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장 후기

꼭지
2020-04-27 20:33
243

< 6장 >

“ 더 이상 누구도 테이블을 두드리지 않았고, 컵을 던지지도 않았다.”

 

생애 처음으로 하루에 100km를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에 출전했던 경험을 통해 하루키는 자신에 대한 이해, 즉 자기 인생의 색이나 형태에 대한 시각이 일반관념 너머의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홋카이도에서 열린 사로마호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서 그는 초반에는 제한시간 내에 완주하고 싶다는 생각에 호수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볼 여유조차 없이 페이스를 유지하며 묵묵히 달렸고 42km를 넘어선 미지의 세계에 대해서도 그 페이스 유지가 가능할 거라는 안이한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50km를 넘으면서 신체감각이 변하기 시작했고, 식사와 휴식, 스트레칭 후 다시 달리면서 다리 근육이 뻣뻣해져 달릴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그는 상반신의 움직임을 크게 하여 하반신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으로 겨우 걸음 수준의 달리기를 이었다. 55km를 넘으면서 다리의 감각이 돌아 오는듯 하더니 이번에는 몸 전체가 기름이 떨어지고 나사가 풀린 것처럼 말을 듣지 않게 되고, 그는 계속 달리기 위해 신체의 각 부분들의 아우성을 설득하고 격려하여야 했다. 마치 당통과 로베스 피에르가 혁명회의를 그렇게 하듯. 오로지 전진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했고 ⌜나는 인간이 아니다. 기계다. 느낄 필요가 없다⌟를 되뇌이며 의식적으로 의식을 부정했다. 아무리 속도가 떨어져도 걷지는 않았다.

그러는 동안 75km 지점에서 그는 갑자기 벽을 통과 하는듯한 경험을 한다. 근육의 혁명회의에서 더 이상 테이블을 두드리거나 컵을 던지는 이가 없어진 것이다. 근육은 자동적으로 움직이고 모든 생각과 느낌이 사라졌다. 명상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그는 고통이 사라진 75km 후반부터 자동 조정상태에 몰입되어 200명 이상을 추월할 만큼 착실히 계속 달릴 수 있었다. 고통을 껴안았기에 통과할 수 있었던 벽. 그는 벽을 지나 도달한 영역의 자기존재에 대해 ‘나는 달린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말로 회고한다. 마라톤에서 골인지점이라는 끝은 하나의 기능적 마디역할로서 달리는 러너의 존재의미가 아니라고, ‘끝이 있기 때문에 존재가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는 말로써 달리기를 통한 철학적 성찰을 이야기하며, 글쓰기에 대해서 작가는 문장을 지어가면서 생각을 하고, ‘쓴다’라는 행위을 통해 작업을 형성한다고 한다.

울트라 마라톤에서의 완주의 기쁨과 자신감도 있었지만, 동시에 하루키에게는 ⌜러너스 블루⌟라고 말하는, 전과는 다른 ‘그런대로’의 의례적 반복에 의한 달리기 상태가 얼마간 이어졌다. 점차 그 시간을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말하는 지금, 그는 그 시간이 필요했던 시간이라고 말하며, 돌아온 사이클에서의 그 시간의 역할이 충실하다 말한다. 또, 이제 기록과 같은 경쟁적 시간은 중요치 않고 숫자가 나타내지 않는 것들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스스로를 한계 내에서 다소나마 자신의 능력에 계속해서 활력을 지켜나가는 직업소설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봄에 열릴 예정이던 서울 국제 마라톤 대회가 코로나 사태로 가을로 연기가 되었다. 풀코스 참가 신청을 했던 나로서는 겨우내 발에 이상이 생겨 병원 신세를 지느라 연습을 할 수 없었기에 3월 대회가 취소된 게 차라리 잘 된 것이었다. 가을로 연기된 대회에 다시 참가 신청을 할 생각으로 일주일 평균 45km를 달린다. 뭘 하나 꾸준히 성실하게 견지해 온 게 없는 나에게 하루키의 달리기루틴 만큼은 아니더라고 ‘계속 하고 있고, 즐기고 있다’고 말할 만한 무엇에 대한 작은 강박이 있었다. 때로는 이 역시 ‘지나침’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많다. 성실한 견지와 ‘자기 욕심’을 착각 하면 안 되는데.... 무리! 겨우내 발 때문에 고생한 것도 맞지 않은 신발 탓도 있지만, 그즈음 추위에도 매일10km씩 (어떤 때는 20km가까이)를 달리다 쌓인 근육피로가 일으킨 문제였고, 덕분에 두 달 가까이 뛰지를 못했다. 그래서 울트라 마라톤에서 하루키가 신체의 문제들을 다뤄가는 모습들이 참 아슬아슬하게 여겨졌다. 운이 좋았지! 햄스트링 터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면 적어도 6개월은 못 달린다.(재작년 내가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의 극에 달한 신체적 고통을 이겨낸 나름의 방법에 대한 차분한 정신력에 대해 크게 감동 받았다. 75km를 지나서 경험한 그 ‘선정상태’와 비슷한 경험은 모르긴 해도 단지 “해 내야해!” 정신력만으로 통증을 이겨내고 달려서만이 아니라, 의식을 덜어내고, 타자화해서 대화하고, 나를 비우고. . . 그러한 태도와 합쳐진 극복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까 욕심에 대한 강한 집착이 밀어 붙인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게 종이 한 장 차이랄까...?

공감을 해보려 해도 내내 속으로 “나라면 못하겠다” 라는 생각 외에는 핍폐를 극복해내는 그 과정이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고, ‘러너스 블루’라는 상태에 대해서도 막연하게나마 비슷한 경험을 유추해 보아도 내 삶 안에서 대비될 만한 경험을 못 찾겠다.

솔직히 처음엔 별거 아닌 것들에 대해 나라면 단 몇 줄에 끝낼 이야기를 이래 저래 뽑아내며 ‘비슷한 이야기’들을 늘어 놓는 것에 대해 조금은 탐탁치 않았다. 그런데, 읽을수록 점점 뭔지 모를 매력을 느끼게 되고, 최근에는 ‘역시 글 잘 쓴다’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루해 하던 하나 하나가 그가 묵묵히 달리는 하루 하루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의 건너 뜀 없는 연결선위의 것들이구나 싶다.

하루키...‘멘토’ 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어느 정도 가르침을 주기도 하고, 어느 분이 그랬듯, 노을지는 노천에서 맥주 캔 얹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하면 긴 시간도 즐거이 보낼 수 있는 친구 같은 느낌도 든다.

 

댓글 4
  • 2020-04-27 23:14

    에고--- 5장 후기를 올려야하는 나는 아직 책도 제대로 읽지 못했는데--- 일주일에 45키로라고요? 하루키는 나에게 너무 멀고, 꼭지님은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 2020-04-29 13:32

    왠지 지금부터는 꼭지님의 달리기와 하루키의 달리기를 병행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ㅋ

  • 2020-05-04 07:36

    꼭지님에게는 이 책이 여러모로 특별하게 읽히고 있었군요~ 꼭지님의 달리기연습 궁금해지네요^^

  • 2020-05-10 23:12

    마라토너이신줄 몰랐는데 대단한 분이시네요.
    축구장 한바퀴달리면서 속으로 200까지 세면서 점점 속도가 느려지고 숫자는 빨라지고..
    그래도 종아리 근육이 생기고 굵어진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풀마라톤을 하게 되면 다리는 어떻게 될까요?
    꾸준히 달리기와 걷기를 하니 자신감도 생기고 시간이 나면 걷고 뛰고 싶어지더라구요.
    은근 중독성이 있네요..
    풀마라톤을 넘어울트라 마라톤 100킬로 마라톤까지 한 하루키... 그저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분이 겪은 러너스 불루도 그저 부러울 따름이네요.ㅎㅎ
    5월 말 용인 마라톤도 10월 말로 연기 되었어요.
    그때까지 마라톤을 계속해서 5킬로 신청한것 완주하길 나 스스로 달래며 연습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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