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후기

둥글레
2020-03-24 19:26
23

3장 ‘한 여름의 아테네에서 처음으로 42킬로를 달리다’

 

2005년 8월, 하루키는 11월에 있을 뉴욕 시티마라톤을 하와이에서 준비하고 있다. 마라톤 레이스 5개월 전부터 계획적인 연습을 시작하는데 주행거리를 단계적으로 늘리면서 체중을 줄여 몸을 만드는 과정이다. 2개월 전부터 트레이닝은 양적 연습에서 질적 연습으로 전환하고 1개월 전 정도엔 피로감이 피크가 되게 설정한다. 이게 평균적인 마라토너들의 연습 프로세스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키는 젊을 때에 비교해서 나이가 든 지금이 준비에 더 시간이 걸린다고 말하고 있다. 

 

그도그럴게 바로 전 마라톤에서 참담한 결과가 나와서 더욱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30킬로를 넘어서면서부터 다리 경련이 심해져서 달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처음으로 마라톤 레이스에서 걸어봤단다. 골을 2킬로 정도 앞두고 경련이 멈춰서 다시 달리기 시작해서 완주했다. 이 경험이 하루키에게는 충격이었다. 기록이 나쁘거나 걸었다거나 이런 건 하루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충해도 되겠지 하는 자신 안에 생긴 자만심에 경각심이 생긴 것이다. 그는 체력이 떨어지는 나이에 지불할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고 무언거를 얻으려 했던 자신을 돌아 본다. 그러면서 초심으로 돌아가 제로부터 다시 해보자고 한다. 

 

그 초심의 이야기가 1983년 7월 그리스에서 최초로 풀 마라톤을 뛰어본 경험이다. 그때 하루키는 런너가 막 되었던 시점이었다. 일본 남성 잡지에서 제안한 여행기를 위한 그리스 여행에 오리지널 마라톤 코스를 달려보고 싶다는 하루키의 열망이 만난 것이다. 한 여름의 그리스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덥다. 마라톤을 한다고 하면 그리스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미쳤다고 할 정도의 더위다. 해서 하루키는 새벽에 아테네를 나서서 마라톤 마을까지 달리는 코스를 짰다. 원래 코스는 마라톤 마을에서 아테네를 향하지만 아테네 도심부와 주위를 빨리 빠져나와야 교통혼잡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역방향으로 달리기로 했다. 

 

새벽 5시 반에 아테네 올림픽 스타디움을 출발해서 3시간 51분을 달려 마라톤 마을에 도착했다. 하루키가 쓴 잡지의 글을 보면 레이스가 진행되면서 몸과 마음에 나타난 변화가 자세히 적혀있다. 30킬로를 넘었을 때 피로가 몰려들었다. 35킬로를 넘어선 이후는 자신에게는 테라 인코그니타(미답의 대지)다. 즉 태어나서 35킬로 이상을 달려본 적이 없다. (고은이의 글에 나온 테라 인코그니타..어디서 봤나 했더니..ㅋㅋ) 37킬로 정도부터는 뭐든 다 싫어지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도로 옆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던 양도 꼴보기 싫고, 자동차로 따라 오면서 사진을 찍는 사진가도 꼴보기 싫었다. 에너지가 바닥이 나서 물을 마실 힘도 없었다. 햇볕에 탄 피부에서는 수포가 생기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마을 입구의 마라톤 기념비도 그 돌연함에 화가 났을 정도다. 골에 도착했을 때는 성취감 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오로지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뿐이었다.

 

하루키는 마라톤의 오리지널 코스에 대한 환상이 산산히 부서진 상황도 적고 있다. 마라톤 가도에서 만난 로드킬은 개 3마리, 고양이 11마리 그리고 맹스피드로 달리는 트럭들, 변변치 않은 도로 포장 등 그는 마라톤 가도는 그저 ‘통근산업도로’였다고 말한다. 그래도 마라톤이 끝나고 주유소 아저씨가 화분의 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주는 친절함에 감동하기도 한다. 이 이후 하루키는 거의 매년 풀 마라톤에 참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매번 레이스의 진행과 함께 나타나는 변화가 거의 첫 마라톤에서 느꼈던 것과 별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30킬로 지점엔 좋은 기록에 대한 낙관, 35킬로 지점부터 에너지가 바닥나면서 모든 것에 화가 나기 시작, 완주 후 조금만 지나도 괴로움은 잊고 다음엔 더 잘 달려야지 결의를 세운다. 

 

하루키는 이렇게 말한다.

경험을 많이 쌓아도, 나이를 먹어도 반복할 수 밖에 없는 어떤 종류의 프로세스는 변경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런 프로세스와 공존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집요한 반복에 의해 자신을 변경시켜 그 프로세스를 자신의 인격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나는 하루키의 글을 별로 많이 읽어보지도 않았고 그닥 좋아하지도 않는다. 워낙 내키는 대로 살았던 사람으로 요사이 ‘루틴’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그가 달리기와 글쓰기를 평행으로 연결시키는 이 글을 읽으면서 루틴에 대해 뭔가 얻을 게 있지 않을까 싶다. 그는 정말 성실하다. 그런데 ‘하면 된다’라는 식의 생각은 아니다. 그는 자신은 재능을 타고 나지 못했기 때문에 성실함으로 임한다고 말한다. 재밌는 것은 그가 몸을 움직이고 관찰하며 얻은 몸에 관한 앎을 글쓰기에 적용한다는 점이다. 몸이 자신의 노력에 대답하기까지 시간은 걸리지만 반드시 대답을 하기는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에게 큰 호감은 생기지 않는다. 더 읽어 봐야지...

 

댓글 1
  • 2020-03-29 22:10

    하루키가 원래(오리진) 마라톤코스를 묵묵히 뛰었던 그곳의 풍경이 그곳도 삶의 현장의 일부일뿐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길가에 로드킬 당한 짐승들과 너무 더워 새벽에 출발한 이야기등 사진으로 영상으로 본 낭만적인 모습이 아닌 삶의 현장의 묘사가 생생하더라구요.
    조근조근 참 말도 잘할 것 같은 글쓰기를 하는 하루키 같아요.
    저는 둥글레쌤과 달리 하루키가 호감이 가는것 같아요. 다른 소설책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아직은 짬을 못내지만....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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