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탄생> 2회차 후기

동은
2020-03-17 01:18
512

 

계속해서 <한자의 탄생> 진도가 조금씩 나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탕누어가 많은 이야기를 꾹꾹 눌러쓴 탓일 겁니다. ...라고 하지만 사실 제가 내용을 모두 장악하며 읽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다 아시죠...? 여울아쌤 덕에 공부를 짧지만 (깊게는 아닌 듯한) 진하게 하는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본격적으로 후기를 적기 전에 지난 후기에서 좀 논란이 있었던 갑골문이 새겨진 거북‘딱지’는 배딱지냐 등딱지냐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일단 결론부터 얘기해보자면 글자가 새겨진 곳은 ‘배딱지’가 맞다고 합니다. 거북의 배딱지에 갑골문이 새겨진 것은 점을 치는 ‘점복’이라는 행위와 관련이 있습니다. 과거 사람들에게는 거북의 배딱지에 있는 주름이 亞모양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이 것이 중요한 이유는 亞가 우주의 중심을 의미하는 한자이기 때문입니다. 거북의 등은 반구형으로 하늘을 나타내고, 편평한 배딱지는 대지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거기에 거북의 배딱지에는 亞의 형상이 있었으니 얼마나 신성히 여겨졌을까요. 거북은 예로부터 장수로 인해 영물로 여겨졌고 중국의 신화에도 하늘을 떠받치는 동물로 등장한다고 합니다. 이런 영물로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들을 하늘에 묻는 신탁의 도구로 채택 된 겁니다. (점 치는 방법은 글씨를 새긴 껍질을 불에 굽는다고 하더군요.) 갑골문은 거북 배 외에도 소 뼈에도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소 뼈로 점을 칠 때는 ‘복골’이라고부르고 동북지역에서 주로 발견된다고 하네요. 구멍을 뚫어놓은 것과 글자가 새겨진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점복 형태는 한국과 일본에서도 발견된다고 합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멧돼지와 사슴뼈를 주로 사용했다고 해요)

 

 

갑골문과 복골

 

 

  <한자의 탄생>은 5장까지 <육서>를 바탕으로 글자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설명합니다. 저번 후기에도 언급한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신석기 시대의 모순’에서는 토기에서 발견된 부호와 갑골문 사이의 1000년에 대한 비밀을 파헤칩니다. 결론적으로 문자가 만들어지고 짧은 메시지를 담은 부호들이 짧은 시간 안에 문자가 된 경위에는 지난 시간에 ‘형성자’로 빠른 엔진이 가동해 가능했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이번 시간에 저는 상형자에 대한 내용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상형자는 ‘기호’가 ‘문자’로 받아들여지는 경계에 있습니다. 과거 사람들이 단순히 눈 앞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유희적인 이유로 기록을 남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제가 읽은 다른 책에서는 유희적인 이유라고도 하지만) 탕누어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 시대에 무언가를 남기려는 행위는 굉장히 도전적이고 역경을 이겨야지만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역경을 견디고 남겨진 기록들은 후대로 이어져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사유의 기반이 됩니다. 그러니까 탕누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글자는 필요에 의해서 발명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들이 켜켜히 쌓이면서 문자가 될 준비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언제부터 그림은, 단순한 표기는, 기록들은 ‘문자’가 될 수 있던 걸까요? 즉, 언제부터 기호가 실체를 가리키는 역할을 갖게 된 것일까요? 그 키워드는 ‘기억’에 달려있습니다. 문자는 읽는 이에게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주문’과 같습니다. 기호를 보고 기억을 떠올리고 내가 떠올린 기억과 상대가 떠올린 기억의 내용이 비슷하게 된다면 바로 실체가 문자에 전유된 것입니다. 문자를 보고 실체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때문에 상형자는 첫 눈에 보고도 바로 특징적인 부분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실체의 특성을 담는데 집중했습니다. 소의 문자에는 소 뿔의 특징을, 양의 문자에는 양 뿔의 모양을... 하지만 이런 특징을 포착하는 일은 이전 내용에서 말한 대로 곧 한계가 옵니다. 게다가 문자에 눈으로만 보이는 대상이 아니라 더 고차원적이고 난해하고 복잡한 내용이 담겨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점차 단축적이고 짧은 부호 안에 다양한 의미를 담아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이 때 문자는 기호 안에 더 많은 기억을 축적하기 위해서 문자만의 시스템을 구축해나갔습니다. 공동기억이 쌓이는 만큼 점점 형상은 간화되기 시작한 겁니다. 문자는 아름다운 형상으로 시작되고, 실재로도 글자에 담긴 사람들의 시선이 아름답고 찬란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아주 실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탕누어는 상형자의 정신을 순간을 포착하려고 노력한 인상파 화가의 이야기로 정리합니다. 인상파 화가들은 찰나의 순간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서 기억에 의존해 계속해서 순간을 그려갑니다. 상형자에도 이런 사람들의 노력이 담겨있습니다. 그 대상이 정말 실체와 얼마나 같은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감상과 마음의 울림은 실체와 도상이 얼마나 똑같은지가 아니라 그림(문자)에 담겨있는 사유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고대부터 지녀온 사유가 ‘像型’이라는 말로 포획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 단어마저도 사실 그저 이름을 붙인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지난 시간에 중국이 계속해서 단일국가로 모이게 되는 배경에는 한자의 힘이 있었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여울아쌤과 한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한 걸까? 하는 질문을 했는데 이번 시간에 이런 오랜 시간의 사유가 담겨있는 한자를 계속 사용하는데 문화의 면에 있어 어렵지 않게 녹아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탕누어가 한자는 혁명적이지 않은 문자라고 했는데, 이에 반해서 우리 한글은 아주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원리만으로 이루어진 문자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표의문자인 한자와 다르게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한글은 표음문자여서 언어를 담아내는 문자라는 점이 큰 것 같아요. 하지만 언어의 면에서 여전히 중국문자의 영향을 많이 받고있기 때문에 이렇게 한자에 대한 내용을 알아가는 것이 전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게 또 재미있는 지점인 것 같습니다. 탕누어가 말했듯이 한글은 재빠른 문자에 가까운 것이겠죠.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내용은 바로 전주와 가차에 대한 내용입니다. 보통 전주와 가차는 학교에서 배울 때도 간단하게 내용만 알고 넘어가는 조자의 ‘부록’같은 느낌을 주는데 탕누어는 이 전주와 가차가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한자의 사용이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그동안 전주자는 복잡한 의미들의 중첩이었고, 가차자는 상형자처럼 글자를 보며 상상하기보다는 형태 그대로를 외워야 하는 지루한 한자였습니다. 

  상형자를 설명하며 탕누어는 '살아있는 것은 모두 흔적을 남긴다'라는 말을 합니다. 아무래도 고대부터 켜켜히 쌓여온 사람들의 사유의 흔적이 글자가 된 것을 뜻하는 말이겠죠. 그리고 전주와 가차를 설명하면서는 '하늘 아래 새로운 문자는 없다'고 말하빈다. 그러면서 레비스트로스의 수리공에 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수리공은 수레에 공구를 담고 각종 물건들을 사용할 수 있게 수선해주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수리란 새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때문에 수리공들은 모든 상황에서 대응할 수 있는 공구들을 가지고 다니기보다는 그 때 그 때마다 상황에 맞게 적절히 공구를 선택해서 사용합니다. 어떤 재료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건 언젠가 쓸만한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 때문이지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보관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기존의 한자가 재료라면 수리해야 하는 것은 상황에 맞게 문자를 만들어야 할 때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전주와 가차는 이런 방식으로 한자의 사용을 지속할 수 있는 중요한 공구의 역할을 했습니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이런 과정을 여러번 거친 한자들은 마치 여러 칼들과 부딪친 자국을 가진 도마처럼, 오랫동안 사용한 낡은 가구처럼 세월의 흔적을 가지게 됩니다. 전주로 인해 켜켜히 쌓인 한자의 여러 의미들은 마치 나이테같은 경력을 가지게 되고 원래는 바구니의 의미를 가졌던 문자는 사방을 나타내는 문자로 쓰이게 된 것처럼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으로 한자는 또 다시 확장되고 결국에는 훌쩍 중간을 알기 힘든 도약이 이루어지게 된 겁니다. 

 

  제가 상형자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다른 내용들이 비교적 짧네요. 지사자는 거의 들어가지도 못했지만 언젠가 이후 후기에서 다룰 수도 있지 않을까...요...? ㅋㅋㅋㅋ 상형자의 원리를 조금 더 연구해본다면 수업의 내용에도 담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의 책 내용은 주제, 주제와 관련된 한자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매우 다양한 내용들이 들어있을 것 같아 불안하긴 하지만... 남은 내용들도 계속 읽게되겠죠. 내용이 많다보니 조금 부산스런 후기가 된 것 같지만... 계속 후기 남기겠습니다.

댓글 1
  • 2020-03-17 09:42

    여울아님, 리스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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