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파시오날리스 일상기술 에티카 4) 술맛이 어떠냐?

히말라야
2020-07-28 21:52
121
스피노자 <에티카>를 읽다보면 뭘 알고 뭘 모르고 있는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쓰지 않으면, 정리하지 않으면 신체에 흔적을 남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뭔가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어가면서 정념적 인간(호모-파시오날리스)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을 익혀봐요! ^^

 

호모-파시오날리스의 일상기술 에티카 4) 적합한 관념

“술맛이 어떠냐?”

 

 

 

 

 

 

 

 

세간에 화재가 되었던 드라마 ‘이태원클라쓰’에서, 주인공 박새로이에게 소주 한 잔을 따라주며 그의 아버지가 묻는다. 

 

 “술맛이 어떠냐?”

 

그날은 새로이가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날이었다. 전학 간 첫날, 같은 반 친구를 ‘개취급’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견딜 수 없어서 그에게 주먹을 날렸는데, 하필 그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 회장의 아들이었다.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하면 퇴학은 면하게 해주겠다는 회장과 그 편에 서 있는 교장. 그러나 그 수치스러운 제안을 거절하고 이제 더이상 학생이 아닌 그에게, 아버지는 ‘멋진 아들’이라며 술을 따라준다. 그날 처음으로 맛 본 술은 무척이나 달았다. 그러나 얼마후 아버지는 사고로 죽게되고, 아버지를 떠올리며 홀로 마시는 술 맛은 무척이나 쓰다는 것을 그는 알게 된다.

때에 따라 맛보는 술 맛이 달라지는 건, 술의 성분 자체가 달라져서는 아니다. 그렇다고 같은 성분의 술맛이 어떤 날엔 달고 다른 날에 쓰다는 것 역시 거짓은 아니다. 만약 아직 술을 마셔보지 않은 누군가가 “진짜 술맛이 뭐냐?”고 묻는다면, 달다고 해야하나 쓰다고 해야하나, 대략난감할 것이다. 과연 ‘진짜 술맛’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거짓이 아닌, 부적합

선과 악, 옳음과 그름, 참과 거짓은 서로 모순이며 공존할 수 없다. 무엇인가가 악이나 거짓이라면, 그것은 없애야 할 것이며 폐기되어야 할 것이 된다. 그러나 스피노자가 말하는 부적합함과 적합함은 좀 다르다. 선과 악의 개념과는 달리 어떤 것이 지금 부적합하다고 해도, 뭔가 더 보완되고 특정한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적합해질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우리의 감각과 느낌에 대해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 각자는 자기 경험에 갇힌 유한한 감각을 지닌 존재들이기 때문에, 외부사물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그런 감각과 느낌을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그것 외에는 진리를 향해 갈 다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말처럼, 어떤 관념이 적절하지 않은 아무 때와 장소에서 끼어든다면, 그것은 부적합하다. 물론 솥뚜껑만 봐도 놀라는 사람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리에게 공포를 주었던 사물을 피하는 것은 생존에 유리하기에, 이런 부적합함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언제든 자기를 사로잡을지 모를 공포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 과연, 자기에게 이로운가? 스피노자의 덕은 언제나 자기에게 ‘좋음’을 아는 것이다. 게다가 어쩌면 그는 편견일뿐인 자신의 공포를 타인에게도 유포하거나 강요할 가능성도 있다. 아직 솥뚜껑을 접하지도 않은 누군가에게 나쁜 것이라며 금지시킬 수 있는 것처럼. 이처럼 부적합한 관념은 자기에게 해로운 만큼, 남에게도 해로울 수 있다.

 

 

적합하려면 우선, 공통적으로 

 그러니 만약 지금보다 좀 더 즐거운 삶을 살고싶다면, 부적합한 관념보다는 적합한 관념을 늘리는 것이 좋다. 그런데 스피노자가 말하는 ‘적합’은, 흔히 말하는 이데아와 같은 초월적 진리 혹은 누구에게나 명확하고 객관적인 소위 ‘팩트’와는 좀 다르다. 솥뚜껑에 대한 적합한 관념은 사전에 정의된 대로 ‘솥의 아가리를 덮는 뚜껑’이라는 보편적 정의를 달달 외워 나에게 주입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적합한 것은 사전과 같은 외적인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내적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내 외부의 사물을 나의 내적으로 정의한다는 것은 과연 무슨 뜻일까? 스피노자는 나와 사물이 공통적인 것을 가질 때 그게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공통적인 것이란, 나와 사물의 몸체 전체와 부분에 균등하게 분포되는 어떤 것으로 그 대상과 나의 합치점와 차이점을 알게 해주는 무언가이다. 

자라보고 놀라서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이가, 어느날 가마솥에서 긁은 맛있는 누룽지를 맛 볼 기회가 있었다고 해보자. 이전까지 그에게 솥뚜껑은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지만, 이제 ‘맛있음’이라는 긍정적 감정과도 연결되기에 무조건 피하려고만 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심지어  어떤 날, 그가 우연히 솥뚜껑에 삼겹살을 구워주는 친구를 만났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는 이제 솥뚜껑이 그리 두려운 것은 아니며, 스스로 솥뚜껑을 사용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럴 때 그와 솥뚜껑 사이에는 공통적인 것이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솥뚜껑에 삼겹살을 구워먹는 동안 그와 솥뚜껑은 서로에게 딱 맞춰져있다. 고기를 굽기 좋은 솥뚜껑의 적당한 온도, 고기를 뒤집어야 하는 적당한 타이밍, 적당히 기름이 빠졌을 때 집어내는 일 등은 솥뚜껑이 정하는 것도 아니고 솥뚜껑에 고기를 굽는 그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솥뚜껑을 자기 몸의 일부인 양 사용해야 하고, 그 역시도 솥뚜껑의 일부가 되어 움직여야만 한다. 그러려면 자기와 솥뚜껑 간의 합치점과 차이점을 이해해야 하고, 뭐라고 콕 찝어 말할 수 없지만 그와 솥뚜껑 사이를 관통하는 뭔가가 둘의 몸체 사이에는 흘러다녀야 한다.

 이렇게 둘이 서로 공통적인 것이 되면,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 되고 둘이 함께 공통의 능력을 새로이 장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정신은 외부사물을 자기 기준에 따라 평가하므로, 늘 오해한다. 이전의 그와 솥뚜껑은 서로에게 외부였고, 그래서 그는 솥뚜껑을 오해했다. 그러나 솥뚜껑과 그가 일체가 된 순간에는, 그가 솥뚜껑이고 솥뚜껑이 곧 그이므로, 오해가 생길 수 없다. 이런 것이 바로 ‘내적으로’ 이해한다는 의미이며, 이럴 때 우리 정신에 생겨나는 것은 적합한 관념이다.

스피노자에게는 이런 적합한 관념이 ‘덕’이다. 이전에는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지만, 이제는 누룽지를 만들어 긁어먹는 재미와 기름이 자연스레 빠지는 솥뚜껑 삼겹살도 구워 먹을 수 있는 능력으로 장착했다고 해보자. 이런 사람은 타인에게도 솥을 금지시키지 않을 뿐더러, 자기의 능력에 따른 생산물이 넘쳐나기에 다른 이들에게도 나눠주며, 그 방법을 가르쳐줄 수도 있다. 스피노자에는 이처럼, 자기에게 ‘좋은 것’이 타인들에게도 좋기에, 덕이다.

 

 

 

 

공통적인 것은 느리게 형성된다

 솥뚜껑과 같은 사물도 본래 가졌던 부적합한 관념에서 적합한 관념으로 만들어 간다는 게 아주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는 어떨까? 사실 스피노자가 적합한 관념에 대해 말하는 건, 사물보다는 사람사이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다. 솥뚜껑과는 달리 둘 다 표상 능력이 있고, 자유롭게 상상하는 존재들 사이에서 서로를 내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지 않을까?

그렇다고해도 잘 생각해보면, 그게 영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어떤 사람과 완전히 혹은 전체적으로는 아니어도 일시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일치감을 느끼는 일은 그래도 우리가 종종 경험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그 사람을 생각해보자. 내가 어떻게 할 때 그가 웃는지, 그가 화를 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나는 잘 알고있다. 만약 그 사람도 나에 대한 그런 앎이 있다면, 둘은 종종 하나의 신체처럼 결합할 것이고 그러기에 공통관념이 형성되었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들뢰즈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은 스노자가 말하는 공통관념이 이미 주어져있지만,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만 되찾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공통관념은 정신 속에 형성되는 것이지만, ‘신체’가 서로에게 맞춰 ‘변형’될 때에만 생겨나는 관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솥뚜껑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특정한 공통관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아주 오래들여야 한다. 게다가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많은 사람이 함께 어떤 공통관념을 형성하는 일은 아마 더 어렵고 복잡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렇더라도 스피노자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수록 우리가 더 적합해질 확률이 높다고 믿는 철학자다. 여럿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공통적인 것의 대표적인 것은 그 사회에 속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몸을 형성할 수 있게 해주는 규칙이나 법이다. 사람이 많을수록 솥뚜껑에 관하여 다양한 쓰임새가 발견될 것처럼, 사람이 많을수록 더 다양한 경험과 의견이 오고 갈 것이고 그 중에서 항상 더 좋은 것이 공통의 것으로 발견될 것이기 때문이리라.

 물론 그렇게 되려면 필수 조건이 있다. 모든 이가 판단하기 위한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고, 누구나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비록 현재의 법에서는 허락되지 않는 일일지라도, 자유롭게 말은 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가 필수적이다. (신학정치론 20장) 그래야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판단하면서, 한 상태에 머물러있지 않고 더 적합한 사회를 구성해가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

 

 

스피노자가 말하는 것처럼 항상 새로이 공통적인 것을 구성하려는 세상은, 이미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세상보다는 훨씬 더 느리고, 훨씬 더 시끄러울 것이다. 그러나 참과 거짓이 아니라, 적합함과 부적합함에 대해 말하는 세상이야말로 훨씬 더 많은 것이 서로에게 알려지고 인식되는,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삶이지 않을까? 

참이나 거짓은 초월적인 판정단이 필요하며 그들은 우리에게 신이나 절대권력으로 군림할 가능성이 생겨난다. 이와 달리 적합함은, 그 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들이 ‘서로 간에, 동시에, 현재적으로 느끼는’ 기쁨으로 바로 알 수 있다. 

 솥뚜껑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힘으로 혹은 억지로 솥뚜껑을 쥐어주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더 큰 공포만 심어주기에 적합하지 않다. 기쁨이 없다면, 그건 기쁨의 철학자인 스피노자의 적합함이 아니다. 스피노자의 적합함은 신체가 변형되어야 하기에 오래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두려움에 대해 스스로 이해하고, 두려워했던 대상이 자기에게 좋을수도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  ‘느껴가면서’ 서서히 진행되는 실험이기에, 오래 걸려도 기쁨의 시간들이다. 

 다시 술 맛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어쩌면 진짜 술맛이 뭔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솥뚜껑 위에 삼겹살을 올려 구워준 좋은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셔본 사람이라면, 솥뚜껑은 물론이고 술에 대한 ‘적합한’ 관념을 가질 수 있다. 그는 오늘의 술맛이 어떠리라는 것을, 아직 술을 마시지 않았어도, 이미 언제라도, 알 수 있다.

댓글 4
  • 2020-07-29 13:01

    글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2020-07-29 21:49

    흔들릴때는 솥뚜껑을 기억하겠습니다.

  • 2020-08-02 09:05

    솥뚜껑에 삼결살 넘 땡겨요~~~^^

  • 2020-08-03 14:51

    저도 솥뚜껑 위 삼겹살이 넘 아른아른... 그 맛을 잘 알아서 ㅋ 퇴근길 팀 한번 가야겠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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