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첫세미나 후기

새털
2020-08-09 18:23
542

카프카 읽기 시작합니다

 

  8월 6일 목요일 오후 3시 30분 파지사유에서 <카프카 읽기> 세미나 첫 시간을 가졌다. 새털, 느티나무, 블랙커피, 정군, 산책이 세미나공지를 보고 신청한다고 손을 들었고, 이날 처음 파지사유에 온 채소가 합류했다. 그리고 들뢰즈의 <카프카>강좌를 듣고 있어, 시간이 되는 2주 동안이라도 카프카를 읽고 싶다고 당근이 왔다.

 

  처음 2주 동안 못온다고 알렸던 정군을 빼고 여섯 사람이 카프카라는 '지옥'의 입구에서 난감해하는 얼굴로 마주앉았다. "아....진짜 안 읽히고......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누구의 입에서 나온 소린지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는 충분히 공감했다. "맞아! 맞아!" 아마도 우리들 모두 '카프카'라는 전설적인 이름을 떠올리며 언젠가는 한 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었더니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에 다들 좀 쫄았던 것 같다. 도대체 뭐가 좋다는 거지? 왜 카프카를 위대한 작가라고 하는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미나의 텍스트였던 <소송>에 대해 이야기가 시작되자, 세미나는 묘한 활기를 띠었다. 왜 여성인물들을 성적 대상화하고 성폭력을 일삼는가? 당대 작가들은 여성을 이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는가? 그런데 이 소설에서 남자들은 모두 조폭세계의 똘마니들처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모르거나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주인공 카는 여자들에게 도움을 받으려 요청하고, 그녀들과 긴 대화를 나눈다. 남자들은 알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는 일들에 대해 여자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숙집 주인, 하숙집 동거인 뷔르스트너 양, 예심 재판장 정리의 부인, 변호사 사무실의 간병인 레니까지 카가 자신의 사건을 풀어가는 데 필요한 정보를 준다. 왜 여자들은 이렇게 말이 많고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것일까? 

 

  나는 공간의 설정이 너무 새로웠다. 카가 찾아간 예심 재판장이 슬럼가의 다락방에 위치해 있고, 다락방의 문을 여는 순간 넓은 재판장이 펼쳐진다. 의외의 장소에 의외의 방식으로 공간이 펼쳐지면서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지만, 그래서 그게 무슨 의미일지 더 골똘히 생각해보게 한다. 카가 근무하는 은행의 창고에서 감시원들의 처벌이 일어나고, 공기가 너무 희박해서 사무실이 있을 수 없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일한다. 그러니 산소부족으로 쓰러질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카가 계단을 올라가고 미로와 같은 복도를 통과하고 어떤 문 앞에 서게 될 때, 앞으로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엄청 궁금해진다. 뭐든 우리가 예측한 상황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현재 은행원 카는 어느 날 아침 체포된다. 무슨 이유인지 알려주지는 않고 체포되었다는 사실만 통고받는다. 은행 근무도 그대로 하고 있다. 카는 무엇인가 착오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그가 자신과 관련된 소송을 해결하기 위해 일을 진행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법정은 엄격함이나 권위가 느껴지지 않는 다락방에 있고, 예심판사들이 보고 있는 책들은 춘화들이 가득하다. 이 일을 담당하고 있는 남자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 카를 데려온다, 감시한다 같은 일만 할 뿐 일의 자초지종을 알지 못한다. 권력이 작동되고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작동되고, 오작동되고 있어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이 더 힘들어 보이는 난감함을 예상하게 한다. 

 

  이런 난감함은 우리도 일상에서 경험한다. 콜센터에 전화해서 번호 입력이 한 번 잘못되면 똑같은 멘트의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전화를 끊게 된다. 누군가는 홈쇼핑으로 물건을 사고 그것을 환불받는 과정에서 자신이 실체가 없는 회사를 상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들었다고 했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매뉴얼대로 작동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 않아서 오류가 발생하는 것을 간혹 본다. 이런 시스템을 불신해야 할까? 신뢰해야 할까?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카프카가 '현대적 소외'를 다루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물론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다. 누군가 혼자 읽을 땐 재미 없었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재미 있어졌다고 했다. 맞다!!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재미있을까? 모르겠다. 암튼 우리는 카프카 읽기를 시작했다^^

 

 

 

 

  세미나 전에 잠시 읽어본 <카프카, 프라하의 이방인>에는 카프카가 '왕립 근로자 상해보험회사'에서 퇴직때까지 근무했다고 밝히고 있다. 오늘날로 보면 '산재공단'이나 '근로자복지공단'과 같은 공기업이다. 

 

"카프카가 하는 일의 하나는 이런 공장들을 위험 등급으로 나누는 일이었다. 즉 노동자들의 실재 위험이 보험회사에 와서 진술하는 위험과 일치하는지 아닌지 점검하는 것이었다. 갈등이 저절로 발생했다. 여기서 카프카는 거의 살인적인 산업 시스템을 구체적으로 통찰할 수 있었다." (120쪽)

 

  나는 카프카가 사회에 대한 관심 없이 고립되고 단절된 생활을 했을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법대를 나와 보험회사에서 법률관련 일을 했고, 당시 유행하던 아나키즘이나 사회이론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자신이 살아가는 곳에 대한 관심 없이 작가가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인데, 나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카프카는 세상을 바라보니 이해되지 못하는 것이 많아 글을 쓰게 되었으리라. 그가 느낀 '낯섦'을 우리에게도 '낯섦'의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카프카 작품의 한 경향인 것 같다.

 

"아버지는 예를 들자면 체코 사람을 욕하고 그다음에는 독일 사람, 또 그다음에는 유대인을 욕하셨습니다. 그것도 골라서만이 아니라 아무 관점에서나요. 그리하여 마침내 욕을 먹지 않는 사람은 아버지 자신밖에는 아무도 없었지요. 아버지는 저에게 있어서는, 그 권리가 사유가 아니라 인물에 바탕을 둔 모든 폭군들이 가지는 수수께끼 같은 점을 지니셨습니다. "(39쪽)

 

  우리도 카프카처럼 수수께끼를 느꼈던 적이 있는데, 지금은 카프카의 아버지와 같은 어른이 되어 있는 것 같아 두렵다!!!

 

  다음주에는 <소송> 끝까지 읽습니다~ 우리 함께 두려움을 관찰해봐요!

  오늘 처음 오신 채소님 반갑습니다! 7월에 이어 8월에도 같이 공부하게 된 산책님도 반가워요^^

 

 

댓글 4
  • 2020-08-10 10:04

    제가 원래 이번주까지 빠질 예정이었는데!?, 이번주부터 갈 수 있게 되었답니다. ㅎㅎㅎㅎ(이게 기뻐할 일이 맞겠죠?;;)
    저는 120쪽까지 읽으면서 가장 크게 인상적으로 느낀 바는, '정말이지 이거슨 정답과 전제가 없는 소설이구나'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카프카 자신도 '카'가 어떤 이유로 기소되었는지 모른채 쓰고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말하자면 철저히 '내재적'인 이야기랄까요.
    들뢰즈/가타리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점 때문에 들뢰즈/가타리가 카프카를 읽으며 '아싸 가오리'를 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도 들었습니다. ㅋㅋㅋ

    • 2020-08-10 11:41

      와! 이번주엔 오는구나!! 들뢰즈의 <카프카>을 읽으며 작품을 읽으니 들뢰즈적으로 '보이는' 것들의 힘이 강하네요^^ 뭐 암튼 카프카와 만나봅시다~

  • 2020-08-11 01:11

    간만에 한 권의 소설을 쪼개서 읽고 세미나까지 하니 재미있었습니다. 지금 뒷 부분 읽고 있는데...어째 120쪽보다 더 안 읽히는 게 저만의 문제는 아니길...두 번째 세미나야 말로 필.참이 요구되는 부분인 듯 한데 빠지게 되어 아쉽네요. 후기로 대리만족하렵니다^^

  • 2020-08-2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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