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진보 聖主得賢臣頌

요요
2021-09-22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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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진보 후집의 명문장들은 시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굴원-이사-한무제-가의, 그 다음이 전한의 왕포(기원전 90~51)가 쓴 聖主得賢臣頌(성군이 현신을 얻은 것을 칭송함)이다.

전한의 10대 황제인 선제 시대의 사람으로 황제의 명을 받아 이 글을 썼다.

 

선제는 무제의 증손으로 어린 시절에  역모에 연루되어 민가에서 장성하다가 곽광에 의해 황제로 픽업되었다.

민가에서 자라서 그런지 선제는 유가적 이상주의보다 실용주의적인 경향이 강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황제의 명에 의해 지었다는 왕포의 이 글에서도 현신을 국가의 기용器用에 비유하고

성군이 현신을 얻는 것을 공인이 연장과 서로 맞는 것에 비유하고 있는 점이 특히 눈에 띄었다.

 

성군이 솜씨좋은 대장장이라면 현신은 간장검이니 베지 못할 것이 없고,

성군이 이루나 공수자와 같은 뛰어난 장인이라면 현신은 그가 쓰는 먹줄이니 어떤 건물도 지을 수 있고,

성군이 뛰어난 말몰이꾼이라면 현신은 설슬이나  승단과 같은 명마니 가지 못할 곳이 없다.

시원한 갈포옷이 있으면 여름 더위가 괴롭지 않고, 따뜻한 갖옷이 있으면 한겨울의 추위를 근심하지 않는다.

(뭔가 제작자적 세계관이 물씬 느껴지는 비유들이다. 통치행위를 일종의 제작행위로 생각한 것 같다. )

 

결국 현신은 성군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게 하는 것(기용)이니,

현인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성군이 되기 위한 필수덕목.

하여 주공은 밥을 먹다가도 입에 넣은 것을 뱉고, 머리를 감다가도 젖은 머리카락을 붙들고 뛰어나가

현인을 맞이 하였으며 제환공 역시 밤늦도록 마당에 불을 밝히고 현인을 맞이 하였다는 고사가 인용된다.

 

이는 신하에게도 마찬가지.

성군을 만나지 못하면 천하의 이윤도 요리하다 생을 마쳤을 것이요, 강태공은 칼을 두드리며 곤궁하게 살았을 것이고,

백리해는 자신을 팔고, 염자는 소를 먹이는 걸로 삶을 마쳤으리라.

 

성군과 현신이 만나 서로 뜻이 맞는 것은 명연주가 백아가 최고의 거문고인 체종금을 타고,

명사수 방문자가 천하의 명궁인 오호궁을 당기는 것으로도 비유가 안 될 정도로

온갖 상서를 부르는 일. 그리하면 무위지치가 이루어져 온세상이 편안하리니... 

 

성군과 현신의 만남은 야심있는 군주와, 자신의 능력을 군주를 돕는데 발휘하고 싶은 신하들의 로망.

그러나 어떤 만남이든 공인과 연장의 관계와 같은 비유에 담을 수 없는그 이상의 무엇이 흘러 넘치는 것이 리얼한 현실. 

聖主得賢臣頌은 군주 중심의 세계관에 입각해 있는 글이라 그런 생동감을 느낄 수는 없다.

군신관계와 관련해서는 논어나 맹자, 혹은 <서경> 같은 역사서들에 훨씬 더 재미난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걸

후기를 쓰며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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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을 읽다 <고문진보>로 갈아타니 글 읽는 분위기도 크게 변했다.

문장가들의 글은 현란한 비유와 온갖 고사의 인용이 난무한다. 문장이 길지 않아도 알아야 할 것은 곱절 이상으로 늘었다.

그동안 몇년간 한문강독세미나에서우리는 현토를 달아가며 문장을 읽는 연습을 해왔는데

이 글들은 현토를 제대로 달기 위해서라도 자기 나름대로 문장의 맥락을 음미하고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성백효 선생님의 현토에 의지해서 읽고 있는데 예심샘의 예리한 지적에 걸릴 때가 많다.^^

또 현토를 붙여서 읽다보면 작가가 애써 구성한 문장의 리듬감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놓칠 수도 있다.

예심쌤은 문장분석과 해석을 마친 뒤에 현토를 붙이지 말고 문장을 음미하며 그 흐름을 느껴보라고 하는데..

아이고.. 언제나 그런 걸 느껴볼 수 있을지?

 

 

 

 

 

 

 

 

 

 

 

 

댓글 2
  • 2021-09-24 22:43

    그쵸. 인용된 고사들만 알아도 맥락파악에 도움이 많이 될텐데말이죠. 계속 공부하면서 읽다보면 조금씩 아는게 많아지겠죠^^

     

  • 2021-11-25 05:15

    문장이 길지 않아도 현란한 비유와 쏟아지는 고사로 요요쌤이나 토용쌤도 어려워하신다니 엄청나게 위로가 되네요. 해석이 되도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에 계속 한숨만 나왔었거든요. 계속하면 저도 좀 나아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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