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읽기 <프랑켄슈타인> 두번째 시간 후기 - 윤수민

윤수민
2020-11-02 14:37
69

 

2020.10.27.화요일 저녁

윤수민 후기

 

 

아무튼, 읽기의 네 번째 시간이자 <프랑켄슈타인>을 마무리하는 오늘은, 일주일 간의 근황과 책을 다 읽고 나서의 감상을 가볍게 나누며 시작했다.

 

 

감탄과 수식어를 떼고

 

2부는 피조물이 살인이 행하고, 프랑켄슈타인이 그로부터 도망쳐 먼길을 여행하다가 피조물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게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불안감에 휩싸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프랑켄슈타인이지만, 그의 눈으로 본 제네바와 유럽의 전경들은 매우 아름다웠다. 메리 W. 셸리는 자신의 생후 열흘만에 눈을 감은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삶을 글에서 만날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수많은 글 중에서 여행기는 유년시절에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메리 W. 셸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했기에 그의 묘사들이 자유룰 꿈꾸며 마치 그 곳에 서있는 것처럼 살아숨쉬는게 아닐까 싶었다.

 

현대에 와서 메리 W.셸리가 어려서부터 겪어온 수많은 죽음과 혼란들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명작을 만들어내는데에 크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메리 W. 셸리를 '대단한 여자, 그러나 불행한 여자'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사람들은 열여덟 소녀의 머릿속에서 이렇게나 잔인하고 끔찍한 상상들이 탄생하다니 하며 놀라움과 감탄의 탄식을 뱉으며 이 책과 작가를 설명하고는 한다. 그 놀라움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또 나도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러한 반응들을 볼 때면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열여덟/소녀는 어떤 생각을 해야하는 것인가. 바느질? 사랑에 대한 순수한 설렘? 독서? 조신함? (물론 그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전제에 두어야하지만.) 보통 우리는 A는 이래야만 해라고 가둬놓은 틀로만 그의 삶을 바라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여덟살이, 여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던 그냥 그 사람 그자체로만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 놀라움과 쓸데 없이 붙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없는, 대신 메리 W. 셸리 라는 사람이자 작가의 실력에 대한 칭찬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이름을 빼앗기고 너의 이름으로 불려지고

 

사실 프랑켄슈타인은 그를 만든 박사의 이름이지, 피조물의 이름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프랑켄슈타인-괴물이라고 부른다. 책이 출판되고나서 사람들이 계속 피조물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움 또는 불편함이 있어서였을까, 자세한 정황은 알지 못하나 결국은 창조주의 이름이 피조물의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끔찍히도 증오하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그 피조물과 이름을 같이 쓴다는 것. 만약 피조물의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가 창조주가 자신의 노예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불려지는 이 피조물은 성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또한 그 이름의 혼용이 이 책을 읽으며 드는 근본적인 물음 '인간으로 되는 것과 괴물이 되는 것은 어떤 차이일까?' 라는 것에도 이어지는데,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이지만 자신과 다르다고 혐오하고 그의 말을 들으려하지 않고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두 괴물과 이 세상 속 여성의 존재

 

혐오는 괴물을 만든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혐오로 만들어진것은 피조물이 아니었다. 빅터 자신이었다. 피조물 또한 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복수와 상처라는 큰 우물이 그를 살인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둘을 같은 괴물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빅터는 끝까지 프랑켄슈타인을 괴물이라고 칭했다. 어리고 부족했던 날의 실수를 후회하는 순간에만 자신을 탓했지, 이를 제외한 모든 혐오와 증오는 프랑켄슈타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피조물은 그러하지 않았다. 잔혹했으나 그 살인들은 끝까지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는 자신이 괴물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괴로워했다. 그러한 피조물을 단순히 저주하고 미워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빅터가 더 이해되지 않았다.

 

프랑켄슈타인과 피조물은 서로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그 관계는 의지가 아닌 복수였다. 자신의 존재가 타인의 부정으로서 증명된다는 것은 결국 몰락을 뜻한다. 바깥의 적을 두어야만 유지되는 공동체는 실패한 집단에 불과하다. 나는 나로서 증명되어야한다. 여기서 너의 존재는 또 다른 나로서, 동등한 존재로서 교류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라도 서로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관계는 건강하지 못하다.

 

이러한 점에서 피조물이 빅터에게 요구하는 '자신과 같은 여성 피조물'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의 한없이 깊은 외로움을 내가 감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이 책의 여성들은 전부 친절하고 조신한 아내이자 하인이자 아내라는 역할로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 여성들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다. 피조물의 복수가 그들을 죽이기도 하지만 종교와 사회도 그들을 죽인다. (여성으로서가 아닌)인간으로서 보호받지 못하고 한순간에 사라지고 마는 그들의 삶을 보고도, 이러한 세상에서 여성 피조물을 만들어달라고 이야기하는 피조물과 역할로만 존재하는 세상 속의 남성인간인 프랑켄슈타인이 미웠다.

 

 

끝으로 계속해서 이름 없이 '피조물'이라고 불려지는 존재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이름조차 없는 존재는 미워하기도, 좋아하기도 쉽지 않다. 이름을 부를 때에 자연스레 감정이 생겨나기 때문일까. 그 감정과 마음을 부르려면 그 존재만의 고유한 이름이 있어야할텐데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이름이라도 지어줬으면 하는 원망이 프랑켄슈타인에게로 몇번이고 향했다. 그래도 피조물을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로 부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댓글 2
  • 2020-11-02 16:43

    '자신의 존재가 타인의 부정으로서 증명된다는 것은 결국 몰락을 뜻한다. 바깥의 적을 두어야만 유지되는 공동체는 실패한 집단에 불과하다. 나는 나로서 증명되어야한다.'

    책 속에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어쩌면 비인칭 자체로써의 존재를 지칭하는 중립적 용어인 '그'로써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의 존재성은 그 자체로써 표명되는 것이 아닌, 타'인'들에 의해 불리워지는 (주관적 의미에서의)'악'으로써 그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이름'이라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도록 만듭니다.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피조물의 이름이 서로 뒤섞이고, 피조물이 소설 속에서 가질 수 있는 이름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은 분명히 그의 존쟈와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을 것 같네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을 '괴물'의 이름으로 알고, 동시에 그 이름에서 '괴물'이라는 이미지가 생각나갰지만 막상 (저처럼)읽어보면 오히려 프랑켄슈타이보다 '괴물'에게 더 마음이 가지 않을까요?

  • 2020-11-03 09:07

    피조물, 괴물 이런 이름으로 부를 때마다 불편함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창작자와 이름이 혼동되는 이 존재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왜 빅터가 이런 피조물을 만들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아르테 출판사의 책에는 역자 후기가 나왔는데...
    등장하는 여성들을 수동적이라 한 부분을... 조금은 다르게 쓰고 있어요~ (사실 저도 원문을 읽으면서는 수민과 비슷하게 생각했었습니다 )
    같이 읽어보고 이야기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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