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P> 비평의 신(2) - 파이팅 게임 이즈 마이 라이프(FGIML)

송우현
2020-01-08 00:00
232

 

 

 

화요프로젝트(화요P)란? 길드다의 멤버들이 각자 고민하고 있는 지점, 발전시키고 싶은 생각들을 잘 정리해서 각자 달에 한 번씩 화요일에 업로드 합니다. 누군가는 텍스트랩 수업을 위한 강의안을 쓰고, 누군가는 길드다 이슈를 발전시키기 위한 글을 쓰고, 또 누군가는 넘치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훈련을 위한 글을 씁니다. 이를 위해 멤버들은 매주 모여 글쓰기 피드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송우현은 문화 비평에 도전합니다. 비평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는 자신감에 차 있지만 피드백을 받을때마다 무너집니다.

 

 

 

 

파이팅 게임 이즈 마이 라이프(FGIML)

 

 

 

 

Round 1 이런 패배는 인정할 수 없다

 중학교를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집에서 티비를 돌리다가 눈을 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한다. 티비에 나오고 있는 건 어릴 적 삼촌이랑 하던 ‘철권’의 프로경기였다. 분명 매우 어려웠던 게임으로 기억하는데, 더욱 화려해진 그래픽과 프로 선수들의 멋진 콤보는 내 마음을 훔쳐갔다. 수많은 온라인 게임을 접하고도 만족하지 못하던 나에게 그런 충격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나의 격투게임 인생이 시작되었다.

 여태까지 했던 다른 게임들은 학교 끝나고 피시방에서, 집에서 컴퓨터로 손쉽게 할 수 있었지만 ‘철권’은 오직 오락실에서 밖에 하지 못했다. 게다가 오락실은 버스로 20-30분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더욱 더 하고 싶고, 학교에서도 철권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그리고 요즘 게임들은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시스템을 간단히 하고 초보자들을 배려하는 경향이 강한데, ‘철권’은 그런 게 없었다. 그 흔한 튜토리얼도, 공식 메뉴얼도, 느긋하게 혼자서 연습할 시간도 없었다. 쉴 새 없이 오가는 동전과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오직 직접 부딪혀서, 강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공책을 폈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콤보 리스트와 기술표를 받아 적고, 심지어는 레버와 버튼을 그려 가상 시뮬레이션까지 돌렸다.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해하던 사회 선생님이 잊히지 않는다. “↗RK APRP ↓RP [B] →→ ↘LP →RPLP!” 수학 공식은 못 외워도 콤보는 줄줄이 외웠고, 시뮬레이션까지 완벽히 마쳤다. 벌써 티비에 나오던 초고수가 되어있는 것만 같았다. 들뜬 마음으로 학교가 끝나자마자 오락실로 달려가 동전을 넣고, 오락기 건너편에 있는 사람과 대전하였다. 그런데...

 내가 앉은 자리는 2p자리였다. 게임 화면을 기준으로 1p자리는 왼쪽에 서있고, 2p자리는 오른쪽에 서있다. 인터넷에 나온 모든 콤보와 영상들은 1p기준으로 설명이 되어있기 때문에, 나는 1p기준의 콤보만 연습해오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움직임을 1p와는 반대로 해야 하기 때문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결국 평소 실력의 반도 내지 못한 채 패배했고, 당황한 나는 뛰쳐나갔다. 바람을 쐬며 조금 진정한 뒤에 다시 오락실로 들어갔다. 그동안 연습해오던 게 아까워서라도 1p에서 꼭 해보고 싶었다. 1p자리가 나기까지 기다렸는데, 재밌게도 다들 나랑 비슷한지 2p자리는 비교적 한산했지만 1p자리엔 항상 사람들이 붐볐다. 심지어는 1p자리에는 세 명이나 줄을 서있는데, 2p자리엔 사람이 없어서 대전이 일어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면 오락실을 온 의미가 없기에, 나는 2p자리로 향했다. 침착한 마음으로 동전을 넣고, 캐릭터를 고르기 위해 레버를 움직이는데... 레버가 너무 헐렁했다. 조금만 건드려도 휙휙 돌아가서 정확한 입력이 힘들었다. 아까는 왜 눈치를 못 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매정하게 흘러가고, 결국 나는 캐릭터도 잘못 고른 채 게임을 시작했다. 무력하게 1라운드를 내어주고, 게임할 맛이 뚝 떨어진 나는 2라운드의 끝을 보지도 않고 뛰쳐나갔다.

 

Round 2 2p가 내 자리렷다

 작년 초에 길드다 회의에서 내 돈벌이로 삼을 수 있는 컨텐츠에 대해 점검해보았다. 기본적으로 래퍼로서 앨범을 만들어 팔 수 있을 것인데, 나는 그것 말고는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자 문탁샘이 해주신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네가 인문학교사인지 뮤지션인지 헷갈릴 때까지 굴릴 거란다.” 당연히 공부를 열심히 시키겠다는 말이었지만, ‘교사’라는 말에서 또 다른 컨텐츠를 짐작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일반적인 랩 레슨과는 다른, 랩과 인문학을 엮어서 가르치는 ‘랩인문학’이라는 컨텐츠를 구상하게 되었다.

당시 할 수 있겠냐는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은 있었지만, 내가 꿈꿔오던 래퍼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망설여졌다. 한 때 래퍼라 하면 자신의 생각을 음악으로만 표현하고, 오로지 자신의 음악만으로 인정받고 주목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아예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그리고 위와 같은 래퍼로서의 태도를 이야기 하던 수많은 래퍼들이 결국 앨범대신 랩 레슨을 시작하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랩을 가르치는 행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들이 있던 것이다. 내가 항상 듣고 좋아하던 래퍼는 그렇지 않았다. 계속해서 자신만의 좋은 음악을 만들다보면 레슨이나 미디어의 큰 노출 없이도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노래했고, 그의 삶이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가 그런 굳건한 태도를 유지한다고 해서 정말 벌어먹을 수 있을까? 음악을 계속 내기만하면 인정받을 수 있는 실력인지를 떠나서 현재 음악시장의 구조가 그럴 수 있는 구조 이느냐는 말이다. 언더그라운드씬이 활성화되어있고, 래퍼들의 수도 적었던 예전의 구조와 현재의 구조는 차이가 크다. 너도나도 래퍼가 되겠다며 앨범을 내고, 갖가지 방법으로 자신을 노출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중에서도 주목받고 음악으로만 벌어먹고 살아가는 래퍼의 수는 극소수가 되어버린다. 힙합이 떠오른 만큼 돈을 버는 사람들은 크게 벌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의 숫자와 벌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나 또한 현실적으로 내가 당장, 그리고 앞으로도 벌어먹고 살려면, 일반적인 래퍼와는 다른 삶을 모색해야하는 부분이었기에, 내려야하는 결정이었다. 다른 래퍼들과 차별화되는 나의 특이점은 인문학 공부였기에, 인문학과 랩을 연결시켜 가르치는 컨텐츠를 잘 만들고, 앨범 또한 인문학공부의 맥락을 잘 녹여내서 만드는 게 나의 자립을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방법이었다. 나의 ‘랩인문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Round 3 You lose?

 시간이 흘러 여름이 다가오자 일은 실제로 진행되었다. 내가 첫 번째로 해야 할일은 수업의 컨셉과 주제, 내용을 채운 뒤 그것을 토대로 강의안을 만들고, 모집 글을 올리는 것이었다. “잠시만, 모집 글이요?” 강의안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홍보와 모집에 대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던 것이었다. 나는 당황했고, 그때부터 일종의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이걸로 돈을 받고 하는 일이구나!’ 자신감에 차서 준비한 커리큘럼과 강의안이었지만, 다시 살펴보니 중간중간 허점이 많았고, 강의안이 아예 나오지도 않은 주차도 있었다. 그런데 벌써 홍보를 하고, 돈 받고 모집을 한다고? 오우 쉣... 마치 완성되지도 않은 앨범을 돈 받고 파는 기분이었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홍보했어야 할 내가 소극적이게 되고, 부담감과 압박감에 강의안은 더욱 더 써지지 않았다.

 삐걱대던 랩인문학은 결국 홍보과정에서 문제가 터졌다. 티슈오피스(이하 티슈)와 함께 포스터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갈등까지 빚게 된 것이다. 티슈오피스 측은 내 강의안에 대해 왜 ‘랩-인문학’인지, 어떤 요소가 인문학적 요소인지 잘 모르겠다고 피드백을 주었다. 나는 제대로 반박할 수 없었다. 내가 봐도 인문학적 요소는 매우 적었다. 오히려 내 강의안을 봐준 명식이 형이 강의안을 더 자세하게 해석하여 티슈를 설득했다. 다행히 어찌저찌 넘어갔고 티슈 측에서 포스터를 만들어 보냈는데, 이번엔 길드다 측에서 받아들이기 난감한 디자인이라며 갈등을 빚었다. 내가 내 강의안에 대한 확신과 높은 이해도가 있다면, 피드백에 대해서도, 디자인에 대해서도 더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 없어도 했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당황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가면서 결국 포스터를 안 쓰는 것으로 진행이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길드다와 티슈의 협업방식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면서 서로 피곤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모든 문제와 갈등의 원인이 내 역량의 부족이라고 느껴졌다. 자신감을 잃었고,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결국 나는 개강을 2주정도 남겼을 때, 랩인문학을 못하겠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내 욕망과는 다르게, 해야만 하는 현실상황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경기문화재단의 공모사업으로 지원한 프로젝트였고, 지원받은 돈이 있었다. 정말 만약에 내가 랩인문학을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이 프로그램을 메꿔야만 했다. 다른 맴버들도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결국 내가 계속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Final Round Continue?

 미디어를 통해 봐왔고, 바래왔던 바램과는 다르게 나는 2p가 되었다.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럼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레버의 유격은 오락실마다, 기계마다 달랐고, 패배한 누군가가 오락기에 화풀이를 했는지 버튼이 망가지는 일도 잦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어이없게 져보기도 하고, 운 좋게 고수를 이겨보기도 했다. 랩인문학은 2p가 된 나의 두 번째 도전(처음은 ‘오버띵킹’이었다.)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지만, 현실에선 승리도 패배도 없다. 게임은 화가 날 때면 중간에 뛰쳐나갈 수 있었지만, 랩인문학 중에는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랩인문학은 진행되었고,(다행히도!) 걱정했던 것 치고는 잘 마무리 되었다. 진짜 문제는 탄탄한 강의안이 없고 일을 실제로 진행시키는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는 것. 물론 있으면 좋지만, 없더라도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고, 끝없이 우울해지는 상태에 빠지면서 포기하려고 하는 게 진짜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런 상태인 나를 알아차리고 도와준 동료들 덕분에 나는 랩인문학을 접지 않았고, 부족한 강의안과 커리큘럼이었음에도 잘 따라 와준 친구들 덕분에 무사히 수업을 끝마칠 수 있었다. 오히려 내가 약하거나 감이 부족한 부분들을 확실히 알 수 있었고, 그런 부분을 더욱 신경 쓰게 되었다.

 나는 1p가 아닌 존재로써, 그리고 달라지는 레버와 버튼의 상태 속에서도 바로 설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결국 나는 격투게임으로 동네 짱을 먹었는데, 내 승률은 50프로를 겨우 넘겼다. 지는 것에 연연치 않고 계속 부딪히면서 배우고, 기기 상태를 탓하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했기 때문에 얻어낸 결과였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명확한 승패가 없더라도 잠정적인 평가와 피드백을 통해 내 문제점들을 파악할 수 있고, 계속된 도전으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꿈꾸던 ‘프로 래퍼’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랩과 인문학으로 동네 짱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댓글 1
  • 2020-01-08 14:52

    며칠 전 기린님에게 꿋꿋하게 랩인문학 참여를 권하는 우현을 보면서 감탄했어요.
    거절에 연연치 않고, 계속 부딪치면서, 이렇게 힘을 길러가는군요!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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