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스피노자와 표현 문제> 첫시간 후기

호수
2020-05-29 11:04
137

들뢰즈의 <스피노자와 표현 문제> 첫 번째 시간을 가졌습니다. 올해 세미나는 매번 구성원이 달라져서 매시간 분위기가 묘하게 다르게 느껴져요. 내용이 어려워 절로 진지해질 수밖에 없으면서도 또 자주 웃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쉽지만 4부 강독은 지난 시간으로 끝맺고 들뢰즈의 책에 맞추어 1부 강독을 시작했습니다. 사뭇 엄숙한 분위기로 진지하게 읽어나갔습니다. 정의 3과 정의 5에서 잠깐 멈췄어요. 아렘샘이 실체는 자신 안에 있고 양태는 다른 것 안에 있다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실체는 자신에 의해 인식되고 양태는 다른 것에 의해 인식된다는 것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의문을 던지셨어요. 다른 분들이 우리는 스스로를 남들을 통해 알지 직접적으로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 않느냐고 말씀해주셨던 것으로 같습니다. 이 문제를 좀 더 생각해봤는데 우리는 나 자신이나 외부 사물을 직접 인식하지 않고 신체를 거쳐서 인식한다는 것과도 연관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리 5 서로 아무런 공통적인 것도 갖지 못한 것들은 서로 이해될 수 없다. 또는 하나의 개념이 다른 것의 개념을 함축하지 않는다.’에 대해서도 길게 얘기되었어요. 첫 문장의 의미 자체도 이야기됐고(저는 사실 이 부분은 작년에 가시광선을 떠올렸던 것 같아요. 맨눈으로 보는 빛은 말 그대로 가시광선이 전부고 특별한 도구를 사용하고 나서야 다른 파장의 빛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두 번째 문장이 첫 번째와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얘기했는데 ‘또는’은 ‘즉’으로 봐야한다고 얘기가 모였던 것 같습니다.
다음은 정리 4 증명의 ‘지성 바깥’이라는 말이 쟁점이 됐어요. 집에 와서 에드윈 컬리의 영역본을 찾아보니 outside the intellect로 옮겨져 있습니다. 히말샘이 주신 <편지 9>를 읽어보니 여기도 ‘지성 바깥에’라는 표현이 나오네요(61). 이 부분 주석에 <지성교정론> 71절이 인용되며 인식과 관련한 내용이 나오는데 더 관심있는 분이 있으면... 같이 읽고 얘기해볼까요? ^^ 사실 김은주 번역본의 주석202를 보면 들뢰즈의 <표현 문제> 책이 인용되는데 글을 따로 빼서 올려볼까 하다가 스스로를 말렸어요. ㅎㅎ 그날 히말샘이 두 가지 해석을 말씀해주셨는데 ‘지성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보는 것은 헤겔 등이 했던 ‘주관적 해석’이고 ‘지성은 논외로 하고’로 보는 것은 들뢰즈 등의 ‘객관적 해석’..(?)  잘 받아 적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스피노자와 표현 문제>를 들어갔는데, 매번, 부디 벗들에게 도움이 되는 발제를 해보리라! 애를 써보지만 꿈은 요원하기만 하네요. 작년에 이수영의 책 첫 부분 발제를 했을 때처럼, 이번에도 제 발제문을 읽다 제 머리가 어지러워졌습니다....

 

서론에서도 1장에서도 ‘표현하다’라는 말은 주로 용례를 제시할 뿐 뜻풀이나 정의를 딱 떨어지게 내놓지는 않습니다. (아, 네, 이와 관련해 여기서 표현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 이미 증명이 되었다는 것인지, 열띤 토론이 있었습니다. 넓게 봤을 때 무한을 상상하는 유한자의 어려움이라고 생각되는데 계속 이야기할 기회가 많을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용례는 1부 정의6입니다. “나는 신을,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로, 즉 무한히 많은 속성들로 구성된 실체로 이해한다. 그런데 이 속성들 각각은 영원하고 무한한 어떤 본질을 표현한다.” 1부를 처음 읽을 때 왜 결국 ‘신=실체’라는 것인데 어째서 신이라는 표현을 버리지 않고 계속 쓸까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역사적 맥락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체라는 것이 결국 하나이고 그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 자체가 스피노자에게 굉장히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68년에 발표된 이 책에서 들뢰즈도 그걸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는 듯하고요. 정의 6 안에 이 목표가 명시되고, 실체와 속성과 본질의 관계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 ‘표현’이라는 말은 제가 이제까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긴 역사적 맥락 속에서 깊고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었네요. 미술시간의 꼬마처럼 신이 만물을 ‘만든 게’ 아니라면, 과연 만물은 어떻게 생겨났느냐, 라는 그 오래된 의문에 대한 답은 참 많았습니다. 신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흘러나왔다, 그래서 비슷하지만 덜 완전하다... ‘표현 이론'에서는 ‘신’, ‘일자’, ‘실체’가 자신을 ‘다자’, ‘양태’에게 자신의 모습을 현시한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개별 양태 역시 신의 본성을 현시한다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일방적이지 않은 관계, 그리하여 위계가 허물어지는 관계.

 

이 그림에 도달한 그들을 이해하는 길은 그야말로 험로입니다ㅠㅠ 책에서는 실재적 구별과 수적 구별을 같은 것으로 본 데카르트의 이론을 반박하고, 어떤 속성의 실체든 수적 구별은 없다고 강조합니다. 수적 구별이 없어야 실체는 하나이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것에 의해 산출되지 않고, 본성에 실존이 속하며, 필연적으로 무한합니다. 저는 우리가 속성을 여전히 세고 있으면서도(우리에게는 두 가지 속성이 알려져 있지요) 속성이 실재적으로 구별되며 수적으로는 구별할 수 없다고 하는 상황이 모순되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질’이라는 말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가 분명하게 와닿지 않았어요. “질의 관점에서는 속성마다 하나의 실체가 있지만, 양의 관점에서는 모든 속성들에 대해 단 하나의 실체만이 있다. 이 순수하게 질적인 다수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모호한 정식은 절대적으로 무한한 실체에 대한 포괄적 이해로 상승하지 못하는 유한한 지성의 어려움들을 표시한다.” (너만 어려운 게 아냐, 이게 어려운 게 당연하다는 위로 정도로 일단 접수하고..) 사유와 연장이 평행하다고 하지만 이것은 칼로 자르듯 분할되지 않지요. 우리는 분명 정신과 신체를 다른 것으로 느끼지만 나는 정신 한 개와 신체 한 개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는 건 이상합니다. 일단은 그런 차원에서 이해해봤습니다.(사실 정신과 신체를 둘 다 독립된—심지어 평행하는—속성’이라고 보는 것, 이 시각 자체에서 자연스레 종차적 시각이 나오는 게 아닌지. 원래 하나인 것을 별개의 속성으로 구분하면서... 그것을 하나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이렇게 묘한 논리가 구성되는 게 아닌가, 아직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읽는 사람에 따라 굉장히 다른 텍스트가 될 수 있구나라는 걸 느낍니다. 들뢰즈를 통해서 저도 새로운 차원의 읽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올라오네요. 좀 두렵기도 한데 다행스럽게도 극기훈련을 좀 좋아하는 것 같은 이상한 분들과 같이 있으니 즐겁게 계속 가보기로요.

 

이날 이상하고! 재미있는 논쟁이 많아서 1장까지밖에 못했어요. 다음 시간에 1부 나머지합니다. 발제는 2,3장 이라이졍샘, 4,5장 아렘샘 맡아주셨습니다. 아렘샘 다음시간에도 또 뵈어요. 샘물샘, 꽝샘, 미로샘도 다음 시간에 뵈어요.

댓글 6
  • 2020-05-29 11:43

    "극기훈련을 좀 좋아하는 것 같은 이상한 분들" 사랑합니다~~ ㅋㅋㅋㅋㅋ

  • 2020-05-30 08:26

    여전히 정리, 이해가 안되지만, 호수샘 후기 읽으니깐 조금 더 와 닿는 점이 있는 것 같아요~~
    함께 질기게 함 가봐요~~ㅎㅎㅎ

    • 2020-05-30 09:48

      질문이 있는데요,
      수적 구별이란, 늘 하고 있는 것이라 잘 이해가 되지만,
      실체의 실재적 측면, 실재적 구별이란 말은 여전히 모호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재가 영어로 things를 말하기에, 실체의 실재적 측면이라고 하면, 실체를 things의 측면에서 본다는 것으로 보면 될까요?
      조금 다르게, 실체를 (things라고 보는) 본질 자체로 구성되는 것으로서 바라보는 측면'이라고 이해하면 될지?
      things라고 하면, 연장속성의 느낌이 있는데 이것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도 애매합니다.

      • 2020-05-30 11:45

        실재적 구별은 수적 구별과 대비되는 의미로 질적 구별로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하나의 덩어리라고 해서 그 안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이 늘 동일한 측면은 아닐 수 있잖아요. 물론 스피노자가 말하는 실재적 구별은 궁극적으로 사유와 연장을 설명하는 것이지만 꼭 실체가 아니더라도...

        호수샘이 항상 말씀하시는 나무를 예로들어보면, 봄에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와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주는 나무 그리고 거대한 뿌리로 비를 빨아들이는 나무 등등은 우리가 실재로 다르게 지각하는 모습이잖아요.

        속성은 이렇게 동일한 것을 지성이 지각하여 본질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좋을것 같네요. 스피노자도 설명하기를 같은 사람을 하는 역할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 이름...의 예를 들고 있지요.(야곱과 이스라엘) 스피노자의 속성은 지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양태인 인간이 신을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이유는 속성을 통해서 속성이 표현하고 있는 것을 지성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고요. ^^

  • 2020-05-31 08:51

    노을쌤~, 설명 감사합니당~~~^^
    질문에 맛들여, 또 올립니다. ㅎㅎ

    어떤 사물에 있어 어제의 표현과 오늘이 표현이 다른 경우, 예를 들면 나무가 어제는 마른 잎을 떨어뜨리고, 오늘은 새싹이 돋는 다고 할 때, 이것은 평소 이해하는 방식으로 사물의 질적인 측면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시 애매해지는 부분은, 어떤 순간을 포착했을 때 같습니다. 이때도 수적 구별은 우리가 늘 하는 방식으로 쉽게 구별이 됩니다.(정지된 사진에서 물건 개수 세기) 실재적 구별에서 이 기준으로 구별이 가능하려면, 그 순간의 실체가 질적 구별을 갖고, 다양한 아니 무한한 속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됩니다. 이번주 읽는 부분에서 ‘형상들을 표상적으로 포착한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우리는 지각하지 못하지만, 설명에 의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실체는, 무한한 속성을 표현하고 있는 중이 되네요?
    (왜냐하면, 실체는 실존하는데 외부인과성에 의해 제한받거나 산출되지 않기 때문에, 따라서 수적 구별이 불가하고 셀 수 없는 형태로 실존하기 때문에)

    • 2020-06-02 15:21

      어맛! 마치 스피노자와 친구들이 서신을 주고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물론 질은 한참 떨어지겠지만..) 조으네요...ㅎㅎ

      인용하신 문장이 제 책에는(예전판) 90쪽이에요.
      "지성은 현실적으로 구별되는, 하지만 그러한 것으로서 하나의 유일하고 동일한 주어를 이루는[합성하는] 형상들을 표상적으로 포착한다."
      이어서 92쪽에는 이렇게 써 있습니다.
      "형상적으로 구별되는 모든 속성들은 지성에 의해 <존재론적으로 하나인 실체>에 관계된다. 그러나 지성은 자신이 포착하는 형상들의 본성을 표상적으로 재생산하기만 할 뿐이다."

      말씀하신 대로, 실체는 언제나/영원히 무한한 본질을 속성을 통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실체가 속성을 표현한다'는 표현 상에 약간의 오류가 있네요. ^^) 속성 자체가 실체 본질의 표현이지요. 다만 우리는 연장 속성과 사유속성으로 되어 있는 존재라 그것 밖에 모르겠지만, 논리적으로 실체는 무한한 속성들로 이루어진 절대적 무한의 존재이니까요. 이러한 속성들의 표현은 '형상적'인데 이는, 어떤 본질을 표현한다는 것은 곧 그 본질에 준하는 어떤 것을 생산해 낸다는 의미로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뭔가를 생산(행위)해 낸다는 것은, (의식 못할 수도 있지만) 그에 대한 표상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이해하고 있다고 하면 더 쉬울까요? 그게 '형상들을 표상적으로 포착한다'의 의미라고 보심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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