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8 청년페어 후기

규혜
2019-12-30 00:52
275

술잔 = CUP CASE ?

탁구공이 오고갔던 탁구대는 금세 술잔들과 정성스레 준비해주신 음식들이 오고가는 식탁으로 바뀌었다. 공연과 운동으로 꺼진 배를 채우느라 식탁 위에 젓가락들은 분주했다. 그 분주함 속에서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처음 만난 이들이 한 데 섞여 느긋하게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연말이라는 시간 그 자체만으로도 대화에는 즐거움과 아쉬움이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오늘이 20대의 마지막 토요일인거 알아?” 연말은 언제나 나이를 떠올리게 하나보다.

“규혜는 30대 됐을 때 기분이 어땠어?” 설렜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뭐야. 왜?” 20대는 방황이었고, 30대는 달려갈 하나의 목표가 생긴 것 같으니까. 이제 더 이상 난 그 방황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세기말적 엑소더스는 이렇게 100년을 가지 않더라도, 10년 단위로 점층되어 들려온다. 그렇게 나이 이야기는 사랑이야기, 공부이야기, 공동체이야기 등등의 여러 이야기들로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아직 깨지 않은 술로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간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어디를 방황했고, 도대체 어디를 달려가고 있다고 대답한 거지?

 

forum not Forum

2019 청년페어의 핵심 키워드는 청년, 공부, 자립이다. 발표에서 키워드라 하면, 테마라 하면 키워드와 테마로 형성된 기존의 담론에서 다뤄지는 공동의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청년‘박람회’라니. 페어라는, 박람회라는 이름은 명확한 자신의 답을 가지고 각자의 ‘니즈’에 맞춰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자리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청년페어는 삶의 질문들에 대해 청년, 공부, 자립이란 대답을 제시하려고 하지 않았다. 길드다는 청년-공부-자립의 배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질문들을 던졌다. 세 개의 테마로 이루어진 질문들과 질문에 질문이 이어지는 박람회였다. 치열했고, 촘촘했고, 분명했다.

  청년 테마에서는 우리가 사용하는 청년이란 단어의 정의에 대한 질문들을 던졌다. 단어의 정의에 대한 질문은 곧 청년이란 정체성이 통용되어지는 과정에 대해 계보학적 질문이었고, 청년이란 단어와 정체성을 통해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공부 테마에서는 공부라는 행위에 대한 질문들을 던졌다. 사회에서 공부라는 행위가 지니는 여러 문맥과 그 문맥에서 발생하는 행위의 의미를 논리적으로 고민했다. 그 논리들은 질서정연했고, 그 질서정연의 마지막에는 ‘모순’이 있었다. 공부는 자본주의 패러다임의 삶에 있어서 다른 행위들과 모순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부를 포기하지 않기 위한 질문들을 던졌다.

  청년과 공부 테마에서 질문들은 세 번째 테마를 향한 여정에 있었다. 길드다가 청년과 공부를 다룬 방식은 자본주의 사회가 그것들을 다룬 방식과 다르다. 길드다는 자본주의 사회가 다룬 것처럼, 이데올로기적으로 청년만을 내세우지도, 맹목적으로 공부의 가치를 치켜세우며 삶의 질문들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 확언하지 않는다. 길드다는 다른 질문들로 이어지는 사고의 여정에 바리케이드를 치지 않는다. 그들은 그 바리케이드를 무너트리며 또 다른 테마를 향해 달려간다. 삶에 있음을 잊지 않는다. 세 번째 테마는 자립이었다. 자립 테마에서 던진 질문들은 마르크스와 들뢰즈, 스피노자, 장자, 공각기동대와 랩 그들이 다녀왔던 밀양, 베트남, 중국을 떠올리게 했다. 그들의 삶이 생생해졌다.

  그들의 삶이 생생해진 것은 그들의 질문이 나의 질문과 만나는 순간에서였다. 청년이란 테마에서 예술가란 테마가 읽혔고, 공부 테마에서 예술이란 테마가 읽혔고, 그 각각의 여정에서 길드다와 나는 자립이란 공통의 장소에서 만났다. 우연이 아니었다. 우연이 아니었기에, 고마웠다.

 

협동 보드게임 <우리는 종종> 예약합니다.

20대의 방황이 세기말적으로 해결된 것처럼 느꼈던 것은 고통마저 즐길 수 있는 행위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자립이란 것을 감각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세 번째 맞이하는 10년을 1년 앞둔 해에 갑작스레 극작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나를 변화시켰다. 첫 해는 너무나 괴로웠고, 우울했고, 어려웠다. 변화된 환경과 달리 신체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선택의 변화는 신체를 변화시키려 했고, 그 변화하려는 신체에서 느껴지는 감각들은 생소했고, 거대했다. 낯선 감정들은 질문들을 찾고 있었다. 그 감정들은 해답이 아닌 분명한 질문들을 필요로 했다. 내가 예술가로서 자립할 수 있는가, 예술은 자립할 수 있는가, 예술은 왜 ‘예술’로서 존재하는가, 나는 왜 나를 예술가로 상상하는가. 내가 그리고 있는 예술가란 어떤 존재인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질문들의 타래들은 그 다음의 분명한 질문으로 변화하길 원하고 있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질문들의 타래들을 그 다음의 분명한 질문으로 만들고 싶다.

  20대는 홀로 설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독립’이란 테마에 갇혀 그 안을 방황했던 것 같다. 독립의 환상은 방 안에 갇혀 문을 스스로 걸어 잠그게 만들었다. 그러니 그 방 안에서 방황만 하게 되었던 게 아닐까. 여기서, 방황은 곧 우울이라든지, 후회라든지, 거부라든지 그런 단정적인 회상에서 비롯된 단어가 아니다. 말 그대로 방향성을 잃었다는 말이다. 밤과 낮, 사방을 분간할 수 없게 만드는 그 진공의 방 안에 있었으니 방향 감각을 상실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유실되었던 방향 감각은 예술과 공부를 통해 조금씩 회복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방향 감각으로 갇혔던 방의 문을 찾았고, 그 문을 열고 나와 바깥의 공기와 빛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바깥이라고 생각하는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또 다시 방향 감각을 유실한 상태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해야 한다. 공부일지, 예술일지 모르는 그 행위를. 그 모를 행위를 하며 나는 자립이란 테마를 달리고 있는 게 아닐까. 물론, 그 어떤 곳에서도, 그 언제든 나 혼자였던 적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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