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네 번째 시간 후기

2020-11-20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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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책의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아렌트를 통해 처음 들어보고 이전에 구분하여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낯설게 느껴졌던 몇 가지 개념들과 시각이 어느덧 조금씩 익숙해지고, 그럴듯 해지며, 아렌트의 논의에 점차 설득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삶과 세계라는 구분. 아렌트는 생명을 유지하기위해 충족시켜야만하는필연적인 과정을 '삶'이라 부릅니다.  거기에선 재생과 소모가 반복될 뿐, 지속되거나 영속성을 띠는 것이 없습니다. 아렌트는 그런 '삶'을 위한 인간의 활동을 '노동'이라고 부릅니다. 조금 세련되기는 하지만 거기에서는 다른 동물과 별 차이가 없기에 그런 활동 중의 인간은 그저 '노동하는 동물'입니다.  인간은 삶이 아니라 '세계'를 만들면서 비로소 인간이 됩니다. 세계란 삶과는 달리 지속적이고 영속적인 것이 있으며, 그런 세계를 만들어 내는 활동 중의 하나가 이번 시간에 읽었던 '작업'입니다. 다음 시간에 읽을 '행위' 역시 삶이 아니라 인간의 세계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노동하는 인간과 작업하는 인간과 행위하는 인간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저 인간의 활동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그렇게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많은 활동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죠.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세 가지를 모두 해야하지만, 근대 이후의 인간들은 노동위주의 사회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노동을 최고의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고 아렌트는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장을 발제 하면서, 호모파베르의 제작모델이 외부에 있다는 이야기가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내 머릿속에 있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말이죠. 아렌트는 고통이나 만족감 같은 감각들은 분명 내부에 있고 사물화 될 수 없다는 것과 제작의 모델 같은 심적이미지는 간격이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전자는 각자의 삶의 과정이고 노동으로 해결되는 것들이고 후자는 세계 속에서 지속되며 공동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도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논의 중에 플라스틱과 같은 쓰레기는 지속하는 것인데, 이게 인간의 세계를 만든 것인가 아닌가...하는 이야기를 나눠보았죠. 플라스틱이 인간의 세계를 건설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지금은 인간의 세계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고. 아렌트는 지난 시간 <노동> 부분에서 근대 이후에 공론의 영역이 사라져버린 세계를, 자동화되고 기계화되어 유기체처럼 스스로 자라나는 거대한  노동하는 동물로 설명했습니다. 플라스틱은 이 거대 유기체-지속성과 영속적인 세계를 의식하지 못하는 노동하는 유기체의 생산과 소비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근대가 되면서 호모파베르 역시 노동하는 사회 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역시 공론의 영역이 사라진 것과 관련됩니다. 호모파베르의 도구주의는 목적-수단의 연쇄인 근대의 공리주의로 전도되어 노동하는 동물의 다산성에 이바지하게 된 것이죠. 아렌트는 노동하는 동물도 호모파베르도 유용성 자체와 세계의 유의미성에 대해 질문 할 능력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작업>의 마지막 부분은 장인정신이 필요한 예술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아마도 다음 장 <행위>에서는 유용성에 대비되는 예술에서부터 '행위'를 설명해나가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처음부터 아렌트의 논의가 매우 니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번 장에서 칸트의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걸 보니 더욱 더 그런 확신이 듭니다. 인간이 소중하고 인간이 모든 것의 목적이어야 한다는 인간중심주의도 결국 수단-목적의 공리주의의 산물이고, 인간 이외의 모든 것을 대상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비판. 보편적 인간상을 만들고 인간을 하향평준화하는 인간중심주의가 아니라면, 아렌트가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아마도, 니체처럼 전적으로 고유하고 타인과 다름을 표현하는 개인주의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니체와 비판지점이 비슷하니 대안도 비슷할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자기의 고유성을 드러내고 다른 이들과는 구별되는 뛰어남을 열망하고 불멸성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인간세계에 지속성과 영속성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읽어나갈수록 아렌트는 그런 것이 근대에 시작된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가 되살려내야 할 정치이자, 잃어버린 공론 영역에서 했던 일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말고~^^)

 

세미나 인원 4명 중 절반인 2명이 각자의 사정으로 못나올 예정이라, 다음 주엔 한 주 쉬고 그 담주에 5장을 읽고 만납니다. 발제는 홍차샘~

 

 

댓글 1
  • 2020-11-20 23:41

    자기의 고유성을 드러내고 다른 이들과는 구별되는 뛰어남을 열망하고 불멸성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인간세계에 지속성과 영속성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읽어나갈수록 아렌트는 그런 것이 근대에 시작된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가 되살려내야 할 정치이자, 잃어버린 공론 영역에서 했던 일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말고~^^)
    : ㅋㅋㅋ 이 문장을 읽으며.... 히말의 흔들 흔들(정말 그런가?) 서성이는 몸이 느껴집니다~~ 저 역시 아니면 말고^^ 후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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