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철학학교 2학기] 『존재와 시간』읽기 1회차 후기

정군
2021-08-27 00:11
397

드디어 버스가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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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문장을 써놓고 보니.... 더 뭘 써야할지 난감한 상태입니다. 사실 우리가 오늘 한 세미나는 굳이 말하자면 어떤 '인상'을 획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오늘은 a를 이야기했고, b를 이야기 했고...' 하는 식으로 후기를 쓰기가 어렵습니다. 마치 이전에는 그런 식으로 '정리'를 한 것처럼 쓰고 있지만..., 그냥 하던 대로 감상을 나열하는 하겠다는 이야깁니다. ㅎㅎㅎ 우리가 이야기를 전기에서 후기로, 후기에서 전기로, 아니면 이 모든 걸 뭉뚱그려서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첫시간'이라는 제한적인 조건 안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이데거가 '전회'를 하기는 하지만, 그 사유의 동기랄지, 목표랄지 하는 것들은 후기에 가서도 고스란히 보존되는 면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크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맥락들을 놓고 보자면, '하이데거와 종교, 고대철학을 포함한 하이데거 이전 철학들'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고, 초기 사유의 몸통을 이루는 '실존주의'에 관한 이야기, '존재의 철학과 존재자의 철학'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저희가 읽은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후반부에 자주 등장하는 '고향',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요. 이 이야기들을 연결지어 생각해 보면, 하이데거 사상의 특정한 '인상'을 충분히 그려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종교와 이전 철학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그가 '신'이 결부된 철학을 어떻게 극복하려고 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 안에 깃든 '영성'은 또 어떻게 보존하려 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건 후에 이야기 나눈 '존재의 철학'과도 긴밀하게 연결되는 문제이기도 하고요. '스스로 개현해 오는 존재'라는 표현부터 모종의 영적인 뉘앙스가 짙게 남아있죠. '사유 안에서 종교와 결별하지만, 그렇다고 무신론자는 아니다'라는 말의 의미를 이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건 '신 없이 어떻게 사유의 보편성을 확보할 것인가' 하는 당대 철학의 주요한 과제에 대한 응답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실존' 내지는 '실존성'이 중요해집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근대철학에서 마치 '인식하는 기계'처럼 다루어졌던 '주체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한 시점에 특정한 과제를 안고 살아가는 '역사적' 또는 '상황적' 또는 '조건적' 주체, 그러니까 '실존적 주체'(그러니까 현존재)를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학사'적으로 보자면 크게 방향이 바뀐 것입니다. 이전까지의 '철학'은 마치 수학적 원리를 찾는 것처럼, 세계의 모든 것들을 일관되게 설명해 낼 수 있는 '원리'에 집착하느라 이와 같은 구체적 '실존성'을 놓쳐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철학'에 대해 이른바 '삶의 철학' 같은 식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사실상 이때부터 시작된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이 역시 '고대 철학'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주체가, '실존적 주체'라고 한다면 이제 그와 맞서는 쌍개념은 이전과 같은 '객체'가 아니게 됩니다. 오히려 그 주체가 내던져진 '세계', '대지'가 문제가 됩니다. 말하자면 이제는 철학에서, 칸트가 던졌던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은 중요한 질문도 아니고, 해결할 수 있는 질문도 아니게 된 것입니다.(물론 하이데거는 이 문제를 자기가 풀었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이 더 중요해진 것이죠. '죽음으로 미리 달려가 보는 결단', '본래적 실존' 같은 말의 함의도 딱 그 문제입니다. 저는, 만약 우리가 아는 '현대철학'의 중추에 '윤리적 문제', '정치적 문제'가 놓여있다면 이 역시도 하이데거로부터 연유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이데거가 '고향충동'이니, '대지'니 같은 말들을 개념어로 사용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고요. 저는 이게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하이데거의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나치경력과 관련된 이야기도 좀 나누었는데요, 그 문제와 관련해서도 저는 자신의 철학과 비슷한 '근본기분'을 가진 듯 보이는 나치의 선전문구에 하이데거가 혹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왕에 반유대주의를 가지고 있었으니 더없이 좋아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만, 저희 세미나는 이 문제를 약간 유보적으로 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약간 방법적론적으로 말이죠. 말하자면, 하이데거의 어떤 말이나 개념을 그의 나치경력과 결부하면서 읽다보면 그의 철학이 어떻게 현대철학에 그와 같이 심대한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대략 이 정도면 충분한 '인상'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인상들이 어떻든간에 일단 원전을 읽어가다보면 옳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갱신'해가는 것이고요.

 

후기를 다 써가는 이 마당에도 2학기에 새로 합류하신 분들의 '역시 합류하길 잘했군'하는 표정이 잊혀지질 않습니다.(ㅎㅎㅎㅎ)

그럼 이제 다음주부터 본격적으로 『존재와 시간』을 읽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덧, 발제문은 전날 자정(사실은 당일 0시)

메모는 당일 정오까지 입니다. 발제문엔 당연히 '질문'이 있어야 하고, 메모에도 최소 한가지, 최대 세가지 정도의 질문이 있어야 합니다.

댓글 10
  • 2021-08-27 10:49

    무사샘, 초빈, 매실이 합류해서 시즌1과는 또 다른 철학학교의 케미가 기대됩니다.^^

    아렘샘을 설렘샘으로 불러줌으로써 가마솥샘은 첫날부터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셨구요.ㅋㅋ

    정의와 미소님과 재하님이 만난 하이데거의 첫인상도 훈훈한(!?) 것 같아서 시작이 좋다고 느꼈습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저를 곤혹스럽게 만든 철학자가 한둘 아니었지만 수위를 다투는 철학자에 하이데거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행히 철학학교에서 하이데거를 읽음으로써 또 하나의 문턱을 넘는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요즘 선불교를 읽고 있는데 하이데거를 접하면서 뭔가 친연성이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후기 하이데거가 더 선불교와 오버랩되는 면이 많다는 생각은 들지만...(반드시 통한다, 뭐 이런 건 아닙니다.)

    하이데거의 전회 전과 전회 후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닌듯하여,

    본래성/비본래성 같은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에 등장하는 개념부터 찬찬히 하나하나 알아가야겠다 싶습니다.

    아무튼 <존재와 시간>을 직접 읽게 된다니.. 음.. 걱정반 기대반, 두근두근하는군요.^^

     

    • 2021-08-31 10:34

      말씀대로 하이데거는 일단 읽어두면 도움이 많이 됩니다요! 근대철학에서 데카르트의 '코기토'가 '전제'로서 작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이데거의 '현존재', 진리관 등등은 20세기 철학의 '전제'였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 2021-08-28 22:22

    역시 합류하길 '잘했군'을 '망했군'으로 읽은 건 저뿐인가요?ㅎㅎ

    <존재와 시간> 이제 4쪽 읽었지만, 자꾸 나치에 참여한 하이데거가 떠올라 위대한 철학자의 반열에 올릴지 말지 갈등하게 됩니다.ㅎㅎ

    그래서 하이데거는 사람말고 사상을 봐달라고 했나보군요. 

    (4쪽 읽었을뿐인) 아직은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보다는 수월하다고 느끼는 건 술술 읽히는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첫 세미나를 마친 기분탓이겠죠?

    아무튼 해보겠습니다. 

    • 2021-08-30 09:16

      저도 5페이지 정도까진 어, 의외로 좀 읽히네 하다가? 지금 미궁에 빠졌습니다. ㅋㅋㅋㅋㅋ  

      • 2021-08-30 14:32

        좋은 시절은 딱 4쪽까지였습니다 ㅎㅎ

        • 2021-08-31 10:38

          『존재와 시간』은 엄청나게 어렵다... 어렵다... 어렵다... 어렵다... 하다보면, 막상 읽었을 때, '어? 그렇게까지 어려운 건 아닌가 봉가'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냥 제 느낌엔 계속 어려워요. ㅎㅎㅎ 그래도 같이 읽으면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망하지 않았습니다 ㅎㅎㅎ

  • 2021-08-30 09:21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를 소설책 읽듯이 읽었는데 아, 우린 철학 세미나지! 하고 첫 시간에 알았어요. 하하하.  <세미나책> 에 철학책에서는 '그, 이것, 저것, 그것' 등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써 있어서 이번 주부터 시작한 <존재와 시간>도 나 뭐 읽고 있었나 하고 있습니다.  하이데거라는 사람의 인상은 대충 음미한 거 같으니 이제 텍스트 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그리고 기쁜 소식입니다. 이번주 목요일 저녁 일정이 취소되어서 세미나 참석 합니다!!

    • 2021-08-31 10:45

      <들사하>는 정말 쉽게 쉽게 읽히죠. 그래서 저희 세미나의 도입으로 아주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미나에 참석하신다는 몹시 기쁩니다요 ㅎㅎㅎ

       

  • 2021-08-30 11:26

    읽어야지 하는 맘으로 읽다가 시간표를 보니 다음 시간 범위는 아주 짧네요..짧다는 건 알았지만 이리 짧을 줄은....그런데도 아직 다 읽지 못했으니...

    이리 안배한 튜터샘의 깊은 뜻이 있겠지요...

    • 2021-08-31 10:46

      네... 정말 짧은 분량입니다. 아무래도 처음이니까, 첫부분을 꼼꼼하게 읽자는 의미도 있고, 일주일에 60페이지씩 읽는 지옥으로 들어가기 전에 약간 숨을 고르자는 의미도 있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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