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P> 공간의 매니저 되기 - 청소를 합시다.

동은
2019-09-17 11:42
80

화요프로젝트(화요P)란? 길드다의 멤버들이 각자 고민하고 있는 지점, 발전시키고 싶은 생각들을 잘 정리해서 각자 달에 한 번씩 화요일에 업로드 합니다. 누군가는 텍스트랩 수업을 위한 강의안을 쓰고, 누군가는 길드다 이슈를 발전시키기 위한 글을 쓰고, 또 누군가는 넘치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훈련을 위한 글을 씁니다. 이를 위해 멤버들은 매주 모여 글쓰기 피드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청소를 합시다

    1.

공간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청소’였다. 매니저 일을 하면서 청소에 대한 생각이 가장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제 청소를 완벽하게 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동안 ‘청소는 기본이다’라는 말을 당위적으로만 생각해왔는데 이제는 청소가 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건 나에게 있어서 엄청난 변화다.

 

     2.

청소는 나와 원체 먼 것이었다. 솔직히 청소에 영 재능이 없다거나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 청소는 공들여 해봤자 금방이라도 다시 어질러지는 무용한 것이었다. 다시 어질러질 거라면 적당히 어지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은가?! 더구나 학교에 다닐 땐 언제나 벌칙처럼 청소당번이 정해졌고 내가 어지른 것도 아닌 것을 자신이 치운다는 인식 때문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처럼 청소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 청소는 곧 귀찮고, 어쩌다 남는 시간에 하는 것이 되었다. 귀찮아지니 무던해졌고, 내 주변이 어떤 상태이든 나에게 익숙해졌다. 지금까지는 이런 것이 그다지 문제가 되는 일은 없었다. 그냥 뒤처리가 부족하고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되는 정도였다. 공간 매니저가 된 뒤에도 이런 생각은 다르지 않았고, 그 때는 청소보다 제 시간에 맞춰 공간에 나오는 것이 더 중요했다.

공간 매니저가 되고 나서 몇 달간 공간을 방치했던 것도 이런 생각에서 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시간에 맞춰서 나와야 한다는 생각만 했을 뿐, 공간에 대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따로 고민하지 않고 지금까지 공간을 사용해 왔던 것처럼 공간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다 고은이가 누군가의 흔적으로 가득한 길드다 공간에 대해 매니저인 나를 질책했던 일이 있었다. 내가 밤을 새고 챙겨가기 귀찮아 두고 간 물건들, 집 갈 때 씻지 않고 놓고 간 물건들, 누군가의 택배박스, 챙기지 못한 길쌈방 작업들, 지원오빠의 작업들... 이런 흔적들로 가득한 공간에 대해서 도대체 공간 매니저라는 사람이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고은이의 질책을 받은 다음날 공간에 출근한 뒤 생각했다 ‘이제는 청소까지 해야 하는군...’ 매일 아침 나오는 것도 벅찼던 나에게 마치 형벌같은게 하나 더 얹어졌다. 나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 공간 매니저의 역할이 주어진 것은 아겠지만 이런 마음으로 하는 청소가 마냥 기껍지 않았다. 그렇게 기껍지 않은 누가 시킨 듯 청소하며 대충 눈에 띄지 않게 물건을 치우고 지적받은 개인의 흔적을 없애는 것으로 청소는 시작됐다.

 

    3.

그런데 이렇게 기껍지 않던 청소에 마음을 풀게 된 건 청소가 이 공간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는 것을 느끼게 된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그동안 나는 그동안 길드다 공간을 내 용건을 보는 곳으로만 생각했다. 이 공간을 내 개인공간에 갖는 정도의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열심히 청소한 뒤에는 다른 사람들이 오고 가며 어질러진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청소가 쓰러질 모래성을 매일매일 정비하는 느낌이었다. 매일 억지로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새로 어질러진 것을 보며 누가 내 치즈를 건드렸냐는 듯 날선 반응을 했다. ‘이거 누구야?’ 그리고 정작 그렇게 질문을 하고나면 어색해졌다. 이 공간을 신경 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이런 반응을 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이 공간이 한층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누군가가 어지르고 가더라도 그게 실제로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의 흔적이 남는 것은 누군가가 여기에서 활동을 했다는 의미였고 그게 거슬리는 만큼 내가 이 공간을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신기하게도 청소는 이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 수 있게 했다. 누군가가 밤중에 와서 뭘 먹고 갔군, 오늘 길쌈방에서 어떤 작업을 했구나, 다른 곳에서 회의를 하고 갔네... 무슨 싸이코메트리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 느낄지도 모르지만 마치 무슨 싸이코메트리처럼 공간에 왔다 가면 누군가가 와서 뭘 하고 갔는지를 대충 느낄 수 있게 됐다. 내가 공간에 관심을 기울이는 만큼, 알 수 있는 사실이 많아졌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제는 길드다 공간을 이전에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흔적이 남아있는 공간처럼 쓸 수 없었다. 정확히 이전과 같지 않다는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가장 가까운 말이 있다면 나의 손이 구석구석 닿을수록 내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무관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4.

지금도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공간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갖는다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것 같다. 내 방도 어떻게 꾸밀지, 어떤 물건을 놓을지도 어려운데 함께 쓰는 공간이라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과의 의견을 맞춰가는 것은 번거로우니 ‘공간을 구성하라!’고 할 때 상상력이 부족한 나는 고작 어떻게 인테리어를 바꿔볼까 생각하는 정도다. 어느 정도 청소를 하는 것이 익숙해진 뒤, 이런 한계를 느끼게 된 일이 있었다. <길드다 스토어>를 오픈하면서 이곳에 전시와 판매를 할 수 있는 성격을 부여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 공간을 어떻게 만들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받았다. 고은이의 질책을 받을 때도 했던 생각이지만 나는 공간 매니저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정돈된 공간’을 유지하는 청소 외에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공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공간에 대한 논의는 매니저인 나와 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의 활동이 보일 수 있는 공간, 길드다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길드다 친구들과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거쳐 길드다 스토어의 가개장을 하면서 우리의 활동이 되는 물품들과 활동들의 전시공간과 우리가 읽은 책장, 그리고 개개인의 관심사를 전시해놓는 것으로 공간을 구성했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나는 새롭게 공간을 구성하며 청소를 시작하며 없애려고 했던 개인의 흔적을 다시 가지고 와 적극적으로 개인의 흔적이 반영된 공간을 만들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군가 두고 간 것이 아니라 활동만으로는 알 수 없는 각자의 관심사나 좋아하는 것을 알려주자는 생각이었다. 없애려고 했던 것을 다시 만들어보자는 말이 웃기기도 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활동을 보여주는 방법이란 이렇게 각자의 흔적을 남기는 방법뿐이었다. 고은이에게 처음 질책을 받을 때도 그랬지만 나는 공간을 구성하는 능력이 없는 것 같았다. 여전히 내가 하고 있는 건 청소정도 뿐이니 말이다. 그나마 공간 매니저로서 내가 가장 확실히 하는 건 청소였다. 공간 매니저라는데, 이런 정도밖에 안되니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난 길드다의 청소부인가?’ 물론 청소만이 매니저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이제는 청소 말고도 다른 고민을 해야 한다.

 

    5.

나는 어쩌다 매니저가 된 걸까. 사실 내가 공간 매니저가 된 것에는 작년의 여러 결들이 있다. 약속의 시간을 지키지 못한 것은 그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여러 일들에 영향을 주었고, 함께 진행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함께 일하는 친구들을 지치게 만들었고, 매니저를 하게 된 것은 길드다 회의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내가 하게 된 일이었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청소에 대한 인상들 때문에 청소를 시작할 때만 해도 좌천 같다고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 해야 했다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파지사유는 매니저가 있지만 세미나 원들이 공간을 청소한다. 문탁 2층 공간도 마찬가지다.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공간을 정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길드다는 문탁의 다른 공간과는 다르다. 작년의 길드다 공간은 활동이 있기보다 비어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고, 그 때에도 이 공간에서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나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공간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이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 아닐까.

공간을 구성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여전히 어렵지만 이제는 그동안과 같던 개인적인 흔적이 아니라 공동의 활동으로 이 공간을 표현해나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원래는 글쓰기로 예정되어 있던 것이 아닌 길드다의 <화요일 프로젝트>에 공간에 대한 글을 써보겠다고 했던 것도 이런 고민을 나누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청소가 나에게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인위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이제야 나는 청소가 기본이라는 말을 고리타분한 말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댓글 1
  • 2019-09-19 16:34

    문탁에도 매일 출근해서 청소하고 공간을 지키는 당번이 있었던 적이 있어요.
    세미나들이 돌아가며 청소를 하기까지 시간과 마음을 모으는 과정이 필요했지요.
    같이 공부를 하고, 같이 밥을 먹고, 공간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들이 없었다면
    그건 어렵지 않았을까요.
    독자적 공간을 갖게 된 길드다는 앞으로 어떻게 공간을 유지하고 공간에 마음을 싣는 활동을 하게 될까요?
    길드다 공간 매니저의 역할을 고민하는 동은이를 응원하고 싶어지는 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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