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학교 13회차 요약과 질문입니다

정군
2021-11-24 14:40
339

'어버버' 하다보니 세미나가 내일 포함 두번 밖에 안 남았습니다. 

사실 저는 여지껏 뭐가 '열어밝혀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말'들을 얻었으니 그나마 다행이겠지요?!?!

 

댓글 10
  • 2021-11-24 22:56

    발제와 질문입니다 

  • 2021-11-24 23:01

    메모와 질문입니다

  • 2021-11-24 23:18

     헤겔 출제의 수능 기사에도 나왔던 문제가 이번 장에도 펼쳐집니다. 기자는 철학 텍스트를 암호문으로 만드는 것은 언제나 ‘~적’, ‘~성’이 붙은 개념어의 난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번에는 역사가 아니라 역사성입니다. 역사 혹은 역사학이 가능한 것은 역사성 때문입니다. 이 역사성은 당연히 시간성에 근원을 두고 있구요.(500)역사가 하이데거가 보기에는 눈앞의 것/존재자를 다루면 본래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압권(?)은 딜타이에 긍정적이고 아울러 딜타이에게 충고하는 서신 교환자 요르크 백작의 편을 드는 부분입니다. 하이데거가 이전과는 달리 직접 인용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맥락을 상실한 채 일방적인 절단 채취를 했기 때문에 요르크 백작의 말이 진실로 이러한 맥락인지는 파악 불가능합니다. 딜타이도 모르고 요르크는 더 모르는데다가 안쓰던 따옴표를 써가며 역사성을 드러내려는 부분 때문에…요르크란 사람이 하려던 말이 정말 하이데거 입맛에 맞게 저렇게 조각조각 뜯어내도 되는 맥락인지 의심이 들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시간도 정력도 남아 있질 않아서요.아무튼 하이데거가 하려는 말은 뭔지 대강 잡아챘다고 여기고 정신 건강을 챙기기로 했습니다. 뭐 짐작하셨겠지만, 읽은 중에 제일 재미가 없었습니다. 자 질문입니다. 죽음으로의 선구를 이야기할 당시 끝은 있고 시작이 없는데 이게 무슨 전체성이냐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오오…탄생이 나옵니다. 생기와 관련해서인데요…참고로 생기는 뻗쳐진 채 자기를 뻗음(491)입니다. 여기도 능동/수동이 같이 나옵니다. 읽어왔던 말로 바꾸면 내던져진 채 기획투사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탄생이 나오는 부분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75절 510) 기재해온 가능성들을 운명적으로 반복하면서 현존재는 자신을 자기 이전에 이미 기재해온 것 앞으로 “직접”, 다시 말해서 시간적으로 탈자적으로 도로 데려간다. 그러나 이렇게 상속을 자신에게 전수함으로써 죽음의 건너뛸 수없는 가능성에서부터 되돌아오면서 “탄생”이 실존 안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이것은 물론 단지 이 실존이 고유한 ‘거기에’의 내던져져 있음을 환상 없이 인수하기 위해서이다. 죽음이 존재적이지 않고 존재론적으로 다뤄졌듯이 탄생 역시 존재적이지 않고 존재론적으로 다뤄집니다. 하이데거의 일관됨에는 한표. 그러니까 “탄생”은 어떤 태어남이나 이런 물리적인 시작이 아니라 죽음의 선구를 하고 되돌아오는 자리를 성실하게 반복하다가 인수하게 되는 존재론적인 개념이다. 이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맞을까요?

  • 2021-11-25 08:12

    올립니다~

  • 2021-11-25 10:25

    올립니다.

  • 2021-11-25 11:12

    올립니다

  • 2021-11-25 12:01

    (73절 498쪽)

    ”더 이상 실존하지 않는 현존재는 존재론적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지나가버란 것이 아니라 ‘거기에’-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눈앞에 있는 고대 유물들은, 그것들이 ‘거기에’-있어왔던 현존재의 기재했던 세계에 도구로서 귀속해있었다는 것과…”

     

    질문 1) ‘거기에’-있었던 현존재가 배려하는 도구, 현존재의 죽음 이루 도구지시연관성이 사라져버렸을 때 도구는 손안의 것에서 눈앞의 것이 된다. 그 도구가 유물이다. 그런데 유물이 발굴되는 순간, 눈앞의 것은 다시 도구연관되어 지금 ‘여기에’-있는 현존재의 손안의 것이 되는가? 그 유물은 ‘거기에’-있었던 현존재는 떠올리는 도구로서 역할하기 때문이다. 

     

    질문 2) 현존재의 죽음 이후 (현존재였던) 존재자, 즉 이제는 실존하지 않는 현존재에 대한 공동존재의 ‘기억’을 ‘거기에’-있었던 현존재라고 볼 수 았는가? 그 ‘기억’ 자체는 단지 ‘빠져 있음’의 내용일 뿐인가? 그 ‘기억’이 또는 ‘거기에’-있었던 현존재가 타자의 양심이 되어 공동존재의 본래적인 결단을 이끌어내어야만 운명, 생기가 더욱 의미있어지는 것인가?

  • 2021-11-25 13:50

    74절. 500쪽. 

     

    “현존재는 현사실적으로 각기 그때마다 자신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것을 가질 수 있는데, 그 까닭은 이 존재자의 존재가 역사성에 의해서 구성되기 때문이다.””현존재의 존재는 염려로 제한규정되었다. 염려는 시간성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시간성의 범위에서 실존을 역사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그러한 생기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하이데거는 시간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는지 역사성이라는 개념을 가져온다. 매우 단순하게 이해해서 역사성은 시간성이 평균적인 삶으로부터 구현되는 모습인 것 같기도 하다. 시간성에서 기재가 어떻게 현재화되는지 물으며,  가능성은 유산으로부터 개시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역운을 말한다.

     

    역사성에서  ‘운명, 공동생기, 공동체, 민족’의 생기를 지칭하는 것이 (강독서에도 써있지만) 니체의 향기도 물씬 묻어나고, 독일 게르만 민족의 유산을 찾아 전승하고자 하는 뉘앙스도 강하게 풍긴다. (박찬국 선생님은 그리스,로마를 전승하고자 하는 니체와 비슷한 입장이라고 쓰신 듯 한데) 앞장까지 시간성이란 개념이 가졌던 입체적인 느낌이 확 사라지고 하이데거가 말해온 시간성이, 운명이나 유산과 같은 비장함에 생기를 잃은 거 같달까. (여기서 생기는 그 생기가 아닙니…)  왜 하이데거는 시간성을 이런 역사성으로 풀 수 밖에 없었던 걸까? 또 유산은 무엇일 수 있을까. (지켜야할 독일의 민족 정신 같은 거 말고)  

  • 2021-11-25 14:00

    질문입니다!

  • 2021-11-25 14:02

    큰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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