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술장파 후기 - 고원해서 위험한 장자

고은
2019-08-19 07:30
449

 

 

 

1. 좋아하기 딱 좋은 책 <장자>

  장자 외편을 읽으며 저희 토론 조에서 공통적으로 나오고 있는 어려움이 하나 있습니다. 양이 너무 방대하다는 것과, 그로 인해 내용을 꼼꼼하게 보기가 어렵다는 것, 게다가 내용이 중구난방이라 하나로 꿰는 게 어렵다는 것입니다. 내편과는 다른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 듯 합니다. 내편에서는 <장자>가 어떤 텍스트인지 어떤 주제들을 반견해낼 수 있는지를 질문했다면, 외편은 당시 사람들이 내편을 어떻게 읽었는지를 질문하는 편이 읽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중구난방의 글을 후학들의 에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접근하기가 영 곤란합니다.

  제게는 내편과 외편을 비롯한 <장자>를 읽으며 개인적으로 부딪히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최근에 <소학>을 읽고 또 수업도 했던 터라, '비근한 것'과 '일상적인 것'이 왜 중요한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엄청 강조하곤 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소학>의 문장 중 하나는 명도선생이 한 말인데요, '공부하는 자들이 삶과 가까운 것을 버려두고 경솔하게 위대한 척해서 결국엔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는 비단 옛 사람들에 대한 문제지적이 아니라 오늘날 사람들의 뼈를 때리는 날카로운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원한 것을 먼저 접했을 때 갖게 되는 문제는 오늘날 어디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원한 것에만 사로잡히게 되면 대개 상태가 붕 뜨고 허세가 들곤 합니다. 특히나 저는 저와 제 친구들이 그것을 경계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20~30대는 특히나 그러기 쉬운 나이이기 때문이니까요. 그런데 장자는 너무 고원했습니다. 허세부리기 딱 좋은 책, 내 입맛대로 바꾸기 딱 좋은 책, 오독하기 딱 좋은 책, 함부로 좋아하기 딱 좋은 책이었습니다. 거부감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누구나 장자를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누구나 장자가 잘 맞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래? 너는 그걸 이해하고 있어? 저는 다시 묻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장자>를 잘 이해해야 했습니다.

 

 

2. 내편을 보충설명하고 심화시킨 술장파

   외편을 읽으며 감을 잡기 시작했을 때부터 외편이 재미있게 느껴졌던 이유는, 당시 <장자>를 읽었던 사람들이 이 텍스트를 가지고 얼마나 현실에 고분고투했는지가 잘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참 특이한 책인 것 같습니다. 같은 이름으로 묶여있으면서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다시 사유한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들어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이번 술장파를 읽고 나니까 무군파와 황로파의 특수성이 더 잘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군파가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고, 황로학파는 보다 적극적으로 정치와 <장자>를 연결시켰다면, 술장파는 <장자>에 대해 보충설명하고 심화시켜 그것을 삶의 기술로 풀어낸 것 같습니다.

  발제에도 썼지만 술장파에는 유독 친절한 구절들이 많이 나옵니다. 우화에 등장하는 질문하는 사람은 저와 같은 초보 독자를 대신해 굉장히 현실적인 질문을 던져줍니다. 물론 그에 대한 답변은 편 별로 약간의 온도차이가 있었던 듯 합니다. <추수>편 같은 경우 내편과 비슷한 방식인 우화로 접근해 풀어낸다면, <지북유>편 같은 경우는 정확하게 개념을 한자로 드러내면서 내리 꽂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외편 술장파에 해당되는 편들은 '근본'에 대해 주장하고 있다는 점과,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양생>편과 비슷한 <달생>편이 있는 것도, <인간세>편과 비슷한 <산목>편이 있는 것도 모두 그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발제에서 저는 '자화自和'라는 개념을 가지고 왔었는데요, 문탁 선생님이 자화를 그 뒤에 이어서 나온 '집중'의 기술과 연결시키신 부분이 재밌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집중의 기술을 구현하고 있는 장인들에게는 그들의 태도를 묘사하는 표현이 있었는데 그것이 미묘하게 비슷했습니다. '귀신과 같았다'거나 '나무와 같았다'혹은 '시체인 줄 알았다'고 표현합니다. 만일 자화의 '자自' 자를 '자동적'이라고 표현한다면, 집중해서 자동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라면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저렇게 표현하며 놀랄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로 치자면 '로봇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3. 고원한 것과 비근한 것

  저는 이제 이렇게 말할 수있을 것 같습니다. 장자는 일상적으로 가지고 내려오기 충분히 좋은 책이고, 그런 의미에서 유용한 책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발제를 마치고나니 한가지 의문이 남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소학>을 공부하면서 혹은 미학세미나를 하면서 갖게 된 의문과도 맞물리는 지점입니다. 고원한 영역을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 내려왔더니, 어떤지 협소해보입니다. 분명 유가의 순서대로라면 일상에서 시작해서 고원한 것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제가 끌고 내려온 일상적인 것은 어쩐지 고원한 것으로 올라갈 것처럼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남루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한 편으로는 비근한 것과 고원한 것이 사람들에게 잘못 쓰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비근한 것에서 시작해서 고원한 것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고원한 것에서 시작해서 비근한 것으로 쓰인다고요. 그런데 저야말로 딱 그 짝이 난 것 같아 보입니다.

  이번 발제를 하면서 어쩌면 이것은 비근한 것과 고원한 것의 분별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어렴풋하게 들었습니다. 감 같은 것이라서 아직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를테면 <장자>와 같은 텍스트는 고원한 것과 비근한 것의 분별을 없애 왔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술장파에서는 도를 굉장히 고원한 경지로 표현하고, 그릇이 되지 않는 자가 도를 만나면 미쳐버릴 것이라고 경고하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장파에서는 이 세상 만물이 도의 발현이기도 하니까, 현실을 인정하고 미쳐버리지 않는 선에서 도를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여지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제가 미학세미나 에세이에 썼던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요. 여하간 저는 어떤 것에 반기를 들고 싶었지만, 결국에는 비슷한 방식으로 답습하고 있는 것 같다는 답답함에 봉착하였습니다. 다음 에세이에서는 가능하다면 이 부분을 조금 더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고원해서 위험한 <장자>라고 생각하며 비근한 영역으로 끌어내리려고 아둥바둥 하는 것이 아니라, 고원해도 위험하지 않은 <장자>라고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댓글 4
  • 2019-08-19 10:57

    고은이는 똘똘하다.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텍스트를 읽으면서 늘 '골똘'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골똘.jpg

    • 2019-08-19 11:01

      그런데 그 질문들을 글로 정리하면 대체로 엉긴다. 그래서 고은이의 질문은 생산적으로 토론되지 못하고 늘 무슨 말이냐를 묻고 이해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고은이의 언어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일게다. 하지만 이건 공부가 진전되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해왔다.
      지난번 고은이의 발제, 그리고 이번의 후기에서 고은이는 확실히 보여줬다.
      똘똘한 아이가 꾀부리지 않고 공부하면 어떤 진전을 보이는지...
      고은이는, 이제 확실히 감! 잡았다^^

      고은아, 이거 특급칭찬이야, 알쥐? ㅋㅋㅋㅋ

  • 2019-08-20 21:58

    이번주 삼경스쿨에서 읽은 <소학> 부분에 장자 술장파가 생각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명도선생이 종일 단정히 앉아있는 것이 마치 '진흙으로 만든 인형'과 같았다." 살아있는 기운이 느껴지지 않고 마치 시체와 같았다는 뜻입니다.
    유독 집중과 수련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요, 그중에서도 이부분은 나무인형과 같아진 닭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 2019-08-21 15:38

    참석하지 못하여 아쉽습니다. 제가 읽은 내용과 후기 등을 보니, 술장파는 무군파나 황로파에 비하여 조금은 더 정통(?)에 가깝게 내편을 받아들이려 했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무군파와 황로파 역시 자신들 나름대로 내편을 현실 맥락에 가져오려 한 것이니 셋 중 하나에 우열을 매길 수는 없겠지만요. 다만 개인적으로는 술장파의 접근이 가장 흥미로와서,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다음에는 수업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 이런 아쉬움을 느끼는 일도 없도록 하겠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809
[2024 철학학교 시즌2] 순수이성비판 : 선험적 변증학 읽기 모집 (3)
정군 | 2024.04.09 | 조회 119
정군 2024.04.09 119
808
[2024철학학교1] 시즌 1 마지막 시간, 방학이다! (3)
진달래 | 2024.04.09 | 조회 150
진달래 2024.04.09 150
807
[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8주차 질문들 (9)
정군 | 2024.04.02 | 조회 117
정군 2024.04.02 117
806
8주차 번외 질문 (3)
아렘 | 2024.04.02 | 조회 83
아렘 2024.04.02 83
805
[2024 철학학교1] 7주차 후기: 시즌 1이 거의 끝나갑니다. (7)
아렘 | 2024.03.29 | 조회 140
아렘 2024.03.29 140
804
[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7주차 질문들 (10)
정군 | 2024.03.27 | 조회 116
정군 2024.03.27 116
803
[2024 철학학교1] 6주차 후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0)
휴먼 | 2024.03.24 | 조회 165
휴먼 2024.03.24 165
802
[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6주차 질문들 (9)
정군 | 2024.03.20 | 조회 178
정군 2024.03.20 178
801
[2024 철학학교 1] 5주차 후기: 쪼그라든 상상력, 불어난 통각 (7)
세븐 | 2024.03.15 | 조회 217
세븐 2024.03.15 217
800
[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5주차 질문들 (9)
정군 | 2024.03.13 | 조회 162
정군 2024.03.13 162
799
<2024 철학학교1> 4주차 후기 (8)
세션 | 2024.03.10 | 조회 205
세션 2024.03.10 205
798
[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4주차 질문들 (10)
정군 | 2024.03.06 | 조회 262
정군 2024.03.06 262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