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철학학교] 새로운 철학 교과서 3, 4장 후기 & 철학학교 후기

정군
2021-06-1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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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요약문을 쓸 때에... 예감했습니다. '아마, 이번 시간 후기는 내가 써야겠지...'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그래도 '이번 후기는 누가 쓸까요?'라고 일단 질러 놓으면 누군가, 과감하게 나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까지 생각하고선 '이번 후기는 누가 쓸까요?'라고 묻질 않았네요... 허허...허허...허허. 그래서 이쯤에서 노래 한 소절이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이오공감, 한사람을 위한 마음)

 

이번 후기에 대한 예감은 그랬고요 ㅎㅎㅎ 다행인건 '세미나'는 그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사실 1학기 철학학교 세미나의 거의 전체가 늘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항상 예상보다 더 높은 강도에 다다랐던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었어요. 저는 일단 그랬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텍스트'를 초과하는 질문들이 나왔으니까요. 그래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텍스트 너머'로까지 가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게 다 저의 공덕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는 농담이고요 ㅎㅎㅎ...(까지 쓰고 '그냥 지울까' 싶기도 하지만, 어쩐지 지우기 싫기도 하군요 후후후) 그런 문제가 아니죠. 사실 저는 솔직한 말로 세미나를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조금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은 건 아닌가', '자칫 죽도 밥도 안 되면 어쩌지', '나 때문에 쫄딱 망하는 거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실제 세미나를 해 가면서 그런 걱정들이 현실화되는 것 아닌가 싶은 순간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집합적인 힘'으로 고비를 넘었습니다. 그게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그리고 그 순간들을 함께 겪으면서 얻은 힘으로 『세미나책』 막바지 작업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한 세미나가 '다음 세미나'를 그릴 수 있는 정도까지 오게 된 것이나, 저 개인적으로 『세미나책』을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건 2021 문탁네트워크 철학학교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뼈 좀 어떻게... 받아주시겠어요? ㅎㅎㅎ)

 

자, 여기까지는 이제 세미나 전체에 대한 총평이었고요, 아무리 마지막 후기라지만, 마지막 세미나에 관한 이야기는 안 할 수 없으니 이제 그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저는 마지막에 가마솥샘께서 '아, 이거 뭐 그냥 정신승리 아니여' 하는 말씀에 뭔가 좀 번쩍하는 기분을 느꼈는데요, 저는 이번주에 다룬 테일러-드레이퍼스, 가브리엘 부분이 특히 그런 느낌을 많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있는 것을 있는 것으로 긍정하는 법'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니까요. 저도 사실 그렇게 느껴서 읽어가는 막판에 힘이 좍좍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3장의 후반부에서 한번, 4장의 후반부에서 한번 이렇게요. 그런데 가마솥샘 말씀을 듣고나니까 '아! 맞아 이 두 철학에서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던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이건 사실 요요샘이나 아렘샘께서 하신 말씀하고도 통하는 면이 있는 듯 합니다. 그러니까 '현실적인 맥락에서 적용가능성이 높다'는 말씀이나 '일관되게, 사변적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방법 자체의 위험성' 같은 말씀들 말입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이 사유들의 중요성은 (여느 사유들이 그렇겠지만) '어떻게 하자'는 데 있다기 보다는 그 사유들의 '동기'와 그 '동기'로부터 이어지는 '문제설정' 그리고 그로부터 결과된 '탈-본질주의'에 있었던 것이죠. 이를테면 테일러-드레이퍼스가 '매개'를 통해 세계를 전유하는 방식에서 '접촉설'을 구축해가는 방식이나, 가브리엘이 '세계'를 무화하는 것과 동시에 '대상 영역'의 무한성을 끌어내는 그 방식들이 주는 '영감'에 좀 더 집중했어야 하는 셈입니다. 물론, '공격과 수비를 잘하면 이길 수 있다'는, '다양성과 다원성을 긍정하자'는 식의 결론이 힘이 빠지는 건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우리 세미나는 어쨌든 '철학사 세미나'니까요. 말하자면 '문제설정'의 변천을 살펴보고, 그로부터 각자의 '문제설정'에 자극을 줘보자는, '목표'가 분명한 세미나에 잘 맞는 주제였던 셈입니다. 그래서, 이로부터 저는 몇가지 문제의식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공부한 현대 실재론이 한 묶음으로 묶어놓은 '포스트모더니즘' 사유들이 정말로 모든 것을 '상대화' 하는가?' '그리고 그런 사유들이 몰아낸 높이(초월성)와 넓이(보편성)가 정말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물음에 부적합한 답을 주는 것인가'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사실은 이런 질문들을 세미나 전에 좀 더 살펴봤더라면 그렇게 맥아리 없는 말들을 하지 않았을텐데 하는 후회도 좀 있기도 했고요. ㅎㅎㅎ.

 

뭐 어쨌든, 이제 확실한 '마감'이 있는 본 세미나는 끝나고, 비교적 여유로운 휴지기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에세이'(비슷한 후기)를 써야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제 계획은 꽤 장대합니다. 세미나 때 참고하려고 사 놓은 여러 책들 중에서 아직 제대로 읽지 못한 몇몇 책들, 특히 교양과학에 속하는 책들을 읽어볼 생각이고요. 그리고, 읽고 싶지만 꾹꾹 눌러가며 참았던 여러 소설들을 하나씩 읽어갈 생각입니다. 아 그리고 오늘날 '소설'의 자리를 급속도로 대체해가고 있는 콘솔 게임도 할겁니다. 으... 두근두근 하군요.

 

다들 고생하셨지만.... 즐거우셨으리라... 믿고....싶습니다. ㅎㅎㅎ

그럼 27일에 뵙겠습니다!!

 

댓글 4
  • 2021-06-14 23:52

    누가 뭐래도 정군샘의 애씀이 빛을 발한 시간이었습니다. 철학를 읽는 여정에서 좌충우돌 삐딱한 아렘이 완주를 했으니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A4 두 장 분량의 후기는 당분간 잊고 그간 읽으려고 벼르던 책, 철학사를 읽으며 도저히 지나칠 수가 없구나 했던 책, 정군샘이 내려주신 책비들 중의 몇 권 거기다가 다시 들여다 보기로 했던 책들 위주로 골라서 혼자 쌓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진도 부담 없으니 뭐 설렁설렁 책에 줄이나 치며 지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1-06-15 09:22

    새로운 철학 교과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서양철학사의 마무리로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정군님의 자화자찬 인정!)

    '높이'와 '넓이'라는 말로 현대실재론을 분류하고 정리한 쇼타로의 방식도 칭찬하고 싶어요.^^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 한 것이, 아무래도 '높이' 보다는 '넓이'가 더 현실의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높이는 우리(?)를 매혹시킴에도 실제 삶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넓이는 거의 모든 삶의 장면에서 우리를 신경쓰게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늘 뭔가 아쉬웠던 다원주의(다문화주의, 종교다원주의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 더이상 찜찜해 하지 말자!로 정리가 되는 것 같네요.

    다원적 실재론이라는 말을 배웠으니까요.

    음.. 그런 점에서  드레이퍼스의 책 <모든것은 빛난다>가 다시 생각나네요. 그 제목이 다원적 실재론과 통하는 듯.

    다원적 실재론도, 의미의 장이라는 존재론으로 풀어가는 새로운 실재론도,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면서 보편성의 문제를 풀어보려는 문제설정임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다원주의를 새롭게 맵핑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이건 쇼타로가 의도한 건지, 아닌 건지 잘 모르겠지만요.

    의미의 장 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천천히 가브리엘의 책을 읽으며 좀 더 생각해봐야겠어요.

    세미나에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불교의 '연기' 개념과 연결해서 의미의 장을 생각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거든요.

    아무튼.. 다음 철학자를 읽어야 하는 부담이 사라지니.. 뭐랄까, 그렇게 날아갈듯하지만은 않은.. 풀지못한 숙제와 함께 남겨진 느낌입니다.

    모두 애쓰셨습니다!  2주 뒤에 만나요~~

     

  • 2021-06-15 10:49

    아마 후기 쓰실 분..하시면 제가요 할 분은 아마도 저였을 거예요ㅎㅎ (속으로는 안 돼 하면서 ㅋㅋ) 정군샘의 후기를 읽으며 자원하지 않기를 잘했어..라고 생각했어요. 샘의 후기를 읽고 싶었던가봅니다. 특히 뼈를 받아달라는 그런 익살은..정말이지..... 저의 남은 오전을 즐겁게 해줄 듯합니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시간이 부족해 어제 빠르게 읽었는데 뭔가 정답을 만난 느낌? ㅎㅎ 저도 당장 책을 주문했어요. 이건 느낌적인 느낌이라 이 부분은 말을 보태지 못했지만 제게는 지금도 '의미의 장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은 제 앞에 놓인 저 회색 물체는 돌이다만큼 분명하게 다가와요. 그런데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의미의 장은 존재를 바라보는 여러 측면이 아니고 의미의 장 자체가 존재함의 방식이다.. 존재의 복수성..하는 말들을 다시 찬찬히 생각해보니 이제 상관주의와 정말 다른건가..실재한다는 게 뭐지? ㅎㅎ 하는 궁금증이 다시 들고, 정군샘이 의미의 장이 모든 것을 쉽게 설명해버리는 만능키인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하실 때도 아 그렇네 하는 경각심이 들었어요. 그리하여 더 찬찬히 자세히 봐야겠구나...하는 한결같은 (바람직한?) 결론으로. ㅎㅎ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과는 다른 흐름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네 부류의 철학 못지 않게 쇼타로도 기억에 남을 것 같고요.

     

     

  • 2021-06-20 14:49

    며칠전 비전세미나 에세이를 쓰는 중에 여울아 쌤이 저에게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이 현대실재론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면서

    물방울이 이 주제로 써보라고 하길래.... '뭐래~'라며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릴려고 했는데....

    계속 생각이~~ (제 귀는 너무 얇아서 ㅜㅜ) 여튼 그 말 때문에 '실재'에 대해 .... 의미의 장에 대해 이래저래 생각해봤네요

    그러다 보니 예전에 읽었던 데이비드 그레이버에 나오는 '실재'도 다시 한번 스윽 보게 되구...

    세미나가 끝나며 주는 질문들이 있네요~ 

    물론 금세 잊겠지만...ㅎㅎ 

    두 분 튜터님들 증말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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