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공이라는 문제적 인물

요요
2021-03-26 14:06
502

우리는 <서경>의 <多方>을 읽고 있다.

주서에 실린 글은 모두 32편이다. 이 중에서 <다방>은 20번째 글이다.

 

<태서상>부터 <려오>까지 7편은 무왕과 관련된 기록이고, <금등>부터는 무왕의 죽음 이후의 정세가 다루어진다.

무왕이 죽은 후 무왕의 아들이 어렸던 까닭에 삼촌인 주공이 나라의 정사를 돌보았다.

 

<다방>은 성왕이 나라의 정치를 챙기기 시작한 이후의 기록이다.

그 때까지도 여전히 주나라는 안정되지 못하여, 이곳 저곳에서 반란이 그치지 않았다.

성왕은 엄나라와 회이의 반란이 일어나자 엄을 멸하고 돌아와 반란의 조짐을 잠재우기 위해 명을 발하였다.

<多方>은 주나라의 통치 하에 있는 여러 지방,아직도 은나라의 회복을 꿈꾸는 多方의 통치자들에게 고하는 성왕의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을 주공이 대신 전하고 있다.

 

"은나라는 천명을 보존하지 못하여 망할만하여 망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너희의 잘못 때문이지 우리 주나라 때문이 아니다.

그러니 지금 천명을 받은 주나라에 복종하라. 내가 지금은 너희의 죄를 용서하지만 계속해서 반란하면 모두 각오해랏!"

 

그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주나라를 창업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무너뜨린 은나라의 문명을 얼마나 드높이 존중하고 치켜세우는지, 깜짝 놀라게 된다.

주나라 창업주들 스스로 은의 문화의 계승자임을 자처했으니 주건국 초기에 은문화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서경>을 읽으면서 새삼 알게 된 것이 주공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유학자들 사이의 논란이다.

주공이 조카의 자리를 찬탈하여 왕노릇을 했다, 아니다, 이 문제가 주공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서 매우 중요했나보다.

<서경>에 주석을 달고 있는 '채침' 역시 스승이자 장인인 '주자'의 입장을 따라 이 문제에 대해 

기회가 닿는대로 자신들의 타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주장들을 인용한다.

 

주공이 성왕의 말을 전하는 <다방>편에서도 그렇다.

13장은 "嗚呼 王若曰~~"(아, 왕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블라블라)로 시작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호라"라는 탄식이 먼저 나온 것이다.

"오호라"는 주공의 말이다. 주공은 "오호라"라는 감탄사를 발한 뒤 "왕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다방>편의 2장이 "周公曰 王若曰"(주공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왕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블라블라)로 시작한 것과

13장의 "嗚呼 王若曰"은 모두 주공이 성왕을 무시하고 왕노릇을 한 것이 아니라

성심껏 보필하면서 왕으로 존숭했다는 것을 역사기록으로 확실히 남기기 위해 당시 사관들이 만든 새로운 서술방식이라는 것이다.

<다방>의 2장과 13장은 주공이 자신을 왕이라 칭한 적이 없다는 기록상의 증거로 제시된다.

 

아, 그렇든지 말든지 우리에게 그게 무슨 상관이랴마는

성리학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을 터.

공자님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오른 주공에 대한 역사적 팩트와 평가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공도 그렇게 했는데, 나라고 못할쏘냐, 그렇게 왕을 참칭하는 일이 역사에 수없이 벌어지기도 했고.

 

<서경>을 읽으면서 생각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기록된 역사란 무엇이며,

무슨 말인지 해석하기 곤란한 기록에 이런저런 주석을 달아 의미를 확정짓는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는 또 무엇인가를.

 

 

 

 

 

댓글 6
  • 2021-03-27 07:51

    오호^^ 하은주를 통으로 지칭하는 의미를 <서경>에서 또 한번 느끼겠네요.

    <서경>이 역사책이라는 해석이 조금 더 이해가 됩니다요.

    그나저나 공자님은 꿈에서 주공을 못 만난 걸 자신의 삶이 끝나간다는 징후로 해석했던 문장을 떠올려보면

    이후 유학자들이  주공을 천하 경영의 롤모델 비쓰무리 하게 '투사' 했었나 이런 생각도~~

    아... <서경> 읽던 시절이 참 좋은 시절이었어요~ ㅋㅋㅋㅋ

    • 2021-03-28 16:19

      그 좋은 시절이 빨리 다시 와야할텐데요^^

      • 2021-03-28 16:38

        기린이 한문강독에서 자작나무와 티키타카를 주고받으며 웃음을 담당하던 그 시절이 그립네요~~

         

  • 2021-03-28 16:26

    주공의 섭정 문제로 왈가왈부 한 것 뿐만 아니라, 상나라 백성이 낙읍 건설 이전에 이주했다고 채침은 틈만 나면 주석에다 쓰고 있어요. 전 그것도 궁금하더라구요. 상나라 백성의 이주가 낙읍 건설 이전이냐 아니면 이후냐 그게 꽤나 논쟁거리였었나봐요. 

  • 2021-03-31 10:24

    지난 시간에 朱文公勸學文의 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해석이 새롭게 다가오셨다고 예심샘이 말씀하셨는데,

    이를 다시 생각나게 하는 사진 2장 입니다. ㅎㅎㅎ

    주문공권학문이 욜로족을 만나면 요렇게 변한답니다~~~

     

    • 2021-04-01 12:59

      ㅋㅋㅋㅋ 주공이 통탄하실듯. 근데 묘하게 설득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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