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P> 목공 인문학(1), 삶의 태도로써 목공을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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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0 16:57
438

화요프로젝트(화요P)란? 길드다의 멤버들이 각자 고민하고 있는 지점, 발전시키고 싶은 생각들을 잘 정리해서 각자 달에 한 번씩 화요일에 업로드 합니다. 누군가는 텍스트랩 수업을 위한 강의안을 쓰고, 누군가는 길드다 이슈를 발전시키기 위한 글을 쓰고, 또 누군가는 넘치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훈련을 위한 글을 씁니다. 이를 위해 멤버들은 매주 모여 글쓰기 피드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지원은 텍스트랩 시즌4 목공 인문학의 강의안을 연재합니다.

 

목공 인문학(1)

삶의 태도로써 목공을 한다는 것

 

환상들

목수를 한다고 하면, 이런저런 반응들이 있다. 내가 처음 목공을 시작했을 때 흥미로웠던 것은 대부분의 중년 남성에게 목공이 로망이었다(거나 현재에도 로망이라)는 것이다. 왜? 아마도 그들이 젊은 시절 접했던 미디어(미국 드라마나 영화, 특히 중산층의 garage문화)가 목수에 대한 환상을 가지도록 했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이든 고치고, 만들고, 근육 짱짱. 요즘 친구들이 상상하는 목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조금 더 섬세한 이미지가 덧붙여지지 않았나 싶다. 거친 제작자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디자이너에 더 가까운 이미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목수를 접하기 때문이다.

미디어, 혹은 완성된 결과물만을 봐왔던, 기대에 가득 차서 목공을 배우러 온 사람들을 질리게 만드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다. 한 두 번이지, 이 짓을 계속해야 하나? 싶은 과정들을 먼저 소개한다. ①그림을 그리는 과정, 특히 재단 도면. ②하나하나 표시하고, 나사를 몇 십 개, 몇 백 개씩 박는 과정. ③대패질, 사포질과 칠의 반복. 그렇다. 목공은 사실 이러한 일들의 반복이다. 10시간 목공을 한다고 치면 8시간은 위와 같은 것들의 반복이다.

그렇기에, 난 8주 과정을 통해 목공의 정수 따위를 알려줄 수 없다. 그럴 능력도 없거니와, 그런 건 없다. 우린 8주 동안에 기껏 어설픈 박스 하나를 만들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모두가 목공의 고수가 될 이유가 있나?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난 수업을 이렇게 진행할 생각이다. 우리는 두 조(인원 확정 요망)로 나뉘어 8주간 두 가지의 결과물을 만든다. 나는 수업의 전반부에서 특정 공정에 대한 나의 생각이 담긴 짧은 강의를 진행한다. 후반부는 만드는 일을 하게 될 텐데, 과정은 자유로울 것이다. 필요한 부분에 대해 조언하고, 그 과정에서 목공의 요소들을 부분적으로 다루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이 과정이 목공 그 자체에 대한 이해보다는 지금까지 세상을 봐왔던 방식을 낯설게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집에 있는 가구

목공수업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 방식을 낯설게 할 수 있을까? 난 목공이 취미나 직업 이전에, 세상을 보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단순하게 말하자면 목공을하기 위해선 나무를 알아야하고, 나무를 알면 집 안의 가구들이 달리 보인다. 예컨대 나무는 수축하고 팽창하는, 뒤틀리고 부식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나무를 이용한 모든 가구는 이러한 나무의 성질을 고려하는 공정을 반영하고 있다. 네모 모양의 박스가 같은 결로 돌아가는 것, 테이블 다리와 다리, 의자의 다리와 다리를 연결하는 에이프런apron, 싱크대의 원목문짝 뒤쪽에 붙어있는 바bar와 같은 것들은 단순히 예쁨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나무의 변형을 막거나, 유예하거나 혹은 그러한 성질을 활용해 더욱 튼튼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면, 이상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결이 맞지 않는 박스라거나, 에이프런이 없는 테이블이나 의자, 바가 붙어있지 않은 문짝…. 이러한 것들을 잘 관찰하면,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다른 방식을 발견할 수도 있고, 원목처럼 보였지만, 원목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다. 혹은, 애초에 나무의 성질을 고려하지 않은, 튼튼하지 않은 가구라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다. 보통은 집 안의 가구가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목재에 대한 강의를 듣고 나서 다음 시간에 종종 이렇게 말한다. “집에 나무로 된 가구가 거의 없더군요.” 다른 눈이 생긴 것이다.

다음 스텝은 질문이다. “왜 나무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한마디로 압축해본다면 “비싸서”가 아닐까? 목재는 자르는 만큼 심지 않으면 재생산이 되지 않는 자재다. 그 자체가 가진 결이 드러나기 때문에 등급이 매겨지고, 가구로 쓸 만 한 결을 가진 나무는 당연히 더 비싸진다. 이에 더해 앞서 설명한 것처럼 나무가 가진 그 성질 때문에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공정들[건조와 제재]이 있다. 이러한 공정이 나무를 비싸게 만든다. 목재로 완성된 이후에 가구가 되는 2차 가공의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의 문제가 반복된다. 이러한 공정을 고려할 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목재가 철재나 석재에 비해 뛰어난 가공성을 가졌을 거라 생각됨에도 불구하고 결코 대량생산에 적합한 자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한 조건으로부터 목재는 합판이나 파티컬보드, MDF와 같은 변형이 적은 자재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무의 모양을 한 시트지, 혹은 나무를 얇게 떠서 붙이는 무늬목이 발달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가구가 나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무가 아닌 경우가 많은 것은 이러한 이유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목재에 대한 이해로부터 목재가 아닌 것을 구분하고, 이를 넘어 목재가 아닐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된다. 우리 집을 채우고 있는 것들이 무엇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서 구성되어 왔는지 알게 된다.

한발만 더 들어가 보자. 몇 년 전 MDF에서 라돈이 검출되었다는 뉴스가 떠들썩하게 보도된 바 있다. 그러나 뉴스가 나오기 전에도 난 직관적으로 그것이 우리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자를 때 톱과 마찰하며 열에 의해 발생하는 냄새는 결코 몸에 좋을 리가 없다고 생각되는 냄새다. MDF는 톱밥과 본드가 결합된 판재이다. 앞서 나는 “왜 나무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에 “비싸서”라고 답했다. 우린 그러한 답변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동일한 이유로 우리는 생산비 절감을 중요하고 합리적인 결정이라 여긴다. 그러나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고서도 그것이 용인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비싸서”, 혹은 “싸서”라는 대답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목재에 대한 이해는 목재의 산업구조를 이해하도록 하고 왜 가구가 나무로 만들어질 수 없는지를 이해하도록 돕지만, 의문을 남긴다. 질문은 이렇게 넘어갈 수 있다. “우리 삶 곳곳에 존재하고, 매일 매일 우리 팔이 닿고, 머리를 베고, 앉고, 눕고, 기대는 가구를 만드는 데에 제일의 가치가 생산비인가?” “비싸서”라는 대답은 우리가 우리 삶의 문제들을 경제적인 방식으로 파악하는데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지, 얼마나 우리가 가격 외의 가치들을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것을 조금 더 밀어붙여보자면 나는 어쩌면 목재가 놓인 사회적 상황이 자본주의 하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이 놓인 사회적 상황과 거의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목재에 대한 이해는 세상을 보는 방식이고, 낯설게 하는 방식일 수 있다.

 

크리에이터, 관객,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짜뉴스와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문제)

목공이 세상을 보는 방식, 혹은 태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두 번째 이유는 시대적 특성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선 모두가 창작자가 된다. 유튜브, 브이로그, 인스타그램….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사진작가이자 영상작가이다. 기획자이고 연출자이다. 아마추어와 프로를 구분하는 경계는 흐릿해졌다. 과거에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 개인에게 요구되는 장인적 노력의 크기, 즉 절대시간이 중요했다면, 최근엔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이미 축적되어 있는 공통의 지식, 노하우, 노력이 반영되어, 그러한 절대 시간을 단축한다.

절대 시간의 제한으로 인해 일부만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전문가적 기술과 지식이 많은 이들에게 공유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사진이나 영상 뿐 아니라 스케치업이나 캐드, 일러스트를 익히면 누구나 CNC를 조작할 수 있고, MDF를 사용하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때의 일이지만, 각 지역에 생긴 창조경제혁신센터에는 무료로 사용가능한 CNC와 3D프린터가 있다! 더 이상 목공이, 만들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모든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질수록, 만드는 행위가 쉬워질수록, 지식이 축적되는 과정에서 무엇이 생략되었는지, 어떤 고민들이 있었는지를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사진이나 영상의 제작, 송출이 쉬워지면서 발생한 사회적 문제의 하나로 몰래카메라 범죄나 가짜뉴스와 같은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것이 생산을 위해 매체를 사용하는 기술수준은 뛰어나지만, 매체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이나 해석은 부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윤리적 질문들,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던질 수밖에 없었을 윤리적 질문들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윤리적 질문이 생략된 채 쉽게 만들어지는 수많은 '무언가들'은 부정적인 효과를 지닐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겐 돈이 된다. 독일의 비평가이자 영상 작가인 히토 슈타이얼은 현대의 미술관을 공장이라 주장하며 우리의 삶 전반이 무급-노동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미술관이라는 공장에서는 무언가가 지속적으로 생산된다. 설치, 구상, 의논, 관리, 상승 가치에 대한 내기, 관계망 형성…. 미술관 공간은 공장이자 슈퍼마켓이고, 도박장이며, 청소부 아줌마와 휴대폰 영상 블로거가 동등하게 그 배양 업무를 수행하는 숭배의 공간이다. …이제 ‘관람하기란 곧 노동하기’인 것이다. 이런 유형의 생산은 공업적 생산보다 더 집약적이다. 감각은 생산에 동원되고, 매체는 관객의 미적 능력과 상상적 수행을 자본화한다.(히토 슈타이얼, 「미술관은 공장인가?」)”

현대미술은 관객의 참여를 필수적 지위로 격상시키고, 해석이 미술의 완성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관객을 무급-노동자로 만든다. 나아가 이러한 메커니즘은 미술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우리가 들고 다니는 스마트 폰을 통해, 특히 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모두를 관람자로 만들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 앞선 논의와 마찬가지로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해석이 곧 제작이라는 점은 생각해볼만 하다. 히토 슈타이얼이 그것을 창작 대신 ‘노동’이라 표현한 것은[노동은 능동적이기보다 수동적인, 잉여를 생산하지만 그것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해석에 대한 의지가 없을 때, 우리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월급을 위해 꾸역꾸역 하듯 그것을 수행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동적 관람자가 될 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본을 생산한다.―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참여자의 열성적 무급-노동으로 배를 불린다!

파업이 불가능한 무급-노동의 지대. 여기선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것이 저항이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생산하는 것! 그것이 유일한 출구이고 저항일 것이다. 능동적인 해석자가 되어야한다. 그리고 해석의 능력이란 결과물 위주인 사회에서 만들기의 구체적인 과정들을 아는 것, 나아가 윤리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왜 나무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로부터 시작해보자.

나는 앞으로의 수업에서 목공, 즉 나무로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갈등상황들을 보여줄 생각이다. 만드는 행위에 결여되어선 안 될 이러한 윤리적 고민은, 다시 강조하자면 목공에 특정된다기보다 보편적이다. 이는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사진과 영상을 찍고 송출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모두가 제작자인 시대이기에 목공에 필요한 윤리를 고민하는 일은 자기 삶을 돌아보고 삶의 태도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 될 것이다.

짧다면 짧고, 기다면 길 8주간, 함께 ‘만드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작으나마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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