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부, 예심샘!

요요
2021-02-06 10:35
357

작년 마경세미나 파이널 에세이에 이런 내용을 썼다.

문탁의 장수 세미나 한문강독세미나를 10년 넘게 했는데

그동안 한문강독을 위해 쏟은 시간을 계산해보니 일주일 5시간*52주*10년=2600시간.

세넷은 장인이 되려면 1만 시간의 수련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제 겨우 1만시간의 4분의 1.

그러니 앞으로 길고 긴 수련이 남았구나!(한편으로는 탄식, 한편으로는 위안을 느꼈다^^)

 

일주일 5시간이 뭐냐고요?

세미나 시간 2.5시간, 예습시간 대충 퉁쳐서 2.5시간이다.

한문강독의 첫 텍스트가 논어였는데 모든 게 처음이다보니 지금보다는 예습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

요즘 한문강독은 세미나회원이 7~8명으로 한문강독 초창기 반짝하던 시절을 제외하면 꿈같은 리즈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꽤 오랫동안 예심샘과 나, 그리고 토용 셋이서 공부를 한 적도 있다.(토용 이전에는 아톰이 3인 안에 있었다.)

그 때도 읽어야 할 양이 많아 예습시간이 더 길었다.

지금은 세미나 회원도 많고 또 요령이 늘어서 나는 좀 뺀질거리는 편이다.

그래도 강독시간이면 사부님 예심샘의 날카로운 지적을 피할 수는 없다.

 

예심샘은 그야말로 매의 눈으로 잘못된 부분을 칼같이 짚어낸다. 그냥 넘어가는 법도, 봐주는 법도 없다.

아마도 1만시간의 수십배는 강독과 번역에 쏟았을 예심샘의 내공은 우리와 같은 초심자와 함께 하는 강독에서도 날카롭다.

하기야 장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의 수준이 어떠한지 안보려해도 안보일 수가 있겠는가?

작년에 합류하여 아직 끙끙대며 한 글자 한 글자 짚어가며 읽는 누룽지에게도,

대충 공부해 와서 얼렁뚱땅 얼기설기 말을 지어내며 넘어가려는 요요에게도 평등하다.

 

강독을 해보면 (나 같은 얼치기는) 희한하게 컨디션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는다. 

집에서 읽을 때는 술술 읽히는 듯하여  '음.. 쉽군!'하고 왔는데(참고서 후광효과인 줄도 모르고..ㅎㅎㅎ)

세미나에서는 글자가 따로 놀고 문장구조가 눈에 안 들어오는 때도 많다. 그럴 때면 식은땀이 난다.

대체 난 뭘 예습하고 온 거지? 정신이 아득해진다.(아직 2600시간밖에 안되었잖아, 그래서 2600시간이 위안이 된다.ㅋㅋ)

내가 그때그때 난이도와 컨디션에 따라 강독의 정확도가 들쑥날쑥하는 것에 비해 자작나무와 토용은 상당히 안정적이다.

아무튼 내가 버벅거릴 때면 여지없이 예심샘이 끼어들어 수정을 해준다.

그런 예심샘의 마력에 빠져 10년을 예심샘과 함께 했다.

 

예심샘은 아침부터 밤까지 흔들림 없이 책상 앞에 앉아서 한눈 팔지 않고

한문을 읽고 번역을 하는 공부스타일, 일스타일이다.

아마도 그 한 눈팔지 않는 뚝심이 지금의 예심샘을 만들었으리라.

우리가 예심샘처럼 읽지 않고 실력이 팍팍 늘지않는 것이 답답하기도 할텐데도 예심샘은 관대하다.

나는 때로 이런 생각을 한다. 예심샘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와 10년 넘게 강독을 하고 있는 걸까?

 

철알못인 내가 <철학학교> 튜터로 이름을 올리기도 하는 이상한 문탁네트워크에서

쟁쟁한 한문실력자들도 인정하는 이름난 번역자인 예심샘은 10년간 세미나회비를 꼬박꼬박내면서

나를 포함하여 한문강독 세미나에 공부하러 오는 학인들에게 지겨워하지도 않고 꾸준히 한문 읽는 법을 가르쳤다.

정말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이 아닌가?

세상일 중에는 상식이나 통념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많다.

"서프라이즈, 어떻게 이런 일이!"와 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나기도 한다.

예심샘과 한문강독세미나를 같이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일들 중의 하나이다.

뚜렷한 인과를 설명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혹시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일까?"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평소 생각하던 것을 이렇게 글로 쓰고 나니 좀 부끄럽다.^^

 

사실...지난 세미나에서 읽은 두보의 '뜰앞의 감국화를 탄식하다"에 대해 후기를 썼는데

친정집 와이파이 연결에 문제가 생겨 그 글을 날렸다.

그 후기에서는 최고의 번역자 예심샘도 한문강독 쌩초보 누룽지에게 감국화의 생태를 배운다고 썼는데..

그 글을 날리고 나서 이 글을 썼다.ㅋㅋ

다들 아시리라. 그 글에서도 이 글에서도 사부님 예심샘에 대한 나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댓글 4
  • 2021-02-06 12:34

    읽는 제가 다 부끄럽지만 감동적입니다 ㅎㅎ
    요요샘의 절절한 思師曲인가요?

    공부를 유용성으로만 따진다면 확실히 문탁의 강독 공부는 유용하지요.
    어디가서 예심샘 같은 분을 모시고 거의 공짜로 원전 강독을 배울 수 있을까요.
    그렇지만 제가 강독세미나를 오래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심샘, 요요샘의 공부에 대한 자세, 마음에 배울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앗, 2600시간에 택도 없는 제가 감히 오래 라고 말을 했네요 ㅋㅋ)
    공부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공부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요요샘의 두보 시 후기도 궁금한데 아쉽네요.
    다음번에 써 주세요!

  • 2021-02-07 08:29

    아...예심샘...❤

  • 2021-02-08 13:49

    진짜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예심쌤^^
    요요샘도 토용샘도 엉덩이로 고전 읽는 여러분들도 리스펙!!!

  • 2021-03-06 01:10

    樂樂先生之稱引 何如是太過乎 予甚慙靦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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