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학교후기_11장, 12장에서 만난 로크, 버클리, 흄

봄날
2021-04-0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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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의 원천이 이성임을 주장하는 합리주의에 이어 로크가 등장한다. 당대 근대과학이 발흥하면서 과학적 방법이 로크의 주목을 끈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왜냐 하면 그는 당시 사람들이 끊임없이 결론이 날 것 같지도 않은 종교문제와 도덕문제를 논하는 것에 대한 회의에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식은 경험으로 지각된 것만으로 얻어진다고 말한다. 합리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생득적인’ 개념은 없다. 인간은 ‘백지상태’위에 경험으로 지식이 그려진다. 그런데 당연히 의심이 생긴다. 정말 우리는 경험한 것만을 가지고 있을까? 지각없이 이루어지는 개념획득은 없는가? 우리의 질문도 여기에 집중된 것 같다. 결국 로크는 단순관념(지각으로 얻어지는 지식)에 더해 복합관념을 제시했다. 그렇다고 이것이 합리론에서 말하는 ‘본유관념’과 같은가 하는 질문에 내가 어떻게 답했더라....역시 후기는 즉각 썼어야 하는데...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물론 복합관념은 지각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단순관념을 토대로 한 것임에는 분명하다는 생각을 밝힐 뿐이다.

버클리의 경험론은 내 생각에는 스스로의 모순을 가지고 있는 사상인 것 같다. 지각하는 것만을 인정하면서도 ‘신’의 영역을 일종의 예외로 두고 있지 않나. 그런데 그 신의 도입이 미묘하다. 존재는 지각되는 것이고 지각된다는 것은 수동의 의미이니, 그렇다면 (능동적으로)지각하는 주체가 생긴다. 버클리는 이 주체를 신이라 했다. 결국 여기서도 지각 바깥의 무엇인가를 상정하고 있다. 질문에 나왔던 동일성의 문제는 가령 한 컵의 물에 대해 a는 차갑게 지각하고, b는 뜨겁게 지각할지언정 누가 참인지는 오직 ‘신’만이 알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

흄은 일단 “휴~”하고 한숨이 나온다. 발제할 때의 기억 때문이다.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의뢰로 흄은 정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물질과 이성 모두를 부정하고 오직 인상(외적 지각과 내적 지각을 포함)과 관념만이 있으며, 실체는 없고 단지 관념들의 관계만이 있다고 말한다. 더구나 인과성 개념마저 부정한다. 사실 내가 앞으로 공을 굴린다고 그 공이 앞으로 굴러갈 거라고 어떻게 안단 말인가? 오랜 굴림의 결과를 관찰한 결과 귀납적으로 알게 된 것,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일 뿐 그 필연성은 말할 수 없다. 이같은 지각에는 어떤 도덕적 의미도 없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감정이 어떤 가치판단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들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즉 관습이나 습관 속에서 어떤 공통체적인 법과 규칙을 구성한다. 즉 계약을 통한 법과 규칙에 앞서는 것이다. 질문은 여기에서 그렇게 만들어진 법과 규칙의 보편성은 어떻게 당위를 얻게 되는가, 그래서 ‘공정하고 사심없는 입장’이라는 전제를 내세운 것 아닌가..등등으로 쏟아져 나왔다. 나는 흄이 감정이나 공동체, 공통의 감정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의외였고, 그런 방식의 보편성이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에 의심이 갔는데, 사실 이것이 참이냐 거짓이냐를 따지는 것은 흄의 관심 대상 밖이라는 아렘샘의 설명에 갑자기 ‘확~’ 이입됐다. 나중에 바로 이 부분이 칸트에게 비판받았다고 하니 다시 한번 주시해야겠다.

댓글 2
  • 2021-04-08 19:49

    오! 잘 읽었습니다! 

     

    녜... 흄 같은 유형의, 아니 경험주의자 전체가 '정리'를 하다보면 어쩐지 어려운 느낌이 있습니다.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성주의자들에 비해서 논변이 덜 일관적인 느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반면에, 원전을 읽어보면 이쪽이 훨씬 잘 읽힙니다! 심지어 더 재미있기도 하고요. 다만, 뭐라고 해야할까요, 끝까지 다 읽고 난 다음에 '아, 아름답다' 싶은 느낌은 훨씬 떨어집니다. 

    말씀하신 '보편성' 문제는 다음주 발제에 살짝 들어가 있습니다. 로크로부터 밀까지 '경험주의'도 일종의 '정교화' 과정을 밟는 듯 보이더라고요. 

     

  • 2021-04-09 10:32

    대륙의 합리론, 영국의 경험론이라고들 말하는데

    왜 대륙에서는 합리론의 전통이, 영국에서는 경험론의 전통이 더 강하게 뿌리내린 것일까요?

    음.. 아마 여러 사람들이 이에 대해 분석한 이야기들도 쌓여 있을 것 같네요.

    그런데 이것이 '근대'라는 시대성만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배경, 법전통 등과도 모종의 관련이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하다

    불현듯 오컴의 윌리엄도 영국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떠오르네요.

    혹시 중세에도 유명론이 대륙보다 영국에서 더 강세였던 것이었을까요?(흠!!)

    하하.. 이렇게 철학사와 철학자들의 계보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질문들과 상상이 이어지는군요.

    이런 상상과 의문, 아무래도  철학사 공부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사이드 이펙트가 아닌가 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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