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이라는 존재

자작나무
2021-03-03 22:18
262

 

우리는 어느덧 '소공'이 나오는 부분에까지 이르렀다. 소공이 누구냐고?

은나라를 멸한 왕으로는 대개 문왕/무왕을 말한다. 기반을 닦은 이는 문왕이고, 실제 무력을 행사한 것은 무왕이다. 왜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일견 쿠테타라고도 할 수 있는 혁명을 해야 하는지를 우리는, 무왕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문서화된 글들을 읽어왔다. 

그런데 한 나라의 초석은 무력만으로 되진 않는다. 무력을 휘날리던 무왕은 10년도 채 되지 않아 죽었고, 그의 어린 아들이 보위에 오른다. 성왕이다. 하지만 아직 주나라는 단단하지 않다. 은나라의 세력이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주나라 왕실의 어른인 주공은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조카이지만 왕인 성왕은 어리고, 왕족들 중 누구는 은나라 유민과 더불어 반란(!)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왜? 아니, '왜'를 묻기 전에 주공에게 중요한 일은 이 일을 '수습'하는 것이었다. 수습과 더불어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단도리 하는 일이 필요해졌다. 그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누가 할 것인가. 주공밖에 없다!

 

주공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주공은 이전의 왕들보다 더 많은 글들(명령서나 보고문 등등)을 남겼다. 천명은 일정치 않으니, 노력하고 노력하라고. 은나라 주왕이 했던 것처럼 술먹고 농땡이치지 말라고. '잔소리'를 거듭했다. 그 잔소리는 천자는 어떻해야 하며, 천명은 어디서 어떻게 오고 가는가에 대한 전략전술을 쌓는 쪽으로 발전했다. 그렇게 '문화', 시스템을 세우는데 노력했던 주공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주공은 새로운 도읍을 기획한다. 낙읍을 만드는 일. 이와 관련한 그들에서 우리는 '소공'의 이름을 본다. 낙읍을 조성하는 점을 쳤네, 성곽을 쌓았네, 성왕이 제사를 지내러 오네, 은퇴하네 마네 등등. 왜 낙읍 조성과 관련해서 이렇게 많은 글들이 남은 걸까? 그리고 이와 관련해 소공은 왜 형인 주공과 티키타카를 하는 걸까? 

 

우리는 무왕 사후에 주공이 성왕보다 더 많은 힘을 발휘해온 것을 안다. 어린 왕 대신에 흡사 주공은 섭정처럼, 혹은 왕처럼 권력을 휘두른다. 주공은 성왕의 자리를 찬탈한 걸까? 그렇지 않으면 그저 섭정의 지위에 있다가 어른이 된 성왕에게 자리를 돌려준 걸까? 그렇다면 이는 주공이 왕의 자리에 있었다는 건데, 공자가 사랑한 주공이 설마? 돌려줬다면 왜 어떻게? 당시의 많은 왕족이나 귀족들은 주공을 가만 놔두었을까? 정치적인 다툼은 없었을까? 어린 성왕의 숙부이자 주공의 동생인 소공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렇게 현실정치에서 있을 듯한 의문을, 대하드라마를 쓰는 듯한 상상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요즘 읽고 있는 부분이다. 

 

물론 우리가  읽는 <서경집전>은 주자의 제자이자 사위인 채침이 주자의 녹취록을 푼 서적이라서, 이런 다양한 이견들을 구석탱이에 숨겨놓는다. 한당대의 유학자들이 해석해낸 주공에 대한 평가를 인정할 수 없다는듯이 말이다. 채침이 숨기고 숨긴(^^) 언급들에서 주공은 섭정은 했을지 모르나 '절대로' 성왕의 '왕'의 자리를 찬탈하지는 않았다고, 왕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고 말하고 또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공을 둘러싼 복잡미묘한 상황을 한단면이나마 상상하게 만드는 존재가 소공인 것 같다. 때로는 주공을 밀어주지만 때로는 그를 견제하는 존재. 정확한 역사적 사실은 모르겠지만, 이런 이견들의 존재로 볼 때 주공은 이후 독자들에 의해서 '해석되고' '발견된' 인물(특히 공자나 주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주고 상상하게 해주는 것이 소공이고, 그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글들(<소고>, <낙고>, <다사>, <군석>)이라고 할 수 있다. 

 

<서경>을 다 읽고 대하드라마 한편을 봤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역사적 그 인물이 뭔 말을 했고, 무슨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가 그 일을 하는데 어떤 고민을 했고, 누구를 라이벌로 삼았고, 그 일을 하면서 어떤 인간적인 고민을 했는지를 조금이나마 상상하고 맛볼 수 있기를. 

 

 

 

댓글 1
  • 2021-03-08 23:39

    순자는 주공이 왕위에 올랐다가 성왕에게 다시 돌려주었다고 말하고,
    주공을 존경해마지 않는 유학자들은 섭정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그걸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네요.
    주나라 건국은 BC1045년. 강력한 왕권이 성립되기 이전의 부족국가인데, 나이 어린 왕이 즉위하면 왕족이 집단으로 함께 정치를 하지 않았을까요.
    은나라의 경우는 형제상속도 많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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