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엔즈 입문 제 2부 정리(159쪽~191쪽)

야생
2020-11-16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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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엔즈 입문 제 2부 정리(159쪽~191쪽)

 

제2부 사이엔즈의 어떤 생활
-2015년 6월-

 

서두

  멋진 등나무 시렁을 바라보면서, 봄에서 초여름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스즈카에 이사 온지도 5년이 지났다. 그것 참, 여러가지 기분이 들었다. 한마디로 다 말할 수 없다. 한가지 말하자면, ‘사이엔즈 연구소와 사이엔즈 스쿨을 토대로 새로운 사회를 시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스즈카에서, 한사람의 시민으로 생활해보자’는 마음도 있었다. ‘사이엔즈 스쿨의 어떤 생활’이라고 블로그를 시작하기까지 했다. 6년째에 들어선 지금, 뒤돌아서 그 때 그때의 장면에 서 본다면,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지금 어떤 기분인가 하면, ‘등에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가면서 해왔기에, 상당히 가벼워졌네.’ 감개무량하다.

  손자가 가까이에 셋, 멀리 다섯, 그리고 하나는 뱃속에서 이 세상에 태어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어떤 손자도 귀엽다. 어떤 손자라고 말하지만, 내 손자만으로 머물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만큼 이 손자들에게 무엇을 선물하고 싶은가, 지금 어떤 사회를 선물하고자 하고 있는가, 그런 질문이 나온다.

  이사왔던 즈음 스즈카에서는 ‘새로운 사회의 실험’을 ‘친절한 사회의 실험’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것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생활하고 있는 상태를 ‘애즈원 커뮤니티 스즈카’라고 불렀다. 그 실험은 2000년부터 시작되었다. ‘이런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착수한 것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실패하기도 했다. 또한 그 목적의 수단으로서 시작했던 것이 눈앞에 닥친 바쁜 일에 쫓겨 수단이 목적처럼 되거나 했다. ‘실패가 많았네’라고 선배들은 즐거운 듯이 술회한다. ‘그러네, 꽤 평판도 좋고 번창했던 보육원도 그만둬버렸어’ ‘그래?’라고 그때는 무심코 지나갔었다.

  번창했던 보육원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의논을 하는데, 대화를 하면 할수록 얘기가 안 되게 된 것 같다. '문제다' 라고 하는 자신, 대화를 하려고 하는데 대화가 안 되는 자신이 어떤 상태의 자신인지,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보육원을 닫자고 했단다. 실제는 그 나름대로의 경과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그것을 위해서 아주 간단하게 닫아버린 것이다. 그런 경위를 듣고 놀랐다.

  그 후 그 일을 하던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그 테마에 접근했을까. 그 무렵 그것을 검토할 수 있는 사이엔즈 스쿨의 전신이 되는 검토 기회⋅연구 기회가 모양을 갖추어가고 있었다. 거기서 무엇 때문에 서로 이야기할 수 없게 되는 것인지, 수단이 목적이 되어 가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탐구가 시작되었다. 평소의 생활에서는 보거나 듣거나 느끼거나 생각하거나 하면서의 나날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고 있는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물음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단정짓는' 자신의 상태를 보아온 과정이 있었던 것 같다. 사이엔즈 스쿨로서 연구 시설도 생기고, 누구나가 평생토록 사람이나 사회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제도를 목표로 NPO 법인으로서 스타트한 것이 2006년. 그 무렵부터 애즈원 커뮤니티에 관련된 사람들의 일상 모습에서도 자신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관심이 가는 조짐이 느껴지게 되었다고 한다.

 

최근의 마이라이프 미팅에서

  한 달에 한번 <마이 라이프 미팅>이라는 모임이 사이엔즈 스쿨의 주최로 마련되었다. 매월 두 번째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누구라도 참가할 수 있다.

  지난 4월에 미팅이 있었다. 테마 '무심한 일상을 되돌아보지 않겠습니까....' '무심한'이란 의미심장한 말이지 않은가. 무심하기 때문에, 확실히 ‘이렇게 해보려고, 이렇게 했다. 해보니 어떠했다.’ 라는 (종)류의 것만은 아니다. 이것은, ‘무심하게 지내고 있는 중에, 자기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단정”이 숨어서, 그것이 현상으로서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제각각 침묵하는 시간이 있고, 가끔 한마디씩 말하는 사람이 있고, 말하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사람이 있다. 왠지 모르게 각자 안심해서, 뭐랄까 너무 안심해서,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듣고, 무심결에 조는 사람도 있다.

  그 날, 참가한 나가노 사카에씨의 감상.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한동안 없었던 탓인지 기분이 좋았다. 일상의 한 장면이나 작은 사건에서 본질적인 것에 이야기가 다다르는 것은 보물 찾기 같은 재미가 있을지도....’

 

인상에 남는 몇 가지

* ‘우연’인 걸까.

  해냈다. 해냈어!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마침 조건이 갖추어져서 처음으로 그렇게 된 실제.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 자신의 언어로
  말에 반응해서 말을 듣고 알았다면, 어떻게 된 걸까. 똑같은 말을 사용하는 것 같아도 사람마다 다른 말을 하고 있다!?

* 나의 자유, 상대의 자유
  생각한 걸 말하고 있다. 나도 상대도. 사고하는 것이 귀찮으니 사고하지 않고 하는 쪽이 편하다? 그런 경우도 있을까? ‘시키는 대로 하고 있다’라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런 경우가 (실제) 있을까?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을 뿐인 것 같기도 하지만....

  우연히 모인 사람들이어서,여럿이 보고 느낀 것을 서로 꺼내 놓고 함께 듣는 시간은 그 때만의 것이고, 끝나버리면 거기에는 흔적도 없다. 그래도 따스한 공기에 둘러싸여 마음이 가라앉는 것은 분명 실제 세계로 마음이 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이나 배경을 더욱 더 듣고 싶다. 같은 세계에 산다는 건 당연한 것인데도 같은 세계에 살 수 없다는 것은 정말로 이상하다.

  그 미팅 2일째 오후, 나의 앞에 앉았던 후나타상이 '미야찌씨를 보면 잘난체하고 있다고 여겨지는데요'라고 말을 시작했다. 순간, 나는 내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이, ‘응, 후나타씨가 나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였다. 그 순간이 지나서 바로 ‘아냐 아냐, 후나타씨는 자신 안에서 떠오른 “잘난척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려고 한다’고 고쳐서 받아들였다.

  그때 미팅에서는 후나타씨가 말한 것에 관해서, 보거나 듣거나 느끼거나 날마다 그렇게 하고 있지만, ‘무엇에 반응하고 있는 걸까?’ 라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뭔가를 봐서, 그 본 것에 반응하고 있다고 하지. 실제는 그 지점, 어떻게 되어 있는 걸까?’

  ‘어쨌든 본 그것에 반응하고 있다고 여기는 그 자신이 먼저 있는거네.’

각자 자신의 실제 예를 서로 드러내서 말했다. 후나타씨가 말한 것에 관해서 그와 나 사이에는 후일담이 있지만, 그것은 나중에.

  3월 모임에 참가한 요시다 준이치씨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요시다씨는 커뮤니티 회사 ‘어머니도시락’에서 영업 일을 하고 있다.

‘요전에 자동차 수리공장에 가서 말을 걸었는데, 거기서 일하고 있던 사람이 나와서 무슨 용무냐고 물었는데, 그때 아! 했다. 그 사람이 하려고 했던 게 있었구나 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러자 나는 자기 도시락 영업밖에는 머리에 없었구나 라고 보여져서...... .’

   ‘한사람 한사람을 존중한다’라는 게, 의식상으로는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해도 실제 사람과 관계할 때 상대가 분명히 “존재한다”라고 생각하며, 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내면 세계가 있다고 여기며 만나고 있는 것일까? 어떨까? 라고 나를 돌아봤다. 그 이야기는 그것으로 듣고 흘렸지만 그 후에 묘하게 마음에 남아 있다.

 

선배들 마음의 궤적에 닿으며

  2010년 초는 아직 스즈카에 이사오지 않았지만 사는 곳이 근처의 쯔시여서 가끔 사이엔즈 스쿨이 개최하는 코스에 참가했다. 그 무렵 ‘연수생 코스’라는 게 있었다. 그 코스의 참가자는 주간에는 일 등등을 하고 저녁에는 사이엔즈 스쿨 연수원에 온다. 저녁 7시부터 10시  사이에 와서 다음 날 아침 7시부터 8시까지 미팅을 하고, 다시 낮에는 각자의 생활 터전으로 가는 식이었다. 이것을 3일 이상 계속했다.

  ‘자신을 알기 위한 코스’라든지 ‘내관 코스’등 1주일간의 합숙 코스의 개최가 궤도에 올라왔다. 애즈원 커뮤니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재밌네’와 같은 느낌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던 때였던가. 합숙코스 중에는 ‘알겠다’고 생각했는데, ‘일상에서는 왠지 무언가 잘 안돼’라고 하는 것이 있었던 듯, ‘일상화 레슨’이라든가 ‘연수생 코스’가 생겨났다. 그 즈음 우리 부부도 사이엔즈 스쿨의 합숙 코스에 참가하고 있었는데, ‘생활 속에서 여러가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다는 걸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단정짓는 일은 없을까?’ 그런 지점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합숙 코스에서 ‘알았다’고 한 것이 일상 생활에서는 어떻게 나타날까, 거기를 보고 싶어졌다.

그 때의 에피소드, 하나
  연수생 코스. 우리들은 저녁에 차로 쯔시에서 스즈카에 있는 연수원으로 향한다. 길이 두개가 있다. 나는 ‘이쪽 길이 가깝다’고 말한다. 아내는 ‘아냐, 이쪽 길이 빨라’. 운전하면서 점점 어조가 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사소한 것 같기도 하고 자주 있는 일이지만, 이런 것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거야’라고 하는 마음이 강해지는 지점. 그 장면을 모임에서 모든 사람들과 함께 검토했다.

연수생 코스에서 에피소드, 둘
  저녁의 연수원의 식당. 각자의 생활의 장으로부터 온 코스 참가자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뭔가 냄새가 나는데, 뭘까?’

모두 떠들어대고 있었다. 거기에 나중에 구리야 쇼씨가 들어와서, 입구에 잠깐 서있는가 했더니 곧 나가버렸다. 그 후 모임 중에

‘구리야씨, 그 때 식당에 들어왔다 금방 나갔는데, 무슨 생각을 했었지?’라고 묻는 장면이 있었다. 

‘냄새가 난다고,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오늘 닭똥을 치웠기 때문에’

일동 박장대소했다. 거기서는 ‘이상한 냄새는 왠지 수선화일지도’라고 했지만. ‘무엇에 반응하고 있는 걸까?’ 라는 화제를 검토할 수 있었다.

  ‘본다’는 것은 대상이 실제 거기에 있고, 그것을 그대로 ‘보고 있다’고 계속 생각해 왔다. ‘본다’는 것을 새롭게 어떤 것을 하고 있는지 자신을 재료로 해서 관찰해 보면, 대상이 거기에 있다고 해도 그것이 안구로부터 자극을 받아 뇌에 상을 묶을 때까지, 그 사이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짧은 순간에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고 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하물며 관찰이라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의 받아들이는 방법이나 경험이나 체험의 기억 등도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순간의 일로 거기에 초점을 두지 않으면, 그런 것이 있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 그것을 ‘본다’든가 ‘보고 있다’ 라고 말하고 있어도, 혹시 ‘보고 자기 안에 반응이 일어나고, 그 순간에 일어난 반응을 본다’ 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초봄. 연수원 주변의 잡목림에서 휘파람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휘파람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실제는 어떨까. 소리가 들리는 쪽을 집중해서 지그시 보고 있으니, 작은 가지를 붙잡고 있는 휘파람새를 찾았다. 또 가만히 보고 있으면, 희미하게 목 주변이 떨릴 때  ‘호오호케쿄’라고 들린다. 휘파람새의 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 거기 보이는 곳에 있는 생물로부터 귀에 전해져오는 자극을 받아서 ‘휘파람새가 울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아, 피곤하다! 그래도 재미있다. ‘휘파람새가 울고 있다.’ 실제 울고 있지 않은가 라고 생각해왔던 자신에서, ‘나는 그렇게 받아들인다’고 하는 자신으로의 변화.

  그렇다 해도 일상에서 본 것들은 ‘그렇다’가 되고, 들은 것들이 ‘그렇다’가 된다. ‘그렇다’라고 되기 때문에 자신 안에 파도가 일어난다든지, 상대방과 말할 수 없게 된다. ‘저 녀석, 왜 그러는 거야’, ‘말도 안돼’, ‘저 사람은 저래서 어쩔 수 없어.’ 등등, 그렇게 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 상태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다. 선배들은 2006년경부터 이렇게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그 지점에 초점을 맞추어 관찰·검토해 오고 있는 듯 했다.

 

요시다 준이치씨의 감상문

  먼저 소개했던 요시다 준이치씨는 5년전 이사왔던 즈음, 사이엔즈 스쿨의 '연수생코스'나 '일상화 레슨'에서 함께 할 때가 많았다. 나에게는 그가 매회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 기분 등을 세세하게,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잘 모르지만, 어떻게든 말로 나타내려고 필사적인 느낌으로 표현했던 모습이 인상깊게 남아있다. 작년 사이엔즈 스쿨의 '자신을 알기위한 코스'에서 요시다 준이치씨의 감상문을 읽고 마음에 와닿는 것이 있었다. 

 

자유로 향하는 길
                     요시다 준이치

 

나는 몰랐다
단정짓고 있었다니
꿈에도 생각지도 않고
진짜를 진짜로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살고 있었다
돈이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할까
일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까
인간이란 그런 것일까

과연 어디에 고정된 것이 있는 것일까
이 세계의 어느 곳에 고정된 것이 있는 것일까

넓은 세계의 아주 일부를
나의 눈이 포착하고 귀로 들어

그가 잡고있는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세계가 진짜 세계일까
자유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는 것은 누구란 말인가
행복으로 향하는 길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당장 무엇이든 그만둘 수 있고
지금 당장 어디든 갈 수 있고
지금 당장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인간의 사고를 인간의 사고로서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바르게 사용하자

  지금 생각하면 요시다씨는 그 동안 포기하지 않았던 만큼 그 동안의 착실한 관찰과 자성, 그리고 모두와의 미팅 속에서 어느새 아주 넓은 세계에 서 있었다. 요시다 준이치씨는 올해 염원하던 파리 여행을 친구와 갔다왔다. 비용 마련과 여행 전에 인두암 수술이 있었지만, 이런 문제들을 자기 혼자서 떠안지 않고 주위 사람들과 상의하면서 떠났기 때문에, 아주 상쾌하게 여행을 즐기고 왔다. 그렇지만 가져 갔던 지갑이 없어지는 등 연속해서 해프닝이 있었던 듯 싶은데 본인은 기가 죽지 않았던 것 같다.

 

사이엔즈에 접한 부부의 이야기

  ‘미야찌는 잘난체하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말했던 후나타 다케시씨는 사실은 30년전 같은 직장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후나타씨는 나중에 왔기 때문에, 내가 일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때 나도 혈기왕성했다. 그가 나의 말투를 싫어한다고 느꼈다. 후나타씨와 나는 정말 우연히도 얼굴 생김새 부터 표정, 행위, 말투, 몸집이 형제처럼 닮았다. 내 쪽에서는 후나타씨가 나에게 화가 나있다고 느꼈지만, 그 이상으로 나는 그에게 제멋대로 친밀함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 후에 그는 다른 직장으로 옮겨서, 이후 거의 만날 일이 없었다. 그런데 2009년, 30여년만에 스즈카에서 재회하게 되었다. 후나타씨를 구리야씨네 집에서 만났다. 그 때는 왠지 모르지만 부인과 떨어져서 살고 있다고 했다.  ‘서로 지금은 그렇게 생활해보자’고 합의 한 일이라고 무심히 들었었다. 그후 우리들 부부도 스즈카에 이사 와서 생활할 즈음에는 후나타씨 부부도 다시 함께 살게 되었다. 어제 마이라이프 미팅 후, 후나타씨 부부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두 사람에게는 여러가지 마음의 갈등이 있었는데, 그것이 몇 년 동안에 걸쳐서 해결된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들었다.

미야찌: ‘두 사람이 떨어져서 살게 된 것은 왜?’

쿄오코: ‘후나타상이 생활 하나하나 시비를 걸거나, 모임에서 돌아오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든지 이상하다든지, 점점 심하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것이 참을 수 없었어’

후나타: ‘그랬지, 쿄오코가 커피컵을 쟁반에 받치지 않고, 그대로 테이블에 놓는 것만으로도 걸고 넘어졌다네’

  그 때 후나타씨는 모두와 함께 잘 해나가고 싶었지만 사람 속에 있으면 무언가 긴장한다든지, 사람의 행동이나 말에 과민할 정도로 반응하고 있었다. 자신의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아내 쿄오코씨에게 푸념이나 불평을 말하고 있다는 의식도 없이 말하고 있었다고 한다.

  2006년 5월부터 나라⋅야마토 내관 연수원의 협력을 얻어서, 사이엔즈 스쿨에서도 내관 코스가 개설되었다. 내관코스에서는 기본적으로 혼자서 자기 안을 관찰한다. 따라서 타인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성장이라든지,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가 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장이 마련 되었다. 후나타상은 거기에서 자신의 마음의 내력을 차분히 검토할 수 있게 되었다.

첫 번째 내관 코스에서 돌아온 후나타상과 이야기했던 교오코상의 감상.

  ‘내관코스에서 돌아온 후나타씨의 말을 듣고 인간의 기억의 신비함과 마음이 정상으로 되려고 하는 작용, 본능(?)을 생각했다. 후나타씨의 체험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고, 말로 표현한다면, 이라는 느낌으로 말해주었다고 생각한다. 후나타씨로부터 들어왔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후나타씨의 자서전의 일부에 접했다. 가까이 살고 있어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다.’

  후나타씨는 그 후 2회, 3회 내관 코스에 매월 계속해서 참가했다. 2회째 내관코스 후, 후나타씨의 감상을 들었던 교오코씨의 느낌. ‘후나타상이 내관코스에서 돌아와서 천천히 시간을 내어 들려주었다. 이번은 어떨지 무척 기대되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신체와 마찬가지로 정상으로 되려고 하는 작용이 구비되어 있는 것인가. 깊이 점검한 만큼 미해결의 곳에 빛이 비추어져 풀려가는 것 같은, 들으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회수를 거듭할 때마다 깊어져 가는 후나타씨의 심정이 리얼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금 길지만 감상문을 소개하고 싶다.

 

후나타 다케시씨의 내관 레포트

  내관법이란 ‘자신을 알기’ 위한 방법으로 개발된 자기 관찰법입니다. 1953년에 나라현에서 내관 창시자인 고 요시모토 이신씨가 내관도장을 개설하고 그 효과가 커서 전국·세계로도 퍼져서 각 방면에서도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의료계, 교육계, 또한 기업의 인재 육성 등등 많은 분야에서 이용되고 있습니다. 사이엔즈 스쿨 스즈카에서는 스스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조사하기 위한 유효한 방법으로서 내관법을 들여와, ‘자신을 알기 위한 내관코스’로서 2006년부터 개최하고 있습니다.(각주)

★1회차의 감상(2006년 5월)

  처음 3일 동안은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기억의 발견에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생각한 어렸을 때의 기억은 그리운 추억이었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서 조사해 간 기억은, 실은 보물 찾기라고 할까요, 조사하는 시점의 집중도에 비례해서 사실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나흘째 즈음부터 그 시절 내가 외면했던 것이 보여져 왔고, 그 외면한 핑계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오늘까지 그 날 그대로인 채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중심이고 한심스러운 상태였습니다.  
  내관의 방법에 의해 내 경우는 어머니 역할을 한 사람, 큰 누나에 대해 나를 ① 돌봐 준 것, ② 갚은 것, ③ 폐를 끼친 일의 세 가지 점에 대해서 연대순으로 구체적인 사실을 조사했습니다. 연대를 단락 지어 조사했으나 중간부터 기억이 우르르 되살아나서 그 기간, 예를 들어 소학교 고학년의 3년간을 조사하는 데 그 기간에 머무르지 않고 흩어지는 듯한 때도 있었습니다. 집중력이 좋아짐에 따라 단지 신세졌다고 생각했던 일이 정말 중대한 일로 보이게 되었습니다. 신세 진 것, 더 나아가 폐를 끼친 일 등이 누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갚은 것 따위는 없었습니다. 시대, 집, 가족, 자신의 역사인 듯 합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을 되풀이하여 내 안에서 조사해 가는 것으로, 몇 가지 크게 생각한 사실과 마주했습니다. 어떤 사건이 몽땅 기억에서 빠져 있었던 건데, 나흘 째 즈음에 발견했습니다. 발견된 뒤에도 되풀이하여 몇 번이나 사실이 깊어져서, 최종일 전날에 2회째의 아버지에게 신세졌던 일의 연대, 26세~30세의 나를 조사할 때에는 다시금 입체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그 시절의 일을 다시 생각하니 어쩐 일인지 아버지는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폐가 되었는지, 비열한 자신에게 참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2회차의 감상( 2006년 6월)

  큰누나, 둘째누나 두 사람에 관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 중에 유아기-소년기에 걸친 판단, 시점이 현재까지 진행중에 있다는 것은 새삼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조사하기 때문에 보이고 그것을 검토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응시하자 풍요로운 몇가지의 시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더욱 한가지 놀란 것은 다섯 살 무렵에 구체적인 예로 보여진 것으로, 벌써 그때에 ‘좋다, 나쁘다’가 본심을 억누르는, 공포스러운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고 검토를 받고 싶다고, 가까스로 그 목소리를 인식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초점을 맞추고 싶어졌고, 신중하게 정성스럽게 보고 싶어졌습니다. 마침내 어른이 되어(30살이 넘은 자신), 누이 두 사람이 억울해하면서 꾸짖던 말들이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꾸짖었던 말 그대로의 자신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고, 기뻐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누나 얼굴을 떠올리며 잘못을 빌었습니다.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이런 자신을 만날수 있었던 것으로, 정리가 된 것인지, 사라진 것인지, 색이 없는 세계가 된 것인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앞으로도 아직 숙제랄까, 검토 해야할 과거, 현재가 있습니다.

*3회차의 감상(2006년 7월)

  이번에는 어느정도 집중한 것처럼 생각됩니다. 처음에 큰누나에 대해서 자신을 조사해볼 때, 기억이 나중에 생성되어 온다고 하는, 가까스로 그 테마에 처음으로 향할 수 있었다고 할까, 자신을 조사하는 시간이 어느정도 길어진 것 같이 생각되었습니다. 그것도 단계가 있는 것 같은데, 거기다 느릿느릿한 걸음이었습니다. 2회째 큰누나에 대해 자신을 조사해보았을 때, 신세를 졌던 것 대부분이 싫은 기억이 되어 있었습니다. 원망하기까지는 하지 않았어도 잘 조사해보면, 원망하기까지 그럴 리가 없다, 문패 앞에서 멈추고 있을 뿐, 그 이상 들어가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만성화 상태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 내력은 지금까지 곳곳에 나타나고 있어서, 부끄럽고 지독한 것이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가까운 사람들(아내, 친구)에 대해서 자신을 조사해 보았을 때에, 유소년 시대에 길러진 인식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자기 중심적 생각이 몸에 밴 것 천지였습니다. 그것은 악당 그 자체, 사죄해도 다 사죄할 수 없는, 정말로 죄송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큰누나, 작은누나에게 어느정도 신세를 졌는지 셀 수도 없고, 사람이 되게 키우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마음 속에서 시끄러워, 지겨워, 그만해 라고 하였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만을 학습하며, 안녕하세요! 그 한마디의 내용조차도 마음 속과 부조화로 그것을 오늘날까지 해온 것 같습니다. 유아기 기저귀를 하지 않았을 때는 현관이든지, 마루든지, 싸고 싶을 때 싸고, 먹을 때 밥을 맘대로 흘리고, 옷도 혼자서 입는데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것 등을 생각해보면, 그 연장 선에서 그 시대, 그 계절, 그때 그때의 음식, 먹는 법, 입는 법, 그 유형 무형의 총수를 생각하면, 자신에게 해준 도움을 원망한다고 하는 것은, 이제 한마디도 할 수 없습니다.

 거기다 그 사람의 기분이 되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제멋대로 구는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닙니다. 외형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물어물 넘어가고, 어물어물 살아왔습니다. 이렇게 내관을 통해서 자신을 조사했습니다. 내관은 침식(寢食)과 같다고 합니다.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일상 내관을 하고 싶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이번에 여기에 온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이것은, 후나타씨 한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네요, 60세가 넘어서의 자기 성찰입니다.

 

댓글 4
  • 2020-11-17 22:51

    <사이엔즈 입문>1부 3장 번역모음입니다

  • 2020-11-22 15:25

    <사이엔즈 입문> 2부 전반부 번역모음입니다.

  • 2020-12-06 02:59

    1부 1장 번역입니다

  • 2020-12-07 09:52

    1차 교정 전체 종합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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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 p49 단어 올립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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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 가자 지구, 인류의 위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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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世界> p44 단어 (3)
초빈 | 2024.03.15 | 조회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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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世界> p41 단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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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느슨하게 철학하기> 377p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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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ゆるく考える> p402~, 단어와 해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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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느슨하게 철학하기> 368p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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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일본어강독모집]<특집: 두 개의 전쟁, 하나의 세계> 평론 읽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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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ゆるく考える> p349~ 단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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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 철학하기> 336 단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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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 철학하기> 316 단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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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 철학하기> 304 단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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