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세미나, 에세이

yj6470
2019-12-02 15:05
101

규정성과 무규정성 : 빛의 세계와 어둠(밤)의 세계  2019.12.02. 루욱

 

평소 말이 없는 편이라 하니 같은 세미나 원들이 비웃는다. 우리가 밤 세미나를 하기 위해 모였을 때 가장 말을 많이 하는 나이기 때문인가 보다. 애를 써야 말 수를 줄일 수 있는 기질이라면 난 분명 말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노력을 해서까지 말을 줄이려 하는 걸까? 말을 한다는 것은 사실을 전달하는 것도 있지만 결국 어떤 일들에 대한 나의 해석, 그에 대한 감정, 서정을 이야기 하는 일이다. 그것들이 그 사건성에 대한 본질이 되기엔 미흡하고 불완전하다. 이를 인지하게 된 어느 시기가 지나니, 말을 한다는 것에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 노력을 일부러 해야만 했을 것이다.  성향 자체가 유독 감정적 유형이라 더욱 그러하다. 좀 더 이성이 발달한 냉철함을 지녔다면 말 줄이려는 노력이 많이 안 필요했을 것 같다.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해 왔다면 아마 그것은 나라는 존재자에 대한 존재적 의미를 찾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세계 속의 나의 존재적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동안 그 작업들이 내가 하고 있는 역할들에서 오는 존재적 의미를 찾는 일, 규정된 존재적 의미를 찾는 일이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나에 대한 끊임없는 설명들을 통해 나 스스로 규정해 내야만 삶 속의 뭔지 모를 간극, 하나의 정체성으로 절대 모아지지 않는 모순들이 빚어내는 깊은 간극을 줄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난 시절을 이야기 했겠고 치기 어린 시절, 왜 인생에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말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아무리 아무리 말을 해도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더욱 미궁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나를 규정해낼 수가 없어진다. 아니 규정하려는 순간 사라져 버리고 오물 같은 말의 파편들만이 질퍽하게 입 주위에 달라 붙어 있다.

 

 

규정한다는 것은 빛의 세계이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가려는 일이다. 규정조차도 외부에 의탁해버리고 의존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종교가 그러할 것이고 아마 철학도 진리의 답을 명료하게 규정해 주려 한다. 그러나 어둠에 빛을 비추려는 순간 어둠은 사라져 버린다. 규정해내려는 순간, 보이지는 않지만 보이는 세계는 사라져 버린다. 내가 보는 세계는, 내가 말할 수 있는 세계는 내가 볼 수 있는 세계이다. 지평선 안의 시야 안에 잡히는 세계, 합목적성의 인간의 세계만을 이야기 해왔을 것이다. 일본의 재일在日 한국인 시인 한 분은, “지평선은 내 발 아래 있다” 라고 하였다. 어쩌면 지평선 너머, 어둠의 존재의 세계는 내 발 아래 있어 우리는 언제든지 그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그 세계로 나아가는 출구를 찾는 것, 다른 세계들을 불러내는 것이 우리가 여기서 공부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존재론적 사유 방식은 문학이나 예술같이 우리를 그 세계로, 규정되지 않는 어둠의 세계로 우리를 데리고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끊임없이 말을 통해 자신과 내가 속한 세계를 규정해보려 안간 힘을 쓴다고 그 세계로 나아갈 수 없었기에 어느 순간 탈진되는 기분이 들었을 게다. 그렇다고 새로운 규정성을 생산한다는 것이 무규정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일이라고 항상 말할 순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속한 규정된 세계를 벗어나 어둠의 미혹의 세계로 나아가는 한에서, 기존의 감각들과 서정들을 깨뜨리는 한에서 가능할 것이다.

 

 

밤의 세미나의 금년 시즌이 끝났다. 다른 분들은 밤 세미나의 big picture를 알고 계셨는지 모르지만 이제야 ‘밤’ 이라는 단어가 갖는 모호함의, 무규정적 존재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우연히 이곳에 와서 이 세미나에 합류해 같이 공부를 했었는데 우리가 분명 모호함 속에 함께 존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내 삶 속에 밀려 들어왔고 이 전에 보지 못했던 세계로, 나의 말로는 규정되지 못하는 세계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 세계에서 우리는 하나의 시간 속에 존재했던 것 같다. 서로가 섞여 어둠 속에서 하나의 선율을 이루었던 것 같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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