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고원> 에세이 후기

라라
2019-09-30 22:51
332

장하게도... 각자의 어려움과 텍스트의 난해함을 헤치고 3분기까지 마무리 했네요.

우리 모두에게 서로 박수를 쳐 주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짝.짝.짝.

은밀하게(?) 시작된 3분기 에세이 발표는 칼이쓰마 넘치는 문탁샘 버전으로 무자비하게 진행 됐습니다. 다소 자제하려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중간 중간 터져 나오는 폭발은 아직은 휴화산이 아님을 증명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어느 정도 맷집이 생겼는지 겉으로는 의연해 보였습니다.^^

 

우선 그 화산재를 주섬주섬 모아모아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각각의 에세이에 피드백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네요.

  1. 주제나 문제제기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열심히 고민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진짜 고민이 무엇인가? 고민이 없다는 것은 게으르거나,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문제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적인 이야기를 다 드러내라는 것이 아니라, 그 포인트를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2. 개념을 정교하게 이해한 후 자기문제에 적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개념이해의 완성도가 높지 않더라도 자기문제를 엮어서 적용하려는 시도가 필요 하고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개념정리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3. 에세이는 내용정리가 아니다. 자기문제를 한 발 더 밀고 나갈 수 있는 방식으로 써야한다. 내용정리나 자기 요약문으로 기본기를 다지고, 그 것을 바탕으로 자기문제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에세이를 풀어가야 한다.
  4. 씨앗문장을 선택할 때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 문제를 촘촘하게 풀어나가는 것이다.
  5. 글은 평면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건은 입체적이다. 그래서 사건을 글로 풀어내려면 다차원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6. 글은 구성이다. 완성도 높은 글을 쓰려면 내가 전달할 포인트를 잡고 기술적으로 구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7. 어떻게 쓸 것인가?는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직접 걸어 가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글쓰기의 방법을 안다고 해서 그렇게 써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방법은 그냥 계속 써보는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에세이를 준비하며, 또 합평을 통해서 각자 개념들을 좀 더 정교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되기’에 대해 조금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몰적인 선분들로 형성된 것들 즉, 거시적인 것들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나와 미시적으로 관계되어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강고해 보였던 척도들도 사실은 카오스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 운동과 속도를 지각하는 것, 미시적인 것과 거시적인 것의 상호 영향과 관계들, 몰적 선분에서 어떻게 탈주선을 만들어 갈 수 있는가? 들/가가 거시정치 보다 미시정치를 주목하고 강조하고 있는 이유, 그리고 ‘되기’는 변화이지만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 등등입니다.

좀 아쉽게 느껴졌던 것은...

회원들 간의 피드백은 좀 약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서로에게 질문과 지적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신뢰관계가 형성 되지 않은 것도 있을 것 같고, 각자의 맥락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문탁샘은 ‘내가 20년 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 보다 여러분들이 훨씬 더 잘 하고 있다.’라는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 격려로 훈훈하게 마무리 했습니다.

댓글 6
  • 2019-10-04 21:35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 격려셨군요....ㅋㅋㅋㅋ

    저 같은 경우, 들뢰즈의 미시정치학 자체는 매우 재미있었고 즐겁게 썼지만, 막상 에세이를 쓰다보니 그저 툴에 맞춰 홍콩 사태를 분석하는 것에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툴에 맞춰 분석하고 해석만 하기보다 좀 더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한국 정치관으로 글이 흘러간 듯 해요. 하지만 시간 부족 등의 이유로 여전히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약했고요. 문탁샘의 피드백에 따라 그 부분을 강화해보려고 하는데....과연 어떤 방안이 있을까는 여전히 막막하네요. 그래도 연말까지 열심히 노력해보려 합니다.

    • 2019-10-05 07:41

      명식아...사실 멀리 있는 홍콩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조국사태를 '미시정치'의 입장에서 분석해보는 건 어떠니? 물론 무쟈게 어렵겠지만. ㅋㅋ 이미 이진경, 조정환, 김세균 등이 긴 글을 쏟아내고 있어... 한번 찾아서 읽어보셈

  • 2019-10-06 00:08

    에세이를 쓰는 건 어렵지만 역시 글을 써야 어떤 문제에 놓여있는지 보이는구나를 다시 깨달은 날이었습니다.
    개념이 아직은 낯설고 어려워서 다른 사람의 글에 어떻게 피드백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4분기 열심히 따라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2019-10-06 00:31

    에세이 시간에도 말했듯이 3분까지 지나면서도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전 나름 좋은 점을 말하고 싶네요. ^^

    <천의 고원>은 참 신묘한 책인 것 같습니다.
    리좀부터 리토르넬로까지 처음 읽을 때는 무슨 뜻인지 도~통 알 수 없었습니다.
    들/가는 소설도 콩트도 에세이도 이론서도 아닌, 괴상망측하고 이해할 수 없는 혼합종 / 괴물같은 모습의 책을 왜 썼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명쾌하게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생활의 현장 속에서 들뢰즈/가타리의 개념들을 마구 적용하게 되더라구요.

    등산하는데 지나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라디오를 켜 놓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분들은 홀로 등산하면서 자신만의 리토르넬로를 이렇게 형성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파지사유에서 일어나는 작은 다툼을 보면서는 '이건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비언어적 요소,
    언어 이외의 잉여들에 주목하지 못해서 그래'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더군요.
    우연치 않게 참여하게 된 서초동 검찰개혁촛불집에를 보면서도, 아...정말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결코 하나의 동일성으로 묶을 수 없는 각각의 욕망의 들끓음이구나라는 생각까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금쯤 다시 읽으면 이해되겠지라는 기대로) 몇 고원들을 다시 읽어봤는데 놀라운 건 '여.전.히' 텍스트 이해는 잘 되지 않았다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들/가의 언어 아닌 언어 이외의 것으로 말하려는 들/가의 뉘앙스에 젖어들어가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야말로 아주 정치적인, 삶정치에 다이렉트로 적용해서 실천하고 성찰할 수 있는 좋은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의 고원>은 아주 실용적인 정치적 텍스트라는 생각!

  • 2019-10-06 00:55

    친구들의 에세이를 지금에서야 읽었습니다. 자신의 고민을 들/가의 공부를 가지고 밀어부친 글들을 보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네요.
    에세이를 쓰면서도 이게 맞나, 내가 뭘 쓰고 있나 미심쩍어 왕창 깨지더라도 문탁샘과 도반들 피드백에 기대보자 했었는데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가 나서 3분기 에세이 발표도 함께 하지 못했네요. 많이 아쉽습니다.
    4분기는 부디 무사(?)히 함께 하기를 바래봅니다.^^

  • 2019-10-06 05:01

    타라쌤 전날까지 에세이 쓰다가 가셨다고 들었는데 함께하지 못해서 너무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건강하신듯하여 너무너무너무 다행입니다.

    저는 막간의 쉬는 기간을 이용해 스페인에 와있습니다. 폭풍같은 시간을 보내고 급히 스페인에 와서 그런가, 에세이데이가 아주 오래 전 일처럼 멀게 느껴지네요.
    세미나원들간에 피드백이 부족했던 건, 저 같은 경우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그랬습니다. 부분부분은 알겠는데, 이런 저런 개념을 엮는다던가 실례에 적용해본다던가 하면 엉성하게 되고 아주 오래걸려서..ㅜ 차라리 저번 에세이데이는 좀 나았던 것 같은데요, 진도가 더 나가면서 모르겠는 것도 더 늘어나버려서 감당이 안되네요 하하 다음 에세이데이에는 좀 더 나아지길 스스로에게 기대해봅니다.

    글을 내가 쓰긴 하지만, ‘글=나’가 아니란 생각을 왕왕 하는데요. 내가 글을 앞서가거나, 글이 나를 앞서가는 일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에세이 같은 경우 글이 저를 많이 앞서간 케이스인듯합니다. 스페인에서 버스를 타서, 길을 걸으며, 바다를 보며 에세이를 다시 곱씹어보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썼었더라, 그게 왜 그런거라고 썼었더라.. 제 글을 제가 다시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문탁쌤의 위로는 저에게도 위로가 되지 않는 위로였습니다. 저희가 더 잘 이해한건 당연히 그동안 들어왔던 게 있어서, 사회적으로 이미 통용되는 게 있어서 그런 것이니까요..ㅋㅋ
    그래도 장자와 들뢰즈를 같이 읽는 이 무식하고도 용감한 일을 어떻게든 해내고 있다는 게 신기할따름입다. 모두에게 고생했다고 박수쳐주자는 라라쌤의 첫 문장을 받아 저도 박수를 치며 후기를 마무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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