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롱 마지막 세미나(9주차) 후기입니다

호수
2020-05-21 12:25
116

며칠 전 갑작스런 비에 놀란 터라 오랜만에 차를 타고 문탁에 갔습니다. 일찍 도착했는데 늘 지각하던 습관 때문인지 어쩐지 일찍 들어가기 멋쩍어(?) 한살림에서 간단히 몇 가지 사고 나니 7시 27분. 도착하니 아직 한산합니다. 자룡샘과 히말샘이 마트롱이 착하게 끝을 내는군요..라는 담소를 나누시고 신짱샘은 정수기 물통을 불끈 집어들어 꽂고 자리에 앉으셨어요. 문득, 뿔옹샘이 탄식일까요 외침일까요, "정시가 됐는데도 이렇게 빈자리가 많은 이 분위기는 오늘로 끝나야 합니다!" ^^ 들뢰즈와 함께 다시 새로운 분위기가 일어나길 기대하며 마지막 마트롱 세미나를 시작했고, 이어 한길샘과 미나리꽝샘도 합류해주셨습니다.

 

이날 에티카를 강독하고 마트롱 책 4부를 훑는 과정에서, 스피노자 철학의 주요 쟁점이 많이 등장한 것 같습니다. 먼저 "공통성" 또는 "본성상 합치". 에티카 강독(4부 정리 29~35)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본성상 합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길게 이야기했어요. 적합한 예를 통해 이해해보려고 애썼는데, 히말샘은 목마른 두 사람을 떠올려보자 하셨습니다. 목마름을 느낀다는 공통점은 그 자체로는 결코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 한 모금의 물을 두고 두 사람이 싸운다면 그것은 목이 마르다는 공통점 때문이 아니라 수동 정념을 비롯해 외부 원인 때문이다, 라고 해석해주셨어요. 저는 정리 30 증명의 논리가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목마른 두 사람의 사례를 적용해도 여전히 아리송하네요. 추가 의견 환영합니다:)

 

잠깐 쉬고 이어서 마트롱을 펼쳤습니다. 마트롱은 2부에서 (영문 모르고 폭풍에 휩싸인 나무처럼) 정념에 휩싸인 인간의 삶(5장) 그리고 상대적으로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이성(6장)을 다룬 바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용을 정리해보며 다시 보니 '이성적 삶의 토대'가 2부 7장에서 다루어졌네요. 그 다음에 바로 이어져야 할 것 같은 '이성적 삶의 전개'는 3부를 지나 4부의 첫 장에서 이어집니다. 이성적 삶이 전개되기 위해서는 우선 정치적으로 조건형성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는 뜻인 것 같은데, 책을 다 읽고 돌아보니 어쩌면 이 주장 하나가 마트롱의 책을 대표하는 인상을 주게 된 것 같아요. 어쩌면 마트롱은 스피노자의 모든 저작을 충실하게 살핀 것일 뿐 적어도 이 저작에서는 그 이상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성이 승리를 거두는 데 필요한 지각장과 평화"를 마련해주는 것이 자유국가라는 3부의 결론이,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는 평범하고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룡샘이 제기한 문제들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맞게 이해했을까요? 이어서 정치적 조건형성의 일종인 '규제'가 '자유의지라는 개념의 폐기'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 물으며 "필연성과 자유의지" 문제도 꺼내셨어요. 제가 이 부분에서 '자유의지가 없다고 말하면서 윤리학을 얘기할 수는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는데(네, 실은 진부한 반론이지요), 세미나가 끝나고 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 더 많은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단 저 스스로 아직 자유롭다라는 말과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라는 말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고 탓하고 간단히 넘어가며, 이어 자룡샘이 제기하신 다른 문제들도 적어볼까 합니다. 가령 정념적 행동과 이성적 행동을 스스로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이것이 구분되지 않는다면 이러든 저러든 결국 비슷해져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허무한 기분이 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어 '스피노자주의자'가 된다는 건 어떤 걸까라는 질문도 주셨지요. 이 마지막 질문이 참 중요하게 다가왔는데, 오늘 후기를 써보려고 스스로 대견한 생각을 하고 마트롱 4부를 돌아보며 책을 뒤적이다 우연히 마트롱이 5부의 정리 3을 "어떻게 스피노자주의자가 되는가"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쓴 것을 발견했습니다(347쪽). 그날 나온 여러 쟁점을 적절히 마무리하는 하는 연결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여기 5부 정리 3을 적어봅니다.

 

5부 정리 3 수동인 정서는 우리가 그것에 대해 명석 판명한 관념을 형성하자마자 수동이기를 그친다.

 

히말샘은 마트롱 4부 13장 '이성의 역량'에서 "(우리는) 생리학적 인과결정에 작용을 가하기 위해 우선 이 인과결정을 연구하는 의사처럼" "우리 감정들을 어떻게 정복하는지를 발견하기 위해 이 감정들을 인식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인식이야말로 직접적으로 그리고 그 자체로 가장 좋은 치유책임을 깨닫는다"(762쪽)이라는 부분을 함께 기억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마트롱이 생각하는 '스피노자주의자'와 맞닿는 것 같아요. 마트롱이 스피노자 철학에서 가장 강조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정서에 대한 인식'이었고 크게 보면 정치 역시 이 정서에 대한 인식을 넓히기 위한 것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에게 공유해주신 히말샘의 깨알노트는 그러한 인식으로 가는 "심화의 노동"을 떠올리게 하네요^^

 

제게 마트롱은 무겁고 단단한 쇠자를 들고 정확하게 도형을 작도하는 이미지로 다가왔어요. 어제부터 살살 읽어보고 있는 들뢰즈는 마치 예술평론을 읽을 때처럼 한 단어 한 단어를 꼼꼼히 따져가며 당신의 숨소리까지 듣겠다, 라는 태도로 집중할 것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자발적으로 쓰는 후기라는 핑계로 4부 및 마트롱 책의 충실한 정리는 뒷전으로 하고 제 마음대로 써봤습니다. 다른 분들이 4부에 대한 내용 더 덧붙여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음 시간은 제가 발제합니다. 맛난 쿠키무이 쿠키를 준비하겠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오실까요?

한 주 잘 보내고 다음주에 뵈어요^^

댓글 13
  • 2020-05-21 12:56

    마트롱 논문?은 마치 교향곡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 5부(5악장)는 1악장과 맞닿은 지점이 있어서 개인적인 궁금점이 좀 해결되었습니다 실체와 정치론의 관계가 궁금했거든요

  • 2020-05-21 15:26

    사격형 모형으로 자리가 만들어져 있는 걸 보고, 오늘은 샘들 거의 다 오시나보다 했는데, 생각보다는 결석하신 분이 많은 날이었습니다. 회사업무부터 몸컨디션까지 평일 저녁공부에 있어 쉽지 않은 사연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마트롱책 12~14장은 이번주 한주에 읽기에 좀 많은 양일 수 있었는데, 말씀해주신 대로 어쨌든 빨리 마무리 짓고 새 책을 펼치는 ‘기쁨의 정서’를 통해 분위기를 다시 ‘업’시켜서 나갔으면 합니다.

    첫시간에는 지난주에 이어 에티카 정리4부29부터 35까지를 읽었습니다. 4부 정리29~37은, 마트롱책에서 말한 ‘인간상호적인 영원한 삶이 토대’(B1)군에 해당됩니다. 저는 처음 읽은 정리29와 정리30의 ‘공통’의 의미가 뭔가 모호해서 좀 헤멨는데요, 집에와서 다시 읽으니 조금 알 것도 같았습니다.
    정리29- 그 본성이 우리의 본성과 완전히 상이한 여하한 독특한 실재도 우리의 행위 역량을 촉진하거나 억제할 수 없으며, 절대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와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어떤 것도 우리에게 좋거나 나쁠 수 없다.
    정리30- 어떠한 실재도 그것이 우리의 본성과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에 의해서 나쁜 것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이 우리에 대해 나쁜 한에서 그것은 우리와 상반되는 것이다.
    정리29의 공통에 반대인 완전히 상이함은 예를 들면 두 속성의 차원에서처럼 상이하기에 좋거나 나쁠 수 없고, 정리30의 공통은 우리의 본성과의 합치를 말하는데, 이것은 나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공통적인 것을 나쁘다고 하면, 그것은 곧 우리의 어떤 것을 파괴하게 되는데, 실재는 외부원인에 의해서만 파괴될 수 있기 때문에(3부정리4), 부조리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본성상 공통적인 것은 외부원인에 의한 것이 아니게 되네요?

    이어서 정리31에는 상이, 상반이 나옵니다.
    정리31 따름정리 - 만약 (본성상) 상이하다면 이 실재는 좋거나 나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상반된다면, 이 실재는 우리의 본성과 합치하는 것, 곧 좋은 것에 대해서도 상반될 것이다.
    상이한 것은 우리와 무관하고, 상반된 것은 우리의 본성상 서로를 어긋나게 하고 파괴할 수 있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정념에 빠져 있는 때는 아주 상이한 방식으로 변용되어 합치되는 점이 없기에, 정서를 겪는 한에서 서로를 파괴할 수 있어 서로 상반됩니다.
    그런데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는 한에서 사람들은 항상 필연적으로 본성상 합치”(정리35)합니다. 이때의 사람들은, 외부원인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본성에 합치하는 것으로 자신에게 유용한 것을 최대한 추구할 것이고, 사람들 서로가 합치된 것을 통해 더 유용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공통관념에 대한 정리들이 나오면서, 자룡샘의 질문으로부터 논의가 있었습니다. 공통관념이 고정적인 것이 아니고 매 순간 구성되는 것이라면, 규칙을 세우는 것이 모순이 되지 않는가? 최대한 이성적일때 규칙을 세워야하지만, 내가 정념적인지 이성적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다수에게 공통적인 것을 이끌어내면 다 좋은 것이 되는가? 공통관념을 읽을때 꼭 마주해야하는 질문들인 것 같았습니다. 히말샘의 말씀처럼, 이 부분은 생활속에 적용해보면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말씀해주신 대로, 여기에 시작은 적합한 관념이라는 마중물인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선입견으로 대하고 좀 거리감을 두곤 하는데(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완전성(실재로 존재함(역량)은 완전하다)으로부터 사람들을 바라보면 달라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렇게 만나서 얘기하면서 공감하는 점도 생기고 하는 것이 공통관념을 비슷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여기까지 후기를 쓰다가, 호수샘이 올려주신 후기를 읽고 급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
    호수샘 ~ 감사합니다.

    • 2020-05-22 09:34

      정성껏 써내려가던 후기 공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울러 미처 쓰여지지 않은 문장들을 읽지 못하는 아쉬움도.. 신짱샘의 후기를 보니 그날의 문제들이 더 생생히 다가오네요.

      에티카 정리 관련해서 “본성상 공통적인 것은 외부원인에 의한 게 아닌 게 된다”는 말씀이 정확한 풀이 같아요. ‘어떤 실재와 내가 본성상 공통적인 것(편하게 A라고 할게요)을 갖고 있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이때 A는 내것도 되고 니것도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각자 외따로 가진 것이 아니라요. ‘본성’이라는 개념을 더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은데 이 본성은 정서를 겪으면 변해버릴 수도 있는 어떤 것이네요. 이것과 현행적 본질은 어떤 관계일까요?

    • 2020-05-23 01:41

      신짱샘이 친절한 정리를 해 주셨으니 저는 사족을 좀 달아보겠습니다.

      여러군데에서 우리는 본성은 코나투스, 코나투스는 존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읽었습니다.
      인간 본성으로 좁혀서 이야기하면 인간 본성은 인간 존재를 유지하고자 합니다. 존재 유지를 막거나 방해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스피노자는 여러군데서 '이는 불합리하다'라는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아무튼 이래서 이 말은 존재 유지가 안되는 것으로 보이는 모든 일들은 (그 극한은 죽음) 외부 원인에 의한 것이됩니다. 이 상황에다가 외부실재를 덧붙여 생각해보면 이제 서로의 본성이 합치하거나 상이하거나 상반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상이는 그야말로 서로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하는 그야말로 무관함입니다. 아마 우리는 인식하지도 못하겠지요. 상반되는 것은 물론 해로울 것이고 합치되는 것은 좋은 것이겠지요. 그러니 본성상 합치로서의 공통 개념은 언제 어디서서 긍정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공통개념은 무조건 좋은 것이지요.

      제가 읽은 바는 그렇습니다.

  • 2020-05-22 15:08

    자발적 후기와 또 정성스런 후기와 거기에 달리는 댓글들에, 감동하면서...잠시 신의 관념을 떠올려봅니다~ 너무 너무 멋지십니다~~^^

    마지막 시간, 시간 안배에 실패하여 14장을 꽝샘의 발제만 읽고 끝내버려 매우 아쉬웠습니다. 저는 마트롱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그가 정념의 원리와 그 역학을 찬찬히 따져가며 최상의 정치체를 꼼꼼하게 논했지만 그래도 우리들 모두가 이성의 역량이 없으면 안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정서역학을 활용해 최상의 정치체를 구성하려는 이유 역시도 그저 행복하게가 아니라 사실상 풍부한 지각장을 형성해 이성을 계발하는 것, 그래서 진짜 자기에게 '유용한 것=즐거운 것=덕'이 무엇인지 알자는 것이었지요. 훌륭한 신정 안에서도 사람들은 행복할 수 있지만, 스피노자적인 진정한 의미에서는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12장 이성적 삶의 전개를 처음 시작하면서 마트롱은 '정념=지적무력=신체적 무력'임을 지적합니다. 그러니 이성적으로 된다는 것은 지적 능력 뿐만 아니라 신체적 능력 역시 커지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13장 이성의 역량에서도 신체와 사유의 평행론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성적이라는 것은 신체가 자기 변용의 이미지들을 따라서 신체의 행동을 논리적 질서에 따라 정향할 줄 알게 되는 것이라고요. 우리 사유가 신체에 대한 사유여서 지각장이 풍부해질수록 사유 역시 풍부해지듯이, 신체 역시 사유에 대한 신체여서 사유가 적합해질수록 행위들 역시 적합해집니다. 이 관계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경험할 때만이 마음의 역량이자 동시에 신체의 역량인 '굳건함'과 '관대함'이 싹틀 수 있습니다.

    이런 길로 가게되는 시작점은 위에서 호수샘께서 말씀하신대로 '정념에 대한 인식'이라고 생각됩니다. 자기가 자기 정념을, 자기가 정념의 상태에 놓여있음을 인식하게 되는 것부터가 시작이겠죠. 자룡샘은 "내가 지금 정념적인지, 이성적인지 어떻게 아냐?"고 물으셨는데요, 전부는 몰라도 이제 우리는 한 두 가지는 확실히 알수 있을 것 같아요. 이성은 슬픔이 아닙니다. 또, 지나친 기쁨도 이성적인 기쁨은 아니라고 그랬죠? ^^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알려고 노력하면 알게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어찌되었든, 이렇게 감정에 대한 인식부터 시작해서 자기 신체의 상태에 대해 알고 거기에 의사처럼 작용을 가할 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스피노자주의자'가 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마트롱은 말해줍니다. 인식이야말로, 가장 좋은 치유책임을 아는 것이죠.

    이성이 무적의 문턱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건과 관념을 신의 관념과 연결시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주목할 점은 모든 것을 신의 관념과 연결시킬수록 자기자신/자기정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되고, 그에 따라서 다시 모든 사물의 독특한 본질들을 이해하며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자기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왜 신을 더 사랑하게 만들며,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고 마트롱은 강조하고 있을까요? 나 자신을 먼저 이해해야,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 뭔가를 알게되면 다른 이들과 이 세상부터 평가해보고 싶은 게 인간인데 말이죠. ㅎㅎ 이 문제는 들뢰즈를 읽어가며 다시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 14장에서는 지속의 구도와 영원의 구도가 이어지면서 둘이 어떻게 연속적이면서도 불연속적인가를 이야기합니다. 신의 관념과 연결시키면 모든 유한양태들은 신의 본성의 필연적 귀결들일 것이고, 그 각각의 본질들은 그것의 지속과는 관계없이 영원하고 참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실존하지 않는 물체에 대한 관념'(794)이라는 어려운 말도 나오고, 현존하는 현행적 실존 뿐만 아니라 영원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본질 같은 말도 나옵니다. 말은 어렵지만, 이 모두는 우리 안에 늘 있어왔던 것이라서, 다만 우리가 그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되겠습니다. ㅎㅎ 들뢰즈에 가면 다시 중요하게 등장할 말들이니, 그 때 다함께 이해해 보아요~ ^^

    끝으로 호수샘의 질문, 본성과 본질에 대해서도 들뢰즈와 함께 깊이있게 논의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만... 우선, 요것만 정리하고 가요.

    - 스피노자에게 본질은 "그것이 주어지면 그 실재가 정립되고, 그것이 제거되면 실재도 제거되는 것, 또는 그것이 없이는 실재가, 역으로 실재가 없으면 그것이 존재할 수도 인식될 수도 없는 것"(2부 정리10의 주석 맨 끝 부분)입니다. 그러니 본질이란 어떤 실재를 정립하는 종합적이고도 총체적인 어떤 것이라고 해두면 좋을 것 같네요.

    - 이런 본질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 다양한 부분들이 본성들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실재들이지만 공통된 본성도 있고 상반된 본성도 있는 것이라고 말이죠. 정념을 겪을 때는 내 본질의 부분을 이루는 본성과는 다른 본성에 압도되어, 그것이 내 본성의 발현을 막을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저는 스피노자가 이 '상반된 본성'을 '상이한 본성'과 구별하는 걸로 보아, 상반됨이라는 것 속에는 이미 공통된 무언가가 전제되어 있는것이어서 언제나 일치점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추론을 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상이한 것들은 서로 아무런 영향을 주고 받지 못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면(상반된다고 말하는 것조차) 이미 공통된 무언가가 있는 것이니까요.

    - 또 스피노자에게 본질은 언제나 현행적 본질이고요(가능태 아님!), 그것은 지속 안에서 연장의 양태로 실존하지 않는 실재일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존하지 않는 실재 역시 신의 무한지성 속에서 그 본질이 현실적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머리가 아파오실테니 여기까지 하고, 들뢰즈로~!

  • 2020-05-23 02:15

    에티카 관련하여 또 한 권의 책을 그것도 목침으로 써도 무방한 책을 읽었습니다. 축하할 일입니다.

    이 쯤 되면 적어도 우리는 스피노자 사상의 이른바 본질주의적 입장에 조금은 친숙해졌으리라 여겨집니다. 더군다나 매우 경직된 그의 주장도 (원래 근본주의나 본질주의는 경직이 생명 아니던가요?) 차츰 차츰 익숙하고 입에 붙는 경지에 이르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하여간 무언가 일이관지하는 원리가 있고 더군다나 인식의 최고봉은 이성을 발판 삼아 신적 인식에 이르는 직관이라는 어마무시한 우주 정복(?)/영원 존재의 심급도 맛 보았습니다. 게다가 마트롱 덕분에 코나투스, 공통개념에 대한 생각도 깊어지고, 인간들이 모여사는 정치에 대해서도 같이 생각해 보고....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에서 이 정도면 진짜 대견한 일 아닌가요?

    신적 속성을 분유하고 계신 여러샘들과 다음주부터는 들뢰즈라는 우회로를 통해 에티카를 한 번 더 읽을테니 아마 저는 조금 더 대견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꽝샘이 추천한 시 한 수 남깁니다.

    조용한 일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하나 슬며시 곁에 앉는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2020-05-23 11:37

      우왓, 이 시 저도 책상 앞에 써서 붙혀놨어요
      순간, 아렘샘과 꽝샘과 공통관념이 형성된것 같은 느낌이...

      • 2020-05-24 00:41

        끼리끼리 맞나봐요 ㅎㅎ

        • 2020-05-24 16:24

          스피노자 공부를 하고 있지만 사실 우린 점점 더 미나리꽝샘의 자장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것 같아요.
          오랜만에 슬며시 김사인시인의 시집을 읽어봅니다. ^^

  • 2020-05-23 11:38

    마트롱 13장 발제 올립니다.

  • 2020-05-24 07:06

    우연히 읽었는데 뭔가 속삭여주시는 것도 같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마트롱이 궁금해졌어요. 마크롱도 아니고 마카롱도 아닌 마트롱?!

  • 2020-05-24 14:17

    14장 발제

  • 2020-05-24 16:30

    코나투스, 공통개념, 본성, 현쟁적 본질...... 이런 말들이 이렇게나 달콤하고 따뜻한 단어들이었는지 몰랐네요.
    지난주의 슬픈 정서들이 싹 사라지고, 따뜻한 기운만이 감도는 것 같아요.
    신짱샘, 호수샘, 히말샘의 꼼꼼한 읽기와 댓글이 참 고맙네요. ^^
    스피노자 말대로 이야기할 친구들이 있고, 함께 대화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바로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가장 큰 조건이자 힘인 것 같습니다.
    또한 스피노자 말대로 우리에게 올라오는 모든 표상이란 실상 '나의 신체 상태'에 더 많이 의존하기에,
    비온 뒤지만 오랫동안 산길을 걷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들뢰즈 읽어봐야겠네요.
    사족 같지만 다음주 화욜에는 모두 다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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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옹 | 2020.05.07 | 조회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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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대중지성 스피노자 개념확대경 1) 자유의지 혹은 필연성에 관하여 (1)
뿔옹 | 2020.05.03 | 조회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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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대중지성 마트롱 9장 발제 (1)
미나리꽝 | 2020.04.28 | 조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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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대중지성 [6주차 후기]정념에 따라 견고한 상호작용으로 (12)
초코칩룡 | 2020.04.23 | 조회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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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대중지성 8장 발제입니다.
| 2020.04.21 | 조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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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대중지성 6주차 글 (2)
히말라야 | 2020.04.21 | 조회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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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대중지성 호모-파시오날리스의 일상기술 에티카 2) 히말라야는 큰 물고기, 뿔옹은 작은 물고기? (1)
히말라야 | 2020.04.18 | 조회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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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대중지성 [세미나A/S] 이성에 관한 정리들
히말라야 | 2020.04.17 | 조회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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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대중지성 퇴근길대중지성 5주차 후기 (5)
신짱 | 2020.04.16 | 조회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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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대중지성 5주차 글
히말라야 | 2020.04.14 | 조회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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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대중지성 마트롱 5장 두번째 세미나 후기입니다. (4)
호수 | 2020.04.09 | 조회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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