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뉴욕의 가을" 후기 - 손에 쥔 것은 경험과 본능뿐

뚜버기
2020-06-07 14:21
271

뉴욕의 가을 - 2005년 10월 30일 메사추세츠주 캠브리지

 

야구광 무라카미하루키는 보스톤레드삭스의 시리즈 본선진출 실패를 애도하는 듯 긴 가을비가 내렸다며 보스톤의 초가을을 묘사한다. 무라카미하루기 번역서는 물론이고 평소 문학작품을 잘 읽지 않는 나는 조곤조곤 진솔하게 써내려가는 무라카미의 글쓰기가 감탄스럽다.

레이스의 계절 가을을 메사추세츠의 가을 비와 함께 맞이하여, 그는 뉴욕시티마라톤 참가를 염두에 두고 꼼꼼히 연습계획을 세우고 달리는 거리와 속도를 조절해 간다. 참 계획적인 인간이다. 본게임을 앞두고 하프 마라톤에도 참가한다. 요이땅을 기다리는 주위의 런너들의 숨소리를 들으면 아드레날린이 온 몸에 퍼지고 경쟁본능이 절로 고개를 처들지만 전력의 80퍼센트만 발휘하겠다고 마음먹는다. 늘 혼자 달리는 평소 경험할 수 없는 부분 즉, 실전에서의 환경을 체험하고 페이스 감각을 일깨우기 위한 참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연습을 하지만 인생에는 전조도 없이 예기치 않은 일들이 찾아온다. 대학 가까이에 딱 좋은 거리에 얻은 집은 때 마침 리모델링을 위한 대 공사중이다. 더구나 마라톤을 앞두고 무릎이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저런 원인을 떠올리며 무릎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본다. 장거리 달리기는 늘 무릎에 무리를 가하기 마련이지만 큰 고장을 일으킨 적도 없고 레이스를 중도 포기하게 한 적도 없다. 그저 묵묵히 참아왔던 무릎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어찌어찌 무릎은 잠잠해졌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어두운 그림자가 몸 안 어딘가에 숨죽이고 잠복해 있다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삶의 어느 모퉁이에서 그런 순간들을 만난다. 나 같은 경우 때로 임기응변으로 넘기기도 하고 때로는 외면해버리기도 했던 것 같다. 무라카미는 손에 쥔 것은 경험과 본능뿐이라고 말한다. 경험이 가르쳐준 것은 “이제 할 만큼 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봤자 소용없어. 남은 건 어떻게 될지 기다리는 것 뿐”. 본능이 통보하는 한 마디는 “상상해보자”는 것. 그는 눈을 감고 머릿 속에 떠올린다. 브루클린에서, 할렘을 지나, 미드타운으로 수만의 런너들과 함께 달리며 뉴욕의 시가지를 빠져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마침내 보스톤에서 뉴욕행 비행기에 오른다. 듀크 버논의 재즈 <뉴욕의 가을>이 글의 배경음으로 깔린다. 나그네들을 탄식하게 만드는 매혹의 가을 풍광이 펼쳐지는 11월의 뉴욕을 음미하는 레이스를 과연 펼치게 될까.

 

내 앞에서 글로 말하고 있는 사람은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하루키 (읽어본적도 없이 그저 명성만으로 알 뿐이었지만)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레이스를 조금 앞에서 달리는 선배라는 느낌이 강하다. 경험으로만 나가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상상을 보탠다면 조금은 더 가슴 뛰는 삶이 될 것 같다. 물론 할만큼은 하고 나서이지만.

댓글 4
  • 2020-06-07 20:12

    7장 후기가 올라오니 8장 후기 준비를 해야겠습니다ㅋ
    하루키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던 우리도 하나의 골 라인을 바라보고 있네요.
    스타트 라인에서는 몰랐던, 예기치 못했던 순간들을 지나면서 말이에요^^

  • 2020-06-07 20:27

    1월달에 처음으로 일본어 강독을 시작했을 때, 30분만 지나도 현기증에 기력이 딸렸는데...
    어찌 어찌 거의 골인점을 향해 가네요. 어찌 하루키와 함께 달리고 있는 느낌입니다.
    모두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당!!

  • 2020-06-07 22:33

    운동도 중독이다.
    대회참가라는 것은 어쩌면 공부하는 학생이 시험을 보며 자기공부가 어느정도인지 가늠해보는것과 같을것이다.
    만약 대회를 준비하지 않고 마냥 매일매일 마라톤을 한다면 어떨까?
    지금처럼 고비고비 자신의 연습과 실전의 고비를 이렇게 기억해낼 수 있을까?
    대회는 일종의 스트레스며 달리기를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달리기를 멈출 수 없는 긴장감을 갖기 위한 그만의 이벤트였으리라 그해 어느 마라톤을 기억하며 그때의 기억을 미주알고주알 기억하며 써내려간
    그의 달리기 기록은 달려보기를 해본자만이 느끼는 감정과 힘든, 고비, 거리의 풍경, 시대의 배경까지 꼼꼼하게 기억하고 있다.
    재즈를 좋아하고 달리기를 좋아하고 중고 엘피판을 사며 느끼는 삶의 재미를 나름대로 멋지게 누리고 산다.
    달리기와 그의 글쓰기는 함께 경륜과 경험을 더해가며 그의 삶을 풍요롭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 같다.
    꾸준히 한다는것 때론 하기 싫지만 즐기며 하는것 이제라도 삶을 풍요롭게 하려면 가져야할 중요한 것이라는걸 가르쳐주는것 같다.
    건강을 챙기고 글쓰기 소재도 일상 생활을 계속 해나가갈 힘의 원천이 마라톤이라고 그는 이책에서 강조하고 강조하는것 같다.
    아마 일본어를 배우려 1주일에 1번씩 모임을 갖는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혼자서는 1년을 넘게 이렇게 계속 일어강독을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때론 하기 싫어도 내몫이 있기에 뭔가 재미가 있기에 멈추지 않고 하는것이 그의 마라톤과 비슷하다면
    너무 비약일까?

    이제 책의 마지막 부분이 가까워 오네요.
    하루키의 달리기는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듯 우리의 일본어 강독도 계속되리라 생각합니다.
    함께해서 멈추지 않고 하는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 2020-06-14 23:20

    음악이 좋네요.
    하루키가 너무 계획적이라 처음엔 비호감이었는데
    그는 확실히 자신만의 삶의 양식을 만든 사람이란 생각도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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