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 깊이읽기 1회 세미나 후기

누룽지
2020-12-15 02:19
308

제가 한문강독세미나팀에 들어오게 된 것은 굉장히 단순한 욕망이었습니다, '한자로 된 옛날 요리책을 원문 그대로 읽고싶다' 는. 요요쌤은 별일 아니라는 듯 한문강독세미나에 참여해서 같이 읽어나가면 된다 하시며 심지어 그 편안한 눈웃음까지 지어보이셨어요. 아무것도 모르니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도 모르지만 그 땐 진짜 몰랐습니다 書經의 무게를.

글자 해석도 절절 매는 제게 잠시 강독 방학을 틈타 '상서 깊이읽기'라는 책을 함께 읽자 하신 것은 가뭄의 단비같았습니다. 지난 겨울에 자작쌤이 중국고대사를 한번 흝어주신 덕택에 말귀를 좀 알아들을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이 책이 하는 말이 귀에 들리게 된 것이겠지만 한국어판 서문에 '이 책의 요지는 상서가 수천년간 동아시아의 정신세계와 고유문화를 창달해온 핵심 경전'이라는 말에 그은 밑줄이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상식이라고요? 전 아니었거든요~)

저자 위중이 自序에서 이 책은 상서의 독서기라 하길래 모처럼 가뿐한 책을 골라 주셨나 기뻐했더니 그건 아니었지만 각 편마다 본문의 의미를 잘 정리해주고 편들이 이어지며 흐르는 내용의 맥락을 짚어주어 저는 비로소 책을 읽은 것 같았습니다. ( 팀의 다른 분들은 글자 해석에 파묻혀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제 심정을 알라나 몰라요) 

1회 세미나에서는 '제 1부 우서'를 읽었습니다. 1편 요전, 2편 순전, 3편 대우모,4편 고요모, 5편 익직으로 구성되어 있는 요순시대의 역사를 담은 내용이었습니다.  요순시대의 역사를 이야기하니 1,2편의 편명은 이해가 되는데 3,4,5편은 왜 이런 편명을 갖는지 낯설었는데 고요는 순이 임명한 대법관이고 백익은 고요의 아들이었으며 '고요모'와 '익직' 두 편이 반영하고 있는 시기에 최고위 지도층은 트로이카 체제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추론하는 문장을 읽고 비로소 편명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정치철학을 이야기하며 '군주의 덕성' 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아직도 가슴이 철렁하지만(왜냐하면 뭔 말인지 잘 모르거든요) 수천년간 내려 온 군주가 정치의 구심점이자 원동력이라는 생각의 뿌리를 보는 가슴벅참도 있었습니다.  이미 박제화된 제사만을 경험한 저에게는 왕의 제사의 중요성을 언급한 부분을 읽을 때엔 마치 신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으며, 역법을 제정한  요임금은 시간의 개념을 만들어 역사를 창조한 인물이라는 서술에서는 조선시대 왕들이 달력을 신하에게 하사했다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치와 예악을 이야기할 때 주로 개인의 감성을 표현하는 오늘날의 음악이 머리 속에 꽉찬 저에게 설명해주신 말씀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예악은  서로 다름을 표현하는 예와 진동과 공명으로 하나되는 악이 합쳐진 말이라고요. '이런 거구나, 수천년 전의 책을 읽으려면 수천년 전의 사람들 마음으로 모드를 전환할 수 있어야 읽히는 거구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설명은 모드전환에 대한 강력한 울림을 주셨더랬습니다. 상서의 주제는 '政의 道'와 '治의 術'이라는데 이 책 다 읽으면 조금은 알 수 있을까요?

한문강독팀의 모든 분들이 제게 한결같이 해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다려라'. 읽고 읽고 계속 읽다보면 그렇게 기다리면 언젠가 쑤욱 성장해 있는 제 모습을 보게 될 거라고요. 그런데 그것은 저 혼자만의 한걸음 한걸음이 아니었습니다. 비틀거리면 손 잡아주고 또박또박 걷는 날에는 칭찬도 해 주시며 함께 걸어주시네요. 이미 걸어온 길일텐데 귀찮아 하시지도 않고요. 후기를 쓴다는 핑계김에 언젠가 한번 꼭 말씀드리고 싶었던 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댓글 4
  • 2020-12-15 07:47

    한문강독팀에 입성한 누룽지샘이 부럽네요

  • 2020-12-15 09:49

    아! 한문강독팀 분위기 촉촉하네요~ 부럽다!

  • 2020-12-15 18:05

    한문강독을 하다보면 읽은 걸 자꾸 까먹게 됩니다.
    읽을 때는 문장의 해석에 대해 서로 이야기도 많이 하고, 뭔가 좀 안 것 같은데
    강독하고 난 뒤 다시 복습을 하지 않아서 그런가봐요.
    <서경>은 특히 짧은 본문과 엄청 긴 주석을 읽다보면 <서경>에 기록된 것과 채침의 주 사이에서 길을 잃기도 합니다.
    예심샘이 연말 마무리하느라 못나오시는 시간에 서경을 해설한 책을 읽게 되어 저도 너무 좋습니다.(자작과 토용의 탁월한 선택!!)
    게다가 저자가 법학을 연구한 사람인지라 성리학적 해석과는 거리가 먼 것도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누룽지님만 새롭고 재미있는게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이 책을 읽고 다시 서경으로 돌아가면 서경이 그전과 다르게 읽힐지, 그건 자신이 없지만 말입니다.ㅋ
    그리고.. 한문강독 게시판에 정말정말 오랜만에 글이 올라왔는데
    내년에는 좀 더 자주 글이 올라올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금부터 생각 좀 해보려 합니다. 호호홍

  • 2020-12-15 20:33

    옛날 요리책 지금은 눈에 좀 들어오시지 않나요?
    오늘 서당 수업시간에 우샘께서 요리 한자 자체는 어렵더라도 문형은 기본적인 것이라 읽기 어렵지않다고 하셨어요.
    누룽지샘께서 옛날 요리책 읽으시고, 그 요리 맛있게 해주시는 그날까지 열심히 같이 공부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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