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치즈코의 <여성혐오> 제 8장 후기, "나는 여자다"

야생
2021-07-11 18:08
281

제 8장 '근대의 미소지니'에서 가장 의미있게 다가온 부분은 마지막 문단이다.

 

"사람이 '여자가 될' 때에, 일단은 '여자'라고 하는 카테고리가 짊어진 역사적인 미소지니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 카테고리가 부여한 지정석에 안주함으로,  '여자'가 탄생한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란 그 '지정석'에 위화감을 느끼는 자, 미소지니에 '적응'하지 못한 자이다. 그러므로 미소지니로부터 출발하지 않은 페미니스트는 없다.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것은 미소지니와의 갈등을 의미한다. 미소지니를 가지지 않은 여자(그런 여자가 있다고 한다면)에게는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가끔 '나는 여자라고 하는 것에 한 번도 구속된 적 없어'라고 큰소리치는 여자가 있는데, 이것은 '나는 미소지니와의 대결을 피해왔다'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여자'라고 하는 강제된 카테고리를 선택으로 바꾸는 것, 그 안에 '해방'의 열쇠가 있을지 모를 일이다."

 

나도 가끔 있는 여자 중에 한 사람이었다.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불편을 느껴 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우에노 치즈코가 이야기 하듯 미소지니와의 대결을 피해왔다고도 볼 수 없다. 미소지니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아왔으니 말이다. 어릴 때부터 가부장제 사회의 세계관이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내면화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 가부장제의 보루인 기독교 안에서 미소지니를 절대 진리인양 받아들이며 살았으니! 페미니즘 입장에서 나는 정말 구제 불능이었다.

 

그런데! 30여년 나를 지배해 왔던 기독교에서 벗어나는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그제서야 비로소 페미니즘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나는 여자라고 하는 것에 한 번도 구속된 적이 없어'라고 말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여성혐오를 인정할 때 여성으로 살아 온 나의 삶이 다 부정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이어갔다. 페미니즘이 '그동안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들'을 조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문제에 이름이 붙여지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그래, 나도 여자다! 여성 혐오의 피해자다!'라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때부터 나도 해방의 열쇠를 쥐고 여자라고 하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나다운 삶을 열어가고 있다.

 

우에노 치즈코의 '여자라고 하는 강제된 카테고리를 선택으로 바꾼다'는 것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 우리는 태어나보니, 여자였고, 여자로서의 삶을 강요당했다. 여성혐오 속에서 사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것은 우리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여성이라고 하는 운명(강제된 카테고리)을 선택으로 바꿀 자유가 있다. 그 선택은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 혐오를 기반으로 굴러가는 것, 가부장제 사회의 가치를 내면화 하며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 때 여자라고 하는 강제된 카테고리에서 해방될 것이다. 

댓글 4
  • 2021-07-11 19:48

    내가 20대에 야생님을 만났다면, 우린 완전히 극과 극에 있었을 거예요. 그 당시 나는 주위의 모든 공기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억압적이었거든요.

    너무 이른 투쟁이 날 지치게 했는지, 난 그저 별다른 생각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새로이 눈을 뜨고, 열심히 도전하며 살아가는 야생님을 보면서 내 안의 투쟁의 잔불들이 피어나려 하네요.  반갑습니다. 야생님!!  응원합니다!!!

    • 2021-07-11 20:32

      감사합니다, 당근샘!

      함께 가요^^

  • 2021-07-24 19:20

    딸딸아들아들의 장녀였던 나는 맏이라는 순서때문에 여자이면서도 나름 차별을 덜 받고 자랐다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의 남아선호 사상, 엄마의 아들에 대한 병적인 집착, 등등도 결혼전에는 그런가보다 라고 별로 내인생에 영향을 주지는 못해지요.

    집을 벗어나서  독립적으로 살고 싶었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 느낀 감정은... " 세상 참 후졌다"였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나서보니  여자에게 결혼은 호주의 변경을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내 호적의 호주가 바뀌걸 보며 느낀 완전하지 못한 성이 여성이라는 느낌. 나 혼자서 어찌해보지 못할 난감한 일도 세월이 흐르니 나보다 먼저 불편함을 느낀 선배들이 호주제도 없애 놓았으니 세상 참 많이변했네요. 보지도 못한 남편의 아버지 제사도 지내야하고 직장다니며 아이 낳고 나니 시집에 친정에 돌볼 식구는 배로 늘고  일을 나눠 하기보다는 늘기만하고 게다가 시어머니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위치가 나를 밟고 선 승리자의 행세를 하니... 참 별난일이 더군요.

    10년만에 이혼과 분가중에 분가를 하며 스스로 "나쁜 며느리"로 살기로 했습니다.

    착한 며느리 그만하려고 작정을 했죠. 피박면할 정도의 역할로 충분하다고...

    스스로 내 권리를 주장하고 치사할 정도로 내것, 나를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겨주지 않더라구요.참는것은 바보나 하는짓이고 또박또박 따져야 겨우 내몫이 돌아오더군요. 결혼은 사랑이 아니었고 희생과 끊임없는 노동과 자기분열로 자식 낳기.키우기 . 혼자 벌든, 둘이 벌든 버는것 보다 재산을 더 늘려야만 하는 경제방식이 살림이라는 것이더군요,. 참 치열하게 살았고 돌아보며 미친 세월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돌아보니 60이 내년이네요.

    세상은 제가 살아온 시간에 비례해 엄청난 속도로 변했고 변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정리도 하기전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도 벅차구요. 그렇지만, 내 삶을 관통하는 여성으로서의 살아감에 패미니즘은 제겐 가장 실용적인 삶의 방식을 생각하게 합니다. 여성으로서 남성으로서 사는게 아닌 인간으로서 사는 법을 생각하게 하는것 같습니다. 그것이 내주변을 함께 인간답게 살게하는 방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함께 공부해서 좋아요. 야생님의  글도 제가 미쳐 생각 못한것들도 생각나게 해서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1-08-01 13:30

      루시아샘처럼 씩씩하게 살아온 분이 이렇게 공명해주시니, 힘이 납니다.   

       

      페미니즘, 내 주변에 있는 모두를 인간답게 살게하는 방식이다! 옳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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