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26장 질문

아렘
2021-05-30 14:55
352

26-1 논리실증주의 질문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잠잠(?)하던 논리학이 논리실증주의자에 이르러 기지개를 켭니다. (924)수학은 논리학의 언어로 기술되고, 논리학은 수학적 기호로 표시됩니다. 사변은 폐기되어야 하고, 논리학과 물리학이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이들에게 윤리적, 종교적, 형이상학적 진술들은 인식론적으로 무의미한 것입니다. 오직 단순 문장으로 분해될 수 있는 분석적 진술과 경험으로 검증 가능한 후험적 종합진술만이 의미 있는 진술입니다. 논리라는 방법을 논리라는 철학으로 끌어 올리려고 하는 시도로 보입니다. 방법론의 일부로 격하될지 위대한 철학으로 올라설지는 바로 우리 세대가 검증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방법론적으로는 요즘 유행하는 코딩에 반드시 유념해야 할 주의사항인데요 어느 순간 윤리적/정치적 결단(939)을 내리는 모습을 겪게 될 것 같습니다. 누가 그 결단을 내리게 될까요? 우리 인간일까요?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26-2 포퍼 질문
포퍼에게 정치는 ‘점진적 사회공학’(943)이어야 합니다. 그에게 플라톤, 헤겔, 맑스가 그린 세상은 근거가 빈약한 독단주의입니다. 사회 전체에 대해서 예측할 수 있다는 이런 역사주의는 그에게 부인해야 할 무엇입니다. 해야 할 것은 그리고 가능한 것은 작은 가설과 검증을 통한 점진적 개혁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는 유토피아와 권위주의자 양쪽으로부터 배울게 정말 없을까요? 점진적 개선의 그 정당성 자체가 유토피아에 대한 꿈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요? 그 유토피아가 설사 권위주의자를 통해서 나오더라도 유토피아에 대한 사유 자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찾을 수 있는 점진적 개선 개혁의 나침반 아닐까요? 그래야 포퍼의 그 ‘결단’의 폭이 넓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댓글 9
  • 2021-05-30 18:04

    26-3  토머스 쿤 - 과학에서의 패러다임 전환

     

    쿤은 과학사를 바탕으로 과학적 활동들을 분석하여 정상과학과 과학혁명을 구분하는 패러다임 이론을 전개한다.  패러다임이란 과학자들이 연구활동을 할때 명시적이고 묵시적인 가설들에서 출발하게 되는데 그보다 더 큰 포괄적인 가정들의 집합을 '패러다임'이라고 명명하였다.  이러한 패러다임 내에서 특정 가설들(문제들)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을 '정상과학' 연구단계라고 하고, 패러다임 자체의 가정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어쩌면 변경하는 단계를 '과학혁명'의 단계라고 한다.   또한 패러다임내에서의 지식축적은 가능하지만, 패러다임간에는 그렇게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과학은 증명하는 방법이 있고, 현상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느냐 여부에 따라 패러다임 전환이 가능하다(예:코페르니쿠스적 과학혁명) 고 생각하는데, 진보와 보수의 주장에 대한 사회적인 논쟁 등은 많은 부분 가치의 선택 문제이기 때문에 각자의 패러다임 내에서의 소통은 가능할지라도 패러다임 간의 소통은 가능하지 않고, 두 패러다임을 포괄하는 어떠한 중립적인 주장도 가능할 것같지 않다.   

    그런데, 쿤의 패러다임 전환 이론을 이렇게 사회과학적 문제에 적용해봐도 되나 ?

  • 2021-05-30 19:51

    가다머 - 해석학적 전통

    "…나는 심층적인 형성 과정을 거치는데, 여기서 이 형성 과정이 '심층적인' 이유는 그것이 주어진 배경으로부터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는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준거 틀"이 변형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1011쪽)

    가다머의 해석학적 접근은 '교육'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때 '준거 틀이 변형'되는 예를 들어보자.

  • 2021-05-30 23:20

    27-1 근대성의 비판

    르네상스 이후 인식주체가 철학적 출발점이 되어 개인은  합리성의 담지자가 되었다. 독립적으로 행위하고 인식하는 주체, 과학과 계몽, 진보와 이성은 근대성을 특징짓는 개념들이다. 과학화와 기술발전이 끊임없이 이뤄진 오늘날은 모던 타임즈(근대)이며, 많은 선택의 자유와 중앙 집중화된 권력,  단기적 전망과 장기적 아나키를 특징으로 한다. (989) 맑스의 이데올로기 비판, 프로이트의 이성과 자율성 비판, 니체의 도덕 비판을 통해 우리가 믿었던 것들은 사실은 합리화이며 현실에 대한 무의식적 왜곡이라고 한다. 계몽과 지식에 대한 비판과 과학적 활동과 정치적 행위에서의 합리성은 실상은 숨겨진 힘임을 폭로한다. 이렇게 유럽의 허무주의는 완성되었다.  우리는 오로지 예술과 숭고한 행위를 통해서만 합리성의 쇠우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27-2. 마르틴 하이데거 -시적인 것을 통하여

    하이데거는 서양의 역사를 그리스시대 이전에서 부터 비본질적인 것들에 대한 무력한 추구의 역사로 보았다. 즉 본질적인 것을 망각했다. 실존주의자로서 하이데거의 관심사는 본래적 실존과 비본래적인 실존, 우리의 고유한 의식, 우리의 선택, "언제나 나의 것"인 죽음이었다.(983) 현상학자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현상은 언제나 각각의 특정한 기투에 비추어서만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해석학적 과정을 통해 우리는 망각된 본질적인 것이 숨겨져 있는 가장 심층적인 차원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본질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자의 존재"란 어떤 의미이며. 존재자와 존재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 2021-05-31 00:53
    1. 한나 아렌트의 사상은 노동 생산 활동에 위계가 있다고 본다. 그녀는 아리스토텔레스처럼 프락시스(윤리적. 정치적 행동)을 포이에시스(생산적. 예술적 행동)보다 중시한다. 그녀의 사상을 동양 철학 기본 원리인 ‘수신제가치국’으로 비판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정치와 경제 영역의 분리적 사유에 대해 의문이 든다. (그녀의 출신과 살았던 배경을 참고하더라도...)

     

    1. 근대성의 불멸성과 한계 없음을 오만이라 지적하고, 자연. 인간. 사회 통제 가능함이 전체주의와 맞닿아 있음을 설명한다. 전체주의로 인해 양산된 개인은 현재의 독단적 체제인 자유민주주의에서 만들어진 개인과 같다. 근대성의 진단은 여전히 유의미하지만 의견을 ‘소유하지’않은 우리가 어떻게 ‘진정한 만남’을 통해 의견을 ‘형성할 수’ 있는지 상상이 필요하다. 사회문제가 아닌 ‘정치적 사안’ 은 무엇이고 그런 장은 어떻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이야기해보자.

  • 2021-05-31 01:28

    26장 현대 철학 개관

    5. 일상언어철학과 발화행위 이론(오스틴, 설)

    일상언어철학자들에게 언어는 세계의 본질이나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반영하지 않는다. 이렇듯 '이상화된 언어'는 허상이다. 일상언어철학자들은 언어적 상호 행위 그 자체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중 오스틴은 언어진술은 세상을 기술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행위 수행이기도 하며 행위 수행을 유발하는 힘을 지님을 발견한다. 실재론과 유명론에서 언어는 실재를 비추거나 실재의 지칭을 돕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지만 일상언어철학에 오면 언어는 행위를 유발한다(959). 설에 이르면 언어의 규칙은 언어사용자의 움직임을 '구성'한다(960). 그렇다면 일상언어철학에서 언어사용자는 '주체'라는 철학적 주제의 측면에서 어떤 존재일까? 그들은 어떤 주체일까?

    [일상언어의 문제를 현상들의 일부로 본다면 현상학 부분에서 설명하는 다음 부분이 답이 될 수 있을까? "현상학이 인식론적으로 수동적인 감각 인상이나 순수사유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우리의 일상적 활동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은 주체와 객체관의 관계와, 사물개념 및 인격적 동일성 개념과 관련된 문제들이 독특한 현상학적 면모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위하는 인격체로서 인간은 이 행위들에 직접 현존한다. 따라서 주체와 객체 간의 절대적 이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상들은 주어진 살왕에서 있는 그 자체로의 사물로서 현상한다. 행위가 진행되는 동안 행위자의 의식은 행위자에게 연속성과 동일성을 보장해준다."(965)]

     

    6. 현상학과 실존주의(후설, 사르트르)

    사르트르는 "행위가 상황이 지금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우리의 인식을 전제"하기 때문에 자유는 행위를 구성한다"(966)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해야 한다(970). "원칙적으로 우리는 자유롭게 우리의 정체성을 정의한다"(971). 그런데 저자들은 사르트르가 이 정체성의 문제를 헤겔로부터 가져왔다고 설명한다. 저자들의 설명에서 헤겔에게 정체성 문제는 자유라기보다는 사회적 권력 관계 안에서 상호 인정을 둘러싼 투쟁의 문제다(971-3). 그렇다면 실존주의자 사르트르에게 삶의 요청이란 결국 투쟁인가?

  • 2021-05-31 08:41

    27장 근대성과 위기

    5, 데리다, 푸코, 그리고 로티-해체와 비판

     데리다는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글쓰기로 이해했다"고 한다. 그리고 글쓰기를 특징짓는 것은 "차연"이라고 한다. 이어서 "글쓰기는 새로운 차이들 간의 끊임없는 경쟁, 현전하는 것과 부재하는 것 간의 경쟁으로 나타난다. 이 열린 경쟁에서 다른 것, 즉 타자는 우리의 개념들을 가지고 그것을 포착하려는 온갖 시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정의되는 것에 저항한다." 이 정리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글쓰기로 이해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차이들 간의 경쟁으로 이해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데리다의 해체는 형이상학적 개념들을 가지고 세계를 정의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한 저항, 현전하는 것과 부재하는 것 간의 경쟁을 드러내려는 시도 아닐까 생각된다.

    ---1) 일단 차연이란 무엇인지, 좀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2) 저자들은 데리다의 해체개념이 그가 비판하는 형이상학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는 듯이 서술하고 있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해체는 텍스트의 모순을 발견하고 그것을 비판하면서 새롭게 해석하도록 하는 것 아닌가? 해석 자체가 글쓰기이고, 그 안에서도 현전하는 것과 부재하는 것 사이의 경쟁이 있을 터이다. 

     

    6. 위르겐 하버마스-논변제시를 통해서

    하버마스의 합리적 의사소통으로서의 논변, 좋다! 그런데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이 위기의 근대성에 대한 처방으로서 실효적인 것일까? 하버마스는 근대의 목적합리성으로 인한 위기에 대해 의사소통의 합리성이라는 약을 투여하려 한다.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하버마스는 계몽된 이성으로 근대성을 완성시키고 싶어하는 것 같다.(혹시 나의 오해일까?) 하버마스가 근대의 합리와, 관료화에 임하는 막스베버의 영웅적 비관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을까?.

  • 2021-05-31 11:13

    26장 현대 철학 개관

     

    4.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실천으로서의 분석철학

     

    "비트겐슈타인은 다른 모든 언어게임을 대상으로 갖는 고차원의 언어게임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언어가 이러한 다양한 활동 속에 내장되어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과학의 언어게임들을 포함한 모든 일상생활의 언어게임을 이해하기 위한 공통의 틀이 될 수 있는 고차원의 언어게임이 있다는 생각을 거부했다."(955p)

     

    1)이 문장에서는 언어의 다양한 활동에서의 내장과 고차원의, 즉 메타-언어게임을 서로 대립시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둘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 관계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 2021-05-31 11:47

    7. 정체성과 인정 - 시몬 드 보부아르와 페미니즘 철학

    8. 존 롤즈 - 공정으로서의 정의 

     

    현대사회의 문화적 다양성과 관련하여 몇몇 철학자는 상이한 문화와 가치 간의 갈등을 조절할 수 있는 규범의 형태로 보편타당한 것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존 롤즈와 위르겐 하버마스의 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978p)

     

    평등의 차원에서 페미니즘 철학자들(보부아르, 이리가레, 벤하비브)과 존 롤즈는 일반적 규범의 보편적 적용이라는 문제에 대해 각기 어떻게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에 대해 논하시오. ㅎㅎㅎ

  • 2021-05-31 13:05

    질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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