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장 후기입니다

띠우
2020-02-04 16:35
294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장 후기

 

제1장│2005년 8월 5일 하와이 주 카우아이 섬

누가 믹 재거를 비웃을 수 있겠는가?

 

2005년 여름,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서 생활하면서 하루키는 소설쓰기와 달리기 이야기를 동시에 꺼내놓는다. 속도의 조절이랄까, 리듬을 정하는 일이랄까. 달리면서 만나는 다양한 날씨, 듣는 음악, 신체 속에서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글로 펼쳐놓는다. 

 

작가는 1982년 가을, 처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이후 2005년까지 23년간 대부분 매일 조깅을 하고 매년 한번은 풀 마라톤을 달리고, 세계 각지의 레이스에 참여했다. 다른 운동도 많이 있지만 어려서부터 축구같은 팀경기에는 맞지 않았다고 한다. 풀 마라톤을 달려보면 알겠지만, 레이스에서 특정한 누군가에게 이기고 지는 것이 런너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런너가 대회에 참여할 때 목표시간을 정하긴 하지만, 그것을 달성하든 그렇지 않든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면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달리기는 어떤 상황이든 나름의 재미를 주었던 모양이다. 얼마전에 하와이 카우아이 섬을 다녀왔던 나로서는 잠시 그가 달리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소설가 역시 지고 이기고는 없다. 문학상이나 비평가의 호불호는 중요할지 모르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쓰는 것이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도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타인에 대해서는 대충 이야기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달리면서 달성기준을 조금씩 높이고 노력해 가는 것처럼 하루키에게 중요한 것은 레이스에서 달리는 자신, 소설을 쓰고 있는 자신이 중요하다. 자신이 상대해야 하는 대상은 바로 자신이라고 말한다. 어떤 일을 하는 자세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고, 어떻게 해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게 만드는 말이다. 

 

에너지 넘쳤던 그도 나이가 40대에 접어들면서 신체능력의 한계에 마주한다. 노안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듯. 마라톤 타임도 변화가 다가오면서 3시간 30분이면 달릴 수 있던 거리가 4시간이 넘어서는 시기도 찾아왔다. 어떻게 해도 이전과 같은 시간대로 갈 수 없다는 실망감이 침체기로 이어졌다. 다른 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잠시 달리기에서 멀어졌지만, 2005년 캠브리지의 찰즈강을 다시 마주하면서 그는 달리기로 돌아간다. 세월이 많이 지나고 자신은 나이를 먹고 유행도 바뀌었지만 강은 그대로였다. 10여년 전에 2년동안 살았던 그곳에서 마주하던 자연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달릴 때는 그저 달릴 뿐이다. 그는 원칙적으로 자신이 공백 안을 달리고 있다고 표현한다.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 달린다라고. 이건 어떤 의미일까. 알듯도 하다가 어떻게 나의 말로 이야기를 해야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달리는 동안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하늘의 구름과 닮아있다. 여러 형태와 크기의 구름, 그것들은 왔다가 스윽 사라진다. 그래도 하늘은 어디까지나 하늘인 채로 있다. 구름은 단지 나그네에 불과하다. 그것은 지나쳐 사라지는 것이다. 실체인 동시에 실체가 아닌 것이다. 그는 그것을 단지 있는 채로 받아들일 뿐이었고 소설을 쓰는 자세도 그와 닮아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얽매어 붙잡으려 하는 것이 실제로는 그 무엇도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요즘 일본어를 읽는 시간이 아주 즐겁지는 않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본어를 읽고 있는 것이었나. 

 

그는 50대 후반을 맞이한 소감을 이어간다. 21세기라는 것이 실제로 왔고, 젊었을 때에는 자신이 농담으로나 생각해볼 수 있었던 50대였다. 믹 재거는 젊을 때에 ‘45세가 되어서 Satisfaction을 계속 노래한다면 차라리 죽는 쪽이 낫다’고 호언했다. 그러나 실제로 60세가 되어서도 계속 부르고 있는 믹 재거를 보고 누가 웃을 수 있을지 묻는다. 하루키는 50세의 자신을 상상할 수 없었던 것과 같이 믹 재거를 바라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젊은 날 어리석은 말을 했더라도 현재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믹 재거의 말도 그 정도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우리 역시 젊어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쩐지 이상하다. 나이를 먹는 것은 언제나 최초의 체험이며, 거기서 맛보는 감정도 역시 처음 맛본다. 이전에 한번이라도 경험한 것이 있다면, 조금은 판단을 할 수 있겠지만 쉽지 않다. 따라서 지금, 세세한 판단 같은 것은 뒤로 돌리고, 현재 있는 것을 있는 대로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일단은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마주하는 하늘과 구름과 강처럼. 이번주에 맞이한 일본어 시간 역시 처음 맞이한 것이다. 차츰 정신승리로 나아가고 있구나....ㅎㅎ

 

서로가 갖는 오해나 비난 등에 의해 깊은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에게 고통스런 경험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그러한 괴로움이나 상처는 인생에 있어서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하루키는 조언한다. 스스로 경험한 예를 통해, 유래 없는 비난이나 기대했던 사람에게 좋지 않은 말을 듣게 되었을 때를 떠올린다. 그럴 때는 그는 평상시보다 조금 더 긴 거리를 달리곤 했다. 육체를 피곤하게 만들어, 자신이 가진 능력의 한계를 경험하고, 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그럼으로써 한편으로는 자신의 약한 신체를 강화해가게 된다. 화가 났다면 그만큼 자신을 갈고 닦는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한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소설이라는 형태로 이야기가 되어간다. 

 

하루키는 젊은 시절 ‘성실하게’ 달리기를 시작하고, 지금은 ‘진지하게’ 달리고 있다며 단어의 차이를 강조한다. 성실함과 진지하게, 두 단어의 차이를 그 역시 아직 정확히는 모르겠다면서 앞으로 다시 생각해볼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자신이 가진 기술이라고... 소설을 쓰고 달리기를 통해 삶을 마주하는 하루키가 있다면 나에게는 어떤 기술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댓글 1
  • 2020-02-04 17:54

    와우! 이런 후기라...음. 솔직히 제가 후기를 써야할 차례가 올 것에 대해 겁이 납니다. 책을 꼼꼼하게 읽으시면서 하루키를 잘 따라 가셨네요. ( 이런 내용이었구나..ㅋ)
    과장하면 하루키의 성실성과 진지함을 능가하는 진정한 러너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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