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소 잃고 뇌 약간 고치기

무담
2019-06-18 23:15
235

1. 태극기 휘날리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미리 했어야 할 예방 조치를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뒤늦게 행하는 어리석음을 비웃는 말이다. 그러나 평생 소 없이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면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일단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하지만 외양간만 고치면 되는 일일까? 대문이나 담벼락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집 나간 소를 찾거나 도둑을 잡으러 나서야 할 수도 있다. 탐관오리의 수탈이나 외적의 침탈에 맞서 무기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


뇌는 문제를 풀어내는 기관이다. 흔히 뇌 속에 작은 우주가 있다고 말한다. 뇌 속에 있는 세상에 대한 모델에 문제가 던져지면 부지런히 해결책이 모색된다. 그러다가 뇌가 찾아낸 해결책이 근육을 움직여 행동으로 반영되면 주변이 바뀌고 세상이 바뀐다.


이때 중요한 점은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뇌 또한 변한다는 점이다. 뇌는 가소성이 있는 기관이다. 이는 사실 역설적이다. 뇌세포 자체는 유아 시절까지 늘어나지만 그 이후에는 더 이상의 세포 분열 없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벽에서 사나흘, 피부에서 2주일 등 신체의 다른 세포들은 짧은 시간에 꾸준히 새로운 세포로 대체된다. 이에 비하여 약간의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뇌는 선수 교체가 거의 없는 기관이다. 어쩌면 주변에서 내 뇌세포보다 오래된 시스템은 나보다 나이든 이의 뇌세포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뇌는 완고하고 보수적인 기관이기 쉽다. 하지만 뇌는 전혀 보수적이지 않다. 다른 기관과 달리 끊임없이 변하는 기관인 것이다. 뇌의 변화는 뇌세포 자체의 교체가 아니라 뇌세포와 뇌세포 사이에 있는 시냅스의 연결 관계와 연결 강도의 변화로부터 온다.


뇌의 변화는 문제 상황이 낯설고 문제 해결 과정에서의 노력이 클수록, 그리고 문제 해결 내용이 성공적일수록 커진다. 어제 있던 소가 오늘도 있다면 뇌의 변화가 거의 없겠지만 갑자기 소가 사라져 눈앞이 캄캄해졌다면 큰 변화가 온다. 소를 되찾거나 다시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이 구체적이고 그 결과가 성공적일수록 뇌의 변화는 더욱 커진다. 뇌의 변화는 꾸준히 일어나지만 이처럼 실패로 분류해 마땅한 일을 계기로 더욱 크게 일어난다.


나이가 들면서 침을 삼키다가 사래들려 고생하는 경우가 있다. 침을 삼키는 데 동원되는 근육들 중 일부가 노화로 인하여 반응이 늦어지면 근육들 사이에 엇박자가 생겨 침이 기도로 잘못 흘러들면서 사래가 일어난다. 노화 과정에서 누구나 겪는 과정이다. 하지만 뇌는 이내 근육의 늦어진 반응 속도에 맞추어 동작 명령을 내리는 타이밍을 조정한다. 노화 과정에서의 사래 걸림은 노안만큼이나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몇 번의 낭패를 경험한 후 조심해 침을 삼키다가 어느덧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사래 걸리지 않게 천천히 침을 삼키는 데 익숙해져 있다면 노화에도 불구하고 뇌는 아직 쓸 만하다고 위로할 수 있다.


하지만 뇌의 변화가 그저 여기저기 말 안 듣기 시작하는 몸뚱이에 맞추어 제어 신호를 손질하는 데만 그치고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이 충분히 현명하다고 생각하여 모든 문제에 즉답을 하면서 젊은 세대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야단치면서 고집을 부릴 때 더 이상 제대로 된 뇌의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실패를 살짝 외면하고 회피하는 노련함 속에 자신이 틀렸음을 깨달을 기회나 새로운 것을 접하고 배울 기회는 슬그머니 사라진다. 편안한 안녕 속에 하루하루 굳어가는 뇌는 치매를 행하여 달려간다.


외양간 고칠 기력이 없더라도 소를 잃었으면 뇌는 약간 고칠 일이다. 하지만 소를 잃어버린 줄도 모르는 채 그들은 오늘도 태극기 휘날리며 광화문 앞에서 엉뚱한 이들을 탓한다.



2. 잘 키운 무의식



똑똑함과 멍청함, 당연히 똑똑한 게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노예의 미덕은 똑똑함이 아니라 부지런함에 있고 주인의 미덕 역시 똑똑함보다는 게으름에 있다.


노예 제도는 되살려서는 안 될 비도덕적 제도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돈을 매개로 누군가가 누군가의 노예 노릇을 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니 이 글의 비유를 너무 구박하지는 말자. 대신 직장에서의 부하와 상사로 표현을 조금 순화시키기로 하자.


앞의 말을 정리하면 상사로는 똑부보다 똑게가 낫다는 것이다. 심지어 똑부보다 차라리 멍게가 낫다고까지 한다. 왜 게으름이 미덕이고 부지런함이 악덕인 것일까?


이명박의 부지런한 모습에 질린 탓에 널리 퍼진 말일 지도 모른다. 탐욕스러운 똑부의 해악을 처절하게 보여준 그였기에 말이다. (물론 멍게의 해악은 박근혜가 잘 보여주었다.) 하지만 똑게를 칭송하고 똑부를 경계하는 말은 실은 이명박의 해악이 드러나기 훨씬 전에 이미 널리 퍼졌던 말이다. 그리고 곰곰 생각하면 이 말은 매우 설득력 있는 말이다.


지나치게 부지런한 상사는 모든 일에 직접 신경 쓰면서 부하들의 능력을 키워주지 않는다. 물론 부하들을 혹사시키기는 한다. 하지만 부하들의 자발적 문제 해결 능력만은 절대 키워주지 않는다. 부하들은 단지 시키는 일만 죽어라고 해야 할 뿐이다.


부지런한 상사는 또한 모든 공을 독차지하려 든다. 부하들에게 제대로 기회를 주지 않고서는 부하들의 무능력을 탓하면서 자신의 뛰어남을 뽐낸다.


하지만 아무리 똑똑하고 부지런하다 해도 모든 판단을 혼자 내리고 모든 일을 혼자 챙길 수는 없다. 수동적으로만 움직이는 부하들 속에서 성과는 서서히 정체되기 마련이고 사고도 하나 둘 터져 나온다. 마침내 몰락이 시작될 때 부하들은 은근한 환호를 보낸다.


부지런한 상사와 달리 게으른 상사는 부하들에게 성장할 기회를 준다. 부하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준다. 사고 앞에서는 방패막이가 되어주면서도 공은 나누어 준다. 부하들에게 일 할 자리와 제대로 된 역할과 권한을 주고 성공할 동기와 능력을 키워낼 기회를 준다. 게으른 상사가 똑똑할수록 그런 역할을 잘해낼 가능성이 더 커진다.


하지만 제대로 게으른 상사가 되려면 혹독한 과정이 필요하다. 한 때 부지런해보지 않았다면, 부지런함으로 인한 실패의 쓰라림을 맛보지 않았다면 지혜롭게 게을러지기는 쉽지 않다. 차근차근 부하들의 능력을 키워내고 신뢰 관계를 구축하지 않았다면 마음 놓고 게을러지기 또한 쉽지 않다. 제대로 된 게으른 상사는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관계를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문제를 의식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사람에게서는 제대로 된 문제 해결 능력을 기대하기 힘들다. 잘 성장한 전문가라면 혹독한 훈련으로 얻어진 좋은 습관들이 무의식 차원에서 다양하게 장착되어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그의 의식은 전략적 판단을 내릴 뿐 전술적 세부 사항은 무의식에 맡긴다. 류현진이 공을 던질 때 구질과 속도, 그리고 공이 향할 방향 정도만 머리에 떠올릴 뿐 세세한 동작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손흥민의 멋진 돌파와 강력한 슈팅, 이강인의 화려한 마르세유 턴이나 킬 패스 역시 의식적으로는 불가능한 동작들이다.


잘 키운 무의식 차원의 습관들이 충분히 갖추어졌을 때 의식은 마치 게으른 상사처럼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어깨의 힘을 뺀 채 죽어라 노력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말이다.


여기에서 잠깐, 의식이 상사고 무의식이 부하라는 비유에 무의식이 화를 내거나 섭섭해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제대로 된 상사와 부하의 관계는 실은 상하관계가 아니다. 서로 의존하는 관계일 뿐이다. 그리고 헤겔이 말하는 노예와 주인의 변증법처럼 누가 진짜 노예이고 누가 진정한 주인인지는 모르는 일이다.



3. 게임이 안 된다


요즘 인공지능은 딥러닝이 대세다.


그 동안 인공지능 연구에는 세 단계가 있었다. 플로 차트만 잘 그리고 프로그램만 잘 짜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던 1950년대. 인간의 지식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그 지식을 처리하는 프로그램을 잘 만들려 애쓰던 1980년대. 그리고 프로그램이 스스로 학습해 문제 풀이에 필요한 패턴을 찾아내도록 하는 딥러닝 방식이 득세하고 있는 2010년대.


딥러닝 방식은 여러모로 예전 접근에 비해 지능에 한 발 더 다가선 느낌이다. 첫째, 시작 단계에서 내용이 비어 있다. 그저 가능성과 잠재성만을 가진 랜덤한 초깃값의 퍼셉트론들이 있을 뿐이다. 둘째, 배우는 과정이 있다. 정제된 지식이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패턴을 데이터 속에서 스스로 찾아낸다. 셋째, 같은 구조라도 학습 결과가 그때그때 다르고 운이 성능을 좌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괜찮은 구조가 좋은 데이터를 만나고 운도 따를 때 성공적 학습이 이루어진다. 넷째, 설명하지 못하는 감에 의존한다. 여러 가지 결정을 성공적으로 내리면서도 왜 자신이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딥러닝이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다보니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와 함께 숱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의 인공지능은 우리의 뇌와 겨룰만 할까?


딥러닝은 퍼셉트론들로 구성된다. 이는 뇌세포, 즉 뉴런을 간단하게 모델링해 1950년대에 제안된 구조이다. 인간의 뇌세포는 1,500억개 정도이다. 뇌의 무게가 대략 1.5 킬로그램 정도라 하니 따져보면 뇌세포 하나는 약 6천조 개 정도의 양성자 및 중성자들로 구성된다. 4대 원소 중 가장 무거운 산소 기준으로는 2백조 개 정도의 원자가 모인 셈이다. 이 많은 원자들이 복잡한 고분자 구조를 만들어 부리는 온갖 조화들. 간단한 벡터 내적 연산과 비선형 함수 하나로 구성되는 퍼셉트론 모델로는 게임이 안 된다.


대형 딥러닝 모델에 속하는 인셉션 모델이나 레스넷 모델 속의 파라미터 수는 수억 개 정도이다. 하지만 뇌 속의 시냅스는 뇌세포 당 천개만 따져도 150조 개. 게임이 안 된다.


인간의 뇌는 진화의 역사 38억년의 결과물이다. 진핵세포 등장 후 20억년. 신경세포 등장 후 5억년, 포유류 등장 후 1억년, 인류 등장 후만 따져도 300만 년의 진화를 거쳤다. 딥러닝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등장한지 60, 인공지능의 주역이 된지 10. 게임이 안 된다.


인간에게는 몸이 있다. 주변을 감시하며 신체를 모니터링하고 제어하는 일이 뇌의 임무였다. 인간의 뇌는 포식자와 질병, 기아의 무서움 속에 진화의 단호한 칼날을 피하면서 생존과 번식의 절박함 속에 진화해 왔다. 인공지능에 로봇의 몸체를 연결시킨다 해도 몸이 주는 정보의 질적, 양적인 빈약함, 생존과 번식의 절실함 부족은 어쩔 수 없다. 게임이 안 된다.


뇌는 수많은 종류의 경험을 연결해 다룬다. 이런 경험의 총체성에 비해 딥러닝을 비롯한 인공지능은 아직 제한된 영역의 문제를 분리해 다루는 수준일 뿐이다. 게임이 안 된다.


영화는 자의식을 가진 인공지능, 인간과 농담 따먹기를 하고 인간을 정복해 버리는 딥러닝을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따라잡기에 인간의 뇌는 아직은 너무나 머나먼 고지다. 30년마다 질적 도약을 이루어낸 인공지능의 역사를 생각할 때 2040년대, 2070년대의 인공지능이 조금 두렵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상은 인공지능 자체가 아니다. 인공지능을 손에 넣고 이를 이용해 인간을 지배하려 들 인간들이다. 인류는 그동안 지능이 없는 조잡한 도구와 기계들만으로도 엄청난 결과들을 만들어냈다. 이제 딥러닝 인공지능을 곳곳에 활용하는 인류 문명은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선일지 악일지는 이 새로운 도구가 누구의 손아귀에서 어떻게 이용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댓글 4
  • 2019-06-19 06:59

    앗, 무담집 연재 시작하시는 건가요? ㅋㅋㅋ

    '무담샘'스러운 센스 넘치는 에세이는 언제나 재미있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2019-06-20 00:30

      곰곰님~ 호수님~ 재미있는 에세이 빨랑 올려주세요. ^^

  • 2019-06-19 23:36

    ㅎ 수고하셨습니다.

    무담집이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

    저도 부족한대로 올립니다.

  • 2019-06-21 01:03

    무담샘.....에세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뇌 약간 고치며 사는게 꼰대로 죽지 않는 길이라는 샘의 통찰 깊이 새기겠습니다. 

    저는 뇌가 유전자의 대리인이란 생각에 공감이 많이 갑니다. 외주를 줘 버렸더니 일을 터무니없이 잘해버려서 

    이제 진화는 인간 신체 밖에서 문화라는 형태로 더 많은 성공과 실패를 이뤄내고.....

    이제 그마저도 부족했는지, 딥러닝에 새로이 진화를 아웃소싱하고 있는건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을 가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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