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뭣부터?

자작나무
2021-04-17 21:21
215

 

 

여전히 주공의 '잔소리(^^)'가 계속됩니다. 지난 시간까지만 해도 주나라의 말을 듣지 않는 은나라 유민이나 외부의 이민족세력에게 유화하거나 윽박지르거나 하는 내용이 많았더랬죠. 그들을 향한 말이고 제스츄어이자 내부 단속용이거나 단결용이기도 했겠지요. 그렇게 주공은 안으로 밖으로 참 일도 많고, 말도 많습니다. 

이번에 읽은 <입정(立政)>의 내용은 전적으로 나이 어린 성왕에게 하는 '잔소리'입니다. 입정은 "정치를 세운다"는 뜻의 한자를 쓰지만, 결국은 정치를 함에 있어서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 그 순서와 경중을 정하는 일일 겁니다. 그래서 뭘 해야 하냐고요? 

주공은 말하죠, 신하를 잘 골라야 한다고 말이죠. 

 

"당신의 사를 거하고 하고 당신의 목을 거하게 하고 당신의 준을 거하게 하여야 임금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목(牧)을 맡은 관리로 상백이 있고, 일(事)을 맡은 관리로 상임이 있고, 법과 관련해서 준인이라는 관리가 생깁니다. 임금이 할 일은 이러한 부류-즉 직책으로 여기서는 목, 일, 법-와 관련한 일을 주로 담당하는 우두머리를 선발하는 일이지요. 임금이 쪼잔하게 9급공무원이 하는 일까지 다 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우두머리를 잘 선택해서 세워두면, 이들의 지도와 능력 등으로 자연스럽게 관료조직 사회는 잘 돌아가기 마련이라는 생각이죠. 그렇기에 주공은 임금이 정치를 세움에 먼저 이 "삼택(三宅)을 쓰는 도" 즉 관료를 등용하는 도에 대해서 말을 연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난 것은 임금이 관직장을 명할 때, 명령한다거나 시켰다거나 맡겼다거나 하는 동사를 쓰지 않고, '택(宅)'이라는 한자를 쓴다는 겁니다. 이 '택'자를 '저택' 정도로만 잘 쓰는 오늘날의 감성으로써는 엥 이건 뭥미? 이런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옛날 책을 읽을 때의 묘미란 이런 거겠죠, 그냥 쓴 듯한 한자인데도 알고 보면 다양한 의미와 당부를 한 글자 속에 차곡차곡 접어넣고 있다는 거죠. 가령 '택'를 해석하면서 채침은 "그들이 거하는 자리 즉 지위다"라고 말합니다. 지위에 걸맞게 저택의 크기라도 달랐나봐요^^ 또는 그 지위에 걸맞는 재능과 덕이 있어야 했겠지요. 물론 여기서 택은 '거하게 만든다'는 의미이니까, 주체는 임금이 됩니다. 임금은 뛰어난 현인들을 등용하고 그들로 하여금 그들 자리에서 그들의 능력을 집에서 거하듯 자연스럽고 물흐르듯 하라고 분위기를 만들어줍니다. 아마도 주공이 택자를 썼던 이유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네요(전적인 자작나무피셜^^). 

지금까지 읽은 <서경 주서>의 대부분의 글은 주공이 발한 말로 되어 있습니다. 내란을 어떻게 다스릴 것이고, 신하를 어떻게 뽑아야 할 것이며, 정치에 임하는 임금은 어때야 하는지를 꼬치꼬치 남긴 것은 주공이었죠. 이러고 보면, 주나라의 기본적 프레임(제도나 조직 및 지배 이데올로기 등등)을 세팅한 존재는 주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조선이 누구의 나라인가라고 할 때, 간혹 정도전이 기틀을 세웠니 어쩌니 하는 말처럼, 주나라는 주공이 기틀을 세운 나라임을 <서경>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겠네요. 그러하니 공자도 주공을 문/무왕 다음에 주공을 떡하니 올렸겠지....뭐 이런 생각이 듭니다. 

 

 

 

 

 

댓글 1
  • 2021-04-18 17:19

    언제쯤 주공이 <주서>에서 퇴장을 하실런지 ㅎㅎ

     

    순자를 읽다가 은의 유민을 낙읍으로 이주시킨 문제에 대해 힌트를 얻었어요. 

    채침은 은나라 백성들의 낙읍으로의 이주가 관숙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한 후가 아니라 은 멸망 직후라고 주장을 하잖아요. 무왕이 이미 낙읍에 도읍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면서 백성들과 함께 成周를 세워서 새출발을 했다고 <다사> 첫머리에 쓰고 있어요. 낙읍 이주 시기가 어쨌길래 채침은 틈만 나면 주석에다가 이 문제를 여러 번 썼을까? 그게 그렇게 중요했나?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순자는 <유효>편에서 유자를 분류하는데 그 중 大儒로 주공을 예로 들어 언급해요.

    주공의 업적을 몇 가지 거론하는데, 그 중 '주공이 관숙을 죽이고 주나라에 반대하는 은나라 백성들을  낙읍으로 옮겨 은나라 옛 도읍이 거의 폐허가 되었다. 이것은 반란의 근원을 발본색원한 것이므로 잔학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채인후, <<순자의 철학>>) 

    주공이  더 이상 반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백성들을 이주시키고 은의 도읍을 폐허로 만들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면 송대 유학자 입장에서는 주공을 옹호하기 위해서라도 반란 이전에 백성들을 이주한 것이었다고 주장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어쨌든 주공이 자신의 형제를 죽였고 은의 도읍을 폐허로 만들었다면 잔학한 일이었다고 볼 수도 있잖아요. 후대 유학자 입장에서는 주공을 그렇게 평가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을 것이고, 채침의 주석이 쫌 이해가 되네요.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227
下終南山過斛斯山人宿置酒 후기 (2)
누룽지 | 2024.04.14 | 조회 20
누룽지 2024.04.14 20
226
[전습록]120조목-126조목 후기: 소혜야, 힘내! (2)
자작나무 | 2024.04.02 | 조회 38
자작나무 2024.04.02 38
225
<전습록 > 안자의 마음공부 (2)
울타리 | 2024.03.23 | 조회 42
울타리 2024.03.23 42
224
<전습록> 100조목에서 107조목 후기: 존덕성과 예민함 (1)
콩땅 | 2024.03.20 | 조회 45
콩땅 2024.03.20 45
223
<전습록> 93~99조목 후기-얼마나 간단하고 쉬운가! 정말? (1)
인디언 | 2024.03.06 | 조회 67
인디언 2024.03.06 67
222
다시 <당시삼백수>로
토용 | 2024.03.03 | 조회 61
토용 2024.03.03 61
221
<전습록> 없는 '전습록' 후기^^
자작나무 | 2024.02.27 | 조회 77
자작나무 2024.02.27 77
220
<전습록> 62조목: 비추는 공부와 닦는 공부에 대하여 (1)
요요 | 2024.02.16 | 조회 105
요요 2024.02.16 105
219
전습록 24.2.7.후기
누룽지 | 2024.02.14 | 조회 104
누룽지 2024.02.14 104
218
한문강독세미나 시간 변경 및 『맹자』성독
관리자 | 2024.02.11 | 조회 135
관리자 2024.02.11 135
217
『사대부의 시대』 번개 세미나 합니다(3주)
관리자 | 2023.12.26 | 조회 619
관리자 2023.12.26 619
216
전습록 5회차: 주일천리 (1)
콩땅 | 2023.11.23 | 조회 154
콩땅 2023.11.23 154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