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哲学の 自然」 P.129-130 (12월 27일)

꼭지
2021-12-26 13:23
206

哲学自然 p.129~130

꼭지

 

おさ-める [収める] 1.거두다 2. 얻다;손에 넣다 3.성과를 올리다

そう [層] 1.층. 2.지층(地層). 3.계층.

しゅうごうろん [集合論]

こだわ-る [拘る·拘泥る] 1.구애되다 2.작은 일에 트집을 잡다

※ もるたまさお 森田真生 [인물명]

なめらか [滑らか] 1.매끄러운 모양 2.매끈매끈한 모양 3.거침이 없음;순조로움

つな-ぐ [繫ぐ] 1.매다;묶어 놓다 2.잇다;연결하다 3.끊어지지 않도록 하다;보존하다

グーデル 괴델.

かつやく [活躍]

せんたんぶ [先端部]

やら-れる [遣られる] 1.당하다 2.속다 3.얻어맞다

~しつつある ~(해) 가다

グロタンディーク 그로텐디크

※ おかきよし [岡潔] [인물명] 오카 기요시(1901년-1978년)

 

 

 

 

21세기의 자연철학

 

나카자와 이번에 나온 『야생의 과학』(주62)이라는 책에서 다룬 글에서, 저는 ⌈층⌋이라는 새로운 수의 개념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이는 ⌈카테고리― (권)⌋라고 하는 것도 새로운 수학의 장르에 관계하고 있고, 집합론의 파라독스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러운 태도로도 수학이 가능하다, 라는 가능성을 펼치고 있는, 매우 뛰어난 사고 방식입니다. 모루타 마사오군이라는 친구인 젊은 수학자는 ⌈자연 계산⌋이라는 사고방식을 연구하고 있는데, 이것도 알고리즘이라는 지적인 조작을 자연과정에 매끈하게 이어나가자는 실험입니다. 수학에서는 이미 확실하게 ⌈자연화⌋의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괴델(주63)등이 활약했던 1930년대와는 다른 전개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21세기이후의 인류의 지성은 틀림없이 이⌈자연화⌋의 방향으로 향해 가리라 예상됩니다.

 

고쿠분 그것은 결국, 이오니아적 자연철학과 피타고라스적 수학이라는 것이 대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네요.

 

나카자와 하지만, 수학의 상당히 선단부에서 겪고 있는 일이어서, 좀처럼 알지 못합니다. 애당초 해온 수학자 자체이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발견해 가는가라는 것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수학자에게도, 실제, 그것을 만든 그로텐디크(주64)나 오카 기요시(주65)와 같은 사람 이외에는 별로 그 일을 의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내가 보기엔, ⌈이것은 대단히, 데카르트 철학과 이오니아 자연철학을 결합하려 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느끼는 까닭입니다.

 

 

 

(주62) 나카자와 신이치『야생의 과학』코단사, 2012년.

(주63) (1906 – 1978년) 수학자 논리학자. 1940년경에는 나치스· 도이치로부터 도망쳐 아메리카 합중국으로 이주, 아인슈타인과도 교류.

(주64)(1928 -) 프랑스의 수학자. 스킴론에 의해 대수기하학을 일신했고, 호몰로지-대수와 범주론등에 의해 수학전체에도 영향을 주었다. 저서로 『수학자의 고독한 모험』등

(주65) (1901 – 1978년) 수학자. 현대수학 분야에서의 커다란 업적 외에, 『수학자의 공부(春宵十話)』등의 수필, 고바야시 히데오와의 대담 『 대화 – 인간의 건설』에도 유명하다.

댓글 3
  • 2021-12-26 19:31

    104쪽

    '티라노스'를 검색하면 바로 '참주'가 나오네요...

    https://search.daum.net/search?nil_suggest=btn&w=tot&DA=SBC&q=%ED%8B%B0%EB%9D%BC%EB%85%B8%EC%8A%A4

     

    110쪽

    神即自然 : 「かみそくしぜん」あるいは「かみすなわちしぜん」と読みます。

    (지난번에 제가 잘못 말했습니다^^;;)

     

     

     121~124쪽 단어와 해석 

    壁画(へきが)

    自著(じちょ)

    過酷(かこく)

    落書き(らくがき)

    竪穴(たてあな) 수혈, 세로로 판 굴

    紐(ひも) 끈, 조건이 붙음, 기둥서방

    不可解(ふかかい) 불가해, 이해할 수 없음

    よじる 비틀다, 꼬다, 뒤틀다

    豊穣(ほうじょう) 풍양, 풍작

    増殖(ぞうしょく)

    変わりばえ 바꾼 보람

    際限(さいげん) 제한, 끝, 한도

     

    라스코 벽화와 예술의 기원

     

    고쿠분---지난번 대담에서 나는 내 저서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했을까>에서 주장한 “인간은 한가해졌기 때문에 예술을 시작했다”고 하는 설은 충분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한가해졌기 때문에 예술을 시작했다고 하는 측면도 없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면 정주혁명 이전에는 예술은 없었던 것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라스코 벽화처럼 많이 있지요.

    요전에 이시카와 나오키 씨와 대담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이시카와 씨로부터 라스코에 대해 여러 가지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청춘과 독서>에 ‘원초로의 여행, 선사시대의 벽화를 돌아보다’라는 동굴벽화에 대한 연재도 했습니다. 그것을 읽고 굉장히 흥미로웠던 것은 벽화라는 것은 매우 가혹한 조건에서 그려졌다는 사실입니다. 동굴벽화란 선사시대의 사람이 지루하여 하품이라도 하면서 낙서를 한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라스코 벽화는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굉장히 좁은 통로의 수혈(세로로 판 굴) 안, 로프가 없으면 그릴 수 없어 보이는 곳에 그려져 있지요.

    나카자와---샤먼이 페니스를 세우고 있는 유명한 그림이 있지요. 그건 수혈 안에 끈으로 매달려서 그렸다고 합니다.

    고쿠분---즉 생명을 걸고까지 벽화를 그리는,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정열에 의해 그려졌습니다. 그 정열은 이미 타인에게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정열하고는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몸을 뒤틀어 들어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장소에 굳이 그린 거니까요. 그렇다면 타인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예술하고는 무관한 것이 아닌가 싶기까지 하면서, 굉장히 시사하는 바가 많았습니다.

    나카자와---라스코의 동굴벽화는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면과, 그래도 타인을 위해서 있다, 고 하는 양쪽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림이 그려져 있는 동굴에서는 의식이 거행되었지요. 필시 풍작을 위한 의식이겠지요. 6만~7만 년 전부터 존재하는 인류의 오래된 의식은 대개가 풍작과 관련돼 있습니다. <카이에 소바주>에서도 썼는데, 그건, 모래에 여성의 모습을 그리거나 동물의 모습을 그리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 풍작의식은 거의 남성비밀결사에서 실행되어서 여성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현대사회는 자본의 증식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 주제가 변한 보람도 없는 엔터테인먼트를 끝없이 생산하고 있습니다. 결국 인류는 같은 것을 하고 있는 겁니다.

    나도 라스코 동굴 입구 부근을 거닌 적이 있는데, 굉장히 알기 어려운 장소에 있어요. 지하동굴이 그런 곳에 있으니까 결과적으로 알기 어려운 장소가 된 것이 아니라, ‘일부러 알기 어렵게 했구나’ 하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래서 벽화가 있는 동굴은 우연히밖에 발견되지 않습니다.

     

    (주51)

    이시카와 나오키(1977~) 탐험가, 사진가. 사진집으로 『NEW DIMENSION』 『POLAR』 『最後の探検家(최후의 탐험가)』 등. 작가 이시카와 준(石川淳)의 손자.

    (주52)

    遊動生活者(ゆうどうせいかつしゃ) 遊動(ゆうどう) 유동, 자유로이 움직임

    고쿠분 고이치로, 이시카와 나오키 「遊動生活者の欲望論(유동생활자의 욕망론)」

    (주53)

    集英社(しゅうえいしゃ)가 발행하는 문예, 역사지. 독서에 관한 정보를 소개. 매월 20일 발행.

    (주54)

    상세한 내용은 나카자와 신이치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카이에 소바주III>을 참조.

  • 2021-12-26 23:06

    자연의 탈구축불가능성

    나카자와 – 조금 전 하이데거가 <헤라클레이토스>강의에서 언뜻 강요적으로 읽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실은 일본에서 이에 매우 유사한듯한 읽기를 하는 것은 오리구치시노부입니다. 오리구치의 고전 해석을 읽으면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거.. 어디에 증거가 있습니까?> 라는 것이 계속해서 쓰여져 있습니다만, 그것이 많은 경우 딱 들어맞습니다. 하이데거적인 말투를 한다면 오리쿠치는 자료를 언뜻 봅니다. 슬쩍 보고 그 자료의 부름을 아는 것입니다. 오리쿠치는 대단한 것을 대담무쌍하게 단언하고, 게다가 인용문헌을 붙이지 않습니다. 일설에는 <오리쿠치는 실제로는 방대한 문헌을 읽은 끝에, 멋으로 인용 문헌은 붙이지 않는다>라고도 말하지만, 저는 그것이 아니라 정말로 언뜻 보고 저런 시점으로 획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이데거와 오리쿠치는 매우 비슷한 존재 지층에 닿아 있습니다.

     

    고쿠분 – 이것으로 생각해 낸 것인데, 가라타니 고진씨가 <철학의 기원>이라는 이오니아 철학에 관한 논문을 연재했습니다. 매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가라타니씨의 해석에도 언뜻보고 무언가 <알겠다>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강력한 스토리가 만들어져, 매우 설득적입니다.

     

    나카자와- 가라타니씨도 일견의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자료를 많이 모으지 않았어도 아는 사람은 압니다. 아마도 그것은<자연>의 문제가 원래 가라타니씨의 안에도 있어서 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가라타니씨의 최초의 나쓰메 소세키의 안에도 이미 확실히 표현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최초에 자신이 이해하여 받아들인 세계의 지층을 반복하고 반복하여 문제 삼고, 고쳐 생각하는 생물입니다. 진짜 지적

     

    <반복>을 행하는 철학자야말로, 진실의 철학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반복>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자연>입니다. 개념의 구축 체계를 만드는 것이 뛰어난, 신수적인 수재에는 프로그램은 있어도, 그 프로그램은 언젠가 완결됩니다. 그러므로 <반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연>에 접하는 인간은 항상 불완전성을 안고 있습니다. 그 때마다 반복을 강화시킵니다. 동시에 그것이 구축의 원동력이 되어갑니다. 후기의 하이데거도 역시 그렇기에 동일 주제를 반복하고 반복하며 되돌아 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역시 그가 <자연>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쿠분 – 데리다가 만년, <탈구축가능성>과 <탈구축불가능성>이라는 것을 문제로 하고 있어, 제가 들었던 수업에서 무심코<이것은 자연이므로 탈구축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데리다에게 <자연>의 문제라는 것은 별로 논해지고 있지 않지만 저는 거기에 매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이므로 탈구축할 수 없다>라는 것은 생각한 것만큼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나카자와씨가 말한 것과 연관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카자와 – 데리다라는 사람도, 자신의 일변한 직감에 계속 집착한 사람입니다. 만년이 되면 데리다는 증여만을 말했습니다. 증여성의 세계라는 것은 니소의 사(?)에 상징되는 듯한 세계관입니다만, 그것을 이오니아적인 자연관이라고 말해도 좋고, 더 광대한, 유라시아 전역에 넓혀진 인류의 근원적인 철학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그것에 반복하여 돌아옵니다.

     

     

    ごういん [強引]1. 반대나 장애를 물리치고 억지로 하는 모양.

    おりくちしのぶ [折口信夫]

    1. 오리쿠치시노부

    다이쇼ㆍ쇼와기에 활동한 일본의 민속학자ㆍ국문학자. ‘샤쿠쵸쿠(釋迢空)’로 칭하여 시인ㆍ가인(歌人)으로서도 활동.

    どんぴしゃ [속어] 딱 들어맞음.

    いちべつ [一瞥] 일별, 한 번 언뜻 봄.

    だいたんふてき [大胆不敵] 대담 무쌍.

    いいはなつ [言(い)放つ]

    1. (서슴지 않고) 단언하다, 공언(公言)하다.
    2. 방언(放言)하다, 함부로 말하다.

    ダンディズム [dandyism]1.댄디이즘; 멋부림; 치레; 멋.

    からたにこうじん [柄谷行人] [인물명] 가라타니 고진(1941년-).

    かみしゅう [神秀] [인물명] 신수(606년-706년, 당나라)

    ぽろっと1.똑;쏙 2.무심코 내뱉는 모양;→ぽろりと

  • 2021-12-27 08:51

    114-130 단어

    124-129 해석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133
<世界> p66단어 (1)
뚜버기 | 2024.04.15 | 조회 14
뚜버기 2024.04.15 14
1132
<世界 : 이스라엘의 초조함>(수정 중)
초빈 | 2024.04.13 | 조회 30
초빈 2024.04.13 30
1131
<世界> p62 단어 (3)
띠우 | 2024.04.06 | 조회 30
띠우 2024.04.06 30
1130
<世界 : 이 인륜의 나락에서> (1)
겨울 | 2024.04.04 | 조회 208
겨울 2024.04.04 208
1129
<世界: 국제법과 학문의 책임> (1)
띠우 | 2024.03.29 | 조회 195
띠우 2024.03.29 195
1128
<世界>p56 단어 (4)
띠우 | 2024.03.29 | 조회 42
띠우 2024.03.29 42
1127
<世界> p49 단어 올립니다 (4)
띠우 | 2024.03.23 | 조회 68
띠우 2024.03.23 68
1126
<世界: 가자 지구, 인류의 위기> 번역
초빈 | 2024.03.22 | 조회 214
초빈 2024.03.22 214
1125
<世界> p44 단어 (3)
초빈 | 2024.03.15 | 조회 70
초빈 2024.03.15 70
1124
<世界> p41 단어 (6)
띠우 | 2024.03.09 | 조회 118
띠우 2024.03.09 118
1123
<느슨하게 철학하기> 377p (1)
초빈 | 2024.02.25 | 조회 112
초빈 2024.02.25 112
1122
<ゆるく考える> p402~, 단어와 해석 (1)
띠우 | 2024.02.23 | 조회 137
띠우 2024.02.23 137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