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고원8-9장]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뿔옹
2019-08-28 16:26
396

사건의 철학자 - 들뢰즈

차이, 배치, 접속, 리좀, 개념의 발명.....들뢰즈를 묘사하는 말이 참으로 많지만

'사건'만큼 잘 표현하는 것 같지는 않다. 

 

여기서 '사건'과 대비되는 말은 사실이다.

사실은 점이고, 변화가 없으며  이웃하는 것들과의 그 어떤 연관성도 드러내지 않는다.

사실'만' 아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사실은 죽은 사건이고, 응고된 사건이라고 봐야한다.

그렇다면 사실은 어떻게 '사건'이 되는가?

어떤 사실이 그 사실과 이웃하는 여러항들과 '계열화'되면, 이제 그 사실은 사실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사건'이 된다.

예를 들어, <모던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은 청소트럭에서 떨어진 '빨간 깃발'을 돌려주기 위해서 뛰고 있었다.

빨간 깃발과 청소트럭으로 계열화된 사건은 '조심Watch out'의 의미이다.

그런데 사거리에서 트럭을 놓치고, 시위대와 접속하면서 빨간 깃발은 들고 있던 채플린은 '공산주의자'가 되어버린다.

즉 하나의 사물, 사실이 다른 사물들과 계열화되는 것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고, 사실은 '사건'이 된다.

 

들뢰즈는 점에 대한 사유가 아니라 점과 점이 이어진 '선'적인 사유를 중시한다.

점을 중심으로 한 사고에서는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지만, 선을 중심으로 한 사유에서 점이란 모든 방향으로 열려있다.

변화의 가능성, 생성과 창조의 가능성이 여기서 나타난다.

 

들뢰즈에 따르면 우리 삶을 세 가지 선으로 구성되어있다.

견고한 분할선, 유연한(분자적) 분할선, 그리고 도주선!

견고한 분할선은 학교, 학년, 번호와 같은 구분은 개별적인 특성을 고려하기보다는 통계적 평균에 의해 표시된다.

좀 더 세밀하게 보면 50분 수업에 10분 휴식 시간 역시 견고한 그램분자적(몰적) 선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유연한 분할선에는 항상 분자적 떨림이 있다. 

100명이 듣는 수업은 분명 견고한 분할선이지만 여기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은 각자가 주어지는 것과 결합하여

독특한 사유를 만들어낸다. '끝나고 애인을 만날까'는 생각에서부터, "딱 시험문제에 나오겠는다"라는 생각까지.

유연한 분할선은 항상 양쪽으로, 견고한 선으로 재영토화될 수도 도주선을 그려낼수도 있는 모호함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도주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런데 들뢰즈는 항상 이 부분에서 해석하기 어려운 말들을 쏟아낸다.

'도주선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든가 '도주선은 항상-이미 먼저 있다.'

도주선이 먼저 있다고???

사실 도주선들의 우글거림 속에서 견고한 분할선, 유연한 분할선이 구성되는 것이라고. -.-;;;;;

문탁샘에 의하면 도주선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다음주에 볼 10장 '되기'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래도 살짝만 적어보자. 

현재의 견고한 분할선이라고 생각하는 견고한 군대 체계, 딱딱한 대의 민주주의들은

그 이전에 '존재하던' 도주선들(속의 존재들)을 포획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

우리의 생각과 달리 규칙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주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주선들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다른 선들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들뢰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견고한 선은 나쁘고, 유연한 선을 좋고, 도주선은 짱이 아니다.

유연한 분자선에서 형성된 흐름들이 구체적이고 견고한 분할선들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들/가가 68혁명에 대해서 말한 것을 들어보면 조금 더 이해가 된다.

“분자적인 탈주와 운동은 몰적인 조직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면, 성, 계급, 당의 이항적인 분포로,

그 선분들로 되돌아오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삶은, 우리의 신체는 수많은 선이 통과하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들뢰즈의 질문은 사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여자가 있었다거나 죽은 사람이 있었다. 칼이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연결(계열화)되는가가 중요하다. 이 질문 자체는 '사건'에 대해 묻고 있다.

 

들뢰즈는 8장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거쳐서, 실제로 하고 싶은 '미시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들뢰즈는  '거시정치'와 다른  '미시정치'를 언급한다.

분자적 파동과 흐름 속에서 개개인간에 퍼지는 전염들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

하지만 미시정치에 대한 들뢰즈의 이야기를 좀 더 고려해보면 그 어떤 (거시)정치도

미시적 흐름, 분자적 떨림이 없는 정치가 없다는 것이다.

 

 

 

 

 

 

댓글 2
  • 2019-08-29 07:15

    수업을 듣고도 긴가민가 한 부분이 있었는데 후기를 읽고 정리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 2019-08-29 22:25

    1. 견고한 분할선 개념을 이해함에 있어 국가, 제도, 관습이라는 이미지를 넘어서는 것이 상당히 쉽지 않네요. 아무래도 이러한 이미지가 너무 확고하게 머릿속에 박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2. 수업 중 파시즘의 발생과 이 고원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제야 이전에 공부했던 파시즘의 발생을 다루던 텍스트들이 떠오르면서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시즘믜 대중심리>나 <거대한 전환>(일부지만) 같은.....문탁샘 말씀대로, 이를 오늘날 현실에 견주는 작업이 꼭 필요하리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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