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런 날이 오겠죠? (2021.3.11. 세미나 후기)

누룽지
2021-03-22 03:59
323

<소동파의 月夜與客飮酒杏花下를 읽고나서>

 

천년 전에 이런 사람이 살았네요.

살구꽃 흩날리는 봄 밤이예요.

달 아래 거닐며 꽃 그림자 밟다 향기에 취해 꽃 사이에 술자리를 폈어요.

이런 날 차마 薄酒를 마실 수 없으니 우선 잔에 비친 달이나 마시래요.

 

동파육의 유래를 알게 되었을 때부터 짐작은 했었죠.

섬세해서 까다롭고 탐미적이어서 맛없는 술이 안타까운 사람,

글을 그림처럼 그리는 사람.

 

퉁소 소리마저 끊기니 오직 달빛으로 잔을 채워 적막을 삼키네요. 다만 달이 져서 술잔에 비추지 않을까 걱정이래요.

밤새도록 그렇게 그 자리에 있으셨던 거예요?

 

마지막 문장은 다음날 아침이네요. 흑백TV를 보다 확 칼라TV로 바뀐 느낌이예요. 밤조차 살구꽃이 흐드러지는 한 봄의 밝은 아침이라서 이 분의 눈에는 또 어떻게 보이나 궁금했었죠.

하지만 꽃이 핀다고 쓰고 꽃이 진다고 읽는 분이네요.

 

꽃잎 흩날리는 봄 밤은 술 없이 달이 질 수 없지요.

올 해도 작년처럼 매화나무 아래서 봄 밤을 지새우기로 한 우리 팀의 작당모의는 무산되었지만 여전히 내년을 꿈꾸며 주류박람회장에 가서 골고루 마셔보며 술을 고르고 어울릴 안주를 궁리할 겁니다.

그런데 정말 이런 날이 올까요?

 

 

 

月夜與客飮酒杏花下

蘇軾(子瞻)

杏花飛簾散餘春하고

明月入戶尋幽人이라

褰衣步月踏花影하니

炯如流水涵靑蘋이라

花間置酒淸香發하니

爭挽長條落香雪이라

山城薄酒不堪飮하니

勸君且吸杯中月하라

洞簫聲斷月明中

惟憂月落酒盃空이라

明朝卷地春風惡이면

但見綠葉棲殘紅이라

 

 

달밤에 손님과 함께 살구꽃 아래에서 술을 마시다

- 소식(자첨)

살구꽃 珠簾에 날아들어 남은 봄 흩날리고

밝은 달 창문에 들어와 그윽한 사람 찾아주네.

옷 걷고 달 아래 거닐며 꽃 그림자 밟으니

밝기가 흐르는 물에 푸른 마름 잠겨 있는 듯하다오.

꽃 사이에 술자리 베푸니 맑은 향기 풍기는데

긴 가지 휘어잡자 향기로운 꽃 눈처럼 떨어지네.

山城의 나쁜 술 마실 수가 없으니

그대 우선 잔 가운데의 달이나 마시소.

퉁소 소리 끊기고 달 밝은 가운데에

오직 달이 져서 술잔에 비추지 않을까 걱정이라오.

내일 아침 땅 말아올리는 봄바람 사납게 불면

다만 푸른 잎속에 쇠잔한 붉은 꽃 깃드는 것 보리라.

- 성백효 선생님의 해석입니다.

 

 

 

댓글 2
  • 2021-03-22 23:14

    오기를, 내년에는 매화꽃 향기에 취해보길 바라봅니다

  • 2021-03-23 14:17

    첫구부터 정말 멋지구나, 그런 느낌이 왔어요.^^

    뭐랄까,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데 말을 가지고 노는 것 같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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