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哲学の 自然」11월 8일

꼭지
2021-11-07 20:49
277

哲学自然 p.34~36

꼭지

 

 

しがなおや [志賀直哉] 시가 나오야, 소설가(1883~1971).

こぞう [小僧] 1. 나이 어린 승려 2.나이 어린 사내 점원;사환 아이 3.나이 어린 사내를 얕잡아 일컫는 말

かみさま [神様] 1.신의 높임말 2. 아주 뛰어난 사람;귀신

※ 「小僧の神様」 : 「어린 점원의 신」 .1920. 시가 나오야

ふ-れる [触れる] 1.접촉하다;닿다 2.들어오다;느끼다 3.대다;건드리다

すし [寿司] 초밥

せつぼう [切望]

でっちぼうこう [丁稚奉公] 견습점원

…をかわいそうに思う …을 가엾이 여기다

きぞくいんぎいん [貴族院議員]

ぐうぜん [偶然]

よそお-う [装う] 1.치장하다;옷차림을 하다 2.가장하다;그런 체하다

おご-る [奢る] 1.사치하다 2.한턱내다

しわざ [仕業] 소위(所爲); 소행; 짓.

おもいこみ [思い込み] 1.확신함 2.굳게 결심함

バツ 틀리다. X의 뜻을 가짐 반댓말 まる

ばつがわるい [ばつが悪い] 거북하다; 겸연쩍다; 난처하다; 체면을 잃다.

じゅんすい [純粋] 순수

みごとに [見事に] 멋지게

さいけん [債権] 채권

さいむ [債務] 채무

かんかく [感覚]

お-う [負う] 1.지다 2.짊어지다;업다 3.맞먹다;알맞다

ふさい [負債] 부채, 빚

のが-れる [逃れる] 1.달아나다;도망치다 2.면하다;벗어나다

おこな-う [行(な)う] 1.하다;행하다 2. 불도를 닦다

ちょっとした [一寸した] 1.평범한;대수롭지 않은 2.어지간한;참한

ささい [些細·瑣細] 사소; 시시함; 하찮음

みのが-す [見逃す·見遁す] 1.못 보다;놓치다 2. 묵인하다;눈감아 주다 3.타자가 공을 치지 못하고 놓치다

いじ [意地] 1.고집 2.물욕;식욕

あたり [辺り] 1.그 곳;근처 2.…같은 곳;…어디 3.쯤;경

ひじょう [非常]

せいかく [正確]

ふか-い [深い] 1.깊다 2.겉에서 속까지의 길이가 길다 3.듬쑥하다

むすびつ-ける [結び付ける] 1.연결시키다;결부하다 2.결합시키다

たちきる [断(ち)切る] 끊다, 잘라 버리다.

しょう-じる [生じる]→ しょう-ずる [生ずる] 1.돋아 나오다;나다 2.발생하다;생기다 3.나오게 하다

がんぼう [願望]

じげん [次元]

たていと [縦糸·経糸·経] 날실

よこいと [横糸·緯糸] 씨실

くみあわ-せる [組み合(わ)せる] 짜 맞추다; 편성하다; 짝을 짓다.

せいぶつ [生物]

こうかん [交換]

おりもの [織物]

せいじ [政治]

つきすす-む [突き進む] (장애를 무릅쓰고) 힘차게 나아가다; 돌진하다.

いっぽう [一方]

インターネット [internet]

はんも [繁茂] 번무, 초목이 무성함.

ほかん [補完]

かかえこ-む [抱え込む] 1.껴안다;안다 2.떠맡다;떠안다

たえず [絶えず] 늘; 끊임없이.

たたかい [闘い] 투쟁, 싸움

そぎおと-す [そぎ落(と)す·削ぎ落(と)す]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 없애다[떼어 내다].

 

 

 

 

 

 

시장(저자)에서 시장(마켓)으로

 

고쿠분― 나카자와상은 『일본의 대전환』 이전부터 쭉 「증여」문제를 생각하고 계십니다. 저는 이번 대담을 위해 「카이에·소바쥬」의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주17)를 다시 읽었습니다만, 나카자와상은 저 책 가운데에서 시가 나오야의 「어린 점원의 신」에 대해서 접하고 있습니다.

시가 나오야의 「어린 점원의 신」은, 「언젠가 초밥을 먹어보고싶다」고 간절히 바라는 견습점원인 어린 점원을 가엾이 여겼던 귀족원의원이 , 우연을 가장하여 어린점원에게 초밥을 한턱내게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결국, 어린 점원은 우연을 신이 하신일이라고 확신, 귀족원의원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 겸연쩍은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순수한 「증여」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멋지게 그려낸 이야기지요. 증여는 반드시 채권감각이나 채무감각을 낳아내고 말아요. 인간이 「증여」라는 것을 절단하려하는 이유도거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마침내, 인간은 「증여」에 의해 빚지게 된 부채감으로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달아나고 싶어합니다.

 

나카자와― 역시 「증여」를 인간이 행하는 것은 어렵죠. 시가 나오야는 인간의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감정에도 간과하지 않는 고집의 고약함을 지닌 사람입니다만(웃음), 「어린 점원의 신」은 그 같은 심리를 비상하게 정확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증여」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을 비상하게 깊은 레벨에서 연결시키는 것인 만큼, 그것을 뭐라든 잘라버리고 싶다고 말하는 소원도 생깁니다.

인간은, 「증여」의 차원과 그 절단의 차원을, 씨실과 날실처럼 짜맞춰 가면서 살아가는 생물입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증여」라는 씨실을 자르기 어려워져 버려서, 교환이라는 날실만큼으로 이 세계를 구성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래서는 직물이 되지 않습니다. 경제의 차원에서도, 정치의 차원에서도 자꾸 그러한 방향으로 돌진해 버리고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인터넷등을 통해 또다시 씨실을 무성하게 해서, 그것을 이것을 보완하려는 움직임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 차원은 인간 가운데에 늘 껴안고 있어서, 서로간에 끊임없이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증여성」을 떼어 낸 「교환인간」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증여적 부분을 전부 떼어 내버리면, 틀림없이 합리적인 개인이 되겠지만, 그렇다면 인간이라는 생물은 성립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17) 나카자와 신이치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강담사선서 메티에. 2003년

댓글 3
  • 2021-11-07 22:02

     

    p30단어와 해석 띠우

    あびる [浴びる]뒤집어쓰다

    びんかん [敏感] 민감

    スーフィー [スーフィー] 이슬람교의 한 종파

    パラメーター parameter 매개 변수.

    るいべつ [類別] 유별. (=分類(ぶんるい))

    ぞうよ [贈与]

    せきたん [石炭]

    ふりそそぐ [降り注ぐ] (햇빛이) 내리쬐다, (비유적으로) 내리퍼붓다.

    とりこむ [取(り)込む] 거두어들이다

    ぎょうこ [凝固] 응고

    ばいかい [媒介]

    ほじょ [補助]

    だんかいてき [段階的]

    へんけい [変型]
    ぶんめい [文明]

    ちゅうしょう [抽象]

    まっしょう [抹消]
    だんそうせん [断層線]

    つかれる [憑かれる] 들리다, 씌다, 홀리다

    きゅうそく [急速]

    つきうごかす [突き動かす] 밀어붙여 움직이게 하다; 또, 강한 자극을 주어 마음이 움직이게 하다.

    みとどける [見届ける] 끝까지 보고 확인하다, 마지막까지 지켜보다

    もさく [模索·摸索]
    いきょ [依拠]
    おおざっぱ [大雑把]대략적임, 조잡함. 대충, 얼추. 대범함.

    みとりず [見取図]겨냥도, 약식도.

  • 2021-11-08 08:16

    26~30쪽 뚜버기

    推進派(すいしんは)

    惹(ひ)かれる

    とっくに 훨씬 전에; 벌써.

    破綻(はたん)

    事業(じぎょう)

    廃棄物(はいきぶつ)

    なのに …인데도, 그런데도((‘それなのに’의 준말)).

    拘(こだわ)る 구애되다・작은 일에 트집을 잡다

    拘(こだわ)り 고집, 집착

    様相(ようそう)

    呈(てい)する 드리다;바치다・나타내다;보이다

    古川和男(ふるかわかずお) <原発安全革命(げんぱつあんぜんかくめい)> 저자.

    トリウム 토륨・원자 번호 90의 방사성 금속 원소((기호:Th)).

    製造(せいぞう)

    保持(ほじ) 보지, 보유, 계속 유지함.

    公開(こうかい)

    外務省(がいむしょう) 文書(ぶんしょ)

    掣肘(せいちゅう) 제약

    保障(ほしょう)

    希少(きしょう)

    任(まか)せる 맡기다.…하는 대로 내버려 두다, 마음대로 …하게 하다・. 위임하다, 일임하다. (=ゆだねる)

    謎(なぞ)

    埋(う)める 묻다; 메우다; 채우다; 막다; 벌충하다; 보충하다.

    外(はず)す 떼다・떼어 내다・빼다;벗기다

    石油(せきゆ) 石炭(せきたん)

    取(と)り込(こ)む 거두어 들이다

    願望(がんぼう)

    土本 典昭(つちもと のりあき、1928 – 2008)は、日本の記録映画作家、ルポルタージュ作家

    切抜帖(きりぬきちょう) 필요한 기사를 오려 내어 붙이는 책; 스크랩북.

    賄(まかな)える 마련해 공급하다, 조달하다.

    少々(しょうしょう)

    抹消(まっしょう)

    突(つ)き動(うご)かす 밀어붙여 움직이게 하다; 또, 강한 자극을 주어 마음이 움직이게 하다.

     

     

     

    그러나 제가 그 책에서 배운 것은 그 뿐 만은 아닙니다. 저는 원전사고 이후, 왜 원전추진파 사람들이 저렇게 핵에너지에 끌린는지 이상했습니다. 일본의 원자력정책은 벌써 파탄나 있어고, 핵연료 순환 사업 따위 잘 될 리가 없음은 더욱 명백합니다. 몇만년이나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핵폐기물을 어떻게 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왜 이 정도까지로 핵에너지에 집착하는 걸까. 나로서는 열심히 그들의 기분을 이해하려고 한 것입니다(웃음). 그래도 합리적인 이유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요컨대 있다면 핵에너지 신앙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원자력정책의 표면에는 핵병기의 보유라는 숨겨진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서, 가라타니 고진씨도 뭔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주12) 이것은 정부의 원전에의 집착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하나의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일본정부가 핵병기제조능력의 보유를 노리고 있다는 것은 근년에 공개된 외무성의 내부문서로부터도 알수 있습니다(주13). 확실히 예전에는 이런 의식도 있었겠죠. 그래도 지금은 핵병기 보유의 의지가 원전정책을 지탱하고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습니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합리적인 해석은 에너지의 안전보장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은 자원이 없기 때문에 핵에너지로, 라는 이유인 거죠. 하지만 우라늄도 수입하고 있는 겁니다. 게다가 우라늄은 석유보다도 희소한 자원입니다. 그런 것의 수입에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전보장을 맡긴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나는 핵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에 반대하지만, 반대라든가 그런 것 이전에, 왜 사람들은 이 정도로 까지 핵에너지에 끌리는가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 자신이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 의문을 품은 채 <<일본의 대전환>>을 몇 번이나 다시 앍었는데 차차 수수께끼가 풀려왔습니다. 힌트가 된 것은 나카자와씨가 논하는 ‘증여’라는 문제입니다.

    나카자와씨는 이 책에서 원자력기술의 구조와 자본주의의 구조를 병행해서 논하고 있습니다. 원자력기술과 자본주의는 각각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의 내부에 ‘외부성’을 채워넣어, 자기완결적 시스템을 만들어 넣으려 한다는 점에서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라고. 그런 자기완결적 시스템을 지향할 때는, 어쩌면 고의로 무시하는, 고찰 대상에서 완전히 빼버리는 것이 증여라는입니다.

    어떤 것인지 말하자면, 예를 들어 에너지에 관해 말하자면, 우선 태양으로부터의 에너지의 증여가 있고, 그것이 매개되어 석유와 석탄이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매개된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원자력기술은 그런 태양의 힘 그 자체를 생태권에서 거두어 들여서 내 것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태양으로부터의 증여 없이 살아가는 것, ‘증여성’의 차원을 없애버리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핵에너지가 실현한다고 기대되는 것은 증여를 받지 않는 삶인 것입니다. 증여없이 자립하여 살고싶다는 꿈, 인간이 완전히 홀로서서 살아간다는 갈망, 그것이야말로 핵에너지를 욕망하는 신앙의 근간에 있다.

    실제, 핵에너지가 주목받기시작한 1950년대에는, 각 빌딩 지하에 원자로랄지, 각 가정에 원자로랄지가 있다는 것을 망상했습니다(주14). 작은 상자(원자로)가 하나 있으면, 아무 것도 없이 그것만으로도 모든 에너지가 조달된다. 인간이 증여를 받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 이 꿈이 인간들의 마음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재계가 지금까지도 원자력에 집착하는 것, 그렇게 생각하며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카자와씨가 핵에너지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일신교’의 이야기를 꺼내신 것에는 약간 위화감이 있었는데, 그 이유도 어쩐지 알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보면 확실히 핵에너지 ‘신앙’이라 부를 반한 것이 있고, 그것은 ‘증여’의 수준을 뭐랄까 말소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 구조를 나카자와씨는 ‘일신교’라고 말한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12: 가라타니 고진은, 후루카와 카즈오 <<원전안전혁명>.(문춘신서, 2011년)을 인용하면서, 토륨을 이용한 원자력발전은 우라늄 보다 안전한 동시에 깨끗하고 소형이며 배전(配電) 손실도 적음에도 불구하고 채용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거기서는 플루토늄이 추출되지 않아서 즉 핵병기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쓰고 있다(<반원전 데모가 일본을 바꾼다>, 가라타니 고진 공식 웹사이트). 이 지적이 매우 중요한 것은 강조해 두고 싶다. (코쿠분)

    주13: 외무성이 1969년에 작성한 ‘내부문서’ <<우리나라의 외교정책대강>>에는, ‘핵병기에 관해서는, NPT에 참가 여부에 관계없이 당면 핵병기는 보유하지 않는 정책을 취하는데, 핵병기 제조의 경제적, 기술적 포텐셜은 항상 보유함과 동시에 이에 대한 제약을 받지 않도록 배려한다. 또한 외무성은 2010년, 이 건에 관한 조사를 행하고 있다. (코쿠분)

    주14: 당시의 핵에너지에 대한 기대를 이해하는 것에는 당시 쓰여진 것을 읽는 것이 좋다. 그것을 위한 일급자료가 쓰지모토 노리아키 감독의 영화 <<원전스크랩북>>(1982)이다. 이것은 원자력 관련의 신문기사를 오려낸 것만을 사용한 유티크한 다큐멘타리 작품인데, 실험영화에서 보여지는 지루함은 전혀 없다. 환영할 것은 2011년 DVD화 되었다.(고쿠분)

     

     

     

  • 2021-11-0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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