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哲学の 自然」 p.157~159

꼭지
2022-01-09 21:05
194

哲学自然 p.157~159

꼭지

 

いきょ [依拠] 의거

べんしょうほう [弁証法]

めいせき [明晰] 명석

さっしん [刷新] 쇄신

シェーマ [(독일어) Schema]형

しい [恣意]자의, 멋대로의 생각, 방자한 마음.

ひょうじ [表示]

げんきゅう [言及]

なめらかな [滑らかな] 매끄러운

ふかよみ [深読み] 문장 따위의 (언외(言外)의) 뜻을 (필요 이상으로) 깊이 생각함; 억측이 지나침.

ふくざつけい [複雑系]

かいろ [回路]

かいたい [解体]

(인명) 浅田彰 あさだしょう/ あさだあきら

ちょうわ [調和]

 

 

 

 

나카자와 ― 구조주의가 나왔을 때, 내가 관심을 가진 사상가의 한사람은 루이· 알튀세르(주14) 이며, 또 한 명은 류시앙· 세버그라는 인류학자였습니다. 그는 그다지 일본에는 알려져있지 않지만, 레비스트로스와 라깡의 제자로, 『마르크스주의와 구조주의』(주15)라는 대단히 재미있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 가운데에서 그가 무엇을 말하고 있냐면, ⌈지금까지의 마르크스주의는 변증법에 의거해 왔다. 분명 변증법은 뛰어난 인식방법이지만, 거기에는 과학이 부족하다. 이 변증법을 더 명석한 과학으로 하기 위해, 구조주의라는 게 있다. 그에 의해 마르크스주의가 쇄신되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당시 세간에 구조주의로 알려진 것은 그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쉬르 언어학의 쉐마인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자의성(주16)이, 구조주의의 제일 포인트로 고려되어져 왔습니다. 소쉬르는 시니피에를 흐름으로 표시하고 있지만, 밑에 무언가 유동하여 흘러가는 것이 있어서, 그 위에 기호의 시스템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시니피에와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호 시스템과 자연과의 사이에는 자의성이 있어서, 시스템은 시스템으로서 자율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게 되는 거네요. 기호체계를 끝낸⌈자기언급성의 시스템⌋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사이에 매끄러운 연속을 만들오내는 가능성을, 구조주의 가운데에서 억측해낸 것이지요. 저는 거기에서 구조주의의 가능성을 보는 것은, 잘못되지 않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구조주의가 개발한 사고의 기술 가운데에서 복잡계에 있는 자연과의 사이에서 회로를 여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레비스트로스를 마르크스나 프로이트에게 연결하는 진정한 회로이지 않을까 하고.

 

고쿠분 ― 물론, 마르크스, 프로이트, 소쉬르가 레비스트로스의 학문의 세 기원이라고 알려져 있지요.

 

나카자와 ― 1960년대 마르크스주의가 해체기에 들었을 때, 새로운 지성 형태로서 구조주의가 나타났습니다. 그뒤, 60년대말~70년대에 걸쳐서 포스트 구조주의라는 것이 출현했을 때는, 저도 대단히 자극을 받았습니다만, 어딘지 ⌈이것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마음은 있었습니다.

그러한 나에 대해, 아사다아키라씨는⌈나카자와씨는 스토아파(주17)다⌋라고 말했습니다만(웃음), 이는 명백히 그렇습니다. 저는 자연과정과 언어과정이 조화로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사다씨는 모더니스트여서, 자연과는 조화롭지 못하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저에 대해 ⌈스토아파다⌋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도, 들뢰즈도 스토아파다라고 알려져 있지요.

 

 

 

 

(주14) (1918-1990년) 프랑스 구조주의의 대표적인 논객이며, 마라크스주의 철학자, 전기 마르크스와『도이치· 이데롤로기』이후의 마르크스에게는 인식론적인 단절이 있다고 해서, 마르크스 텍스트의 참신한 다시 읽기를 완성했다. 대표작으로는『마르크스를 위하여』『자본론을 읽다』등.

(주15) 류시앙· 세버그 『마르크스주의와 구조주의』타무라요시역. 인문서원, 1971년.

(주16) 시니피앙(significant)은 일본어로⌈의미하는 것⌋, 시니피에(signafié)는 ⌈의미되는 것⌋을 나타낸다.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드·소쉬르가 정의한 개념. 소쉬르는 말은 다른 말과의 관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체계 안에서만 의미를 가지므로,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의 사이에는 필연적인 결부가 없다(자의적이다)고 정식화했다.

(주17) 기원전 3세기에 제논에의해 창시된 철학의 학파. 우주의 법칙등의 결정론과 인간의 자유의지와의 관계를 탐구하고, 자연과 의지가 일치하는 프로하이레시스라는 개념을 설했다.

댓글 5
  • 2022-01-09 22:10

    146-148

    나카자와-그러나, 외국의 데모를 보면, 별로 의식이 없지요? 길까지 퍼져서, 모두 맘대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런 것을 보고 있으면, <역시 일본은 의식의 나라군>이라고 느껴지요. 안보 투쟁 때의 데모에도 확실한 의식이 있어서 이에 대한 기동대도 의식적으로 행동했다. 게다가 그런 데모는 점점 조합 주도가 되지않습니까. 조합 주도의 데모의 의식이라는 것이 또 마음에 들지 않았네요.

     

    고쿠분 – 아마 모두 그것이 싫어서 점점 안하게 된거 아닌가요?

     

    나카자와 – 센스가 나쁘니까. 그래서 센스가 있는 사람들은 데모에 가는 것이 싫어졌다. 근데 이 사이에 수상관저앞 데모에서 대단히 풍경이 달랐지요. 반정도가 <가족 구역>에 있어서 <어디가 가장 잘 보입니까?>라든가 회담하여, 이것은 혹시 불꽃 축제입니까? 근래 데모의 양식의 변화에는 고엔지의 <아마추어의 이야기>의 사운드 데모의 영향도 컸다고 생각합니다.

     

    고쿠분 – 흐르고 있는 소리의 리듬과 분위기도 축제에 가까운 것이었죠.

     

    나카자와 – 불꽃 축제와 데모가 가깝네요. 불꽃 축제 라면 모두 움직이지 않아도 괜첞자 않습니까? 데모는 <움직인다>라는 것은 중요하나 요소입니다만, 동시에 움직이면 위험성도 발생합니다. 걸으면, 밀려서 경관에 부딫치거나 하여서, 경우에 따라서는 공부집행방해로 체포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불꽃 축제의 경우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움직여 주는 것은 불꽃이기 때문에. 모여있는 것 만으로 움직이지 않아도 좋다는 것은 관저앞 데모가 퍼진 큰 요인의 하나이지 않을까

     

    고쿠분- 쯔다다이스케가 말하고 있지만, 데모에 간다고 모두 영상을 찍습니다. 이번의 데모에서는 그런 영상이 유투브와 ustream에서 많이 돌아다닙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완전 보통의 사람들이 오고있잖아!> 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이것이 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한 면으로는 트위터등에서 정보가 확산되었다는 것도 있습니다만, 관저 앞 데모에서는 인터넷 영상의 역할이 매우 크지않았나 싶습니다.

     

    みちばた [道端] 1. 길의 주변; 길가; (넓은 뜻으로) 길.

    シュプレヒコール (독일어) Sprechchor

    1. 데모나 집회에서 여럿이 구호나 요구 조건 등을 외치는 일. 또, 그 외침
    2. 합창 낭독극. 합창처럼 집단적으로 대사를 낭독 또는 합창하는 연극 형태

    きどうたい【機動隊】기동대

    ま-う [舞う] 1. 떠돌다;흩날리다 2. 춤추다

    ふるま-う [振(る)舞う] 1. 행동하다 2. 대접하다;향응하다

    しろうと [素人]1.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2. 비전문가;생무지3. 취미삼아 하는 사람;아마추어

  • 2022-01-10 01:19

     

    p153~157단어와 해석 띠우

    べんしょうほう [弁証法]

    いさみあし [勇み足] 지나치게 의욕을 보이다 실수함.

    しっぴつ [執筆]

    ふろく [付録]

    しゅうろく [収録]

    ついとう [追悼]추도

    げきとつ [激突]격돌

    くどう [駆動]구동

    あらがう [抗う]

    あともどり [後戻り]되돌아옴;되짚어 옴.퇴보;후퇴

    きく [効く] 듣다, 효과가 있다

    じしょう [事象] 사상, 사실과 현상(現象)

    はみだし [はみ出し]비어져 나옴; 밀려 나옴; 또, 그것.

    とな-える [唱える]외치다;소리 높이 부르다. 주창하다

    ちへい [地平]

    ぎゃっこう [逆行]

    ほうしゃせいはいきぶつ [放射性廃棄物]

    ちめいてき [致命的]

    みとどける [見届ける]마지막까지 지켜보다.

    はつでん [発電]

    そうぞう [創造]

  • 2022-01-10 02:24

    (142~146쪽)

    鮎川信夫(あゆかわのぶお) 1920~1986년. 일본의 시인, 평론가, 번역가.

    吉本隆明(よしもとたかあき) 1924~2012년. 일본의 시인, 평론가.

    識者(しきしゃ=expert) 전문가

    熱風(ねっぷう) 열풍

    ヒット 안타, 대성공, *인터넷상의 방문자 수

    ダラダラ 질질, 줄줄, 빈둥빈둥

    ぶらぶら 대롱대롱, 어슬렁어슬렁, 흔들흔들

    シュプレヒコール 소리 맞춰 구호를 외침

    むしゃむしゃ 우적우적, 게걸스럽게

    ポイ捨て 무단투기(작은 쓰레기)

    ポイ/ぽい 가볍게 버리거나 던지거나 하는 모양

    盛ん(さかん) 왕성함, 활발함, 한창임

    なんとなく 어쩐지,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見せつける 보이다, 과시하다

    調子に乗る 신바람이 나다, 우쭐해지다

    ~に越したことはない ~보다 나은 것은 없다

    つかえ 지장, 가슴이 멤

    序破急(じょはきゅう) 雅楽(ががく), 能楽(のうがく)를 구성하는 序(도입부)·破(전개부)·急(해결부)의 세 부분, 완급의 변화

     

     

     

    데모와 불꽃놀이

     

    나카자와---고쿠분 씨와 계속해온 대화도 일단 이번 회로 마지막이 됩니다(주1). 정말은 아유카와 노부와와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대담(주2)같이 영원히 끝나지 않고 계속되면 재미있겠지만, 아쉽네요(웃음). 그러고 보니 요전번에 고쿠분 씨를 (수상)관저 앞 탈원전 데모에서 봤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쿠분---그건 아마, 오오이원전 재가동 직전인 6월 29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때는 웬일인지 ‘NEWS23’가 (나를) 취재해서, 내 인터뷰가 방송됐어요. “원전 데모에 대해서 말해 달라”고 해서 (이야기했지요). 하지만 나는 특별히 사회운동의 역사에도 밝지 못 하고 전문가도 뭣도 아니지만요(웃음).

     

    나카자와---그거 보고 싶었는데.

     

    고쿠분---최근에 여기저기서 데모에 대해 의견을 요구받게 됐는데요, 계기는 내가 스타지오지브리의 『熱風(열풍)』이라는 홍보지에 쓴 데모에 대한 글이었습니다(「パリのデモから考える(파리의 데모로부터 생각하다)」주3). 그것을 무심코 내 블로그에 실었더니, 인터넷상에서 퍼져나가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읽어줬어요. 한때는 하루에 16,000명의 방문자도 있었습니다.

    거기 쓴 것은 프랑스에 유학했을 때 본 파리의 데모에 관한 겁니다. 내가 살던 곳은 파리 동쪽에 있는 나시옹이라는 역 근처로, 이 역 광장이 파리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데모의 종착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일요일이 되면 늘 어떤 종류의 데모를 봤습니다.

    프랑스의 데모란, 그저 사람들이 빈둥빈둥 걷고 있을 뿐입니다. 구호를 외치는 사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어슬렁거리고 있을 뿐. 프랑스에서는 데모할 때 대로가 완전히 보행자천국이 되기 때문에, 노점 등이 줄지어 있습니다. 거기서 산 샌드위치라든가 핫도그를 우적우적 먹으면서 걷고 그 쓰레기는 길에 휙 던져버리고(웃음). 길이 쓰레기투성이가 되는데요, 그 후에 청소하는 사람들이 와서,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깨끗하게 해나갑니다. 그러한 광경을 봤었기 때문에, 나는 데모란 단지 사람들이 빈둥빈둥 걸을 뿐인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는 데모의 이미지는 나의 것과 전혀 달라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집합하여 전력으로 구호를 외치는 것인 듯합니다. 뭐 학생운동이 한창이었던 시절에 생긴 이미지이겠지만, 데모가 왕성해지고 있는 한편으로 데모에 참가하는 사람 중에는 “아무 생각 없이 데모하러 와 있는 나는 어딘가 이상한 게 아니가” 하고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나는 그런 이미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데모에는 각각 ‘반전’이라든가 ‘반원전’이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그것을 호소하는 것이 목적인데, 더 중요한 것은 대량의 인간이 모여서 그 존재 자체를 과시하는 것입니다. 그만큼의 사람들이 모이면, 존재 자체가 메시지가 됩니다. 즉 “지금은 체제에 따르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말이야. 너희들 뻐기지 마”라는 메타 메시지가 됩니다. 이것이 중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물론 날카로운 의식과 광범한 지식이 있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지만, 특별히 그런 게 없더라도, ‘뭔가 이상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면 부담 없이 데모하러 가면 된다. 특별히 구호 같은 거 안 외쳐도 된다. 거기에 있으면 된다. ---그런 것을 썼더니, 독자분들이 “가슴의 답답함이 가셨다”“데모에 참가하는 나를 긍정할 수 있게 됐다”라는 감상을 굉장히 많이 주셨습니다. 정말로 놀랄 정도의 반향이었습니다. 텔레비전 취재도 그 일환이었어요. 여기에는 깜짝 놀라서 “네에? 모두 데모가 도대체 뭐라고 생각했었나요?”라는 기분이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이 데모였으니까요.

    하지만 이건 일본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정치운동, 사회운동에 대한 감정을 마음속에서 얼마나 억압했었나를 잘 알게 해주는 에피소드입니다.

     

    나카자와---일본의 데모 양식은 정말로 ‘양식’입니다. 틀이 이미 결정돼 있지요(웃음). 내가 대학생 때 데모라고 하면, ‘도입부, 전개부, 해결부’ 같은.... 뭐랄까, 그런 독특한 스타일이 있었습니다.

     

    주1

    急遽(きゅうきょ)

    그 후, 2012년 12월 20일에 갑작스럽게 추가 대담이 이루어졌고, 그 내용은 본서 제IV장 ‘도토리와 민주주의’에 수록돼 있다.

    주2

    荒地詩集(あれちししゅう) 膨大(ぼうだい)

    아유카와 노부오는 일본의 시인.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아유카와 등이 주최하는 『荒地詩集(아레치시집)』에서 ‘아레치신인상’을 수상하고 시인으로서 데뷔. 그 후 아유카와가 죽는 1980년대까지 방대한 대담을 반복했고, 아유카와의 사후에는 700쪽에 이르는 『鮎川信夫、吉本隆明全対談』이 간행되었다.

    주3

    전문은 저자의 블로그에 재수록.

    http://ameblo.jp/philosophysells/entry-11190461401.html

  • 2022-01-10 09:45

    142-159 단어

  • 2022-01-10 09:46

    153 해석

     

    나카자와 - 보통사람을 찍고 있는 것이 낫지요. 정치가라든가가 연설을 하고 있는 영상만 찍었으면 모두 뽑아버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관저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저도 몇 번인가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거절했습니다. 이 데모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기분이 들어서요.

     

    고쿠분 – 윗 세대의 사람들로부터는 “데모가 너무 예의바르지 않냐”라는 비판도 있지만요...

     

    나카자와 – 예의가 없으면 안 돼요.

     

    고쿠분 – 저도 진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비폭력적인 데모. 쓰레기도 어지르지 않고 18시에 모여 20시에 끝난다. 또한 논점도 확산시키지 않고 오이원전 재가동이 문제라면 원 이슈라는 것으로 그것만을 문제삼는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양식입니다. 이 양식이 있기 때문에 지속되고 다양한 사람이 올 수 있는 것이죠.

     

    나카자와 – 예의는 괜찮아도 “우리 화났어요”라는 의사표시만은 분명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이와이시마에서도 매주 월요일에 했는데,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에이에이오”라고 말하면서 마을을 걸어가는 것 뿐이다. 그래도 그것이 기네스북적으로 계속되었다. 관저앞 데모도 그런 식으로 하면 좋지 않을까요.

     

    탈원전의 로드맵

     

    나카자와 – 최근의 퍼블릭코멘트를 보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전제로를 지지해서 관저 앞 데모나 지금까지의 이런저런 운동이 한 역할이 역시 컸다고 느낍니다. 다만 저는 원전 문제는 이미 다음 국면으로 들어갔다고 실감하고 있습니다. 즉 원전제로가 지지받는 것은 좋다고 치고, 그래도 구체적으로는 어떤 식으로 원전을 없애갈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고쿠분 – 탈원전의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거군요.

     

    나카자와 – 방사성 폐기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방사능오염물질 제거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을 구체적으로 우리가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겠죠. 일본은 오랜 기간, 미국의 우산 아래에서 산업의 발달과 안정을 유지해 왔고, 그 구도는 에너지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런 방식은 더 이상 안된다는 것이 확실하게 보이기 때문이죠.

     

    고쿠분 – 물론 ‘탈원전’, ‘반원전’이라는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예를 들어, 왜 전력회사가 저렿게 까지 원전을 고집하는가, 고집하지 않을 수 없는 지 해명해야 합니다. 어쪄면 예를 들어 총괄원가방식과 같은 회계시스템이 그 원인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원전을 둘러싼 여러 시스템의 하나하나를 철저히 밝혀내고, 그것들을 바꿔가는 방향성을 반드시 제시하고 그 뒤에 원전을 몇십년에 걸쳐서 어떤 식으로 제로로 해갈까를 순서를 정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죠.

     

    나카자와 – 이다 테츠나리씨 등이 “원전은 제로로 해야만 하는데 거기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말하자, “당신은 원전추진파입니까?”라는 말을 듣게 되는 상황도 있습니다. 이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현실문제로서 54기나 원전을 만들어버린 이상, 그것을 일순간에 없앨 수는 없죠. 바로는 할 수 없는 것을 출발점으로 하면서, 제로를 향해 최대한 노력을 해가는 것이 중요하므로 그 노력을 하는 사람에서 뒤에서 총을 쏘는 일은 멈춰야만 합니다.

     

    고쿠분 – 그것은 강조해 두고 싶네요. 탈원전 운동에 비판적인 사람은 “탈원전 운동에는, 현실에서 어떻게 해서 원전을 없애갈까라는 관점이 없다”는 것을 자주 말합니다. 탈원전운동 안에서부터 로드맵을 제안해야 합니다.

     

    나카자와 – 반핵의 운동은 일본에서도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지금까지 거의 잘 말해오지 않은 것은, “안티”에 안주하고 있는 방식에 원인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반핵운동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실행방식은 이미 명맥이 끊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반원전운동 자체가 일단 해산할 정도의 기분으로 다음 단계로 들어가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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