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신론> 후기 - 모름지기 신하란

토용
2022-01-2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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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한유의 쟁신론(爭臣論)을 읽었다.

당나라 덕종 때의 간의대부(諫議大夫)였던 양성에 대해 혹자와 한유가 논쟁한 글이다. 혹자와 한유가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반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 꽤나 재미난 티키타카였다. 그렇지만 실제로 혹자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한유가 자문자답하는 형식으로 쓴 것이다.

 

혹자가 양성을 유도지사(有道之士)라 부르며 그의 학식과 인품을 칭찬하자 한유는 간의대부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간의대부는 임금이 잘못을 하면 그에 관해 직언을 하는 자리인데 정사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으니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 말을 하지 않으니 벼슬을 그만두어야 마땅한데 그러지도 않으니 양성은 단지 생계를 위해 녹봉을 받는다고 꼬집는다. 생계를 위해 벼슬을 하는 관리를 녹사(祿仕)라고 하는데, 맹자가 말한 ‘관문을 지키고 딱딱이를 치는 관리’, 즉 포관격탁(抱關擊柝)을 하는 관리이다. 그러므로 녹사를 할 때는 높은 지위가 아닌 낮은 지위에서, 많은 봉록이 아닌 적은 봉록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양성은 그것도 아닌 간의대부였으니 녹사라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혹자는 양성의 덕에 초점을 맞추어 반론한다. 양성은 신하로서 군주의 잘못을 들춰내어 자신의 명예로 삼는 자가 아니라는 것. 간언을 하지만 사람들 모르게 한다는 것이다. 『서경』에 ‘네 아름다운 꾀와 아름다운 계책이 있거든 안에 들어가 네 인군에게 아뢰고 너는 밖에 가르치기를 이 꾀와 계책은 우리 임금님의 덕이라 하라’고 했는데, 양자가 바로 그러한 인물이라는 것.

그러나 한유는 그런 식의 간언은 대신과 재상이 하는 것이지 간의대부가 하는 일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간의대부는 사방과 후대에 조정에 직언하는 골경(骨鯁)의 신하가 있고(강직한 신하를 짐승 뼈와 생선 가시에 비유함), 임금이 그 간언을 잘 따른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 도리어 임금이 과실을 듣기 싫어하게 만드는 것 아니냐고 따진다.

 

이후에도 논변은 계속 되는데, 전체적인 요지는 혹자의 양성 변호, 즉 양성이 벼슬자리를 구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천거하여 간의대부가 되었고, 그 자리에 있으면서 여전히 도를 잘 지키고 있는 것을 보니 유도지사라고 할 수 있다는 것. 이에 대한 한유의 반론은 간의대부로서의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니 유도지사라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고 행실을 고칠 수 있는 선인(善人)은 될 만한 사람이라는 것.

 

신하로서의 책무를 다한다는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덕종 때 정사가 어땠는지 잘 모르겠으나 한유가 보기에는 군주가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간언을 제대로 하지 않는 간의대부를 비판한 것이리라. 지난 시간에 읽었던 <남해신묘비>에 나오는 광주자사와 대비가 된다. 남쪽 바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을 정성껏 한 광주자사를 한유는 엄청 칭찬한다. 대충 제사를 지냈던 전임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이며 자신의 소임을 다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한유였으니 중앙 정치판에서 제대로 군주를 보필하지 못하는 신하를 그냥 보고 넘길 한유가 아님은 당연지사.

 

양성은 간의대부를 7년 했다. 한유가 이 글을 쓴 것은 간의대부가 된 지 5년이 된 때였다. 이후에도 양성은 조용히 있다가 7년 만에 한 건 하시고 파직당한다. 충신인 육지를 옹호하고 간신인 배연령이 재상이 되는 것을 저지했다고 한다. 한유의 주장에 비추어보면 양성은 간의대부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가 7년 만에 겨우 한 번 제대로 일한 셈이 된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글 앞에 붙은 편찬자의 주장이었다. 사람들은 한유와 구양수의 글만 보고 현인이 아니라고 하지만, 양성이 어진 재상을 구제하고 간신을 저지한 것만큼 큰 일이 있느냐는 것이다. 만일 하찮은 일로 계속 군주에게 간했다면 일찌감치 파직당해서 이런 큰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구양수도 이 문제에 대해 글을 썼는데, 마침 『고문진보』에 실려 있어 다음 주에는 그 글을 읽어보기로 했다. 구양수는 뭐라 했는지 자못 기대가 된다.

댓글 1
  • 2022-01-27 09:15

    한유의 <쟁신론> 덕에 양성은 두고두고 사람들 입에 회자되었으니.. 그의 운명도 참 얄궂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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