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의 배불론

요요
2021-12-04 19:21
351

한유(768~824)는 안사의 난 이후에 태어나서 당나라의 명운이 저물어가는 중당시기를 살았다. 

한유는 고문으로 돌아가자는 문체운동의 주역으로, 화려한 사육변려체를 멀리하고 고문스타일의 문체부흥을 주도했다.

맹자가 공자를 사숙하였듯이 그 스스로도 맹자로부터 맥이 끊어진 유가의 도통을 잇는다는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다.

그런만큼 그는 불교와 도교가 천하를 주무르던 당시의 세태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유교부흥의 선봉에 선 인물이었다.

 

몇주전부터 한유의 문장을 읽고 있는데 지금까지 읽은 글 중에서 불교와 도교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글은

<원도>, <중답장적서>, <여맹간상서서>, <송부도문창사서> 네편이라 할 수 있다. 

글을 쓴 시기로 보면 <중답장적서>가 먼저이고, <원도>가 그 다음이다. 

<장적에게 다시 답하는 편지>를 보면 노자와 부처를 섬기는 자들이 위로 천자부터 아래로 공경대부에게 미친다는 대목이 나온다. 중국에서 유가가 아니라 도교와 불교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중당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장적이 한유에게 노불을 비판하는 말만 하지말고 책을 쓰라고 했는지, 한유는 지금은 책을 쓸 때가 아니라고 답한다.

그는 공자도 함께 하는 무리가 있었기에 곤궁과 위험 가운데서도 그 도가 전해졌다는 말을 하며 지금 자신이 할 일은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무리를 만들어 도를 행하는 것임을 넌지시 내비치고 있다.

한유에게도 나름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그렇게 해도 안 되면 5~60대가 되어 책을 써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원도>는 요순우탕문무주공과 같은 성인이 있어서 비로소 인간이 인간답게 살게 되었다고 말하고

노불은 인간다운 도리를 하찮게 여기는 가르침이라고 비판한다.

노자는 성인이 죽어야 한다고 말하고, 부처는 군신의 예를 중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유가의 도를 되살리려면 노불의 서적을 불태우고 그들이 거처하는 사원을 허물어 집으로 만들어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유가의 인의도덕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여맹간상서서>는 <상서인 맹간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한유는 부처의 사리가 영험하다하여 그것을 궁으로 모신 헌종에게 사리를 없애라고 간하였다가 좌천되었다.

멀리 변방지역으로 쫓겨난 그는 나름 말이 통하는 한 노승을 알게 되어 그와 가까이 교유하였던 모양이다.

그 일로 인하여 한유가 불교를 신봉하게 되었다는 말이 나자, 한유는 맹간에게 자신을 변호하는 편지를 썼다.

내용인즉 노승과의 교유는 인간적인 정에 따른 것이지, 불교를 숭상하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한유는 이 편지에서 맹자의 시대 이후에 유가의 도가 끊어진 것은 양묵의 학설이 횡행하였기 때문인데,

그나마 맹자가 있었기에 중국이 오랑캐의 나라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자신은 맹자를 추존하는 이로서, 자신 역시 맹자가 그러했듯이

(노불에 대항하여) 도를 구원하는 역할을 하고싶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 자신이 불교와 같은 부정한 길을 따른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강력하게 자기를 변호한다.

 

<송부도문창사서>는 승려인 문창대사를 전송하며 쓴 서이다.

강력한 배불론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한유는 말이 통하는 승려들과는 나름 가깝게 지냈던 것 같다. 

한유는 가까운 벗인 유종원의 청에 따라 문창대사를 위해 이 글을 짓는다고 썼다.

이 글에 따르면 문창대사는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한유는 그렇게 문장을 좋아하는 문창대사가

유가의 도를 접하지 못하여 승려가 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유는 문창대사에게 당신과 내가 금수와 달리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것은

그대가 믿는 부처 때문이 아니라 모두 우리 유가의 성인들의 은혜이니, 그것을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만일 내가 문창대사였다면 '진실을 알려주마'라는 계몽적 글에 대해 기분이 썩 좋았을 것 같지는 않다.ㅋ

그러나 한유의 '마이웨이'식 스타일은 완전 꼰대스럽지만, 대놓고 자신이 옳다고 강변하니 얄밉지는 않다.

 

<고문진보> 후집은 총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2권의 절반이상과 3권, 4권이 한유의 글이다. 

5권에는 유종원의 글이 다수 실려 있고, 6권부터는 송대 문장가들의 글이다.

생각해보니 <고문진보>의 4분의 1가량이 한유글이다. 이야말로 도배라 할 만하지 않은가?

한유는 <고문진보>가 사랑한 문장가임에 틀림없다. <고문진보>라는 제목의 '고문'운동의 주창자이니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고문이라는 형식의 문제만은 아니리라.

한유의 좌고우면하지 않고 직진하며 내지르는 스타일과 내용도 후대의 유가 지식인들을 매료시키지 않았을까.

그게 무엇인지 내 깜냥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유는 문장의 세계에서 어떤 전범을 창출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예전에 한유의 글을 읽으면서 시원시원하다고 느꼈는데 이번에도 다시 그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앞으로 읽을 글들을 통해 한유라는 인간과 그의 문장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댓글 1
  • 2021-12-04 20:07

    우와! 저희한테도 정말 좋은 복습이예요^^

    한유의 매력에 새벽잠 설쳐도 힘들지가 않네요. ㅎㅎ

    앞으로의 한유글도 정말 기대가 됩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227
下終南山過斛斯山人宿置酒 후기 (2)
누룽지 | 2024.04.14 | 조회 28
누룽지 2024.04.14 28
226
[전습록]120조목-126조목 후기: 소혜야, 힘내! (2)
자작나무 | 2024.04.02 | 조회 43
자작나무 2024.04.02 43
225
<전습록 > 안자의 마음공부 (2)
울타리 | 2024.03.23 | 조회 49
울타리 2024.03.23 49
224
<전습록> 100조목에서 107조목 후기: 존덕성과 예민함 (1)
콩땅 | 2024.03.20 | 조회 54
콩땅 2024.03.20 54
223
<전습록> 93~99조목 후기-얼마나 간단하고 쉬운가! 정말? (1)
인디언 | 2024.03.06 | 조회 75
인디언 2024.03.06 75
222
다시 <당시삼백수>로
토용 | 2024.03.03 | 조회 67
토용 2024.03.03 67
221
<전습록> 없는 '전습록' 후기^^
자작나무 | 2024.02.27 | 조회 81
자작나무 2024.02.27 81
220
<전습록> 62조목: 비추는 공부와 닦는 공부에 대하여 (1)
요요 | 2024.02.16 | 조회 113
요요 2024.02.16 113
219
전습록 24.2.7.후기
누룽지 | 2024.02.14 | 조회 113
누룽지 2024.02.14 113
218
한문강독세미나 시간 변경 및 『맹자』성독
관리자 | 2024.02.11 | 조회 143
관리자 2024.02.11 143
217
『사대부의 시대』 번개 세미나 합니다(3주)
관리자 | 2023.12.26 | 조회 626
관리자 2023.12.26 626
216
전습록 5회차: 주일천리 (1)
콩땅 | 2023.11.23 | 조회 161
콩땅 2023.11.23 161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