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장 엄마와 딸의 미소지니> 후기

띠우
2021-07-18 19:04
277

9장 엄마와 딸의 미소지니

 

딸에게 어머니는 이중적인 존재가 된다. 자신의 인생을 부정하면서도 같은 방식의 삶을 딸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딸은 엄마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자신의 삶이 타인(남성)의 힘을 빌려야함을 예견하면서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출구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여성들은 지나게 된다. 딸은 이것을 결혼을 거쳐 어머니가 되는 순간 더욱 강하게 깨닫게 된다. 근대가족 구조 속에서는 어머니는 자신이 지불한 대가를 아이에게 치르게 하려 한다. 아들은 출세하여 아버지의 횡포에서 어머니를 구출해 효도를 다하는 것, 아들을 마마보이로 길러내서 호주지위를 상속시킨 뒤에 그 뒤에서 힘을 휘두르려고 하는 것이다. 딸의 경우는? 다른 집 며느리가 된 딸에게서 무언가를 바랄 수 없었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친정의 일까지 딸이 맡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시집갔다고 해서 친정 부모님의 간병 의무는 없어지지 않고, 어머니도 간병요원으로서 딸을 기대한다. 과거 10년 동안에 ‘간병받고 싶은 상대’의 친족관계 중 우선순위는 며느리에서 딸로 변화하여, 실제 간병요원도 거기에 부응하여 딸의 비율이 늘고 있다. 현실은 딸에게 의존하면서 표면상의 원칙은 아들 선호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게다가 딸에게 보살핌받는 것을 ‘한심하다’고 하는 어른들을 보는 답답함이란.

90년대 이후 약 20년간에 여학생들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은 급상승하여 단과대학 진학률을 눌렀다. 그것도 의학부나 법학부 등의 실용학문 지향의 전공이 늘었다. 최근의 의사시험은 합격자의 약 30%가 여성, 사법시험도 약 30%가 여성이다. 여기에는 2세대에 걸친 어머니들의 노력이 들어가있다. 딸의 고등교육은 엄마의 서포트 없이는 달성할 수 없다. ‘여자에게 교육은 필요없어’라는 아버지에게 대항하여 어머니는 딸의 교육에 적극적이었다. 딸은 공학부나 경제학부에는 좀처럼 진학하지 않는다. 결혼 전에 OL이었던 어머니 세대는 자격증을 가진 직업에서나마 여성들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출산율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딸은 '여자의 얼굴을 한 아들'이 되었다. 아들만큼 기대받고, 아들만큼 지원을 받으며 딸들도 자란다. 그러나 딸은 아들과 같지는 않다. 딸은 아들과 똑같이 엄마의 기대에 부합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동시에 딸로서의 기대에도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자의 선택지가 넓어진 시대라는 것은 '딸이자 아들'이라는 2인분, 딸의 짐이 증가한 시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딸과 아들이 전부 있다면, 엄마는 아들 쪽에 몰입한다. 그러면 딸은 엄마의 기대에 응해서 우등생이 되야함과 동시에 아들의 지위를 위협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엄마는 딸의 행복을 기뻐할까? 엄마는 딸에게 기대하면서, 딸이 실제로 자신이 달성할 수 없었던 것을 완수하면, 기쁜 것만이 아니라 복잡한 생각을 할 것이다. 아들이 무엇을 달성하더라도 엄마는 그것과 경합할 필요는 없지만, 딸이라면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그것을 달성하지 못했던 변명을 할 수 없다. 물론 자신에게는 없었던 응원단이, 자기 덕분에 딸에게는 있다고, 스스로에 대해서 변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달성한 것은 딸이었지 자신은 아니다. 엄마에게 있어서는 딸이 ‘스스로 획득한 가치’를 달성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타인(남)으로부터 주어진 가치’도 손에 넣지 않으면 엄마의 야심은 완성되지 않는다. 엄마가 되지 않은 딸을, 바꿔 말해 엄마가 되는 것으로 자신과 똑같은 고생을 짊어지지 않는 딸을, 엄마는 한 사람의 어른이라고 인정하는 일은 결코 없다.

오늘날, ‘엄마와 딸의 관계’를 논하는 것은, 역사를 불문하고 어느 시대에도 존재하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논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또 이십년 전이나 사십년 전의 엄마와 딸의 관계를 논하는 것과도 같지 않다. 역사적인 조건 변화로부터, 현대에는 아들이 아닌 딸이 모친의 의존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은 딸의 지위향상의 증거일까?

사노 요오코는 그 세대에 드물게 대학교육을 받은 여자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잘난 딸보다 허약한 오빠를 맹목적으로 사랑했다. 그 오빠는 11살 때 병사했는데 사노는 오빠를 대신해서 성공한 화가가 되었다. 딸의 화려한 영광을 보면서 어머니는 언짢은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오빠가 아닌 자신이 죽었어야 하는게 아닐까라고 사노는 생각했고, 그렇게 만들고 있는 어머니를 증오하고 자신을 책망했다. 아들의 경우에는 아버지를 미워하더라도 자신을 탓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와 엄마와 딸과의 관계와의 결정적인 차이가 아닐까. 엄마를 미워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엄마는 억압자이면서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사노의 책에는 엄마에 대한 원망 이상으로 자신에 대한 책망의 목소리가 가득 있다.

사노는 치매가 되고 난 후의 어머니와 화해한다. 그녀는 제정신의 엄마를 한 번도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흐리멍텅해진 어머니의 입에서 “미안해, 고마워”가 나왔을 때 비로서 사노는 자신을 오십년 이상 괴롭혔던 자책에서 벗어나며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와 관련해 사노는 “나는 용서받았다”고 표현했는데, “나는 엄마를 용서했다”라고 쓰지 않았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 정도로 그녀의 자책감은 강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든, 어머니의 기대를 배반하든 어느 쪽이라도 딸은 어머니가 살아있는 한 엄마의 심리적 속박에서 도망칠 수 없다. 엄마를 따라도, 엄마를 거역해도 엄마는 딸의 인생을 계속 지배한다. 엄마는 자신의 사후에까지도 딸의 인생을 지배하려 한다. 그리고 딸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의 감정은 자책감과 자기혐오로서 나타난다. 어머니를 좋아하게 되지 않는 자신을 딸은 좋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엄마는 딸의 분신이고 딸은 엄마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딸에게 있어서의 미소지니는 항상 엄마를 포함한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가 된다. 이 때문에 처방전은 노부타가 말하듯이 “나는 당신이 아니야”라고 어머니도 그리고 딸도 서로 상대를 향해 고하는 것으로 밖에 시작될 수 없다.

 

-- 9장은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나의 경우에는 엄마와의 관계가 9장의 내용과는 많이 달라서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후기를 쓰면서 다시 생각해 보았는데 엄마는 나에게 무척이나 쿨한 태도를 보인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인간으로서 좋아하고 있다. 좋아한다고 해서 세상이 이야기하는 효도를 잘 하느냐라면 그렇지 않다. 가끔 나는 부모님의 생일도 잊는다. 아빠와 달리 엄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어떤 기대들도 나에게 크게 하지 않는다. 우리 엄마는 왜 그럴까? 요즘은 딸밖에 없는 우리 친정부모님이 연세가 드시는 것을 느끼면서 노후에 대해 우리 자매들도 생각이 많아지고 있다. 9장과 관련되어서는 좀더 생각해보아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요약하는 것으로 후기를 마쳐야 할 것 같다. 

댓글 1
  • 2021-07-24 19:41

    대를 이어 여성이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 수 없는 것은 그렇게 살아온 우리 윗세대들이 그들이 살아온 방식, 자기가 대접 받는 방식을 그대로

    딸들에게 며느리에게 주변의 여자들에게 행하였기 때문에 곤고히 내려온것입니다. . 피해 당사자인 여자들 스스로가 생각하고 불편해하고 변해야 한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갈등만 초래할 뿐.. 변해야 하고 인간답게 대접받고 대접하며 살고 싶은 나부터가 시작일것 같네요. 나자신에게 내딸에게 내 며느리가

    될 어느 사람에게 내가 대접받고 싶은 것처럼 그렇게 대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귐과 소통이 즐겁고 기쁜 관계로요...어제 "세자매"라는 영화를 보며

    윗세대가 행한 폭력이 가해자는 스스로 용서했지만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고 미안하지 않아하는 장면이 내내 마음에 남네요. 용서받으려 하지 않는 자를 용서해야하고  스스로 치유하지 못해 병들어 가는 여자들의 고통이  생생히 보여 지더라구요. 시대가 흘러가고 세대가 달라져도 폭력은 행태만 달라질뿐

    변하지 않아 스스로 자해하는  모습, 자매애로 극복할 수 있다는것지..그럼에도 생은 흘러가고  더디지만 변해가는 건지도 모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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