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이성비판> 강독 B판 서문1~5

요요
2020-10-28 00:14
403

 지난 주에 B판 서문의 5장까지 읽었다. B판 서문은 A판 서문과 많은 부분에서 겹치는 느낌이었다. '오늘 세미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수월하겠구나', 내심 기대가 컸다. 그런데 웬걸? 진도가 팍팍 나가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평소 중간 중간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서 우리를 헷갈리게 하던 문탁이 결석한 대신 여울아의 활약이 컸다. 이 날, 여울아는 “이젠 뭔가 좀 알겠다.” “이렇게 잘 읽히는 걸 보니 칸트의 문장력이 좋은 것 같다.” 등과 같은 평소와 전혀 다른 분위기로 세미나를 주도했고, 적극적으로 읽는 단락마다 핵심을 체크했다. 그러다 보니 “그렇다, 아니다” 등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자연히 모두 말이 많아질 수밖에.^^

아렘샘도 한 몫 했다.  “경험적 인식은 보편성과 필연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좋다! 동의한다. 그 다음이 문제다. 칸트는 이렇게 논리를 전개한다. 그렇다면 보편성과 필연성을 어디에서 구해야 하겠는가? 경험적 인식이 아니니 선험적 인식이다, 라고. 여기에 동의해야 하는지 아닌지 아직 판단을 유보한다.” 그간 다섯 번의 세미나를 하는 동안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주제인 칸트의 보편성과 필연성이 이 날도 여지없이 토론주제의 하나로 떠올랐다.

 

보편성과 필연성에 대하여

 우리의 모든 인식은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 경험이란 지성이 감각적 인상이라는 원재료를 가공하여 산출한 산물이다. 그러나 설령 우리의 인식이 경험과 함께 시작한다 하더라도(경험적 인식) 우리의 인식 모두가 경험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경험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 조건, 근거가 우리 안에 있어야만 한다. 그것은 어떤 경험으로부터도 독립적으로 생긴 것이라는 의미에서 선험적 인식이다. 선험이란 경험에 앞선다는 의미이지만 시간적으로 앞선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그런데 경험이란 “우리에게 어떤 것이 그러그러하다는 것은 가르쳐주지만 그것이 그렇지 않을 수 없음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물체를 던지면 낙하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경험은 물체가 왜 낙하하지 않을 수 없는지 그 필연성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또 “경험은 귀납에 의거하여 오직 가정된 비교적인 보편성만을 준다.” ‘영희는 죽는다. 철수도 죽는다. 그러니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이것은 가정된 보편성일 뿐이다. 경험으로는 결코 단 하나의 예외도 없는 보편적 판단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

 앞서 아렘샘의 정리 도식에서 보았다시피 칸트는 경험이 필연성과 보편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인식하는 필연성과 보편성이 어디로부터 왔겠냐고 묻는다. 빙고! 그것은 선험적 인식에서 왔다. 내가 이해하는 한에서는, 선험적 인식은 지식의 내용이 아니다. 그것은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인식의 형식이다. 그러므로 보편성과 필연성은 (객관적으로) 경험을 아무리 쌓아도 얻을 수 없다. 그것은 선험적 인식 안에서, 우리의 주관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칸트의 인식론은 관념론의 계열.)

 

보편성과 필연성을 제공하는 선험적 종합판단에 대하여

 판단은 주어와 술어의 구조를 갖는다. 판단에는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이 있다. 분석판단은 주어 안에 술어가 함축된 것을 가리킨다. 이 판단은 경험에 기댈 필요가 없이 연역을 통해 도출된다. 분석판단은 당연히 보편성과 필연성을 갖는다. 어떤 분석판단이 참이라면 그것과 모순된 판단은 거짓이 된다. 그러나 분석판단은 지식의 확장을 가져오지 않으므로 제쳐두자.

 지식의 확장을 가져오는 판단은 종합판단이다. 일단 경험에 의한 판단은 모두 종합판단이다. 그런데 경험이라는 보조수단을 필요로 하지 않는 종합판단이 있을까? 있다. 바로 선험적 종합판단이다. 선험적 종합판단을 이해하려면 칸트가 참된 지식의 모델로 삼았던 수학과 자연과학(물리학)을 살펴보면 된다.

 

1) 수학의 판단은 종합적이다

 칸트는 수학의 판단들은 모두 종합적이라고 말한다. 먼저 5+7=12의 예가 나온다. 5+7이라는 주어 안에는 12라는 술어가 없다. 5+7은 두 수를 더한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수 5를 취한 다음, 7이라는 개념을 넘어 직관으로서 손가락(혹은 점이어도 좋다)을 보조로 취하여 우리는 12를 얻을 수 있다. 직관을 보조로 취하지 않고 개념의 분석만으로는 결코 12를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5+7=12는 분석판단이 아니라 종합판단이다.

 ‘직선은 두 점 사이의 가장 짧은 선이다’라는 명제 역시 종합판단이다. 직선은 곧다는 질을 표시할 뿐 그 안에는 어떤 양도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역시 (순수)직관이 보조로 취해져야만 하며 그것을 매개로 해서만 종합이 가능하다. 수학과 기하학의 명제는 모두 경험과 연관된 종합판단이다. 그러나 이 판단들의 필연성과 보편성은 귀납적인 경험이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칸트는 수학의 종합판단을 선험적 종합판단이라고 부른다. 산술과 기하학의 선험적 종합의 성질은 감성적 직관에 의해 직접적으로 제공된다.

 

→ 다시 정리하다 보니 직관을 보조로 취한다는 것의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직관은 초월적 감성학에서 말하는 ‘선험적 직관’으로 이해해야 한다.

 

“기하학은 공간의 속성들을 종합적으로 그리고 그것도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학문이다. 공간에 대한 그러한 인식이 가능하려면 도대체 공간표상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근원적으로 직관이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순전한 개념으로부터는 그 개념을 넘어서는 어떤 명제도 도출되지 않는데 기하학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니 말이다. 그러나 이 직관은 선험적이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 대상에 대한 모든 지각에 앞서 우리 안에서 만나야 한다. 그러니까 그것은 순수한, 경험적이 아닌 직관이어야만 한다.”(246쪽)

 

2) 자연과학은 원리로서 선험적 종합판단을 자기 안에 포함하고 있다

‘물체세계의 모든 변화에서 물질의 양은 불변이다(질량불변)’를 생각해 보자. 이 명제는 귀납적 경험으로도 개념분석으로도 얻을 수 없다. 물질이라는 개념 안에는 불변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질량불변이라는 명제는 필연적이고 종합적이다. 우리는 물질이라는 개념 안에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선험적으로 거기에 덧붙여 생각하기 위해 그 개념 너머로 나아간다.

 

3) 형이상학에는 선험적 종합인식들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형이상학의 과제는 개념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선험적 인식을 확장해 가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주어진 개념을 넘어 나아가려 한다. ‘세계는 하나의 제일의 시초를 가져야 한다’는 명제를 보자. 세계라는 개념을 아무리 분석해서 그 속에는 제일원인이 없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은 그것의 목적 상 선험적 종합명제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하여 칸트는 이성에 의한 이론적 학문들에는 어떤 것이든 선험적 종합판단이 원리로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순수이성비판>>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그것은 ‘선험적 종합판단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댓글 3
  • 2020-10-29 12:38

    지난 시간에 몇 가지 생각해오기로 했어요.
    1. 수학에서 직관을 현시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요요님이 어느 정도 후기에서 설명을 해주셨는데, 다른 질문은 없나요?
    2. 227p.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주어진 개념에다 무엇을 덧붙여 생각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그 개념 안에서 비록 단지 애매하게일망정 무엇을 생각하는가이다.
    =>이 문장에 대한 영문판 체크 및 의미에 대해 더 얘기해보기로 했지요.
    뒷 문장(여기서~)을 저는 <그 주어진 개념A에 필연적으로 그 개념 밖에서 덧붙여야 할 직관을 매개로 술어 B를 인식(확장)해야 한다...>고 정리했어요.
    그렇다면 칸트는 무엇을 문제라고 했는가. 주어진 개념A 밖에서 술어B를 덧붙여 생각해야 하는데, 저 개념A안에서 술어B를 생각할 때의 문제 아닐까요?

    • 2020-10-29 12:55

      2번 관련해서는 229p 형이상학이 그토록 불확실성과 모순들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이 과제를 ... 분석판단과 종합 판단의 구별조차도... 못했던 데에 있다...

    • 2020-10-29 17:37

      1번에 대해 요요샘이 말씀하신 내용 "여기서 직관은 초월적 감성학에서 말하는 ‘선험적 직관’으로 이해해야 한다."에 동의해요. 기억을 더듬어보면 7에서 다섯 개의 점을 더해나가는 것은 시간 개념 덕분에 가능한 것이고, 직선의 길이를 생각하는 것은 공간 개념 덕분에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을 들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숫자를 세는 것 자체가 종소리를 듣듯 시간의 흐름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던.

      2번의 그 문제적인 문장에 대해서는... 영문판을 봐도 뾰족하게 다른 건 모르겠어요. 어떻게든 억지스럽게라도(?) 이해해보려고 하면(ㅎㅎ) 이 문단을 여는 첫 문장이 "기하학자들[의].....몇몇 원칙들은........실제로 분석적"이라고 했으니 그 말이 논의의 초점이라고 여겨서 문제는 "무엇을 덧붙여 생각하느냐(종합 명제)"가 아닌 "그 개념 안에서... 무엇을 생각하느냐(분석 명제)"라고 쓴 것일까.. 정도로 생각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물론 모두 아시다시피 이 문장의 앞뒤에서 칸트는 시종일관 순수 수학과 기하학이 종합적임을 강조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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