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겨울번개 들만철] 1주차 플라톤주의를 뒤집다 후기

정군
2022-01-19 10:28
387

절찬리에 모집하고, 깜짝 놀랄만큼 많은 분들이 신청해주신 ‘겨울방학 번개 세미나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읽기>’ 1회차 세미나가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으악, 뭐야뭐야, 엉?, 하아..., 으아아악) 네, 모집 글엔 적혀있지 않지만, 이곳은 통탄과 절규와 어리둥절함이 난무하는 곳입니다. ‘철학’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어느 철학이든 거기에 발을 들이려면 그때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 그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공부 중인 담론 그 자체를 전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철학이라는 게 딱히 ‘기초’가 필요한 공부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습니다. 지식과 정보가 많으면 그것도 좋겠지만, 그건 그냥 ‘좋은’ 거지 ‘필수’는 아닙니다. 그저 누구나 아는 단어와 개념들을 가지고 어떻게든 읽어가다보면 결국 비슷비슷한 높이에 다다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차라리 ‘끈적거림’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르는 걸 모르는 채로 계속, 떨어져도 다시 달라붙어서 계속 갈 때까지 가보는 역량이 필요한 것이죠. 아무리 몰라도 ‘글’을 읽을 수 있고, 읽는 가운데 한 문장 두 문장이라도 이미 알고 있는 게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다른 것들을 연결해 가보면 어떨까요. ‘나’라는 계열 안에 접혀진 환영들을 가지고 ‘이질적인 계열’들과 접속하는 게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철학-텍스트 읽기는 ‘발산하는 환영의 계열들을 수렴’하지 않고, 발산 그 자체에 달라붙어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첫 시간에 모종의 ‘당황스러움’ 같은 것이 있었다면 그건 아마도 그 시간에 마주한 ‘계열’이 너무나도 이질적이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정동적 부하’가 막 걸리셨을테고요.

 

오늘 읽은 <플라톤주의를 뒤집다>는 앞으로 읽어갈 글들에 비해 좀 더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분량도 개중엔 긴 편이고, 길 뿐만 아니라 밀도도 아주 높았고요. 특히 낯선 용어나 철학사적인 맥락이 거두절미하고 튀어나오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텍스트를 읽는다고 할 때 읽혀지는 것은 꼭 텍스트의 ‘내용’만은 아니라고요. 특히 철학책은 더욱 그렇습니다. 읽혀지는 것은 특유의 어법일 수도 있고, 역자의 섬세한 감각일 수도 있고, 그날의 내 기분일 수도 있고 등등등. 아, 결국은 또 환영들의 계열들이로군요. 여하튼 그렇기 때문에 ‘내용’에 온 신경을 집중하다보면 읽혀져야 하는 다른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일단은 그 세계에 익숙해지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야 ‘접속’의 여지가 생기겠죠. 그런데 그러자면 이질적인 계열들의 접속에 수반되는 ‘강제된 운동’이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이 텍스트는 그렇게 운동을 강제시킵니다.

 

말하자면, 첫 시간 세미나를 하면서,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이런 공부에도 플라톤주의적 원본-사본 모델이 작동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뭔가 확실한 ‘앎’의 형상이 있다고 믿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그래서 텍스트를 읽고, 세미나를 하고, 복습까지 하면 그걸 손에 딱 쥘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들뢰즈에 의하면 그런 것들 마저도 결국 환영이라고 하네요. 다른 말로 환상이고요. 이렇게 읽고 나면 들뢰즈가 이렇다 저렇다, 철학사가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으로 수렴 되는 게 아니라, 뭔가 다른 계열과 접속되는 형태로 발산되면 좋겠습니다. 흠, 다른 계열을 도대체 뭘까요? 2, 0, 2, 2, 철, 학, 학, 교 (이것은 농담이 아닌 농담입니다 : 농담마저 환영적?)

카오스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남은 4주도 즐겁게 공부해 보아요.

 

 

댓글 5
  • 2022-01-19 11:22

    요요님에게 말씀드렸었는데

    담주만 제가 일회 청강하려 합니다

    철학학교가 줌세미나인데도 불구하고 밀도가 높다고 정평이 나 있어서 세미나 진행 배우러 갑니다

  • 2022-01-19 11:42

    저는 세미나를 마치고 이런 생각을 했어요.

    플라톤의 '나눔'이 선별의 의지라고 한다면, 플라톤주의를 뒤집으려는 들뢰즈의 의지는 무엇일까요?

    진리(앎)에의 의지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유일한 진리가 결여된 환영에의 의지라고 해야 할까요?ㅋ

    플라톤주의라는 동일성에의 욕망을 거부하는 차이에의 욕망이라고 해도 좋을까요?

    어쨌거나 철학이 단지 이론이 아니고 삶이라고 한다면 어느 것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로 단순하게 치환할 수는 없을 것 같군요.

     

    저는 기호-신호체계가 아리송하기만 했는데 세미나를 통해서 들뢰즈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마침 영상녹화본에서는 르꾸샘과 언희샘을 비롯해 여러 분들의 질문-42쪽으로 촉발된, 이 부분을 둘러싸고 오고간 이야기가 누락되어서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분들께 정말 죄송하고 안타깝습니다.

     

    아무튼 기록을 날린 사람인지라.. 제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것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일상적인 예를 기호-신호의 체계에서 본다고 한 들뢰즈의 말은 전제가 있는 것 같아요.

    기호와 신호에 대한 들뢰즈가 정의한 개념에 대한 동의가 선행되어야 하는거죠.

    신호는 차이들이 분배되는 체계 혹은 구조이고, 기호는 소통중인 두계열의 접속에서 발생하는 스파크 같은 거라는..

    체계는 이질적 계열들이 함께 접혀 있는 것이고, 기호는 두 계열의 접속으로 발생하는 어떤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러니 사실 우리 삶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기호-신호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신호는 랑그 혹은 문법, 기호는 빠롤 혹은 음성로 이해할 수 있지 않겠냐고 했는데, 언어의 경우는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는 얼마든지 달라지고 다양해 질 수 있겠지요.

    물리적인 현상을 통해 들뢰즈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견고하고 실재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물리적 현상 조차도 실은 신호-기호의 체계라는 것 아닐까 싶어요.(물론 물리적 현상의 경우 계열들의 관계는 내적이라기보다 외적이라는 점이 환영과 대비해 강조됩니다만..)

    내화된 차이로 설명되는 환영이 신호-기호체계라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고요.

    그렇게 생각하니 두번째 챕터의 마지막 문장에서의 신호-기호체계(47쪽)가 앞에서 말한 신호-기호체계와 뉘앙스가 좀 다른 것 같다고 했던 제 판단은 잘못된 것 같아요. 결국 같은 이야기구나, 싶네요.^^

     

    • 2022-01-19 12:56

      고맙습니다. 녹화본은 아까 긴 자기소개를 거쳐 1번 질문까지 들었습니다. 저는 큰 줄기를 잡아내는 것만도 벅찼는데 자세한 질문과 상세한 논의가 오간 것 같네요. 설명 보충해주셔서 감사해요. 더 열심히 공부해봐야겠네요:)

  • 2022-01-19 13:04

    이질적인 계열들의 '접속' 속에서 정신없이 세미나 시간이 지나갔어요.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의 처음이고 플라톤을 다루니깐

    '철알못'인 저는 이번에 플라톤에 대한 들뢰즈 해석을 제대로 읽어봐야지 하는 '큰 결심'을 했더랬습니다.

    아니 근데 플라톤 얘기만 할 것이지 자꾸 라이프니츠, 헤겔, 니체까지 다 얘기하고...낚였어요.

    들뢰즈의 사상 체계가 '압축적'으로 제시되어, 함께했던 '환영들'이 아니었더라면 튕겨나갈 뻔 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뇌피셜'을 동원하게 만들었던 들뢰즈의  '기호-신호 체계'는

    제 개인적으로는 기존 언어에 묶여있느라 더디 이해되었던 것 같아요.

    순서상 '기호'가 먼저 나오니깐,  

    그리고 보통 기호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 기호학에서 보자면

    기호가 더 큰 범주이고, 신호는 그 기호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 정도여서

    거기에 묶여서 헤매고 있었던 것 같아요. 

    '기호-신호 체계'에 대한 이해를 

    요요샘의 '랑그(언어의 구조)와 빠롤(구체적 발화)'을 받아 전 '구조와 행위'로 더 단순화시켜봤어요.

     

    이질적인 계열들의 접속과 공명 속에서 '발산'하는 환영들을 '체험'하는 줌세미나였습니다^^   

    플라톤주의를 뒤집는 들뢰즈를 받아

    환영을 특권화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들뢰즈를 어떻게 뒤집을 수 있을까...?

    세미나 말미에 잠깐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 2022-01-20 09:29

    철학-텍스트 읽기는 ‘발산하는 환영의 계열들을 수렴’하지 않고, 발산 그 자체에 달라붙어보는 일 이라는 정군님 말씀에 힘입어 끈적끈적하게 텍스트를 읽어가볼랍니다

    기호-신호의 아리송함이 요요샘 설명으로 조금은 밝아지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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