어버린 이제야 선생님 댓글에 답장합니다..!
      저도 아무튼, 읽기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지만 끝나고 난 지금은 바쁘든 심심하든 '아무튼' 책으로 손길이 가게 해주는 힘을 얻게 되어 매우 기쁘고 또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시작을 함께 해주신 물방울 선생님께 큰 감사를 드려요 🙂 앞으로도 많이 봬요!

  • 2020-12-22 20:01

    후기 잘 읽었습니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변화에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보는 준에세이군요.
    수민님과 언제 세미나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래봅니다 🙂

    • 2021-01-12 09:06

      저도 고은님 글 올라올때마다 틈틈히 보고있습니다! 더더욱 함께 세미나할 수 있었으면 생각이 들어요☺ 올해에는 꼭 같이 배울 수 있기를 바래요!

  • 2020-12-24 09:37

    수민, 어제 줌으로 만나게 되어서 진짜 반가왔어요. 계속 보게 되길~~

    • 2021-01-12 09:08

      저도, 늦었지만 줌에서 정말 즐겁고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문탁에 처음 내딛은 발걸음이 따듯해서 앞으로도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에는 직접 뵐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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