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哲学の 自然」 p.172~175

꼭지
2022-01-16 15:47
196

哲学自然 p.172~175

꼭지

 

たまき [環] 아어(雅語) 환, 고리 모양인 옥(玉), 반지. (=ゆびわ) / かん [環·鐶](금속제의) 고리. /わ [環]

ゆ[喩] 1.깨우치다; 교도(敎導)하다→ 訓喩 2.비유하다; 비유→ 比喩

にちじょう [日常]

とな-える [唱える] 1.소리내어 읽다 2. 외치다;소리 높이 부르다 3.주창하다

인명 : よしもとたかあき[吉本隆明]

てんとう [転倒·顚倒] 거꾸로 됨[함].

てらす [照(ら)す] 1.빛을 비추다, 비추어 밝히다. 2.비추어 보다, 대조[참조]하다.

いきかう [行(き)交う] 1. 오가다;왕래하다 2.서로 방문하다;교제하다.

いただ-く [頂く·戴く]1.이다;얹다 2.받들다;모시다 3.‘もらう’의 공손한 말씨

かんしゃ[感謝]

おうよう [応用]

りんかく [輪郭·輪廓] 윤곽

きょせい [去勢]

ほどこ-す [施す] 1.베풀다 2.세우다 3.채색하다;입히다

はら-う [払う] 1.제거하다;없애다 2.털다 3.물리치다;쫓아 버리다

4.치르다. a.(돈·값을) 내(어 주)다; 지불하다 b.둘도 없는 것을 소모하다.. ......

うごめ-く [蠢く] 꿈실거리다; 꿈틀거리다; 준동하다.

 

 

 

 

사회는 복잡하다라는 것

 

나카자와 – 자연의 근저에는⌈이상한 고리⌋구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이상한 고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근저에도 숨어 있습니다. 언어의 본질을 생각하는 것에는 먼저 ⌈유(喩)⌋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결국, 일상언어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시의 구조를 베이스로 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쟝 쟈끄· 루소가 주창했습니다.

 

고쿠분 – 『언어기원론(주26)』이군요.

 

나카자와 – 루소와 요시모토 타카야키씨의 생각이지요. 요시모토씨도 ⌈예술 언어론(주27)⌋을 말하는데, 그것은 시에 대한 것이지요. 요시모토씨의 화법에서는, ⌈기능주의적⌋으로 언어를 받아들이고, 결국 정보전달과 커뮤니케이션을 베이스로 해서 생각해도, 그것은 언어의 본질로는 되지 않습니다. 언어의 본질은 시의 언어이며, 일상언어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시의 언어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요시모토씨에게는, 이러한 역전의 발상이 있습니다. 『언어에 있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작도 그러한 발상으로 씌여졌습니다.

저는 경제영역에서 같은 역전을 행한 것이, 마르셀·모스(주28)라고 생각합니다. 경제교환의 세계의 본질을 생각하는 것에는, 우선은 ⌈유(喩)⌋적 구조를 지닌 ⌈증여⌋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증여라는 관점으로부터 경제학을 전도했을 때, 경제교환이라는 이미 우리가 행하고 있는 행위의 본질을 비춰내 오는 것입니다. 그것에 의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새롭게 고쳐 쓸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고쿠분 –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에 나카자와씨는 이런 것을 쓰셨군요. 증여에 관해서는 사물은 단지 오고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것은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받은것이다⌋라던가, ⌈이다음 갚아야지⌋라던가, ⌈매우 좋은 것을 받았으니 감사해야지⌋등의 여러 가지⌈불확정의 결정불가능한 가치⌋를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것이 증여에 있어서 사물의 이동이다, 라고.(주29) 또 정신분석의 용어를 응용하거나, 개체로서의 윤곽을 명백히 하는 ⌈거세⌋라는 조작이 증여에 베풀어지는 것에 의해 교환이 발생하는 것이라고도 설명 됩니다.

저는 최초의 대담에서, 교환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증여 차원을 결코 무시학 수 없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지금의 경제교환을 보아도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치르고 서비스를 받아도, ⌈저 사람한테 해 받았으니까⌋라는 가치가 반드시 결부되어 있습니다. 사실은 증여적인 것이 지금의 사회 가운데에도 많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근대 경제학에서는, 그것을 어거지로⌈거세⌋할 마음이 되어, 사물와 인격을 철저하게 분리해 버립니다. 전부를 교환적인 것으로 줄여서 생각해 버립니다. 그래도 그것은 현실 가운데 진정 일부밖에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증여라는 시점은,⌈옛날 증여의 세계를 부활시킨다⌋라던가 그런 것이 전연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발견하기 위한 개념이 증여라고 생각합니다.

 

 

 

 

(주26) 쟝 쟈끄· 루소-『언어기원론-선율 및 음악적 모방을 논하기』오바야시 요시히코역, 현대사조신사, 2007년. 이 책 가운데에서 루소는, 시각에 호소하는 몸짓언어(자연언어)는 동물도 사용하는데 반해, 청각에 호소하는 소리언어(협약언어)는 인간만이 사용한다고 하고, 언어의 기원을 정신적 욕구인 정념에서 유래하는 노래에 있다고 했다.

(주27) 요시모토 타카야키『⌈예술언어론⌋에 대한 각서』(이백사, 2008년)등을 참조.

(주28) (1872-1950년) 프랑스의 사회학자 · 문화인류학자. 주요 저서인『증여론』에서, 미개사회 가운데 있는 ⌈증여⌋가 자본제 사회 가운데 있는⌈교환⌋과는 완전히 다른 원리에 기초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인류의 경제적 현상의 기초로 설치했다. 사회학자 에밀·뒤르켐의 조카이기도 하다.

(주29) 나카자와신이치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카이에·소바쥬Ⅲ』강담사선서메티에, 제1장.(고쿠분)

댓글 3
  • 2022-01-16 19:14

     

    p166단어와 해석 띠우

    さっしん [刷新]

    おかきよし [岡潔] [인물명] 오카 기요시(1901년-1978년).

    きょうべん [教鞭]교편

    こんとん [混沌]

    コホモロジー 情報処理,数学,物理・原子力 cohomology

    かきもとひとまろ [柿本人麻呂] [인물명] 가키노모토노 히토마로(662년-710년).

    まんようしゅう [万葉集일본에서 가장 오래 된 시가(詩歌)집((20권, 奈良 시대 말엽에 이루어짐)).

    つり [釣(り)] 낚시

    びわこ [琵琶湖]지명 비와 호, 시가(滋賀) 현 중앙의 호수.

    ゆらす [揺らす] 흔들다, 흔들리게 하다.

    スーパーインポーズ [superimpose]화면 위에 자막을 포갬

    まくらことば [枕詞]습관적으로 일정한 말 앞에 놓는 4[5]음절의 일정한 수식어

     

     

  • 2022-01-16 20:55

    169-172 단어와 해석

  • 2022-01-16 22:56

    (160~163쪽)

    不思議の環(ふしぎのわ、strange loop)이상한 고리

    インターフェイス(インターフェース) 인터페이스, 접속 부분, 경계면

    ダグラス・R・ホフスタッター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裂け目(さけめ) 균열, 갈라진 틈, 금

    自己言及(じこげんきゅう)のパラドクス

     (哲学および論理学における自己言及のパラドックスまたは嘘つきのパラドックスとは、「この文は偽である」という構造の文を指し、自己を含めて言及しようとすると発生するパラドックスのことである。この文に古典的な二値の真理値をあてはめようとすると矛盾が生じる。

     「この文は偽である」が真なら、それは偽だということになり、偽ならばその内容は真ということになり……というように無限に連鎖する。同様に「この文は偽である」が偽なら、それは真ということになり、真ならば内容から偽ということになり……と、この場合も無限に連鎖する。)

    突き詰める(つきつめる) (끝까지)밝혀내다, 외곬으로 생각하다, 규명하다

    かろうじて 가까스로, 간신히, 겨우

    垣間(かきま)見る 엿보다

    変貌(へんぼう)

    居心地(いごこち)が悪い/居心地の悪さ 지내기가 거북하다/지내기 거북함

    ポジティブな議論(ぎろん) 적극적인 토론

    途方(とほう)にくれる 어찌할 바를 모르다, 난처하다

    足踏み(あしぶみ) 발장단, 제자리걸음, 답보

    とば口 입구, 일의 발단

    ねじれ 비틀어짐, 뒤틀림

     

     

    야생의 과학과 ‘이상한 고리’

     

    고쿠분---자연과 언어의 조화란, 이 대화의 큰 포인트지요. 『야생의 과학』 안에서 나카자와 씨는 둘을 잇는 인터페이스로서 예전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주18)가 <괴델, 에셔, 바하> 속에서 소개한 ‘이상한 고리(strange loop 주19)’라는 아이디어를 새로이 조명하고 계십니다.

    가라타니 고진 씨가 한때, 괴델 문제를 한창 논했었습니다. 어떤 체계라도 그 내부에 진짜라고도 거짓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결정 불가능한 틈, 자기언급의 패러독스를 안는다. 형식화를 밝혀내면서 이 패러독스에 직면했을 때, 가까스로 그 체계의 외부에 ‘자연’---당시의 가라타니 씨의 표현이라면 ‘자연성장성’---이 엿보인다…. 이와 같은 이야기로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나카자와 씨가 『야생의 과학』 안에서 쓰신 것은, 자연에서는 “계층을 올라가니 실은 그 계층은 아래 계층과 이어져 있었다”고 하는 루프의 구조, ‘이상한 고리’가 있는 것은 도리어 당연하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 구조를 형식적인 논리로 기술하려 하기 때문에 자기언급적 패러독스가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은, 자연에는 루프의 구조가 있다는 것을 오히려 출발점으로 삼아, 그 자연을 따라잡기 위해 스스로를 변모시켜야 한다는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대학 시절 가라타니 씨의 저작에 강한 영향을 받았으므로, 괴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은 나에게도 큰 과제였습니다. 스피노자의 연구를 하고 있어도 그것이 신경 쓰여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장대한 아름다운 체계를 만들었지만, 역시 그것은 체계인 한 뭔가 모순을 안고 있을 것이다…하는 거북함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나카자와 씨의 말씀을 듣고, 특별히 절망하는 방향에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웃음). 문제는 오히려 자연이라는 것에 말, 혹은 인식이 어떻게 따라갈 것인가, 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내가 스피노자연구에서 해온 것은 어떻게 ‘신’의 개념---스피노자의 경우 ‘신’이란 자연 그 자체를 말합니다---을 인식이 따라잡을까 하는 이야기입니다. 신 즉 자연은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 신을 그려내는 관념에 어떻게 다다를까. <에티카>의 모두 부분은 매우 섬세한 논리 조작을 하면서 신을 그려내는 관념에 조금씩 접근해가서, 10개의 정리를 거쳐 그곳에 다다르는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흔히 <에티카>는 신의 관념으로부터 출발한다고들 하는데, 이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자연의 관념을 따라잡는 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번에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하>를 다시 읽어보고 생각난 것은, 이것은 ‘이성의 한계’ 따위 이야기가 전혀 아니라, 완전히 반대의 적극적인 토론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스피노자의 <에티카>가 그리는 자연에 대해서도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괴델 문제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제자리걸음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다른 형태로 자연에 근접해 갈 방법이 있습니다.

     

    나카자와---<괴델, 에셔, 바하> 속에서 호프스태터가 품은 의문이란, 내가 젊었을 때 품었던 의문과 같고요, 생물학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학부생일 때는 생물학과였는데, 당시에는 생물학이 마침 게놈해석의 도입부에 섰던 시절이었습니다. “DNA는 단백질의 구조로 귀착한다”고 해서, 그 면에서 매우 세세한 분석이 진행되었고, 실험도 진행했습니다. 그때, DNA절대파 사람들은 단백질의 분자구조만으로 생명현상의 모든 것을 해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DNA가 꼬여 있는 2중 나선의 구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필시, 호프스태터가 ‘이상한 고리’라고 말했을 때도 이 나선구조를 문제로 삼았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주18 더글러스 호프스태터(1945~ ) 미국의 인지과학자. 주저는 <괴델, 에셔, 바하>. 쿠르트 괴델의 자기언급성의 파라독스의 문제를 에셔의 트롬프뢰유나 바하 음악의 대위법적 구성에 비유해서 논했다.

    だまし絵:실물과 헷갈릴 만큼 사실적인 그림을 말한다. trompe-l'œil(트롬프뢰유, 눈을 속이다라는 뜻의 불어-실물로 착각할 만큼 정밀하고 생생하게 묘사한 그림)라고도 한다.

     

    주19 논리적으로 위쪽 계층의 것이 어느샌가 아래쪽 계층의 것과 반복하여 연결되어 버리는 것 같은 기묘한 구조. <괴델, 에셔, 바하>에서는 “‘이상한 고리’ 현상이란 어떤 계층시스템의 단계를 위쪽으로(혹은 아래쪽으로) 이동하는 것에 의해, 뜻밖에도 출발점으로 돌아와 있을 때의 현상이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ループする: 몇 번이나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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